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쓰는 러브레터
황록주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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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라는 말은 대상을 참 아련하게 한다. 그리움으로 채색된 단어 같다. 그러면서도 또 연정이 깊게 밴 느낌이게도 한다. 당신, 오늘은 그대에게 보내는 21장의 러브레터를 읽었다.

'그림으로 쓰는 러브레터'는 작가 황록주가 독자-또는 작가가 상정해 놓은 대상-에게 보내는 편지글 모음이다. 독특한 것이 있다면 그 러브레터마다 한 장의 그림이 동봉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당신의 두 눈'이라는 테마의 편지글에는 모딜리아니의 <레오폴드 츠보로프스키의 초상>이 동봉된다. 또 '지극히 커져버린 당신'이라는 테마에는 마그리트의 <청강실1>(이 그림은 방 전체에 가득찬 사과 형상이다)이 동봉된다.

글만 놓고 보자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글과 함께 보여지는 그림이 글의 여백을 잘 메워준다. 물론 문학작가가 아닌 미술가 치고는 글도 정제된 편이다.

내 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편지가 끝난 뒤의 P/S였는데, 이 짤막한 토막글에서 작가의 특징을 잘 잡아주어 21명의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가의 선정도 아주 좋았다. 폴 고갱, 마크 로스코, 앙리 루소, 르네 마그리트, 앙리 마티스,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 모네, 모딜리아니, 샤갈, 뭉크, 폴락 등등.

참, 그림을 테마로 한 리뷰를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구나. 보여줄 수가 없으니, 느낌을 전달하기도 힘에 부친다. 다만 전체적인 느낌은 한 마디로 이런 것이었다.

21개의 사연, 21장의 편지봉투 같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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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아동용,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1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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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 장부터 가슴을 쓸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베스트셀러가 보여줘야 할 가독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뒤의 감동이 더 진하게 느껴졌을까요. 주인공 미르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달밭'으로 이사를 오는 앞부분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사실, 지루하다고 하면 끝끝내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동으로 바꾸는 이 작가만의 특장이 있었습니다.

"미르는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느티나무의 가지들이 하늘을 수백, 수천 개로 조각을 내놓고 있었다. 지금 미르의 가슴은 조각난 하늘 같았다."

"미르는 마구 소리지르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쏘아 맞혀야 할 과녁인 것처럼 진료소를 노려보았다."

"미르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미르는 쿵쾅거리며 자신의 방 앞으로 갔다.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네가 날 싫어한다면 나 역시 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방문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르가 이사를 온 이야기의 도입부입니다. 미르의 마음이 느껴지나요? 써놓고 보니, 이것만으로도 미르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굳게 닫혀 있다는 느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오기를 부리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동화는 그랬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인 세 아이의 투정, 슬픔, 웃음, 나약함, 희망, 눈물에 대해 가감없이 아이의 눈높이에 사물이 투영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바람, 목소리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아이들의 기분대로 보여졌습니다.

내용 역시 '희망'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바람직한 동화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꿈 같은 이야기로 감추지 않습니다."라고 추천평을 써준 조월례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이야기는 내용 역시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어른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지, 어른들의 잣대가 아닌 아이들의 잣대로 보기 위해서, 어른들이 먼저 읽는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다보니, 책을 덮고난 뒤에도 아이들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미르, 소희, 바우가 내 마음 구석 어딘가에서 자꾸 재잘거려서, 오늘은 마음이 분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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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산도 2013-07-10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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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쉽게 읽힌다는 것이 이 책을 올 한 해 뜨겁게 달궈줄 것 같다.

 

1. 대중문화 아이콘의 차용 - 키치를 현실로

읽기 전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역시 '소재'가 독특하다. 요새 뭐 이런 걸 가지고도 독특하다고 하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현재적'인-'현대'도 아니고- 소재를 들이미는 국내소설은 아직도 흔치 않다. 보는 순간 박민규의 첫 소설 <지구영웅전설>이 생각났으니까. 엑스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바나나맨'의 수기. 역사적인 전투의 현장에는 언제나 '바나나맨'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현실을 전복시키는 엉뚱한 상상력과 그 때까지만 해도 터부시했던 대중문화의 맨얼굴을 이야기의 심장에 놓았다는 대담함. 이 소설 역시 그런 의미에서 대담하다.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의 본드걸이었던 우리의 미미양, 이제는 본드걸이 싫단다. '미미양'은 자신이 일회용이라는 것에 분개하며- 사실은 007에게 차였다는 것에 더 분개하며- "저는 007보다 훌륭한 스파이가 될 수 있는데, 왜 폐기처분되어야 하죠?"라고 M에게 묻는다. 그리고 살인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유기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위장한 정보국 1층 현관에서 1인 시위를 한 끝에(--) 극한은 아니고 아무튼 조금이나마 힘들어보이는 훈련도 잘 수료하고 013-좋은 번호, 이를테면 011, 017등은 대기업에서 먼저 써서 번호가 남아있지 않았다-이라는 살인번호를 부여받는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중문화 아이콘을 차용한 것에 대해 이런 류의 소설들이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가벼움을 전복시켜서 키치를 현실의 문제로 재생산해내는 것'. <지구영웅전설>도 그랬지만 이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현실의 문제를 재생산하는 발화점은 어디일까?

