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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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에 나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다.” -부희령, <무정에세이-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사월의책, 2019)

나는 아직 이 나라 밖으로 발가락을 옮겨본 적이 없다. 그러해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기사나 책에서 접했던 네팔을, 포카라를 상상해보게 된다. 4월의 포카라는 어떨까. 그 노란 겨자꽃은 피었을까. 공기는 어떨까. 폐를 얼얼하게 하는 차가운 맛일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을까.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었을까...
일주일 전에 마산행 열차를 끊어놓기는 했으나 만나려고 했던 그는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 그냥 기차를 탄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때 자장면 배달을 하다 경남대에서 몰려온 시위 행렬을 따라 구경하다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42일 동안 고문을 받았으니까. 그가 어리기 때문에, 주변에 그를 보호할 사람이 없는 가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그저 중국집 배달원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문의 휴유증은 묻지 않을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그가 시위대를 따라 걸었던 중화동에서 오동동으로 이어진 그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의 선택이어야겠지. 사람 하나를 만나는 건 “무정한 세상을 건너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생기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마산역에 닿을 땐 이 책 귀퉁이를 접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와 연락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무정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 하나 얻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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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9-10-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년 5월에 저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5월의 포카라는 폐를 얼얼하게 하지도 숨을 들이마실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았습니다.
안나푸르나 산행시 낮에는 봄날의 따스함이 전해지지만 저녁 무렵부터는 골짜기에서 몰려든 먹구름이 한바탕 비를 몰고 와 언제나 잠자리는 눅눅했었죠.

돌바람 2019-10-19 14:57   좋아요 0 | URL
포카라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어요. 낮에는 우리의 봄날을, 저녁에는 가을날을 상상하면 되겠군요. 잉크냄새냄, 혹시 <트리술리의 물소리> 읽어보셨나요? 꿀사냥꾼들의 여정이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인데 잉크냄새님이라면 분명 아주 반가워하실 듯요. ^^
 

 

책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에 따라 기억의 밀도는 달라지곤 한다. 박태순 선생의 중편소설 「밤길의 사람들」은 여고 2학년 때 순전히 제목 때문에 도서관에서 꺼내든 소설이었다. 처음엔 슬쩍 읽고 꽂아놓으려 했으나 나중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장을 덮었다. 유월항쟁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명동성당이 시간의 비탈길이었구나... 소설을 통해 그 혼란이 아름다운 것으로 스며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쓴 것이 아래 글이다.

오늘이 가기 전,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민중을 기록하라』(실천문학사, 2015)에 실린 선생의 「소신(燒身)의 경고(警告)」를 다시 보았다.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생의 고뇌가 보인다. 선생의 글에 대한 고뇌와 경고와 같은 발품, 글품을 새겨야겠다.

 

‘밤길의 사람들’과 명동성당, 그리고 광장의 비탈길

삼월 초 그 길을 다시 찾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서울의 가장 비싼 땅 언덕 위에 있었다. 예전 주소대로 하면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번지. 명동(明洞)이라는 ‘밝은 동네’의 1번지라면 그곳의 역사를 한 마디로 대변해주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명동성당’이라는 이름은 1945년 바뀐 것이고 그 전에는 ‘북고개’라는 지명을 따서 종현(鍾峴)성당으로 불렸다. 이름이란 건물보다 힘이 세서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가을 축제명도 ‘종현제’였다.

지하도를 나오면 바로 보여야 하는 곳, 그 언덕의 뾰족지붕이 고종 시대에는 문제였다고 한다. 임금이 있는 경복궁보다 높은 곳에 성당이 지어진 것도 문제인데 그 성당의 건축 양식이 하늘을 찌를 듯 뾰족했던 것이다. 뾰족할 뿐 아니라 건물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벽돌로 지어졌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건축물이면서 벽돌로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고딕이라고 불리던 이런 건축 양식이 조선조 말 양반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고종은 즉각 성당의 건축을 중단하라고 명하고 금교령을 내려 성당으로 모여들 새로운 종교 세력, 즉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당연히 보여야 할 뾰족지붕이 보이지 않았다. 명동4지구 개발로 언덕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언덕을, 그 위에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 위에 지어진 46.7미터의 종탑을 가리고 있었다. 서울에 경복궁보다 더 높은 건물은 지어질 수 없다고 상소를 올렸던 조선의 권력자들도 성당의 종탑보다 더 높은 자본의 시대를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변한 것은 성당을 둘러싼 건물들만이 아니다. 개발은 성당으로 오르는 길 자체도 지워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예수님 상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학교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세상을 껴안을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 상도 없어졌고 양 옆에 계단을 끼고 오르는 비탈길은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김성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관한 만화 『빨간약』(보리, 2015)에서 그 비탈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명동성당 비탈길은 시위자들의 요구가 버티던 곳”으로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내준 곳”이었다고.

