닥터스 1
에릭 시걸 지음, 석은영 외 옮김 / 김영사 / 199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닥터스는 영화로 더 유명한 '러브 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의 작품이다. 그 외의 유명한 책으로는 프라이즈, 하버드 동창생 등이 있다. 아쉽게도 나는 다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생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참 재미있다 플러스 참 아름답다."였다. 재미있다는 느낌이야 읽어본 사람들이면 대강 공감을 할 것이고, 아름답다는 우습게도 주인공 로라와 바니의 일생에 걸친 우정(을 가장한 사랑)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인관관계를 동경했다.

내용은 한줄로 요약가능하다. '하버드 출신 의사들의 삶과 애환-로라와 바니를 중심으로' 머 더 이상 늘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시 읽으면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했다.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내가 머리 속에 늘 되새김질하는 유홍준씨의 명언. "아는 만큼 보인다." 닥터스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미국의 시대배경이 삽화처럼 삽입되곤 하다. 심지어 베트남전과 같은 사건은 주인공과 그 주변사람들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의학적인 발견도 적절하게 삽입이 된다. 추측컨데, 시대상에 맞추어서 구성을 한 것 같다.

또한 친절하게도 장의 서두나 말미 부분에 그 당시의 배경을 짧게 소개한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이 소설은 시대적인 배경을 몰라도 소설의 재미를 느끼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서 다시 읽다 보니, 숨겨진 재미를 찾아내는 것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바니와 로라가 사는 곳은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에는 예전에 브루클린 다져스가 있었다.(지금 LA 다져스의 전신이다.) 이 팀은 양키스와의 라이벌로 유명했는데, 매년 월드시리즈에서 번번히 졌다. 그래서 브루클린 사람들은 양키스에 대한 미움과 월드 챔프에 대한 욕망이 간절했다. 가장 예를 들기 적절한 팀은 우리나라의 빙그레 이글스인 것 같다. 닥터스에서도 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955년은 미국인들이 두 번씩이나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춘 유쾌한 1년이었다. 브루클린을 빛낸 대사건도 그 중에 하나였다. 도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박살내고 월드시리즈의 승자가 되었으니!"

이 별뜻없는 문장 속에는 그 시대를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게다.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미국의 50~70년대다 보니, 그 시대에 대한 잡지식이 늘어났고, 이는 책을 더 맛깔스럽게 읽는데 도움이 된다. 제대로 읽으려면 영어판을 보거나, 더 알아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외국독자들을 생각해서인지, 닥터스는 시대적 배경에 깊이 기대고 있으면서도,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신기한 소설이다. 어쩌면, 우리가 의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고 에릭 시걸이 정말 스토리텔러로써의 테크닉이 뛰어나서 일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 우리 모두는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느꼈던 것은-이 글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하에-상식의 한계였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불과 몇 십년 전에, 심지어는 2~30년전까지도 통용되지 않았던 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참 씁쓸해지곤 한다.

주인공 중에 베넷 랜스먼이라는 흑인이자 유태인인 인물이 있다. 그는 부유한 유태인의 양자이다. 그가 유태인의 양자가 된 것은 세계 제 2차세계대전때 군인이었던 친부가 수용소에 갖혀 있던 양부와 양모를 구해주고는 자신은 발진티푸스로 죽었기 때문이다.(양부모는 그 보답으로 베넷을 양자로 맞이했다.) 베넷은 어느 무리에도 어울리지 못한다. 흑인들에게는 돈많은 유태인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돈많은 흑인일 뿐이다. 그는 여러 모로 훌륭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 중에서 제일 힘겨운 행보를 겪는다.(심지어 폭행으로 인해 의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이러한 험난한 행보에는 그가 '흑인'이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또한 야심만만한 '여자'인 로라 카스텔라노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기 때문에-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전공은 소아과이다.-그녀의 야심과 야심찬 행동은 늘 주위를 불안하게 만든다. 바니의 어머니가 그녀를 가리켜, '너무 똑똑하고, 너무 야심만만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녀가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거부하기 때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 전체적으로 볼때 초반부의 로라의 압도적인 이미지는 후반부로 갈 수록 가정과 어머니라는 존재에 매몰되어간다. 특히 바니와 우정(을 가장한 사랑)이 깨지면서 그녀의 존재감은 '바니의 부인' 이상은 아니다. 두 명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는 거의 남자주인공의 역할감이 두드러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때문이다.(다른 이유로는 남자주인공이 정신과에 있다는 점을 들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줌으로써 소설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한다.)

'모든 인간은 성별에 관계없이,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라는 상식은 과연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상식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아직까지 내 주위에서 직간접적으로 들리는 현실은 아직도 YES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컨데, 이 소설이 나에게 깊이 와닿았던 이유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아버지의 부재'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한 날이 적었던 나는 바니와 로라의 근원적인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맨 뒤에는 역자 후기가 나와 있는데, 의학적인 오류를 위주로 수정했다는데, 난 별로 차이를 못느꼈다. 이것 역시 "모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번역이 약간 순화된 느낌이고, 몇몇 문장은 생략된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별 차이가 없다.

아, 그리고 하버드에서의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저정도는 해야할텐데 말이지--;;;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닥터스는 재미있는 소설이고, 그냥 읽고 치우기에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이렇게 나름대로 긴 글을 쓰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10-04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