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동해안 별신굿, 이균옥(박이정, 1998)

이제 본격적으로 굿놀이판으로 들어가볼 차례다. 무가가 신화에 근접할수록 율문 즉, 계보를 읊고 조상님네를 불러내어 굿을 벌이는 예를 취하는 데 반해 놀이판에서는 질펀한 농담이나 상황에 따른 즉흥 대사들이 무릎을 치게 한다. 물론 사투리의 맛까지 더해지면 급한대로 남의 주머니에 손 넣어 굿비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뒷판이 궁금한 묘가 있다. 실제 동해안에서 용왕굿을 본 적이 있는데 책에서처럼 이렇게 재밌지는 않고 뭐랄까 좀 엄숙했다. 경북 울진군 후포면에서는 10년 두리굿을 한다는데 채록된 것이 1995년이니까 한번 보러 가려면 10년은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그때까지 당주 무당이 있을지 모르겠다. 별신굿은 <중도둑잡이놀이>, <맹인놀이>, <원님놀이>, <탈굿>, <거리굿>으로 이어지는데 <중도둑잡이놀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악사 : 중아 중아 중아 중아. 울릉도 팽대이(팽이) 중아 제주도 XX 중아./이마빼기 민 신중아 똥구멍에 낀 중아./ 중아 중아 중아 중아 중아. 여봅소. 중아 중아 중아.

 

: . 중이 세사~ 등 넘어 재 넘어 삼율에 대동 안에 우별신 좌별신 드린다 말씀 듣고/ 이렇게 내가 오다 보니, 진장구 소리에 내가 신명이 나가주고 우쭐 벌절 그디 밑이 이래 흔들흔들 한답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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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국무가집 1, 김태곤 편(집문당, 1971/1992)

"무가는 수백, 수천년의 오랜 역사를 안은 채 침묵을 지켜온 무의 원시적 구비경전인 동시에 서사敍事 율문신화律文神話이다."

 

김태곤 선생은 이 책을 내놓기 위해서 십이 년 동안 뛰어다니며 무가를 채록했다는데 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때보다도 윤택했어야 할 지나간 십이 년간의 내 靑春이 무당의 長鼓소리에 실려 散華되고 말았다. 여기 엮어지는 무가자료집은 이렇게 젊은 내 肉身이 타고 남은 잿더미인 것이다." 무가에 대한 정의가 한 문장에 정확하게 실려 있고 그 내용은 우직한 학자를 통해 30년이 지나서도 이렇게 내게도 전달된다. 서울 지역의 무가를 알 수 있고 재수굿과 제주와는 다른 진오귀(무가巫歌)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소리내어 읽어야 더 맛있다. 오구굿 중에 <꽃노래굿>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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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조선무속의 연구 상하, 아키바 다카시 편자(동문선, 1991)

소파에 앉아 한 글자 한 구절 한 단락씩 끊어 읽는데 이틀이 걸렸다. 읽는 동안은 내가 무당이 된 것 같기도 했고 무속어들이 반복되니까 무속의 역사에 정통한 것처럼 술술 풀려나오기도 했다. 무속인들은 북과 장고를 치며 리듬에 맞춰 혹은 신내림에 의해 읊었을 테니 노랫가락처럼 운율이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처음에는 책이 참 안 친절하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전통어구들을 그대로 살려낸(내버려둔) 것이 외려 더 좋아보이기도 했다. 상권은 무조전설의 시조인 바리공주 축원문으로 시작해 경성과 오산 열두거리(부정不淨-가망-산마누라-별성굿(손굿)-제석굿-천왕굿-호구(안당굿)-만명(성주풀이)-군웅(선왕굿)-대감(계면굿)-창부(터줏대감굿)-뒷전(마당굿))가 있고, 고사축원문으로 <뒷간축원><걸립축원>이 재밌다. 특히 <죽음의 말> 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박상륭 선생의 소설어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알아버렸다는 거.

