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을 울린, 책 속 그한마디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307p)

 
   

그 때 알게 되었다. 이 남자의 무게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그 억척스러움, 사방에 대한 경계, 때때로 보여주던 잔인함,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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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을 울린, 책 속 그한마디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필요없어. 훌륭한 고래가 없듯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선인장이 없듯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펭귄뉴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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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엄마 2008-06-1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존재.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요? ^^

산도 2008-06-1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식한다는 것은 평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 같아요.
수식하지 않음으로 모든 존재의 의미가 비로소 완벽해지는 것도 같구요.
근데 사실 말은 쉽지만 제 현실에선 잘 되지 않아요 ㅡ.ㅜ
자꾸 어떤 것을, 누군가를 수식하게 되곤 해요.
 
9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2007/ 문학동네

 

   
 

 그 무렵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얻기 위해 일주일 내내 하루에 오 센트짜리 막대사탕 두 개만 빨며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그저 방해할 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것이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야 사람은 더 현명해지고 동료 인간의 피를 짜내고 그를 태워 없애기 시작한다. 힘없는 남자들, 여자들, 어린이들의 부서진 육신과 삶 위에 나의 제국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내내 그들 앞에서 나의 제국을 으스댈 수 있으리라. 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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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 함민복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등단작)1988년 <세계의 문학>// 1990년 첫 시집 <우울씨의 일일(세계사) 출간

시인 '함민복'은 착한 시인이다. 등단작이 '성선설'이다. 얼마나 착한가. 그는 1962년생이다. 그런데 아직 장가를 못갔다. 구멍난 난닝구를 입고 강화도 동막리의 버려진 농가에서 지낸다. 사람은 참 환하게 웃는데 집이 버려진 농가라, 사는 곳이 강화도라, 시인이라는 변변찮은 직업이라 아무도 시집을 안 오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월세 십만 원의 농가에는 나름의 정원이 있어서, 누가 키우지도 않았는데 야생화들이 앞다퉈 자란다. 시인은 얘내들을 방치하고, 얘내들은 시인에게 밥사먹으라고 시상을 몇 개 던져주곤 한다. 희한한 공생이다. 한켠에는 쓰지 않는 전깃줄도 있어서 빨래 널 곳도 마련돼 있다. 날이 추워지고 방구들이 식을때쯤 해서는 이문재나 나희덕 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찾아와서 연탄도 주고, 라면도 준다고 한다. 물론 깜박할 때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 1994년 두 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 출간

함민복은 문명 세계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강화도 골짝에 사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쓴 시들을 보면 착한 시, 비꼬는 시로 나뉜다. 착한 시들은 주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고, 풍자를 하는 대상은 대부분 문명이다. 문명을 만든 건 사람인데, 그럼 시인은 사람도 아주 조금은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함민복은 1998년에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당시에 그는 방세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 방세나마 받을까 해서, 지인에게 차비를 빌려 몸소 서울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받을 줄 알았던 상금은 없고(IMF라 문화관광부에서 일시적으로 상금을 주지 못했다), 자기 키만큼 큰 트로피만 달랑 받았다. 당장 집에 갈 차비도 없던 그는 차마 높은 사람에게는 말도 못하고, 1층 경비실에 가서 트로피를 돈으로 바꿔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같이 있던 시인 중 하나가 이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차비를 쥐어줬다.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 1999년 세 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출간

/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 2005년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출간

강화도에서 보내는 함민복의 시는 언제나 따뜻하다. 어려운 수사도 없이 독자들을 마구 감동시킨다. 시집은 많이 인쇄되었을텐데, 나에게만 은밀하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다. 시집을 펼쳐들면 함민복이 보인다. 작중화자에게 속으면 안된다고 다짐하지만, 함민복 앞에선 소용이 없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과, 그가 내게 보낸 편지가 어쩌면 이렇게도 한결 같은지, 나는 새 시집이 나오면 늘 별 수 없이 환하게 웃어버리곤 한다.



