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조선무속의 연구 상하, 아키바 다카시 편자(동문선, 1991)
소파에 앉아 한 글자 한 구절 한 단락씩 끊어 읽는데 이틀이 걸렸다. 읽는 동안은 내가 무당이 된 것 같기도 했고 무속어들이 반복되니까 무속의 역사에 정통한 것처럼 술술 풀려나오기도 했다. 무속인들은 북과 장고를 치며 리듬에 맞춰 혹은 신내림에 의해 읊었을 테니 노랫가락처럼 운율이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처음에는 책이 참 안 친절하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전통어구들을 그대로 살려낸(내버려둔) 것이 외려 더 좋아보이기도 했다. 상권은 무조전설의 시조인 바리공주 축원문으로 시작해 경성과 오산 열두거리(부정不淨-가망-산마누라-별성굿(손굿)-제석굿-천왕굿-호구(안당굿)-만명(성주풀이)-군웅(선왕굿)-대감(계면굿)-창부(터줏대감굿)-뒷전(마당굿))가 있고, 고사축원문으로 <뒷간축원>과 <걸립축원>이 재밌다. 특히 <죽음의 말> 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박상륭 선생의 소설어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알아버렸다는 거.
제주도 신가가 별도의 장으로 채록되어 있는데 요즘 어린이 책이나 연극에서 되살려지고 있는 '감은장아기'(삼공본풀이)나 '오늘이'(원천강본풀이) 이야기의 원본을 볼 수 있다. 제주땅 설매국에 얽힌 고산국과 황제부인 이야기인 <서귀본 향당본풀이>, 월궁신녀 갓흔아기씨의 <초혼본풀이>와 창세신화에 해당하는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인 <천지왕본풀이>, 김진국 아들과 원진국 딸이 옥황의 편지를 받고 서천꽃밭으로 가던 중 천년장자의 집에서 고난을 겪다 아들 한락궁이가 태어나 꽃밭대왕과 꽃감관이 되는 <이공본풀이>, 남장을 하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자청비 이야기인 <세경본풀이>, 삼신할망 이야기인 <명진국생불할망본풀이>, 석곽에 갖혀 버려진 아이의 이야기인 <신중도풀이>, 단명하리라는 예언을 피해 장사치가 된 왕의 세 아들 이야기인 <체사본풀이>, 북두의 일곱 별을 동원할망, 관청할망, 마방할망, 궁가할망, 사령할망, 기생할망, 과원할망으로 보는 <칠성본풀이>, 군농(軍雄) 가족(천황재석(할아버지), 지왕재석(할머니), 왕대조왕장군(아버지), 회속에낭(어머니), 왕근(첫째 아들), 왕빈(둘째), 왕사랑(막내))이 동해 용왕을 도와주고 월궁 선녀 같은 여인을 얻는 <군농본풀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구해 문전신이 된 <문전본풀이>가 실려 있다. 무가에서 쓰는 언어와 비유가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다. 최근에 민속원에서 제대로 다시 펴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