 

제주도 신가가 별도의 장으로 채록되어 있는데 요즘 어린이 책이나 연극에서 되살려지고 있는 '감은장아기'(삼공본풀이)'오늘이'(원천강본풀이) 이야기의 원본을 볼 수 있다. 제주땅 설매국에 얽힌 고산국과 황제부인 이야기인 <서귀본 향당본풀이>, 월궁신녀 갓흔아기씨의 <초혼본풀이>와 창세신화에 해당하는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인 <천지왕본풀이>, 김진국 아들과 원진국 딸이 옥황의 편지를 받고 서천꽃밭으로 가던 중 천년장자의 집에서 고난을 겪다 아들 한락궁이가 태어나 꽃밭대왕과 꽃감관이 되는 <이공본풀이>, 남장을 하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자청비 이야기인 <세경본풀이>, 삼신할망 이야기인 <명진국생불할망본풀이>, 석곽에 갖혀 버려진 아이의 이야기인 <신중도풀이>, 단명하리라는 예언을 피해 장사치가 된 왕의 세 아들 이야기인 <체사본풀이>, 북두의 일곱 별을 동원할망, 관청할망, 마방할망, 궁가할망, 사령할망, 기생할망, 과원할망으로 보는 <칠성본풀이>, 군농(軍雄) 가족(천황재석(할아버지), 지왕재석(할머니), 왕대조왕장군(아버지), 회속에낭(어머니), 왕근(첫째 아들), 왕빈(둘째), 왕사랑(막내))이 동해 용왕을 도와주고 월궁 선녀 같은 여인을 얻는 <군농본풀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구해 문전신이 된 <문전본풀이>가 실려 있다. 무가에서 쓰는 언어와 비유가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다. 최근에 민속원에서 제대로 다시 펴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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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식물의 역사와 신화, 자크 브로스(갈라파고스, 2005)

이 책을 먼저 보았다. 보면서 깊고 세세함으로는 어원의 뿌리까지 더듬고 넓기로는 종교와 신화까지 아우르면서 현실적인 감각까지 지니고 있는 저자의 면면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가스통 바슐라르도 그렇지만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묻고 찾고 헤매는 자들의 글을 보면 행복하기 이전에 질투가 난다. 자크 브로스는 어린 시절 식물원 옆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식물학자가 되었다. 나도 달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 달과 좀더 친해질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오랜 동안 옆동네에 들어선 아파트 꼭대기만 바라봤을까. 언덕에 앉아 발장난을 하며 왜 그렇게 자주 쓸쓸해졌을까. , 질투가 난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진보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은 퇴행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식물 상태에서 동물로 이행하는 과정은 적어도 초창기에는 새로운 기관의 생성보다는 기존 기관의 소멸로 인하여 가능했기 때문이다. 광합성 능력과 그에 따른 무기 영양 능력의 소멸은 동물로 하여금 식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지위를 갖게 했다. 식물이 지니고 있는 무성 생식력의 소실로 말미암아 동물은 한 가지 성만을 갖게 되었고, 식물의 견고성을 보장해주는 셀룰로오스성 막의 손실 또한 동물의 이동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현상에 비추어 동물 세포는 원래 병들거나 비정상적인 식물 세포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외부 세계에서 양분을 취할뿐더러, 섭취하고 남은 양분을 또다시 외부 세계로 배출한다. 나무는 호흡을 하는가 하면 물을 배출하기도 한다. (...) 건조한 기후와 토양에서 살기에 적합한 침엽수의 물의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활엽수 또는 속씨식물의 물의 배출량은 매우 많다. 참나무가 한 계절 동안 뿜어내는 물의 양은 100톤이 넘으며, 이는 자신의 몸무게의 225배에 해당한다. 또 이와 비슷한 크기의 단풍나무는 같은 기간 동안 자기 몸무게의 455배에 해당되는 물을 배출한다. 10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너도밤나무 숲은 매일 3500~5000톤의 수증기를 대기로 배출하기 때문에 숲이 있는 곳에는 자주 안개와 구름이 생겨난다. 활엽수들은 나뭇진 식물에 비해 훨씬 많은 물을 필요로 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동시에 대기 중의 습도를 현저하게 끌어올리며, 따라서 생명이 자라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활엽수를 과도하게 벌목하면 자동으로 장기간에 걸친 심한 기후 동요가 뒤따르며, 이 동요로 인한 결과는 언제나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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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무의 신화, 자크 브로스(이학사, 1998)

