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를 사랑한 자들이
현실의 중력에 직면해 보이는 반응은
대개 추한 추락이다.
설익은 날갯짓은 거대한 비상으로 윤색되고
무능한 패배는 숭고한 순교로 각색된다.

위대한 정신들은 언제나 두더지였다.
그들은 높이가 아닌 깊이를 사랑했다.

높이가 아니다.
지혜는 간극에 대한 감각이나
인간은 끝내 대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참혹한 실존만이 가치를 만든다.

수영은 옳다.
되도록 비참하게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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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힘의 척도.
쉽게 울고,
그보다 더 쉽게 웃을 수 있는 자는
건강하다.

위대한 긍정.

그러나
나의 키스는 잿빛 입술만을 탐한다.

깊은 우물 속, 홀로 갇혀
오직 눈물로 그 우물을 채워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자들을 사랑한다.
나도 그렇게 분주히 나를 구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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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면 산소는 희박해진다.

고양된다는 것은
살아내기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선생님의 이사를 도와드리다
툭 떨어진 색 바랜 포스트잇 한 장,
-가난한 나를 받아들이자.

그렇듯 상승하려는 자들은
더 적은 것으로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약한 폐 탓에 중력에 못 박혀
다짐과 후회의 양 끝을 영원처럼 왕복하는
이 진자 운동 역시 어떤 흔적은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너무 흉한 호는 그리지 않기를.
그것이 내가 품을 수 있는 최대치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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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삶 속에서
무엇을 딛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회오리치는 이 지반 위에서
문득 스치듯 내 발아래를 비춰주는 섬광들이 있다.

허위의 독가스로 가득 찬 이 세계 속에서
미친 듯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잡아챈 방독면 같은
고마운 정신들이 있다.

밤이 깊어지고 또 어두워졌다.
황홀한 죽음이 교태를 부리며 나를 유혹하나
그저 힐긋 바라볼 뿐.

내일 당당히 출근할 것이다.

돈을 벌고, 밥을 먹고, 밤이 되면 다시 독한 회의에
빠지고, 그리고 일어나 또 출근을 할 것이다.

그렇게 우아하게
이 징그러운 긴 끈을
끝까지 더듬으며 붙잡고 가고 싶다.

그러다가
더는 만질 수 없는 이 끈의 끝에 달했을 때
나는 웃을까, 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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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라 그러한지
죽음을 더듬는 시간이 늘어간다.
살아왔던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경계를 넘고 있다.

조급해지고 싶지 않은데
넉넉히 받아들이고 싶은데
못내 억울한 마음이 치고 올라온다.
책장에 꽂힌 읽혀지지 못한 활자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전히 사랑하는 얼굴들이 스친다.

이제 아이들을, 그 빛나는 생명들을 더 사랑해야지.
나의 시간은 닿지 못할 그곳을 향해 높이 쏘아진
그 예쁜 화살들을 더 사랑하고 사랑해야지.

몇 해 전 떠난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던 고모가 그랬듯
나도 그렇게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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