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걸린 병이 아니라 우리 엄마님에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야말로 1년 365일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매이지만 타고난 의지박약과 나태함으로 꿈도 못 꾸고 1년 365일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발병 주기 : 1~2달에 1번꼴

증상 :
아침 운동을 다녀온 엄마,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스러운 딸들 무슨 일이냐고 여쭙는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하는 말씀, "글쎄 수영장에서 체중을 재봤더니 자그마치 2킬로그램이나 는 거 있지. 요새 내가 좀 잘 먹고 다녔더니만.. 휘유우.." 엄마 얼굴을 살펴보니 평소보다 턱이 약간 더 겹쳐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했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터이니 암말 안 하고 가만있는다.
그리고 잠시 후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엄마,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오늘부터 우리 식구 다 다이어트야!! 니들 각오해!! 이 기회에 다들 10킬로그램씩 빼는 거야!!! 우리 집에 이런 음식이 가당키나 해!!!"라며 아까운 고기반찬, 치즈, 조각케이크, 아이스크림들을 냉장고에서 쓸어내 아낌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식구들 모두 입 헤~ 벌리고 쳐다만보고 있을 뿐, 찍소리도 못한다. 옛날에 한번 "다이어트 할 거면 엄마만 하지 왜 우리까지 괴롭히느냐"고 용감하게 대들던 내 동생, 엄마한테 찍혀 상당기간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었다.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식탁은 푸르디 푸른 초원이 되어 쌈채소와 샐러드와 나물이 즐비하고 조리법도 기름이라곤 한 방울도 안 들어간 죄 찌고 삶고 데친 것들 뿐. -_- 그나마 나물을 좋아하는 동생은 잘 먹지만 나물도 쌈도 질색인 나는 밥과 김만 먹고 있다. 반찬이 너무 심하지 않냐며 달걀이라고 하나 구워달라는 아빠에게 엄마 왈, "아니, 그 기름 좔좔 두른 프라이를 먹겠다고요? 게다가 달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 덩어리잖아욧!" 에고, 말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불쌍한 우리 아빠. ㅠㅠ 그냥 가만히 계시지..

치료법 :
이 상태로 2~3일이 지나면 누군가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 고기를 못 먹었더니 막 어지러울라 그래. 고기 먹고 싶어" "나 너무 피곤해. 초콜릿 좀 먹으면 이 피로가 싸악~ 가시련만.. 어디 숨겨놓은 초콜릿이라도 없냐?"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그래, 바로 우리 엄마다. 며칠 전의 그 처절했던 맹세와 호기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서는 텅텅 빈 윗칸과 꽉 찬 채소칸을 들여다보며 몸서리를 치고 있는 엄마. 우리가 다들 기막혀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면, "뭘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엄마가 먹고 싶다는데 당장 나가서 사오지는 못할 망정!!!"
...............
"네, 마마.. -___-"



내가 이렇게 집안망신 시켜가면서 몰래 엄마 흉을 보고 있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우리 엄마의 다이어트 발작이 또 시작됐다. 괴롭다. ㅠㅠ 주말에 아빠가 맛잇는 거 사준다 그랬는데 엄마의 증세가 오늘 막 시작됐으니 이번 주말은 텄다. 엉엉.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ika 2004-05-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종일 회사에서 다이어트 하겠다고 떠들고 왔더니 배가 고프네요...이러니 님의 어머니 맘을 쬐금 이해를 할듯싶어요...ㅎㅎ

starrysky 2004-05-2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 라이카님이 빼실 살이 어딨다고 다이어트를.. ^^ (직접 뵌 적도 없지만 분명, 1그램도 군살이 없으실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저는 매일 밤마다 라이카님 부엌(Laika's Kitchen)에 몰래 숨어 들어가 군침 잔뜩 흘리다 오는 거 아시죠? 우리 다이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맛난 거 마니마니 먹으면서 살아요~ 네? ^^

