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마이클 루이스 지음, 윤동구 옮김, 송재우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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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스포츠 세계를 다룬 경영서적이긴 하지만, MLB라는 특수한 시장을 고려한다면 쉬이 출간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나같은 얼치기 MLB 팬들은 기다렸지만...

사실 책의 유명세에 비해 내용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들은 바가 없었는데, 이 책의 특이한 구성은 신선했다. 이런 종류의 서적에게 평균적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빌리 빈의 성공신화를 차곡차곡 소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유망주 빌리 빈의 실패, 어쩌면 인격적으로 결함이라고 볼 수 있는 통제불가능한 성격, 그리고 게임마저 단장이 통제하는 극도로 억압된 팀 문화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오히려 나는 이 서적을 보고 '인간' 빌리 빈이나 폴 다포데스타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졌다. 전자는 감정 제어가 잘 안되는 조급증 환자에 가깝고, 후자는 맨탈이나 현장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안경쓴 책상물림 스타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말처럼 골리앗을 이기지는 못했다. 플레이오프의 연이은 실패는 뼈아프다. 데릭 지터의 엄청난 백토스 송구로 인해 골리앗은 골리앗임을 입증했다. 훨씬 큰 마켓이지만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린 애틀랜타도 1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는 플레이오프 징크스 때문에 성공적인 팀 운영에도 불구하고, 폄하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성공이 빌리 빈의 존재로 인해 과대평가 되는 부분도 일견 존대한다. 

선수 보는 눈 또한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었다. 빌리 빈이 침을 튀기며 칭찬했던 에릭 챠베스는 연이은 거물 FA의 이적으로 인한 부담감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는 모습을 아직까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다이는 오클랜드에서 먹튀생활을 하고, 화이트삭스에 가서 더 싼 금액으로 우승에 기여하는 '오클랜드' 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이 국내에 나온 지금까지 빌리 빈이 한 트레이드는 실패작도 꽤 있었다. 예전처럼 100%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첫째,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야구가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오클랜드가 최초로 행한 태도가 과학적이고 통계적이었다는 점이다. 일정 부분 세이버매트리션 추종자들이 숫자놀이 전문가라던가 멘탈이나 체격같은 무형의 요소를 전혀 무시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본문에 등장한 스캇 캐즈미어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지만, 작은 체격의 투수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이버매트리션 류의 접근이 대세일 때 유효한 비판이다. 아직도 야구판은 현장을 중시하는 경험주의적 접근이 대세고, 세이버매트리션 식의 접근은 아직까지도 오클랜드에서만 가능했던 소수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통계적 접근의 해악성을 이야기하기엔 내 생각에는 아직까지 통계적 접근의 유효성이 더 크게 보인다. 이런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야구팬들에게는 큰 가치가 있다.

또한 그들은 특정한 규칙들을 극대화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성공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스몰 마켓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구단주는 짜다. 그 가운데에서 가설을 세우고, 통계로 증명하고, 증명된 정리에 따라 팀을 꾸리는 과정을 극대화했고, 이를 통해 성공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주식시장으로 말하면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어 파는 과정. 그러나 사람은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 과정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채드 브래드포트나 스캇 해터버그의 예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느린 볼을 던지는 허약한 신체의 언더핸드 투수, 백업포수마저 볼 수 없는 갓 전업한 1루수...이들이 오클랜드에서 빛을 발하는 과정은 정말 감동적이다.(중간중간에 빌리 빈의 행동들이 양념으로 추가된다.)