 

2. 스파이(spy)- 절대고독자, 개인

소설로 다시 들어가보자. 주인공 '미미양'은 이제 꿈에 그리던 스파이, 013이 되었다. 그러나 임무수행은 아직도 멀고 먼 남의 얘기. ......여기서 잠깐! 이제부터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내용 전개는 생략하고;; 아무튼! 스파이가 된 미미양으로부터 이 소설은 1번에서 궁금해했던 현실의 문제를 재생산해낸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원숭이골- 종달새심장은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월터 PPK 한 자루씩을 들고 서바이벌 게임장 입구로 들어갔어요. 나는 그들을 보면서 담배를 배우지 않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애연가라면 반드시 담배를 태워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갖고 있는 담배가 없으면 어떡하겠어요. 담배든 가족이든 애인이든 연연할 것이라면 만들지 않는 편이 좋아요."

"나는 강시들을 해치우고 나서 구름다리를 건넜어요. 아래쪽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애쓴 건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이지요. 몸의 무게가 두 팔에 팽팽하게 전해오자 내 존재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지더군요. 인간은 역시 관념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약한가봐요. 고통은 늘 책보다 한 수 앞선 가르침을 주곤 하지요."

나는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간 다음 007에게 하소연을 하고 말았습니다. 요즘에는 누구를 보아도 다 스파이로 보이고, 모두가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 같다. 잠을 푹 잘 수가 없고 무엇이든 먹기 전에 의심이 간다. 어떤 말을 들어도 거짓말 같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여태껏 몰랐나보지?"

그렇다. 소설에서 말하는 냉혹한 스파이의 세계가 곧 인간의 세계, 현실의 문제이다. 그것이 난생처음 스파이 013이 된 현실의 본드걸 '미미양'의 세계관과 겹치면서 키치는 무게감있는 현실이 된다. <지구영웅전설>이 무게감을 획득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주인공 '바나나맨'이 우리 옆집에 살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 '바나나맨'은 UN비밀기지에서 지구영웅전설을 술회했떤 것이었던 것이다. ㅡ.ㅜ

 

3. 또 다른 시각- 페미니즘의 계급적 해석

이 이야기를 보는 다른 하나의 관점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의 계급 신장으로서의 '본드걸'의 의미다. 남성 중심의 헐리웃 액션영화에서 '상품'으로서 기능하던 '본드걸', 이야기는 그 '본드걸'을 007 제임스 본드와 동등하게 위치시킴으로서, 아니 007과의 관계를 역전시킴으로서 여성의 계급 신장을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미미양의 독백이 이를테면 그것의 상징이다.

난 본드걸 미미, 013,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 나는 죽음처럼 곤히 자고 있는 007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낮게 읊조립니다.

소설의 플롯 역시 미미양의 .지위를 가운데에 놓고 진행된다. 처음엔 007의 소유물로서 기능하고, 살인번호를 부여받고 007과 동등해지며, 007의 암살을 비밀리에 막아내면서 007을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으로 전락시키고 007의 위에서 그가 했던 말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는 것. 그런데 여성을 해석하는 이러한 관점이 굳이 계급적이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남성과의 비교우위가 아닌, 여성 스스로가 스스로를 말하는- 이 작가는 여자다- 단독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해석이 여성에 대한 더 옳은 시각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소설 속 미미양은 그 뒤로 행복했을까. 007 영화에서 일회용으로 사라져갔던 수 많은 본드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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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5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2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도 2007-03-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이렇게 쓰는 거 맞나 ㅎㅎ;;) 감사함돠~ 리뷰 쓰니까 적립금도 주고~ 알라딘 좋네요!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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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식의 '작가의 말' 부분이다. 정말 '킥'하고 웃어버렸다. 국내소설을 읽으며, '킥'이라는 웃음이나마 내 보던 게 언제였던지...... 그것이, 다른 것은 아니고 내 웃음이 신선했다. 그래도 그나마 어딘가, 이런 웃음이나마.

서문에서 당당하게 밝힌 그 자신감이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것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가, <캐비닛>은 이상하게도 발화의 욕구를 자극한다. 쉽게 얘기해, 스포일러가 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게 한다. 그러나 앞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또 이야기하고나면 당신이 '상상'해버리므로 그러기가 싫다. 그 '이하'를 본다지 않나, '이하!' 그러니까 상상하지 말고 보자.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평소에 쓰지 않던 글을 끄적거리며 누군가에게 <캐비닛>을 이야기할테니.