내게도 이 비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비탈길에 들어서 있던 수많은 천막들과 밤을 잊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그들의 요구를 힘겹게 걸어놓던 곳, 그리고 1991년 6월 말 37일 만에 농성을 풀고 저 비탈길을 걸어나오며 “국민들이 어느 정도 당신을 믿는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상식을 갖고 있는 국민은 모두 저를 믿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상식이 무너진 험악한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유서를 대필했다는,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던 강기훈의 죄 없음이 24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게 될 줄을. 그가 왜 성당으로 피신했고, 저 비탈길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어야 했는지를. 당시 이 사건을 전두 지휘했던 법무부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이제야 구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던 것을 보면 어떤 각인된 기억의 유효기간은 진실이 밝혀지는 시효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계단을 올라 성당을 둘러보았다. 지하성당에도 들르고 성바오로 수녀회 앞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3월 초 평일 오후인데 성당 뜨락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안의 모습도 어딘지 스산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인데 계성여고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그때서야 학교가 이전할 거라는 소문이 떠올랐다. 집에 와 찾아보니 실제로 학교는 작년 초에 마지막 졸업식을 하고 더 이상 그곳에서 입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면 이름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고백해보자. 수녀원과 붙어 있는 저 학교의 도서관을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도서관에서 뽑아본 책들 중 하나가 채광석과 김명인이 엮은 풀빛소설서 중 첫 권이었던 『밤길의 사람들』(풀빛, 1988)이었다. 도서관에서 저 책을 뽑아들던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저 소설 제목이 좋았다. ‘밤길의 사람들’이라니, 뭔가 흥미진진한 밤의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은 이랬다.

 

“만약에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를 찾아왔다면 도대체 이처럼 이상한 야단법석이 어떻게나 되어버린 퉁구니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영등포에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맞선이 명동의 밤으로 이어질 때는 선 채로 책을 보다 다리가 아파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예부 선배들이 얘기하던 6월 항쟁이, 경적을 울리기로 약속된 시간으로 향해가는 명동의 밤이, 밤길을 돌아 명동성당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내가 매일 오르던 비탈길을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시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시간의 비탈길은 이 광장에서 여섯시를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해매이던 그 시간의 비탈길은 내가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된 셈이다. 작가는 1987년 6월 10일을 다섯시 오분, 다섯시 사십분 등으로 쪼개어 조각보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명동이 해방구가 되어가는 그 시간의 멈춤과 폭발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명동은 시민들의 해방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커다란 삼태기에 콩을 잔뜩 담아 까불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병신춤, 배꼽춤을 추듯이 하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길길이 날뛰고들 있는 사람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열나게 외쳐대고 있는 청춘들. (…) 그야말로 병신 꼴값들을 하는 것이었으며 놀랄 노 자(字)의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 혼란, 무질서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해방을 구가하고 있었다. 서춘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가를 정말이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시간의 폭발과 무질서 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날마다 밤길의 사람들 속에 끼어 “마치 알지 못한 자력에 끌리기라도 하듯”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가는 밤길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가 “금세 다시 모여들”면서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무너진 상식을 되돌리는 사람들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숨 가쁘게 달려왔던 탄핵 촛불 항쟁이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헌제 앞에서 탄핵 인용을 기다리다 ‘파면’이라는 말이 터지자 “이겼다”는 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30년 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며 20여 일을 버티던 밤길의 사람들은 이번에는 연인원 1,700만이 넘는 촛불이 되어 스무 번의 토요일을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상식을 세운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또 보았다. 왜 우리 애들은 안 되냐고, 광장에 우리만 남으면 어떻게 하냐고 고개를 숙이고 울던 유가족들이 “우리가 너희의 부모다”라고 울부짖으며〈약속해〉의 노래를 부르는 광장의 비탈길을. (<작은책> 201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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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작은집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를 빠져나와 열한 걸음을 걸으면 3인용 텐트만 한 작은집이 있다. 이 집의 벽면은 천막이 아니라 조각천으로 이어져 있다. 왼쪽에는 세 개의 산등에 동이 터오고, 오른쪽에는 조각배가 떠 있는 바다가 출렁인다. 사면의 조각보 위로 삼각 지붕이 얹어져 있는데 국회의사당 정문 쪽으로 살아남은 아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박음질되어 있다. 그 아래엔 바닷가 해당화일까,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 있다. 이 집의 삼각 지붕에는 다른 집에는 없는 매일 숫자가 바뀌는 칠판이 있다. 정문에는 머리를 빡빡 민 아이가 나는 도망가다 잡혔습니다라는 글자가 박힌 붉은 티셔츠를 문패처럼 달고 있다. 그 옆에는 여름에도 이곳에 이 집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돌돌 말려 올라간 차양막이 있고 스티로폼으로 된 문이 있다. 문을 열면 방이다. 서너 명 앉을 수 있는 방. 그러니까 이 작은집은 방이다. 이 방에 들어와 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 묘한 기운이 있는데, 그것은 방의 두 면에 있는 산과 바다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산의 속, 지하철역 쪽으로는 지난 가을에 입었을 법한 쑥색 점퍼가 걸려 있다. 바다의 속, 국회의사당 정면 쪽에는 형제복지원에는 3개의 병동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어느 날의 신문 기사가 벽면 가득 붙어 있다.