이 책은 경영서라고 보기에는 성공의 비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지 않으며, 야구관련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선수 외적인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걸침이 장점이다. 야구팬으로써 야구장에서 직접 플레이하는 선수와 그들을 조직하는 구단 경영진의 엇갈림을 동시에 맛볼 수 있고, 경영서 혹은 자기계발의 관점에서 야구에서 보여지는 실패를 겪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개인의 부활기, 그리고 성공한 순간에도 그들은 완벽하지 않고, 계속해서 완벽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에게 걸맞는 생존 혹은 성공의 법칙을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단장' 빌리 빈은 '선수' 빌리 빈을 뽑았을까?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일단 '선수' 빌리 빈은 전통적인 스타우터들이 선호하는 타입이었으며, 수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했고, 더구나 경기 내의 마인드 콘트롤이 안되는 선수였다. 오클랜드에서는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추신)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당시에 비해 오클랜드와 빌리 빈 사단이 각광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빌리 빈의 매직에도 불구하고 AL 서구지구에서 월드시리즈 챔프는 LAA가 일구어 냈고, 최근 몇 년간 오클랜드는 책에서 소개된 빅 3와 테하다 등을 떠나 보내면서 플프 진출도 위협받는 위치가 되었다. 또한 책에서 빌리 빈의 그림자였던 폴 다포데스타는 LA의 단장직을 영입했다가 2년만에 해임되고 말았다.(현재는 샌디에이고의 야구 행정 부분의 특별 보좌담당임.) 그러나, 4년이라는 격차는 빌리 빈 2기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빌리 빈이 그렇게 좋아했던 2002년 드래프트 픽에서 닉 스위셔와 조 블랜튼은 이미 메이저리거가 되어 오클랜드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지만, 나머지는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마크 티헨은 트레이드 미끼로 쓰였으며, 제레미 브라운 등 몇몇 타자는 전통적인 스카우터 들이 우려했던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리 빈의 매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추신2) 개인적으로는 미네소타와 애틀란타의 팀 운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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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하 밀리언셀러 클럽 43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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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이라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다 읽었다. 읽고나서 분권이 안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초반부의 <안개>나 <뗏목>같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 없었다. 그나마 <할머니>와 <리치>가 인상적이었는데, 전작은 세월의 흐름 때문에 전형성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후작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에게서 기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은 작품이었지만 평이했다. 번역서의 제목으로 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나 <고무 탄환의 발라드>는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실망했다. <악수하지 않는 남자>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작품이었고, <비치월드>는 비슷한 테마의 '흉폭한 입'을 읽어서 인지 그닥 감흥이 오지 않았다. 전체적인 인상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쓴 단편집인 것 같다. 유명해지면 b-side 내지는 early days가 나오듯이 말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상권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상황'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하권은 '내부의 공포와 욕망'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작품에서는 에도가와 란포...가 아닌 에드가 엘런 포의 고딕호러 풍의 느낌도 준다. 이소설만 놓고 보자면, 스티븐 킹은 줄창 강속구를 던져대는 fireballer 타입인 것 같다. 문체가 화려해서 내용의 빈약함을 감춘다던가. 후반부의 급격한 반전이나 이런 것은 없다. 오로지 서두에서 쉬이 짐작될 수 있는 내용으로 말미까지 끌고 간다. 그러나 힘이 있다. 묵직한 직구 하나에 제구만 된다면 충분하다.(물론 타이밍을 빼앗기 위헤 체인지업도 장착해야겠지만.) 그 묵직함과 직선적인 필체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추신) 말미에 쓰여있는 스티븐 킹의 친절한 집필 동기는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맛볼 수 있었다. 하권에서는 이게 제일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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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9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개와 뗏목, 정말 멋졌어요..;;;

상복의랑데뷰 2006-07-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권을 읽어봐도 안개와 뗏목이 제일 나은것 같습니다. ^^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 론스타와 그 파트너들의 국부 약탈작전 전모
이정환 지음 / 중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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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과 FTA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곳은? 바로 론스타일 것이다. 외환은행 인수와 재매각 과정에서 벌어진 많은 의혹들. 신문지상에 발표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파는 사람들이 일부러 싸게 팔기 위해 노력한 한 편의 코메디'였다. 정말 외환은행이 부실이었냐 아니었냐를 떠나서 팔아야 한다면 최대한 비싸게 팔도록 노력하는 것이 파는 사람의 기본적인 의무, 아니 '주주 자본주의'의 당연한 이치 아닌가? 하지만 그래봐야 파는 사람 쪽만 삽질한거지 사는 사람은 법적으로는 '정당한' 거래였다는 참담함만 들게 하고...

