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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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벌써 잊어가고 있지만, 지금 세상은 아우슈비츠와 그리 멀지 않다.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고 말했다. 아직 서른이 되기 전 우리들은 청승맞지만 낭창한 목소리로 이 시를 외우고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서른이란, 서른이 되기 전에만 그 무게를 잔뜩 느끼는 그런 나이. 소금자루를 등에 진 당나귀처럼 나는 스물 여덟에, 혹은 스물 아홉에 개울물에 빠져, 그 나이의 무게에서 벗어나 삼십대를 가뿐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듯 싶다. 살 수도 없노라, 죽을 수도 없노라, 이십 대의 마지막에 온갖 청승을 다 떤 덕분에.

 

 

 

그러나 마흔은, 지레 겁 먹는 것도 부족해 보일까 두려워서, 애써 덤덤하게 맞이해야 하는 또 다른 한 시절. 앞으로 나아가지도, 다가오는 옛것들을 뿌리치지도 못해, 그저 붙들린 시절. 내 어깨에 짊어진 것들이 솜덩이인 줄 모르고 개울물에서 다시 넘어졌다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르는 시절. 내 속에서 나온 말들에 혼자서 상처 받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누구에게 그 상처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도 부끄러운 나이. 하루 종일 눈가가 마르지 않아,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상 고온의 봄날.

 

 

 

 



 
 
hanicare 2013-06-12 18:01   댓글달기 | URL
옛날은 가버린 게 아니고 지층처럼 속에 깔려있다가
지진이나 화산분출 때처럼 한번씩 울컥 치솟든지
속에 고여 있다가 잊으려하면 슬며시 올라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흐린 날에 옛날 품고다녔던 시인의 이름과 또 올리신 시를 읽노라니 마음이 하염없이 쓸쓸합니다.
이성복의 오래된 시들도 문득 맴돌구요.

별고 없으신지요.

선인장 2013-06-13 12:26   URL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오히려 무슨 일이든 생겨야 할 것 같은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올 때마다 달라지는 옛동네를 보는 기분인데, 님의 댓글을 보니,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익숙한 풍경 하나 남아 있구나, 와락 반가웠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별고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님은 어떤 여름을 보내고 있는지...
 

새해 첫 날 지난 한 해 거의 쓰지 않았던 노트북의 전원을 넣었다. 작년 일 월, 책을 읽고 적어놓았던 메모들에서 나는 한치도 달라져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작년 1월의 어느 날처럼, 일 년이 지나고 또 어느 날, 같은 결심을 주절대고 있었던 것이다. 민망했고, 안쓰러웠지만, 아직은 지치지 않았으니, 그렇게 주저 앉고도 다시 일어났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고 보니, 또 괜찮은 것도 같다. 혹시, 괜찮을 것도 같다.

 

 

 

  일 월의 첫 날, 지난 가을이 끝날 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이혜경의 소설을 마저 읽었다. 갑자기 몰려든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두어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늘 어깨가 아팠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 일자리에 만족해 하던 그 시절, 나는 이 작가의 소설 때문에 백 몇 십만원의 생계비를 포기하고, 빚을 내어 다시 학교에 갔다.

그리고 너무나 오랫만에 출간된 소설을 새해의 첫 날 천천히 읽어냈다. 내게 있는 그 어떤 무엇도 나를 풍요롭게 할 수 없어 궁핍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그 궁핍을 보여주는 작은 무늬일 뿐 어떤 희망도 될 수 없다는. 내 사랑이 서글픈 내 생에 대한 위안이 되기는커녕, 너를 향한 연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빈약한 감정이라는. 그래서 우리는 몸을 포개도 여전히 춥고, 한 침대에 누워도 여전히 다른 공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은 깨달음.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몰래 숨기고 싶었던 끄덕임과 동의.

 

그러나 다행하게도 나는 이혜경의 소설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읽었다. 지난 여름 사 두었다가 오랫동안 책장 한 구석에 밀려 있던 책. 이 책 소개에는 "사랑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과 같은 수사들이 붙여 있었다.

 

 그리고 작가 김연수는 "별 다섯 개짜리 도입부"라는 제목을 붙여 이 책에 담긴 한 단편의 도입부를 소개했었다.

 

아내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한번은 눈이 내릴 때 소리가 들리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 오늘은 우리가 결혼한 지 12년째 되는 날. 그리고 나는 그녀를 두고 떠나기로 한다.