다만, '작가의 말'은 인용하고 싶다. 내용과는 상관없으니 이것을 읽고 상상하시길~!

 

당신이 이 저열한 자본주의에서 땀과 굴욕을 지불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번 돈으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책이 당신의 마음을 호빵 하나만큼도, 붕어빵 하나만큼도 풍요롭게 맛있게 해주지 못한다면 작가의 귀싸대기를 걷어 올려라. 그리고 멋지게 한마디 해주어라.

“이 자식아, 책 한 권 값이면 삼 인 가족이 맛있는 자장면으로, 게다가 서비스 군만두도 곁들여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이 썩을 자식아!”


그런데 내가, 겁도 없이, 책을 내게 되었다. 분수도 모르고 덜컥 상까지 받아버려서 이제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


[캐비닛] 수상소감 中, 3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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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송기원 지음 / 창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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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빠른 변화가 무섭다는 말이 이제는 응당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도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 전쟁, 산업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붕괴, 과학으로서의 세계 인식, 가상 현실... 그리고 현재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 급속한 변화를 고스란히 겪었으며, 또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의 중심에서 최후이자 또한 최초다. 바꾸어말하면 그들은 개인화되지 못한 사회의 피해자들이라는 것.

그런 그들을 개인화시켜놓은 소설을 읽었다. 바로 이 책 '사람의 향기'.

유목에 가까운 삶을 견디며-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여기에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 도대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어찌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사람들, 일가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족사 안에서도 철저하게 개인이었던 그들. 송기원은 그들의 삶을 수채물감으로 채색했다. 너무나 투명해 고통과 쾌락이 여과없이 투영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소설은 연작이다. 지면에 연재했거나 따로 써 놓은 단편들을 한 데 모아서 묶은 셈. 각 편은 화자인 '나'를 통해 서술되어지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제목이 붙어 있다. '폰개 성', '물총새 성관이', '정애 이야기' 하는 식. 그리고 각 주인공들의 개인사적 이야기들이 사회사 안에 집어넣어진 플롯으로 구성되어졌다. '오만과 편견'이나 '안나 까레리나'를 떠올리면 정확할 듯.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서술자인 '나'가 등장해 사회사가 아닌 개인적인 정황에 주인공들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 이것은 보다 연대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두 번째로는-이것이 중요하다!- 그 개별적 주인공들이 하나의 공통된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것.

"자, 아무 말 말고 작은어머님을 만나세.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살아 계신 피붙이로는 자네에게 유일한 어른인 셈이네." -폰개 성

"오매, 용반떡이 말을 다 하네. 시상에, 자석이 왔다고, 시방까장 닫았던 입이 열려뿐구만잉. 이녁 배를 앓음시롱 낳은 자석은 아니라제만 그래도 자석은 자석인 모냥이네."

"오냐, 떼레쥑에라. 나가 이녁 손에 죽으먼 죽었제, 한나밖에 없는 내 새끼를 근본도 모르는 장갓 쌍것으로 맨들 수는 없어야." -주인공 '나'의 어머니

"근디 말다, 나가 여그 온 그러께부터 해마둥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먼, 누군 중 몰르제만, 가게문 앞에다가 새벡같이 조구랑 서대랑 육괴기를 살모시 나놓고 간단 말다아." - 끝순이 누님

부분을 인용해서 내용 전달은 힘들지만, 내포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이 발화에 드러나 있다. 그렇다. 그것은 '핏줄'이다.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이야기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야 비로서 아우라로 형성되는 것을 느끼며, 연작소설이 가져야 하는 미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절규하듯 주장하는 그 '핏줄'의 한국적 계승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성찰이라도 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현재'를 개선해야 하는 문학적 과업을 지닌 것이 작가의 제 1 덕목이라고 한다면 이 책 '사람의 향기'는 그것에 아주 충실하다. 또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러한 소설을 써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에 기꺼이 별 다섯 개를 주겠다. 사회가 급속하게 도시화, 산업화로 이행되면서 우리가 간과해 마지 않았던 바로 그 것. 한국적인 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려고 하는 50대 이상, 아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핏줄'에 대한 한국적인 연대의식을 우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설 연휴에도 나 역시 고향 집에 내려가는 것이 마냥 귀찮기만 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이 책을 정독했다. 읽으면서 콧등이 시렸다. 대가리가 커버린 자식에게 미처 내색하진 않았지만,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가족이 같이 내려가서 맞는 설이 얼마나 큰 연례행사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 서울로 올라와버린 나의 차가운 등허리를 애타게 보았을 부모님의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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