올 초에 함민복의 산문집 <미안한 마음>을 광화문/교보문고에서 보았다. '새 책이 나왔구나!' 반가운 마음에 표지를 열어보니, 시인이 직접 적은 메시지가 있었다. 사인본인가 해서 다른 책들을 보았는데, 메시지가 있는 건 이것 한 권이었다. 시인이 유명작가도 아닌데, 사인본일리는 만무했다. 서울에 다녀갈 기회가 있었던 건지, 맨 위의 책에다가만 정성껏 글을 적어둔 것이다. 갑자기 손에 땀이 흥건해져서는 누가 볼세라 냉큼 책을 샀다. 그의 따뜻한 마음에 웃음이 나면서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함민복은 2005년에만 24회 김수영문학상, 7회 박용래 문학상, 2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그런데 함민복은 아직도 가난하다. 그의 가난이 혹시 자초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이 들만하다. 시인이 시만 써서 돈을 벌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이다. 그러니까 그는 '시만 쓰는 시인'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게 '가짜'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직업에 들어가는 '업'자를 이해하는 함민복은 '진짜 시인'이다. 그리고 그 댓가로 그는 여전히 가난하며, 다행히(기도 불행이기도) 앞으로도 가난할 것이다.

추워서 눈을 떴다. 다행이었다. 세 시간 후면 해가 뜬다. 전기밥통의 밥을 비우고 물을 부어 끓였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등 빛의 열기와 끓인 물 한 밥통의 온기로 밤을 견뎠다. 잠결에 너무 추워 밥통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래도 추우면 어찌할 것인가. 밥통을 이불 밖에 다시 내놓았다. 한 가지 희망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중략)...
그 기사를 보고 쌀 세 가마니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주셨던 <신농백초한의원> 님들 덕분에 보일러에 기름 두 드럼 넣고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던 일이 떠오른다. 세상에 고마워할 일이 이렇게 많구나, 갑자기 찾아온 통증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을 되새겨주며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마저 일깨워주니 통증도 희망이다. -산문집 <미안한 마음> 82~4p

함민복의 가난은 그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몫이다. 그 고통으로 우리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위로와 희망의 시들을 선물받는다. 저렇게 힘들게 쥐어짜낸 선물의 무게를 생각하면, 나는 함민복의 시집을 6,000원이 아니라 12,000원에 사고 싶어진다. 그러면 시인에게 1,200원이 갈텐데......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위의 시는 함민복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 그에게서는 늘 사람을 향하기에 충만하기만 한 허기짐이 느껴진다. 나는 또 한 동안 그가 보내는 편지를 기다릴 것이다. 다음 편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 보아서 밀린 월세도 좀 내고, 기름도 때고, 계속 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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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8-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페이퍼네요. 추천함다!

산도 2007-08-1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합니다~ 시인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앞으로도 틈날 때마다 꾸준히 다른 시인들의 얘기도 적어볼까 해요. 다음 시인은 '나희덕' 입니다. 기대해 주삼~!

miony 2007-08-3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시 듣고 갑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산다면 역시 첫번째 시집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나희덕 편도 기대할께요.

산도 2007-09-0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중에선 <자본주의의 약속>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데 편차가 없는 분이라서 어느 시집을 읽어도 비슷한 크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듯;;

miony 2007-09-0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주신 것을 먼저 읽어보렵니다. 제가 사는 시집 한 권이 함 시인의 생활에 손톱만한 도움이 되길 바라며...^^

김남회 2009-08-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아침에 방송 을 통해서 함민복 시인 을 만나뵙게되었습니다. 큰 영광입니다.
저 는 I M F 를 이겨볼려고 50의 나이에 만학 을 시작해서 검정고시 방통고 를 졸업하고 방송대학에 입학을하였습니다.10년동안 만학 의 길 을 걷다보니 덤으로 얻은것이 또 있어요
구연동화 를 배워서 어르신전국대회에서 대상 을 받았습니다.오카리나 를 배워서 시간이 허락할때에는 봉사활동 을 나가곤 합니다.방통고 다닐때 글 쓰는것을배워서 금년봄에는 서울문학에 등단하는 영광 의 맛 을 보았습니다.그래서 방송 을 남들보다 몇배로 감명깊게보았습니다.
그리고 함민복 시인 님 을 한번 찾아뵙고싶습니다.좋은글 많이 쓰시고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