                                - 사이먼 밴 부이, ‘눈이 내리고, 사라지네’

 

아마도 이 문장에 홀려 나는 지난 여름 이 책을 사 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저 문장만큼이나 여운을 주는, 오래도록 그 상황과 그 마음과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퍽이나 많다. 짧은 소설들을 오래오래 마음에 품고, 관계에 대한 나의 냉정함을, 타인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사랑에 대한 나의 무정함을,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혜경의 소설과 사이먼 밴 부이의 소설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지만, 이 두 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이 나이에 나는 또 그저 소설을 읽고 몇 년 전에도 한 번은 깨달았을 평범한 진실들을 다시 한번 각인하게 된다.

 

 

다음엔 한강과 이스마엘 카다레.

 

 

 

 

 

 

 

 

 

 

 

 

 

 

 

언제나 새해에는 그렇듯이 지난 겨울 밀려 있었던 책들을 겨울방학 과제를 해내듯 읽어가면서, 나는 몇 가지를 새로운 사실처럼 깨닫고, 몇 가지를 처음 하는 다짐처럼 되뇌일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 모든 일들이 지난 시절 내내 해왔던, 지치지도 않는 습관임을 깨달으며 다시 민망해 할 터이다. 다만 부디 이 시간이 조금쯤은 길어지기를. 잊혀지지 않을 만큼만 오래 가기를. 그리고 그 어느 날의 깨달음과 지금의 깨달음이 아직 조금쯤은 다를 수 있기를. 일월이 가기 전에 내가 바랄 수 있는 일들이란 고작 이런 것일 수밖에.

 

 

 

 



 
 
다락방 2013-01-16 13:38   댓글달기 | URL
[너 없는 그자리]를 지금 이 글 읽고서야, 아 이 책 읽어본다고 생각하고 여태 사지도 않았네 싶어 부랴부랴 서둘러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이스마엘 카다레'의 책을 읽고 난 후의 선인장님 글이 궁금해요. 전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거든요. 자꾸만 다른 책들에게 우선권을 빼앗겨요.

오랜만의 글, 좋으네요, 선인장님.

선인장 2013-01-16 16:18   URL
이스마엘 카다레는 출근 길 전철에서 시작했습니다. 발칸 반도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지라,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더딥니다. 그래도 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늘 근사한 경험입니다. 2000년 한국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도, 친히 받은 사인도, 근사했더랬습니다. 영원히 살 줄 알았던 좁은 내 방에 딱풀로 카다레의 사인을 붙여버렸던 만행만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좋은 시간입니다.

저는 늘 너무 게으른 서재인입니다.
올해는 더 종종 뵙겠습니다.

hanicare 2013-01-16 18:02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원년(?)멤버의 글을 대하니 '살아있으셨군요.'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네요.피난가서 옛마을 사람을 만난 듯한.

이 우여곡절을 견디며 아직 우리는 살고 있군요.사막에서요.

선인장 2013-01-16 21:50   URL
지난 해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죠? 연말에는 누구나 그렇했겠지만 정신적 허탈감을 극복하느라 좀 애를 먹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또 새해를 맞았어요. ㅋㅋ 알라딘 어느 구석에서 다들 그렇게 살고 있겠지요? 이렇게 드문드문이라고 글을 올리니, 님의 안부도 들을 수 있네요... 반가워요.
 

*

그러니까 슬픔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폭염이 물러갈 기미를 보인다는 어느 여름날, 반가운 소식 뒤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미처 그 기미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는데, 마음 한 구석이 그저 싸할 뿐이었는데, 뒤늦게야 그게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마음이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몸이 아프다. 신물이 넘어오고,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께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

사람들이 묻는다. 더운데 괜찮으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으냐고, 혼자서 괜찮으냐고.

그들의 질문이 괜찮다는 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나는 괜찮지 않다고 대답한다. 더운데 괜찮겠느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겠느냐고, 도대체 혼자서 괜찮겠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무안해 하며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 말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이 순간을 넘기고 싶겠지만, 나는 그럴 용의가 없다.

 

*

오래 전 마추픽추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높은 곳에 흔들의자를 놓고 앉아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살았던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고. 또다시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깨닫는다. 오래오래 기억할 무언가가 내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혹시 마추픽추에서 돌이켜보기에 나의 시간들은 지나치게 남루하다.

 

*

설레는 봄바람도 아니고, 쓸쓸한 가을바람도 아니고, 좀체 느껴지지도 않을 여름바람에 혼자서 앓고 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폭염은 물러갈 것이다. 더위가 사라지면 불면도 없어질 것이다. 조금만 편안하게 자고 나면, 가시처럼 돋은 못된 감정들도 잦아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볼 밖에.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책들.