그리고 PD수첩에서 밝혀진 FTA관련 로비들. 로비 조건에 세금 관련이라고 명시해 놓은 것은 론스타가 기부한 몇천억의 사회발전기금이 국민정서를 의식한 '임시처방'이었음이 분명하다. 몇천억원의 사회발전기금을 내고 FTA체결후 정부를 제소한 후에 '예상가능한 피해액'까지 받아내서 손해를 벌충하는 것도 모자라 또 한 몫 챙기려 한다.

그러나 이런 론스타에 대한 강한 의혹과 국민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더 웃긴 사실은 론스타의 의혹에 관한 변변한 책자 하나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한계가 있는' 조사결과만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것도 신문지상을 통해 발표된. 어쩌면 이 책은 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다룬 거의 유일무의한 '외부'의 자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의혹을 다룬 책들, 특히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의 관점에서 의혹을 파헤친다는 것은 정보접근성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는 것이 좋다. 이 책 역시 저자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공개된 정보를 통해서 의혹을 잘 정리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필자가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 발표된 지면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고...사실 말지나, 프레시안 등 중도 우파지만 꾸준히 본 사람이라면 일정 수준 알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최근 FTA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만큼 정리된 책도 없다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메이저 매체가 침묵 내지는 적극적인 동조로 일관하고 있는데 반해,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용감하게 비리의 카르텔을 파헤치고자 고군분투하는 필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추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궁금함은 다른 것이었다. 과연 자본에 국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국적있는 자본이 국적없는 자본과 훨씬 도덕적이고 우호적인가? 다시 말해서 삼성, LG, 현대자동차가 론스타나 칼라일 펀드 등등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든다. 토착자본이고, 금융자본이 아닌 생산자본이고....나의 정서적인 호감도도 전자에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만, 최근의 행보를 보면서 과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크린 쿼터에 배급사가 1인시위하는 적이 있는가? 과연 현대나 삼성은 공장이전을 하지 않고 있는가? 단지 국민정서라는 초법적인 수단 때문이 아닐까? 론스타만 지저분하고 삼성이나 현대는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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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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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별미를 맛보고 싶기에 잡은 책. 특이한 책 표지와 저자의 이력, 그리고 독특한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웬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책이 재미있다 나쁘다를 말하기 이전에 주인공의 심리나 대화 등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남녀합반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마치 남이 하는 RPG로 게임을 구경하는 떨떠름함이랄까. 설사 작품이 형편없더라도 공감대가 형성될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인데, 그럴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제 나도 10대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해져가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마음도 들었고. 이 책을 빌려준 사람(여자다.)은 나에게 "그러니까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거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이해가 안되는 점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볼 정도로 호기심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와닿지는 않았지만 초기작임을 감안할 때 상당 수준을 갖춘 작품이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를 보고 읽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는데, 작가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썼을 때에는 확실히 +@가 있다. 풋풋하지만 최선을 다한 느낌인데, 과연 농익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긴다.

물론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지는 약간 갸우뚱해지긴 하는데, 그건 평론가들의 몫이니 생략.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는 것만으로 상을 타는 것은 조금 이른게 아닐까라는 생각은 들었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책갈피의 작가의 얼굴을 보니 외모도 수상작 선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이제는 작가의 외모마저도 책 구매시 고려가 되는 요소이니까. 꽃미남 꽃미녀가 아니라면 아예 막가는 외모가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을거다. 그럼 나도 후자의 희망을 -_-;;  

간만에 좋은, 아니 서글픈 경험이었다.

추신) 작가의 이력을 보니 수험시험의 압박을 이기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리고는 와세다 대학을 간 것을 보니 역시 작가는 역시 천재다. -_-;;; 내가 그랬다면, 지금도 대입을 준비하는 삼류 작가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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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6-2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것은 바로 그 "발로 차 주고 싶은 편집" 아닌가. ^^
가끔 이런 책들(분량적인 측면에서) 표지에 버젓이 씌여있는 "장편 소설"이라는 글씨를 보면 "장편 소설"의 정의가 참 애매한 것 같아. 중학교 1학년때 장편은 원고지 몇 매 이상.. 뭐 이런거 배웠던것 같은데..