Laika 2004-05-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starry 님께는 절대 제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겠군요...저 살이 너무 쪄서 이제 "곡기"를 끊을까도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먹는걸 워낙 좋아하는지라....고민되네요..^^

starrysky 2004-05-23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걱, "곡기"를 끊으시다니요. 절대로 아니되어요오오~!!! 혹시라도 그런 일 하신다면 제가 라이카님 집과 직장까지 쫓아가서 밥숟가락을 입에 물려드릴 겁니다. 스토커 한 마리 키우기 싫으시면 절대 그런 독한 맘 먹으심 아니됩니다. 아셨죠? ^^

치유 2004-05-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꼭 누굴 보는듯 해요....
꼭 제얘기 같아서..한숨~~~~~~~!
 

S카드라 함은 국내 굴지의 재벌사 계열의 정우성이 CF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그 S카드다.
난 원래 카드를 많이 만들지도 많이 쓰지도 않는 편인데 유독 이 회사의 카드는 2장이 있다. 그것도 종류와 혜택이 좀 다른 카드면 나으련만 여성 전용 카드라는 똑같은 카드가 2장이다. 왜 이걸 2장이나 만들게 되었나 하는 까닭은, 그저 나의 바보스러움과 정신없이 바쁜 타이밍을 절묘하게 이용한 카드사의 얍삽함의 합작품이라고만 해두자.

처음 카드를 만들라고 꼬실 때 그네들은 연회비도 평생 무료고 어쩌고 그랬었다. 빨리 전화를 끊고픈 맘에 "정말 무료죠? 그럼 만들게요. 그쪽 DB에 제 정보 있을 테니까 그거 그대로 쓰세요(완전 미친 소리)." 해버렸다.
그러고 얼마 후 카드를 수령하고 또 얼마 후 고지서를 받았는데 무료라던 연회비 5,000원이 청구되어 있었다. '아, 이놈들 봐라' 싶었지만 귀찮기도 하고 금액도 얼마 안 되길래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한번도 안 쓰다가 언젠가 스카이라이프에서 그쪽 카드로 자동이체 신청하면 10,000원 깎아준다길래 홀랑 넘어가 이체 신청하고, 그거 딱 하나로 다시 몇 년을 버텼다.

근데 며칠 전 아침나절에 S카드에서 전화가 왔다. 쓰지도 않는 카드 중 하나가 기한이 만료됐으니 갱신해주겠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보내주면 되지 왠 전화씩이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지금 쓰던 카드 종류가 아예 없어질 예정이라나 하면서, 무슨 다른 카드 이름을 대며 그 카드가 아쭈~ 좋고 혜택도 많고 어쩌고저쩌고 하니 그 카드를 보내주겠단다. 신나게 떠드는 여자 얘기를 수화기 멀찍이 들고 한참 듣다가 물었다. "그거 연회비는 얼만데요?" 잠시 멈칫하던 여자 "20,000원인데요." -_- 니들이 아멕스냐? 쓰지도 않는 카드, 별 혜택도 없는 주제에 연회비는 그렇게 많이 처받냐? 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나 요새 너무 착해졌다) "싫어요. 연회비 젤 싼 걸로 보내주세요(그냥 없앨래요 할 걸 왜 그랬는지...)." 했더니 잠시 설득의 기미를 보이다 그냥 알았다며 끊는다.

그러고 다시 며칠 후. 어제 그넘의 S카드 고지서를 받았다. 근데 금액이 이상하다. 평소의 스카이라이프 비용을 훨씬 상회한다. 아니, 나도 모르는 새에 유료채널이라도 봤나 싶어 자세히 보니 연회비가 청구되어 있다. 근데 그 연회비는 며칠 전 기간 만료됐다며 없애준다던 그 카드의 연회비 아닌가. 그것도 5,000원이던 연회비가 왜 갑자기 12,000원으로 오른 건데?? 게다가 정말 연회비고 뭐고 청구된 적도 없고 한번도 쓴 적도 없는 다른 하나의 S카드에는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료'까지 부과되어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니들이 뭘 해줬다고 수수료냐??!!!
아, 빡돌아. 이것들이 정말 해보자는 거야 뭐야.