앞머리가 눈을 덮고 찬기에 어깨를 웅크린 그가 허리를 구부려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신발을 벗고 바닥을 덮고 있던 이불 속으로 발을 뻗었다. 그가 미리 덥혀놓은 주전자에서 캔 커피를 꺼냈다.

이거라도 들고 있으면 조금 나아요.” 이 방에서 캔 커피는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온열기다. 이 이불 하나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하도 길에서 살아서 이젠 뭐, 괜찮아요.”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왔다. 누구나 들어오라는 듯 입김이 열린 문 쪽으로 빠져나갔다. 누군가 고개를 들이밀고 손님이 있었네, 하고 끼어들었다. 그는 1인 시위에서 했다던 몸에 익은 목례를 하며 내게 저기 민간인 학살 투쟁위원회의 어르신이에요.” 하고 말했다. 다른 농성장에서는 천막 안에 잠자는 텐트가 있던데 여긴 온열기구도 없이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었다. “천막 농성장이 커지면 더 추워요. 작은 게 좋아요. 여긴 사람들이 신발 벗고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힘든 얘기나 농담이나 그런 걸 나눌 수밖에 없죠. 방이니까. 사랑방이라고 해야 하나.” 그동안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었다. 그는 칠판에 날짜를 지우고 더하며 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 고맙죠. 저쪽 한국에서 제일 큰집에서는 아무도 안 와요. 매일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단 한 명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1인 시위를 시작한 때가 2012년이니까 6년 지났고 올해 7년째인데, 작년 1226일에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구요.” 그는 웅크린 어깨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말했다. 나는 책을 보았다고 했다. 내가 책을 꺼내자 그는 첫 페이지를 손으로 짚었다.

이게 나예요. 팔사일공삼육일팔! 아홉 살 때. 어릴 때 사진은 이것뿐이에요. 팔사일공삼육일칠은 작은누나고.”

