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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평점 :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상가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부인 '도린(이니셜 D)'을 위해 쓴 긴 편지글.
이 편지가 인상적이었던 첫 번째 이유는 편지의 부분 발췌문 때문이었다.
"당신은 이제 곧 여든 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실화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년간 간호하다가,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권총으로 동반자살을 한 실화라는 것.
책의 가장 뒷장을 보면 화려한 젊음을 구가하던 앞표지의 사진과 대비되는, 여든이 넘은 노부부의 사진이 있다. 읽는 내내 표지의 사진과 뒷장에 실린 노년의 사진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표지의 도린은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여인이었고, 여든의 도린 역시 남자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로 늙어 있다. 그리고 그녀와 비교해 정말 볼품없는 앙드레 고르의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뾰족한 얼굴.
물론 사람을 얼굴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남녀간의 사랑의 문제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리도 차이 나는 두 사람이 60여 년을 같이 살았다는 것 자체가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교 (여자)친구가 선물로 준 책인데, 앞으로 만날 여자에게 이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도 멋지지만, 이런 여자를 만나면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 우스운 리뷰는 처음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쩌라구.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들었는걸...
편지는 지식인으로서, 또는 유명인으로서 자세를 고쳐잡고 쓴 글이 아니라서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멋졌다. 인생의 마지막 선물로 이런 편지가 배달되어온다면 받는 이의 인생은 더없이 행복한 미소로 끝나지 않을까. 물론 쓰는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겠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하루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