평소 성질 같았으면 전화통 들고 다다다다 해댔을 테지만 어제는 일단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전화를 걸어봤자 나만 힘들고 지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콜센터에 있는 사람들은(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그쪽에 근무하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다. 그냥 내 경험을 말씀드리는 거다)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척해서 항의하던 고객들이 지레 나가떨어지도록 만들라고 교육을 받는 건가?

일단 전화 연결이 되기까지 짧게는 3분, 길게는 1시간 넘게 진을 빼야 하고, 전화를 받은 상담원이란 분은 목소리는 역겹도록 이쁜 척을 하면서 말하는 내용은 사람 염장을 1분에 120번씩 지르는 얘기뿐이다. "아,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니라서... 원래 약관상... 담당자는 지금 자리에 안 계시는데... 처리는 해드리겠지만 언제까지 해드린다고 확실하게 보장은..." -_-+++
생각만 해도 열올라서 그냥 포기해버렸다. 내 피같은 돈을 써글넘의 카드사에 공으로 뺏겼지만(아, 그 돈이면 책 2권은 살 수 있는데.. ㅠㅠ) 전화 걸다가 혈압 올라 쓰러져 버리면 손해가 더 막심하니까 참는다. 글구 조금 정신 차린 담에 그 카드사 카드를 아예 없애버릴 생각이지만, 아마 그러면 이번에는 해지 수수료를 내라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반딧불,, 2004-05-2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어서 소비자보호원 홈피 가서 사례 찾아보시고요.
아니 그 피 같은 돈을 왜 낸답니까..
글고 중간에 확인 전화 안왔어요??지금이라도 첨 계약하고 다르다고 탈퇴할 수 있습니다.

starrysky 2004-05-2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그래야 할까봐요. 어휴, 정말 가만 참고 있자니 바보같은 제가 너무 싫긴 한데, 전화 걸면서 스트레스 받을 생각하니까 벌써 뒷골이 땡겨서요.. 27일날 결제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어요.
조언 감사합니다, 반딧불님. ^^

Laika 2004-05-2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언니는 핸드폰 요금 챙겨보지 않았더니, 쓰지도 않는 무슨 무슨 서비스를 3개나 받고 있더라구요..평소 영수증 챙겨받지 않는 언니를 대신해서 제가 몇번의 전화 끝에 받아냈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무슨 서비스라고 해서 돈을 빼가니...원..
어서 빨리 해결 되시길...^^

starrysky 2004-05-2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게으르고 소심한 사람은 아주 살기 힘든 세상이예요. ㅠㅠ 카드회사나 이동통신사들이 부자가 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이렇게 순진한 사람들 피를 빨아서.. 나쁜 넘들.
빠른 사태 해결을 위해 주말 동안 전투의욕을 고취시키겠습니다. 아자!!

치유 2004-05-2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맞아..글 참 잘 쓰네여..줄줄이~~~~왜 그런지..사람 좋게 넘어가려해도 그냥 두질 않으니..이X의..아..내가 열받어...
참고로 저는 그회사에서 카드 사용하지도 않었는데 연회비가 나왔길래 전화햇더니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다시 통장에 넣어주더라구요..그래서 그 카드 다 없애버렸어요...

starrysky 2004-05-2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롭게, 조용히 살아가려는 고객들은 죄다 지들 봉으로 아는 넘들이지요. 아, 이렇게 여러분들이 응원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저도 그 카드 다 없애버릴까 하는데, 알라딘에서는 왜 또 그 카드 3개월 무이자를 해준다는 걸까요. 어흑, 이래저래 도움이 안돼.. ㅠㅠ 일단 한번 더 그어준 담에 없애야겠네요..;;;
 

오늘 모 방송사 저녁 프로에서 본 내용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네 자매가 살고 있다. 엄마는 없이 아빠하고만 사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올망졸망 네 자매. 엄마가 왜 그들 곁에 있지 않은지는 앞부분을 제대로 못 봐서 모르겠다.
전교생이 12명인 자그마한 시골 분교에 한 가족 네 자매가 전체 구성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어려운 환경에 하루 왼종일 아이들끼리만 지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전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자기들끼리 피아노 치고 리코더 불면서 노래도 씩씩하게 잘 부르고, 네 자매 특별쇼도 종종 벌인다.

