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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쉽게 읽힌다는 것이 이 책을 올 한 해 뜨겁게 달궈줄 것 같다.
1. 대중문화 아이콘의 차용 - 키치를 현실로
읽기 전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역시 '소재'가 독특하다. 요새 뭐 이런 걸 가지고도 독특하다고 하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현재적'인-'현대'도 아니고- 소재를 들이미는 국내소설은 아직도 흔치 않다. 보는 순간 박민규의 첫 소설 <지구영웅전설>이 생각났으니까. 엑스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바나나맨'의 수기. 역사적인 전투의 현장에는 언제나 '바나나맨'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현실을 전복시키는 엉뚱한 상상력과 그 때까지만 해도 터부시했던 대중문화의 맨얼굴을 이야기의 심장에 놓았다는 대담함. 이 소설 역시 그런 의미에서 대담하다.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의 본드걸이었던 우리의 미미양, 이제는 본드걸이 싫단다. '미미양'은 자신이 일회용이라는 것에 분개하며- 사실은 007에게 차였다는 것에 더 분개하며- "저는 007보다 훌륭한 스파이가 될 수 있는데, 왜 폐기처분되어야 하죠?"라고 M에게 묻는다. 그리고 살인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유기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위장한 정보국 1층 현관에서 1인 시위를 한 끝에(--) 극한은 아니고 아무튼 조금이나마 힘들어보이는 훈련도 잘 수료하고 013-좋은 번호, 이를테면 011, 017등은 대기업에서 먼저 써서 번호가 남아있지 않았다-이라는 살인번호를 부여받는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중문화 아이콘을 차용한 것에 대해 이런 류의 소설들이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가벼움을 전복시켜서 키치를 현실의 문제로 재생산해내는 것'. <지구영웅전설>도 그랬지만 이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재생산하는 발화점은 어디일까?
2. 스파이(spy)- 절대고독자, 개인
소설로 다시 들어가보자. 주인공 '미미양'은 이제 꿈에 그리던 스파이, 013이 되었다. 그러나 임무수행은 아직도 멀고 먼 남의 얘기. ......여기서 잠깐! 이제부터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내용 전개는 생략하고;; 아무튼! 스파이가 된 미미양으로부터 이 소설은 1번에서 궁금해했던 현실의 문제를 재생산해낸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원숭이골- 종달새심장은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월터 PPK 한 자루씩을 들고 서바이벌 게임장 입구로 들어갔어요. 나는 그들을 보면서 담배를 배우지 않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애연가라면 반드시 담배를 태워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갖고 있는 담배가 없으면 어떡하겠어요. 담배든 가족이든 애인이든 연연할 것이라면 만들지 않는 편이 좋아요."
"나는 강시들을 해치우고 나서 구름다리를 건넜어요. 아래쪽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애쓴 건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이지요. 몸의 무게가 두 팔에 팽팽하게 전해오자 내 존재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지더군요. 인간은 역시 관념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약한가봐요. 고통은 늘 책보다 한 수 앞선 가르침을 주곤 하지요."
나는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간 다음 007에게 하소연을 하고 말았습니다. 요즘에는 누구를 보아도 다 스파이로 보이고, 모두가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 같다. 잠을 푹 잘 수가 없고 무엇이든 먹기 전에 의심이 간다. 어떤 말을 들어도 거짓말 같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여태껏 몰랐나보지?"
그렇다. 소설에서 말하는 냉혹한 스파이의 세계가 곧 인간의 세계, 현실의 문제이다. 그것이 난생처음 스파이 013이 된 현실의 본드걸 '미미양'의 세계관과 겹치면서 키치는 무게감있는 현실이 된다. <지구영웅전설>이 무게감을 획득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주인공 '바나나맨'이 우리 옆집에 살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 '바나나맨'은 UN비밀기지에서 지구영웅전설을 술회했떤 것이었던 것이다. ㅡ.ㅜ
3. 또 다른 시각- 페미니즘의 계급적 해석
이 이야기를 보는 다른 하나의 관점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의 계급 신장으로서의 '본드걸'의 의미다. 남성 중심의 헐리웃 액션영화에서 '상품'으로서 기능하던 '본드걸', 이야기는 그 '본드걸'을 007 제임스 본드와 동등하게 위치시킴으로서, 아니 007과의 관계를 역전시킴으로서 여성의 계급 신장을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미미양의 독백이 이를테면 그것의 상징이다.
난 본드걸 미미, 013,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 나는 죽음처럼 곤히 자고 있는 007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낮게 읊조립니다.
소설의 플롯 역시 미미양의 .지위를 가운데에 놓고 진행된다. 처음엔 007의 소유물로서 기능하고, 살인번호를 부여받고 007과 동등해지며, 007의 암살을 비밀리에 막아내면서 007을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으로 전락시키고 007의 위에서 그가 했던 말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는 것. 그런데 여성을 해석하는 이러한 관점이 굳이 계급적이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남성과의 비교우위가 아닌, 여성 스스로가 스스로를 말하는- 이 작가는 여자다- 단독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해석이 여성에 대한 더 옳은 시각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소설 속 미미양은 그 뒤로 행복했을까. 007 영화에서 일회용으로 사라져갔던 수 많은 본드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