그는 이빨이 시린지 얼굴을 찡그렸다. 책을 보고 알고 있었다. 그에게 추위는 공포라는 걸. 잠깐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밥을 나눠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을 미리 알아채는 법을 아홉 살 이후 몸에 익힌 듯 내게 먼저 밥 먹으러 가죠.”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아이. 우리는 그들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이렇게 부른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대략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이것이 그들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리고 있는가. 그는 밥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빨이 아파서요. 어릴 때니까 유치가 빠지고 어른이빨이 나오는 때였어요, 형제복지원에 붙잡혀 들어갔을 때가. 그때 관리를 못한 것도 있고, 빨리 먹어야 하니까 급하게 삼키던 것이 버릇이 된 것도 있고, 또 어떻게든 거기서 나가야 사니까 이를 악 물었던 게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내가 씹기에는 무른 밥이 그에게는 딱딱한 밥이었구나. 이 책에는 그가 왜 무른 밥을 씹지 못하고 삼켜야 하는지, 왜 찬바닥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면서도 그것이 공포인지, 왜 어깨를 움츠린 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인사를 하는지, 그의 몸에 새겨진 폭력과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역사의 거대한 공백이 조각보의 박음질 글자처럼 새겨져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 개나 소나 다 글을 쓰는구먼.’ 그렇다. 한때 나는 개였고 소였다. () 사람에서 짐승처럼 되긴 쉽다. 그렇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말로는 쉽지만 사실은 너무나 힘이 든다. () 나는 지금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 ()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국가가 버렸고, 사회가 관심을 안 갖는데, 어찌 개인의 힘으로 쉽게 나올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길 원하는가?” 한종선, 살아남은 아이(이리, 2012) 134135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옥을 경험한 그가 형제복지원을 나와 생존자로서 살아야 했던 세월을 사회가 몸으로 받아 적는 일이다. 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다. 안영춘은 어째서 소년은 그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수용소와 연관된 모든 이들이 퇴소 후에도 여전히 비가시적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문맥과 행간에서 찾아야 한다.”(10)고 이 책의 발문에 적고 있다. 책이 나온 것이 2012년이니 벌써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 책의 소년이 던진 질문들은 그 거대한 공백을 어떻게 채웠을까. 이 책을 기획하고 생존자 한종선이 그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격려한 전규찬은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의 의무, 수용소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그 증언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경청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책 속의 아이가 있고, 생존자들이라 불리는 그들은 423일째 폭력의 날짜를 새기고 지우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진심으로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한국에서 가장 큰집인 국회 앞에 나는 도망가다 잡혔습니다라는 문패를 단 작은집이 있다. 작은집에는 울타리가 없어 집 밖이 다 마당이다. 주소가 없어 우편물을 들고 직접 가야 한다. 작은집은 지나는 사람이 들어와 인사를 건네거나 주변의 농성하는 사람들이 걱정을 풀어놓는 사랑방이 된다. 작은집 마당의 큰집에서는 작년에도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7, 국회 앞에 작은집이 들어선 지 423일이 지났다. 그동안 국회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이 작은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지 않았다.  (월간 작은책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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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가는 길

-이야기가 있는 풍경

 

    

가령 아주 먼 곳을 땅이라고 하지 않고 얼음이라고 해본다. 술래가 나를 잡으려고 할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모두 얼음일 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하다 술래의 손끝이 내 몸에 닿기 전, 구원자임을 포기해야 하는 찰라, 그때를 아주 먼 곳, “얼음이라고 발음해본다. 땅은 어쩌면 땡에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춥고 척박한 땅을 우리는 얼음이라고 배웠다. 얼음의 땅에 씨앗을 심으려면 여름을 훔쳐 와야 하고 여름을 여름답게 하려면 겨울이 필요하다는 균형감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내는 어른들이 있는 땅. 가령 그곳을 숲이라고 발음한다면 그 숲은 얼마나 오래되고 깊을까.

올 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같은 길을 지나갔다. 갈 때는 성수역에서 신설동행 전철을 갈아타고 오른쪽 문에 기대어 중랑천에 부서지는 저녁 햇살을 바라보았다. 지하철 2호선의 창에는 저녁의 풍경이 걸려 있었다. 아차산이 있고, 중랑천이 있으며 여러 방향의 철로가 뻗어 있는 지하철의 집, 차량기지도 있다. 성수에서 신설동을 왔다갔다하는 이 구간을 지날 때면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구간에서는 앉아 있기 지겨워질 때까지 책을 보거나 헤어진 옛 애인을 생각해도 좋고,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을 짚어보아도 좋다. 전철은 신설동에서 후진해 어느새 출발한 곳으로 다시 와 있을 테니 말이다. 자정이 넘으면 2호선 전철은 기지로 들어와 쉰다. 그 철로가 반짝이는 여러 물결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신설동에서 내려 1호선을 갈아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예전엔 언덕이었던 곳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신동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길에서 몇 달 동안 글을 쓰고 싶어하는 분들을 만났다. 지역 분들을 대상으로 전태일재단에서 준비한 글쓰기 강좌였다. 8강을 통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는내 삶의 글쓰기첫 날은 각자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를 꺼내놓는 날이었다. 둘째 날은 쓰고 싶은 그것을 한 문단이라도 써서 쓴 글을 낭독하는 날이었다. 셋째 날은 두 번째 문단으로 넘어가고, 넷째 날은 글의 목소리를 집어넣고, 다섯째 날은 써야 할 것들보다 쓰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지치고, 여섯째 날은 글의 마무리로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썼는지, 다 쓰지 못한 말들은 행간에 남겨 두었는지를 살폈으며, 일곱째 날은 지금까지 쓴 글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첫날 스무 명이 넘는 수강생들은 점점 줄어들어 10여 명이 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여덟 분이 각자 생의 첫 글을 한 편씩 완성했다.