하루종일 바깥 일에 지쳐 돌아와 아이들 걱정이 한가득인 아빠는 그 또래 아이들의 아빠라기에는 많이 늙고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아빠가 열어 보인 벽장 안에 가득한 약봉지들. 아빠가 중병이라도 앓고 계신 건가 싶어 놀랐다. 그러나 그 약은 아빠 게 아니라 간질을 앓고 있는 셋째 딸의 몫.

힘들게 약을 먹고 있는 언니 곁을 슬그머니 빠져나온 막내는 혼자 풀섶에 쭈그리고 앉아 풀을 헤집고 있다.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네 잎 클로버 찾고 있어요. 우리 언니 아프지 말고 빨리 다 나으라고..." 물음에 대답하면서도 계속 지치지 않고 풀밭을 헤집는다.

푸릇푸릇 커다랗게 잘 자란 네 잎 클로버가 빨리 아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생이 찾아온 네 잎 클로버를 받아든 아이의 언니가 활짝 웃으면서 순식간에 병이 다 나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기적은 있으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면 소원은 이루어지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4-05-2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짜...기적이 일어나서 순식간에 나을수 있다면....
그런데 읽을수록 사람 쏘옥 빠져들게 글을 쓰시는군요...

starrysky 2004-05-2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그런 과도한 칭찬의 말씀을 자꾸 해주시면 속없는 스타리, 또 좋아서 헤벌레 날아다닙니다. ^^ 감사해요 배꽃님, 자주자주 뵈어요. ^^
 

오늘은 싫어하는 과일 시리즈. (사실 그저께 밤에 한번 썼었는데 완성 직전에 날라가 버려서 의욕상실)
남들은 "과일은 다 좋아요. 매일 과일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든데 난 왜 이렇게 과일마저 싫은 게 많을까.

일단 수박이 싫다. 무더운 한여름을 쨍하게 차가운 수박도 없이 어떻게 버티느냐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수박을 보면 달고 빨간 과육보다는 그 밀려오는 풋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색깔도 시커먼 빛이 도는 초록색인 게 꼭 덩치 큰 호박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렸을 때는 수박을 야채 취급하기도 했고, 남들이 맛나게 수박 먹을 때 혼자 참외만 아작내고 있었다. (사실 참외도 가끔 오이 맛이 나는데 왜 좋아하나 몰라)
요새는 좀 먹지만 먹는 방법이 남들과 달라, 남들은 커다랗게 한 조각 잘라 우적우적 베어 먹을 때 나는 과육을 얇게 칼로 저며 종잇장같이 만들어서는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먹는다. 그러면 그 얇은 과육이 혀에 착 달라붙으면서 달콤한 즙이 목구멍으로 약간 넘어가고, 이빨로 슬쩍 베어물면 살캉 씹히는 게 먹을 만하다. 문제는 이렇게 먹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더러운 짓' 한다면서 먹던 걸 뺏기기 십상이라는 거.

딸기도 싫다. 그 잘디잔 씨들이 씹히는 느낌이라니.. -_- 가끔 이빨 사이에 끼기도 하는 것 같아 더 싫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 근교 수원에는 광활한 딸기밭이 많았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가족이 딸기 먹으러 수원 가는 게 연례행사였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딸기 무늬 원피스 차려 입고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들고 새침 떠는 내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건 카메라를 위한 연출된 모습일 뿐, 렌즈가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딸기는 옆에 앉아 있던 동생 입으로 들어갔을 거다.
그나마 엄마가 가당연유와 딸기를 함께 주면 가당연유 먹는 맛에 딸기를 입에 대기도 했는데.. 진실은 딸기 하나를 가지고 연유를 듬뿍 묻혀 연유만 쪽쪽 빨아먹고, 다시 그 침 잔뜩 묻은;; 딸기를 연유에 담갔다가 또 빨아먹고.. 그런 식으로 딸기 하나 가지고 연유 한 접시를 해치운 거다. (지금 내 살의 1/18 정도는 그때의 연유에서 비롯된 듯하다)

