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갑자기 나를 기습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것은 소통이었고, 외로움이었으며, 때때로 위로였다.

나는 클럽에서, 거리에서, TV에서, 라디오에서, 그리고 가끔씩 나에게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랬던 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그냥 나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그러던 것이 어떤 기회로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음악가를 알게 되었다. 피아니스트부터 지휘자까지, 먼 타국의 음악가부터 나와 같은 도시의 음악가까지. 같이, 그리고 깊이 호흡하진 못했지만, 그들이 음악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어떤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지만 다만 마주치듯이, 스쳐가듯이.

글렌 굴드에게도, 카라얀에게도, 이 글을 읽게 해 준 저자에게도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무엇보다 음악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어떤 행위를 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그 길은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될 것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길들은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조금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오해와 갈등으로 헤어지고,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버린 이야기.

두 사람의 사소한 심리와, 자질구레한 일상과, 살아온 이력과, 그 밖의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작품을 모두 채운 듯 했지만,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감정으로 모여들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잊은 채로 평생을 살다가도, 중요한 것은 어째서 삶의 끝에서 다시 그리워지는 것일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2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제비 한 마리가 휑뚫린 처마 아래로 지나가듯이 나를 관통한 책이다.

나는 책 속의 무수한 '노이즈'를 사랑한다. 그것은 '남한산성'이 '조선왕조실록'과 같을 수 없고, '책도둑'이 '안네의 일기'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는 수 많은 노이즈가 있고, 그것이 책을 책답게 한다. 바로 그 무수한 노이즈로 독서가의 마음은 뒤흔들린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 근본적인 이유를 나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다시 나를 가르쳐주었다. 깨달음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책을 몇천 권씩 갖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일 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넌 천 권을 읽어라, 난 행복한 독서를 할 테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ison 2008-03-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독서가 중요한거 같아요^^*

산도 2008-04-0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포이즌님~~ 포이즌님 반가워요~~
^^
후훗~
음... 이상한 인사를 한듯;;

음.. 행복한 독서가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더 이상해진 건가요..
 
포스트잇 라이프 (보급판 문고본)
앨리스 카이퍼즈 지음, 신현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포스트잇으로만 대화를 한다? 음... 물론 포스트잇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이 더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대화의 창구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의 가족들에게는.

그래서 문제였다. 너무 일상적으로 자질구레했기 때문에, 그리고 한 페이지에 고작 두 세마디가 전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거야?'라는 반문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참고 읽었다. 다행히 너무너무 짧은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었으니까!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포스트잇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이기에, 그런 단절감을 지니고 살았었기에, 그리고 그만큼 일상적인 표현들밖에 남지 않았기에, 혼자 남겨진 아이의 쓸쓸함이 순간 몇 십배, 몇 백배로 다가왔다. 고작 작은 포스트잇 한 장일 뿐이었는데.

독특한 시도의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감동의 여운이 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1.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다.

부둣가의 작은 오두막 안, 대나무와 등나무 줄기로 촘촘하게 엮인 그 밀폐된 공간에서 무호흡잠수의 세계챔피언인 자크 르베르디-나중에 이 이름은 '공포'와 동의어가 된다-는 현행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의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이자,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악인의 정체'가 이야기의 시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오른팔을 묶어두고 경기를 시작하는 복서와 같다. 

2. 공포는 갇혀있다.

이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데, 첫 번째는 살인자 자크 르베르디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살인자가 갇힘으로써 독자의 긴장감이 완화될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으로 갇혀있는 살인자의 살해장면을 역추적해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이상한 긴장이 이야기의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지방 신문의 기자인 주인공 마르크에게는 살인자 르베르디를 향한 혐오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살해방법을 추적해가면서 르베르디와의 묘한 동질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묘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갇혀있다'의 두 번째 의미는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말할 수 없다.

3. 작가와 독자의 호흡 싸움

앞의 기이한 설정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의 서사는 독자의 호흡법을 무시해버리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 부분에선 이런 장면이 나오겠지', '살해방법은 지금쯤 가르쳐줄거야', '여기서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데'라는 독자의 추측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억측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은 살인자가 '무호흡잠수의 달인'이라는 것과, '공포는 갇혀있다'는 것의 확장된 의미로, 작가가 책 전체에 부여하고자 했던 아우라가 일종의 '호흡곤란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독자는 끝까지 가파른 호흡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의 앞에 서게 된다. 이런 서사법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내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4. '검은 선' 안의 '검은 선'

(부분 스포일러)르베르디의 살해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마르크는 떨림과 환희를 느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다. 동시에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르베르디와의 연결점을 모조리 끊어버린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이 소설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 하나를 맞게 된다. '메타 소설'이 그것이다. 작가 그랑제와 주인공 마르크의 닮은 꼴 이력, 그리고 또 같은 이름의 책. 어쩌면 이것은 부분적으로나마 실제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의심. 그리고 증폭되는 불안. 독자가 이 불안을 느낄 때 르베르디가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고, 사건은 범행을 역추적하는 수수께끼 풀이에서 빠져나와 두 번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진짜 '공포'와의 대면, 쫓고 쫓김, 모든 것을 향한 의심, 그리고 세 번째 반전을 향한 전개로.

5.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박살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겨우 두 마디만 해줄 수 있다. 첫째, 키-페이지(Key-page)는 2권 155p, 334p다. 둘째,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니체, '선악의 저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