상복의랑데뷰 2006-06-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하게 발로 차 주고 싶은 편집이죠. 두툼한 하드커버와 바다와 같이 넖은 행간을 생각하면...^^; 요즘의 장편 소설의 정의는 출판사가 해당 작품만 출간한 경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이와는 무관하게...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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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편차가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유명세에 비해 잘 안 읽게 되는 작가가 있다. 속된 말로 '아니 아직도 이 작가 책 안 읽어봤어요?' 하고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작품들 말이다. 아직 초보독자인 나는 언급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추리 소설의 영역에 놓고 보면 대표적으로 로스 맥도널드가 해당된다. 아직 한 권도 완독해 본 적이 없다. <움직이는 표적>과 <마의 풀>을 읽다가 만 정도랄까...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스티븐 킹도 그러하다. 꽤 많은 영화와 TV 시리즈도 재미있게 보았고, 나름 책도 몇 권 가지고 있었는데, 유독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작가의 비슷한 공포 소설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고, 워낙 다작가다 보니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서기도 하고...그러다가 우연히 읽게 된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고, 그의 솔직하면서도 장인의 숙련된 글솜씨에 호감을 느꼈고, 용기를 내서 읽기로 결심한 작품은 바로 이것이었다. 장편에 비해 분량도 적었고, 설사 재미가 없더라도 단편집이라서 쉬엄쉬엄 읽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읽게 되었다.  

핑계는 이정도로 하고, 미루고 미루다 읽게된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는 그런 면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85년에 출간된 작품이니 20년의 세월이 흐른 작품이라 일부는 빛이 바랜 느낌이 들지만, '공포의 제왕'인 킹이 창조해내는 솜씨는 세월이 지나도 대단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보고 그런 점에 유의해서 읽었는데, 번역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을 깔끔하게 쓴다.-이 빚어내는 일상의 공포는 초심자에게도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스릴넘쳤으며, 그리고 무서웠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단편은 '평온한 일상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위협받고,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심리'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감히 한 줄로 요약한 내용을 스티븐 킹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섬뜩하게 그려낸다. 재료는 하나지만, 수천만가지의 레시피로 다양한 요리를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요리사랄까.

스티븐 킹이 위대하면서 동시에 교묘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가해자의 실체가 두리뭉실하다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묘사를 통해 외연만 보여질 뿐, 실체나 특성 등에 대한 설명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물론, 실체를 묘사한다면 초자연적인 묘사가 아닐 수도 있다.) 초창기 공포영화의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한 발 루튼의 지론처럼 '안 보이는 게 더 무섭다'는 점을 스티븐 킹은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화에 실패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 단편에 등장하는 생생한 심리묘사는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길이의 제약을 심하게 받는 단편에서도 비교적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성공하고 있다. <안개>는 단편이라 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원숭이>나 <뗏목>에서 보여지는 정교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심리묘사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멋진 서문. 서비스 정신에 충실한 작가 답게,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게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이 책이 나온 경유를 설명하는 서문도 재미있다. 단편을 잘 써야 장편도 잘 쓰게 되는지, 단편과 장편은 창작 방법 부터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은 전자의 입장(자기 단련)+독자를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장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이 정도의 별미라면 충분할 것이다.      

나보다 먼저 이 소설을 읽고 좋은 리뷰를 써주신 분들의 말씀처럼 이 작품은 더위를 이겨내는 데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같은 작품이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팥빙수를 한입한입 떠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각 단편들이 주는 재미와 서늘함, 그리고 유머-스티븐 킹은 유머작가로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를 천천히 맛보다 보면, 무더위을 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로는 <안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두려운 면에서는 <원숭이>와 <뗏목>, 단순한 재미로는 <카인의 부활>과 <토드 부인의 지름길>이 좋았다. 특히 <토드 부인의 지름길>의 결말 부분의 환상적인 느낌은 과연 킹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살짝 인류의 효율에 대한 집착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 <조운트>나 <결혼 축하 연주>는 심심한 편이었고... 

다만 아쉬운 점은 교열을 안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오탈자가 많다는 것.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찌 실수가 없겠느냐만, 나같이 둔한 독자의 눈에도 많다 싶을정도는 곤란하지 싶다.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하)가 더 많은 듯 해서 걱정이다. 그래도 킹이 펼처놓은 세상이라면 기꺼이 무서워하면서 들어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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