복숭아는 지금도 거의 못 먹는다. 일단 그 털 있는 껍질에 약간 알레르기가 있는 데다가 과육의 설겅한 느낌도 싫다. 그럼 천도복숭아를 먹으라고들 하지만 천도복숭아는 너무 시잖아. -_- 복숭아 향은 참 좋아해서 복숭아맛 사탕도 잘 먹고 복숭아향 향수도 뿌리지만 과일 먹는 건 싫다. 단, 통조림 복숭아는 먹는다. 우리 나라에서 만든 통조림은 과육이 역시 너무 물컹거려 싫지만, 스페인산 통조림은 신기할 정도로 과육이 쫀득쫀득하다. (혹시 무슨 약품 처리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옛날에 그 통조림이 처음 수입될 때는 가격이 무쟈게 쌌는데 요새는 2~3배 이상 올라 엄마가 잘 안 사다놔서 슬프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과일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어서 좋아하는 과일도 있으니, 우선 포도는 목숨 걸고 좋아한다. 거봉도 좋고 씨없는 포도, 머루포도, 청포도 다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까아맣게 익은 캠벨 포도가 정석이다. 엄마도 나처럼 포도를 좋아해서 여름이면 둘이 마주앉아 책 읽으면서 포도를 몇 송이씩 해치우는데, 잠시 후에 고개를 들어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북이 쌓인 포도껍질 때문에 서로 얼굴이 안 보일 정도.

그리고 감도 무지 좋다. 연시, 홍시, 단감 다 좋지만 곶감이 최고! 나의 곶감 사랑은 온 동리에 소문이 자자해 곶감 철이 되면 내 친구들도 엄마 친구들도 동네 아줌마들도 나 주라고 곶감 선물만 해준다. 히히, 너무 좋다. 단, 여름에도 곶감이 가끔 먹고픈데 이 시기까지 제대로 보존된 곶감 구하기가 힘들다. 너무 비싸기도 하구.

음, 사과도 나름 좋다. 작년에 한살림에서 시켜먹은 사과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열광적으로 먹어치웠었는데.. 다시 그런 맛을 못 볼까봐 걱정이다.
그밖에 메론도 좋고, 애플망고도 좋고(비싸다고 엄마가 잘 안 사준다 ㅠㅠ), 리치도 좋다. 결론적으로 싫어하는 애들 뺴고 다 좋다. 하하~
빨리 포도철(제철이 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제철과일이 최고니까)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밀키웨이 2004-05-2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과일 포도와 복숭아
그것들 중에서도 황도같은 비싼거만 좋아한다고 옆탱이한테 구박듣고 삽니다..-_-;;

마태우스 2004-05-2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반갑습니다. 과일을 싫어하는 분을 또 만날 줄이야. 수박은 제일 싫고, 대부분의 과일을 싫어합니다. 딸기는 연유랑 같이먹는 조건으로 몇개 먹을 뿐, 포도도 싫구 복숭아도, 감도 다 싫어요. 포도 부분은 님과 다르군요^^

starrysky 2004-05-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님, 동반자님이 아무리 구박하셔도 땡기는 건 다아~ 드시면서 사세요. 차력형제 기르는 게 보통 중노둥입니까? ^^
마태우스님. 님의 몸에 붙어 있는 살들도 역시 연유와 상관관계가 있었군요. (끄덕끄덕) 제가 과일 싫어한다고 하면 다들 이상한 넘 취급인데 마태우스님처럼 동감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너무 기뻐요. ^o^
 