 

 

그중 당신은 글을 잘 쓰는 것은 필요 없다, 다만 살면서 늘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왔다고 고백한 한 분은 매일 조금씩 노트에 쓴 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손자에게 느그집 시원하냐?”고 묻다가 덜컥 에어컨을 할부로 사버린 할머니인 당신의 이야기. 이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듣는 분이었다. 다른 분들이 창신동에 대한 글을 발표할 때, 이분은 결혼하고 미싱 일을 하며 30여 년 살았던 제2의 고향인 창신동 윗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창신동 꼭대기에는 조기 말리는 할마시들이 많았어요. 집집마다 조기를 사다가 말려서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조기팔이를 했는데 그게 돈이 좀 됐거든요. 창신동 언덕이 조기 말리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이분들은 낮에는 조기를 팔고 밤이면 잣을 깠는데 깐 잣을 잣공장에 가져다주는 부업도 했어요. 이건 봉투붙이기보다 수입이 더 좋아서 윗동네 사람들만 비밀로 하던 부업이었어요.”

 

이분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전철에서 내려 시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창신동 꼭대기 집들이 이전처럼 그냥 집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기억에 묻어두었던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왔던 조기팔이 할머니도 되살아났다. 잣 껍데기를 깔고 조기를 말리는 언덕의 풍경도 그려졌다. 어느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시간, 추억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골목마다 증기를 내뿜으며 문을 열어놓은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있고, 창문을 열면 들리는 미싱 돌아가는 소리들과 그 사이를 조기 바구니를 이고 내려왔을 윗동네 사람들. 잣을 깐다는 걸 숨기던 첩보와 같은 정보들을 공유하던 동네의 마당들. 동네의 풍경에 이야기가 들어오니 그분의 글도, 창신동이라는 동네의 풍경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글이란 이런 숨어 있는 기억들, 조각들이 시간을 넘어 종이 위에 집을 짓고 사라진 사람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길이 아닐까.

이누이트들은 자신들을 이누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누이트는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얼마나 투박한 단어인가. 얼마나 넓은 단어인가. 얼마나 깊은 단어인가. 그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야기라고 한다. 사람들의 작은 무리가 흩어져 살아가다 한 해가 지나기 전 흩어졌던 강줄기로 다시 모이는 때, 그들은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다른 영토의 사위와 딸들이 돌아오고, 아들과 손자들이 돌아오고, 딸들과 어머니들이 모여 자신들이 보고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털실 삼아 모자를 짜듯 이야기를 엮어서 들려준다고 한다.

레미 사바르의 살아 있는 숲에는 하늘이 내린 고아 차카페슈가 사냥꾼의 생활을 접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하늘다리(은하수)를 만들어 달이 된 이야기, 버려진 아이가 미스타페우 할아버지를 만나 울음으로 여름사냥을 독려하는 이야기, 여름의 끝에 흩어진 가족들이 만나 이야기를 만드는 축제 우에파타우취히카트, 여름아이들과 겨울아이들이 나누어 힘자랑을 하는 이야기, 늙은 부모를 버리자 늙은이가 점차로 젊어져 손녀를 아내로 삼았으나 말라빠진 고추와 다 빠진 이빨 때문에 들통이 나는 심술 맞은 이야기, 하늘로 올라간 동생이 누나를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밑에서 치마 속을 훔쳐보는 이야기, 하루라도 빨리 축제에 참석하고 싶어 어린 아이를 양말도 안 신기고 얼음 땅에 버리고 도망치는 부모 이야기, 여름을 훔치고 달아나다 여름 무리에게 잡혀 겨울을 나눠주고 여름을 얻기 위해 딱따구리의 발가락을 보고 여름을 여섯 달로 정한 이야기, 버려진 아이의 피를 빨아먹는 머릿니를 모두 잡지 않고 머릿니 가족인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서캐까지 다섯 개는 남겨놓은 이야기들이 있다. 언젠가 얼음의 땅에 숲이 사라지더라도 이야기가 있으면 숲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듯 이야기는 이야기를 통해 자라고 퍼진다. 이야기의 숲은 얼음의 땅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존재방식인 것이다.