자크 브로스는 나무를 중심으로 신화를 재해석한다. 켈트 신화에서 라그나뢰크(신들의 황혼기)에 살해된 발데르가 전 우주의 화재 속에서도 불타지 않은 물푸레나무로 아침에 핀 장미를 양식 삼아 살아나고 제우스와 토르는 참나무를, '나무 속에 살며 일하는 자'인 디오니소스는 담쟁이덩굴과 무화과나무를, 포세이돈(포티조potidzo와 이다ida가 합쳐져 '숲이 우거진 산 속에서 마실 것을 주는 자'라는 뜻)은 물푸레나무의 신이 된다. 각 지역의 우주목, 생명의 나무인 북구의 이그드라실, 에리두(물의 집)의 키스카누(에덴 동산의 나무가 아닐까. 훌룰프나무?), 중국의 키엔 모우建木(??)나 복숭아나무, 뽕나무, 북아시아의 전나무,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참나무 등에 얽힌 신화와 역사가 재미나다. 인도에서는 고행자들의 깨달음의 나무인 거꾸로 선 나무 아슈밧타(바타나무는 무화과나무, 아슈밧타는 불멸의 무화과나무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피로스의 나무나 유대교의 상징인 메노라menorah 촛대와 같은 성물이다)가 있다. 온갖 박해에도 되살아난 보드 가야의 나무, 석가모니가 출생한 룸비니 정원의 아소카나무(고통을 파괴하는 나무), 히말라야의 전설적인 숲에 사는 '감부'(어린 싯다르타가 무상보리의 달콤함을 맛보았던), 석가모니가 돌아갈 곳을 정해놓은 살라 나무,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고독의 나무인 플라타너스...

 

나무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어린 딸에게 남무南無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아서 구해놓고 천천히 읽었다. 읽다보면 나무는 우주가 창조될 때 최초로 생겨난 말(, 르쉬트reshith)에서 온 것 같기도 하다. 창세기(베레쉬트)는 나무로부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카디아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되기 전에 참나무였다고 믿었으며 그리스어로 매미(드뤼오코이테스dryokoites)'나무 안에서 잠자리에 드는 자'라는 뜻이다. 고어로는 테틱스tettix라 하여 '노래하는 자' 즉 시인과 동의어였다고 한다. 인간이 매미와 형제지간이라면 꿀벌(멜리사melisa, 시인)이나 청딱따구리(드뤼오코푸스 마르티우스dryocopus martius, 나무를 쪼아대며 점을 치는 자, 그리스의 마르스, 금성까지 확장된다) 또한 형제였을 것이다. 이뉴잇이 천둥이 치기 전에 나오는 뿔이 난 천둥벌레를 보며 미스타페우 할아버지를 상상한 것과 같은 원리다.

 

*참나무 열매로 만든 빵은 페고스phegos라 하여 18세기까지 말랑한 빵의 주원료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최음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나무 열매는 그리스어로는 발라노스balanos라 하고 라틴어로는 글란스glans라 하는데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둘다 '발기된 남근'을 지칭하는데 엣지 있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밸런스balance나 글래머glamour도 여기서 오지 않았을까. 페고스에서는 페니스penis를 추측할 수도 있는데(아님 말구) 그러니까 어쨌든 먹는 거구나.

 

'나무' 사이에 줄을 매고 판을 놓고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그네'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인 충동을 놀이로 위장함으로써 흥분을 느낄 수 있었던 놀이였던 셈이다. 실제 그네를 탈 때 약간의 짜릿함은 오르가슴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왜 오줌을 쌀 것 같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내려올 때 아악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도 비슷하다. 나만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젊은 시절 연예 코스 중 놀이공원에 한두 번쯤 다녀오는 것도 비슷한 심리가 아니었을까. 인도에서는 그네의 움직임을 낮과 밤이 교대하고 계절이 순환하는 시간의 리듬으로 보았으며 비를 기원하는 봄철에 그네를 띄우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앗싸, 단오놀이가 있구나. 성적인 발산과 다산, , 풍요가 연결되는 오래된 습관이 젊은이들을 놀이공원으로 모이게 하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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