새벽 2시. 배고파 죽겠다. ㅠㅠ
남들이 보면 잠이나 자지 이 시간에 웬.. 라고 하겠지만 자서는 안 될 사정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데, 그렇다고 배고픔에 굴복하여 밤참 따위를 먹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날짜는 시시각각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판국에 쭉쭉빵빵 몸짱 대열에 끼기 위한 가열찬 다이어트와 운동은 못해줄 망정 여기저기 살을 더 보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시간에 뭘 먹었다가는 부대껴서 절대 잠을 잘 수 없다. 그냥 버텨야만 한다. ㅠㅠ

배가 고프다 보니 일도 손에 안 잡혀 사방을 헤매다니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더 크다. 왜 가는 곳마다 이렇게 맛난 사진들, 맛깔난 음식 관련 글들만 눈에 띄는지.. 원래도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런 종류를 부러 찾아다니긴 하지만 지금은 그저 고문일 뿐.
거기다가 다른 사이트에 올려놓은 옛날 내 글까지 발견하고는 완전히 기절해 버렸다. 그 글도 이렇게 배는 고프고 잠은 안 오던 어느 밤에 쓴 넋두린데, 지금 내 심정과 99% 똑같다. 그래서 옮겨왔다.

=======================================

(전략)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윤기가 반질한 빠알간 양념이 듬뿍 묻어 있는 떡볶이!! (얇고 넙적한 오뎅과 파도 듬뿍 들어 있는)
거기에 옵션으로 라면사리와 쫄면사리, 계란사리, 만두사리도 있음 좋겠고요,
막 튀긴 따끈따끈한 튀김과 오뎅국물도 필요해요!!! (콜라나 사이다는 필수)
그리고 후식으로는 나뚜르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통 다아 먹을래요.

흑, 근데 이 밤중에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부엌에 가보니 눈에 띄는 거라고는 삶은 고구마 3개, 정체를 알 수 없는 곡물 알갱이가 주렁주렁 박혀 있는 빵 한 덩어리, 아몬드 초콜렛통(저건 빈 통임을 알므로 패쓰!), 아까 내려놓고 안 마신 커피 한 주전자, 녹차 몇 봉지, 자일리톨껌뿐이군요.
아악, 슬퍼요!!!!
배고픔이 가라앉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아무거라도 먹어서 이 허기를 달래야 하는 건지..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이 생각나네요.
너무 배가 고픈 부부가 맥주만 몇 캔 해치우다가, 결국 참지 못해 맥도루나루를 털러 나선 얘기.
그 얘기 하니까 갑자기 햄버거도 먹고 싶습니다.
크라제 버거의 필리스랑 칠리프라이..까지는 너무 꿈이 큰 것 같으니까 안 바라고,
그냥 버거킹의 불고기와퍼나 치즈와퍼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흑,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태국요리도 먹고 싶어요!!!!
(후략)

=================================

읽다보니 짜증난다. 아, 배고파. ㅠ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코코죠 2004-05-19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흥 아흐흥
저 다이어트 중이랍니다 ㅠㅠ
제가 오늘밤 참지 못하고 담을 넘는다면 다 스카이님 때문이예욧!

starrysky 2004-05-1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이어트해야 되는데 맨날 떠오르는 건 먹을 생각뿐이니 인생이 사뭇 괴롭습니다. ㅠㅠ
우리, 같이 손 잡고 담을 넘을깝쇼? ㅠㅠ

치유 2004-05-2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아휴..정말...왜 이렇게 웃기는 거예요??
난 만두 네개 먹었는데....후식으로 커피를 먹고 싶은데..아니다 딸기크림 먹엇으면 좋겠다..ㅎㅎ

starrysky 2004-05-2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만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만두... @-@ 저 점심도 못 먹어서 배고픈데 배꽃님이 또 불을 질러주시는군요. 오늘 저녁 메뉴는 필히 만두여야 합니다. 불끈! 그, 그리고 저도 딸기크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