강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다 가방 속의 책을 뒤적였다. 책 속의 이야기와 단어들을 따라 발음해본다. 가령 봄을 봄이라고 하지 않고 쉬쿠안이라고 해본다. 여름을 여름이라고 하지 않고 니핀이라고 해본다. 가을을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타쿠아췬이라고 해본다. 겨울을 겨울이라 하지 않고 피푼이라고 해본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 열세 번째 달이 있듯 피푼과 타쿠아췬 사이 초록이 돌아오는 다섯 번째 계절 미니슈카마우를 넣어본다. 타쿠아췬과 피푼 사이에는 초록이 돌아가는 여섯 번째 계절 피취피푼을 넣어본다. 꽃을 우아피쿤이라고 해본다. 이제 아주 먼 나라의 깊은 단어들을 천천히 발음해본다.

저녁이 부서지던 강물에 달빛이 닿고 어둠이 내리는 동안 창신동으로 가고 오는 이 길에는 얼마나 간절한 이야기들이 쌓였던가. 한 번도 꺼내놓지 못한 그 이야기들이 글이 되던 순간 수강자들은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풍경은 풍경에만 있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와 단어들을 통해 더 깊어진다. 그것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풍경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으므로, 추억이 있으므로 그것을 풀어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창신동에서 돌아오는 길은 덥고 습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목소리는 이미 하나의 의미이며 삶의 표현이 되었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없는 풍경은 그림일 뿐, 그곳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스미고 시간이 쌓이면 철거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이야기의 숲이 된다. 살아 있는 숲처럼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든다고.(<작은책> 2018. 9월호)

  

  

<사진 1> 창신동으로 가는 길

<사진 2> 창신동 골목

<사진 3> 살아 있는 숲, 레미 사바르(검둥소, 2008)

<사진 4, 5> 수강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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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에서 아시아의 골목을 걷다

 

골목의 단어들

2017 아시아문학창작워크숍의 주제는 도시와 골목이었다. 초겨울 아시아 작가들과 서울의 골목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고 주제 발표를 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첫째 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둘째 날은 베트남, 네팔,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태국의 작가들과 성북동 북정마을의 골목을 걸었다.

와룡공원에서 시작해 한양 도성의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성북동의 두 동네가 한눈에 보였다. 한쪽은 마당이 널찍하고 집들이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부촌이었고, 또 한쪽은 마을버스가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달동네였다. 한눈에 보이는 두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달동네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

달똥네?”

,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

달도네?”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동네. 문타운, 문빌리지.”

, 달동네.”

함께 걸었던 아시아의 작가들은 달동네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달동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곽길을 내려오자마자 연탄을 나르는 트럭이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연탄이라고 외쳤다. 자 응언 선생은 베트남에도 연탄이 있다고 했다. 네팔의 나라얀 와글레는 연탄을 수박처럼 똑똑 두드렸다. 건물 외곽 계단에는 속이 빈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한 줄로 서서 지나가야 하는 골목을 따라 걷다 길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다.

