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식물의 역사와 신화, 자크 브로스(갈라파고스, 2005)
이 책을 먼저 보았다. 보면서 깊고 세세함으로는 어원의 뿌리까지 더듬고 넓기로는 종교와 신화까지 아우르면서 현실적인 감각까지 지니고 있는 저자의 면면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가스통 바슐라르도 그렇지만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묻고 찾고 헤매는 자들의 글을 보면 행복하기 이전에 질투가 난다. 자크 브로스는 어린 시절 식물원 옆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식물학자가 되었다. 나도 달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 달과 좀더 친해질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오랜 동안 옆동네에 들어선 아파트 꼭대기만 바라봤을까. 언덕에 앉아 발장난을 하며 왜 그렇게 자주 쓸쓸해졌을까. 치, 질투가 난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진보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은 퇴행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식물 상태에서 동물로 이행하는 과정은 적어도 초창기에는 새로운 기관의 생성보다는 기존 기관의 소멸로 인하여 가능했기 때문이다. 광합성 능력과 그에 따른 무기 영양 능력의 소멸은 동물로 하여금 식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지위를 갖게 했다. 식물이 지니고 있는 무성 생식력의 소실로 말미암아 동물은 한 가지 성만을 갖게 되었고, 식물의 견고성을 보장해주는 셀룰로오스성 막의 손실 또한 동물의 이동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현상에 비추어 동물 세포는 원래 병들거나 비정상적인 식물 세포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외부 세계에서 양분을 취할뿐더러, 섭취하고 남은 양분을 또다시 외부 세계로 배출한다. 나무는 호흡을 하는가 하면 물을 배출하기도 한다. (...) 건조한 기후와 토양에서 살기에 적합한 침엽수의 물의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활엽수 또는 속씨식물의 물의 배출량은 매우 많다. 참나무가 한 계절 동안 뿜어내는 물의 양은 100톤이 넘으며, 이는 자신의 몸무게의 225배에 해당한다. 또 이와 비슷한 크기의 단풍나무는 같은 기간 동안 자기 몸무게의 455배에 해당되는 물을 배출한다. 10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너도밤나무 숲은 매일 3500~5000톤의 수증기를 대기로 배출하기 때문에 숲이 있는 곳에는 자주 안개와 구름이 생겨난다. 활엽수들은 나뭇진 식물에 비해 훨씬 많은 물을 필요로 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동시에 대기 중의 습도를 현저하게 끌어올리며, 따라서 생명이 자라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활엽수를 과도하게 벌목하면 자동으로 장기간에 걸친 심한 기후 동요가 뒤따르며, 이 동요로 인한 결과는 언제나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