 

김애란의 소설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 책에 쏟아진 상찬에도 불구하고 크게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조로증에 걸린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 조숙해서, 나는 그 삶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신간소식을 듣고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제목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든다.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슬픔이 출렁거린다. 어쩌면 나는 김애란을 좋았했던가 보다. 그 소설 속 인생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미워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조금은 편안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모난 소리를 퍼붓지 않는 것은, 마음이 넓어져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나는 아직 대책이 없다. 여전히 포기는 되지 않고, 여전히 방법은 모르겠다. 표지에 담긴 이 배우들의 얼굴은 그래서 참 슬프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면서 이런 책들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좀처럼 책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은, 겨우겨우 이 책들과 보내고 나면, 여름은 이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속에 출렁이는 것들도 잠잠해져, 나는 다시 아무 것도 아닌 이 시간들을 평화롭다 할 것이다. 

 

 

 



 
 
 

장마라는데, 긴 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러나 문득문득 쏟아지는 강한 빗줄기에 먼저 귀가 놀라고, 번쩍이는 번개에 눈이 깨고, 머리 위에서 울리는 천둥에 몸이 일어난다. 다시금 시작된 불면, 무엇이 걱정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제 다 컸다고, 그러니까 좀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조바심을 내지는 않아도 된다도 다독거려도 마음 한 구석에 박힌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자의 불안은 그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의 불안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욕망이 해소되고, 순간의 열락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생에 다시 없는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그래서 자신에게 엄습해올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불안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선천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를 지독하게 두려워하는 나는, 그래서 나의 욕망이 해소되는 순간의 열락을 경험할 확률이 아주 적다고, 이따금 스스로 자조한다. 

 

이 소설은 1909년에 태어난 작가가, 1931년에 쓴 작품이다. 그의 나이 22살. 그러니까 이 작가는 불과 22살의 나이에 욕망이 가득한 사랑을, 그 사랑의 하릴없음을, 전쟁의 비애를, 어머니와 아들의 마음 바닥에 깔린 은밀한 비밀을, 인간이 하는 말의 가벼움을, 그 가벼운 말의 날카로움을 모두 알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예민하고 단단하게 엮어 한 편의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22살에 말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본심을 알 수 없는 사람만큼 두려운 존재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길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깊은 숲의 공간.

편혜영의 소설에 숲은 여러 형태로 펼쳐진다. 그 곳은 부엉이가 울고 비밀 벌목이 이루어지는 비밀의 공간이고, 그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이 삶을 지속하는 서쪽의 작은 도시이고, 환상과 실제를 구별할 수 없는 술 관리자의 내면이다. 그러니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헤맬 수밖에 없다. 모두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살고 있거나, 그 공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천둥과 번개 속에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나 역시도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혹은 이 숲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장을 넘기고도 나는 그들이 왜 숲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의 부엉이도. 나의 불안이 나의 이해를 방해하니, 나도 어쩌면 숲에서 길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가족은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이 소설은 지극히 극단적인 한 가정을 묘사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들은 이 작품 속 인물들이 던져주는 충격을 능가한다. 패륜이라 일컬어지는 문제적 상황들은 이제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사회면 기사를 통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문제적 가족들을 말하는 것이 상투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되어버린, 누군가에게는 악마가 되어버린, 누군가에게는 곪은 상처를 헤집는 덫이 되어버린 이 가족들을 상투적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만인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과오를 온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만으로 그만인가. 다시,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장마라면서 긴 비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또 불쑥 폭우가 내릴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내리칠 것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 

 

 

  



 
 
빛 그림자 2012-07-24 09:51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선인장 2012-07-25 10:02   URL
아... 너무 오랫만이에요.
저는 그저, 오래 전과 같은 일상을 그 때와 비슷하게 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여전히, 이 곳에 계셨던 거군요...

빛 그림자 2012-07-25 21:41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네요. 알라딘에 간만에 왔어요. 언니 글 보니 무척 반가워요! 반갑고 기쁜데 무슨 말을 남길까 하는 망설임과 주저함은 생기더라고요.
제게 몇 해 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래도 일상은 여전해요.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져도 저라는 사람 자체가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아서 그런가 봐요. 예전에 제가 교직 수업 들었던 거 기억하세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네요. 저는 학교 생활이 즐거운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미안하고 쓸쓸해질 때가 있어요. ^^
전처럼 가끔 안부도 전하고 할게요. 아, 더울 때일수록 잘 드셔야 해요!

선인장 2012-07-26 11:14   URL
그렇군요. 약간의 변화와 그리고 여전함... 선생님이 되었군요...
저도 이따금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겠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쓸쓸한 마음을 갖는다면, 조금은 덜 팍팍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자주 들여다 보지 않은 곳이지만, 가끔 들러서 안부 전해주세요. 언제든 반가울 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