북정마을 언덕에는 허름한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널빤지와 천막으로 지은 작은 공간이었다. 문 앞에는 그 집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시간이 건너간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멋진 카페들이 많을 테지만 이 카페는 이번에 처음 읽은 네팔의 소설 팔파사 카페(문학의숲, 2010)를 연상시켰다. 그 앞에서 네팔의 작가에게 여기 팔파사 카페 같지 않냐고 물었다. 사실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정치적 혼란기에도 연애편지가 쓰여지고 한 번도 춤을 춘 적이 없는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당신이 그린 팔파사 카페 같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손짓과 몇 개의 단어로 말한 무엇이 전달된 것인지 네팔의 작가는 웃으며 북정카페라는 이름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카페 앞에 서니 카페 문보다 작가의 키가 더 커서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골목을 내려오며 집집마다 서 있는 주홍의 열매를 단 나무를 보며 누군가 , 감나무라고 말했다. 내 옆을 걷던 베트남 작가는 우리를 따라오듯 자꾸 보이는 주홍의 열매를 가리키며 감나무, 감나무라고 따라했다. 감나무 사이로 까치가 날아와 앉았다. 버려진, 잃어버린 단어들을 훔치다 이곳까지 온 팔레스타인의 아다니아 쉬블리는 전날 숙소에서 접한 단어라며 까치, 까마귀, 참새하며 움직이는 것들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곁에 늘 있었던 단어들, 달동네, 까치, 까마귀, 참새, 그리고 감나무들이 동네를, 골목을 지키고 있는 단어였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작가들과 함께 걷는다는 건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단어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단 몇 시간의 동행만으로도 너무 익숙해서 낯선 골목의 단어들을 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골목들

저녁이 오기 전 상실의 길목에서라는 주제로 골목길을 함께 걸은 작가들과 대담을 진행했다. 14세 때부터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자 응언 선생은 작가에게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선생은 말했었다. 당신에게 아침이 어떻게 오는지. 총소리와 총의 향기로 왔다고 했던가.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속해버린 세대라고 했다. 총의 향기! 세포에 총의 향기가 새겨진 사람과 나는 지금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자 응언 선생은 당신이 껴안고 있는 베트남의 비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지금도 전쟁이 슬픈 건, 우리는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역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녀도 베트남 사람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슬픔은 번역되지 않아도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울음은 어깨에 있는지 여기저기서 어깨가 울컥이며 솟았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는 최근에 단어들이 식물처럼 자라는 꿈을 꿨다고 했다. 이 식물들은 땅에서 나와 하늘을 향해 자랐고 비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가뭄 때문에 단어들이 마르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고 했다. 파도의 서사시처럼 반복되는 물음을 통해 소설 속 인물에게 바다를 돌려주는 아다니아의 소설은 국내에서 곧 출간될 다른 작품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아다니아는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어릴 적 경험을 하나 소개했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폭파됐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아침마다 아빠한테 확인했다고도 했다. 동네에서 놀 때는 폭파된 집에서 테이블이 있었던 자리에 테이블을, 의자가 있던 자리에 의자가 있다고 상상하며 친구들과 놀았다고 했다. 그녀는 골목 하면 생각나는 그런 경험들, 허구의 세계를 상상하며 노는 것이 집이 폭파되는 현실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고 덤덤히 말했다.

네팔의 작가 나라얀 와글레는 어린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어린 딸이 그가 지어낸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며 기자로서 사실을 전달하는 일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그의 작품 속에도 사실과 허구의 이야기가 갈등하고 부딪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이야기꾼의 즐거움을 유쾌한 말로 풀어내며 사람들을 웃겼다. 서울의 골목도 네팔과 다르지 않지만 왜 이곳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걸었던 곳에서는 개들이 짖지 않았다. 개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기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걸을 때 보폭을 맞추기 위해 스케이트를 타듯 걸었는데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사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겨울 북정마을의 골목에는 잎 떨어진 나무 그림자들이 벽을 타고 놀고 있었다. 도시의 성곽도 골목의 벽들도 뭔가 지켜야 한다는 듯 웅크리고 더 단단해 보였다. 베트남의 골목길은 어떨까. 네팔의 언덕은 더 크고 넓겠지. 팔레스타인의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상상의 놀이를 하고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발리는, 태국은 어떨까. 집으로 돌아온 걸음이 계간 아시아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씩 넘긴다. 책 속에는 가라앉는 골목, 변화를 이끄는 골목, 카트만두의 골목, 아르메니아 지구의 골목, 태국의 골목이 펼쳐져 있다. 골목은 책 속에도 있다. 북정마을을 돌아나온 걸음은 어느 한 쪽이 현관 문을 열면 다른 한 쪽은 조심스럽게 자기 문을 닫”(181)는 익숙하면서도 다른 아시아의 골목을 걷는다. (<작은책> 책여행 201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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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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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0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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