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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소설의 홍수 속에서, 국내 대형 작가들의 신작 속에서, '드.디.어' 우리 문학의 신인이 등장했다. 만사 다 제쳐두고, 일단 반갑다.
'달의 바다'는 언론고시에 번번이 낙방한 백수 주인공이 상심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할머니의 유언과도 같은 부탁으로 20년 전에 집나간 이모를 찾아 미국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구성은 주인공인 20대 중반의 백수 '은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현재형 사건과, 가출한 고모가 할머니에게 은밀히 보냈던 7장의 편지글의 교차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고모의 편지글이 문장이면 문장, 묘사면 묘사, 밀도면 밀도, 모든 면에서 '완성'에 가까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근(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주목받는 김애란의 문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탄탄하고, 적확하며, 자기 통제가 가능한 일정 수준 이상의 표현력.
현재형 서술의 부분에서는 아직 신인의 글이라 군데군데 어색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차라리 그것은 김연수의 '스무 살',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과 같은 치기어린 대담함의 부분으로 보여서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넉넉한 아량을 베풀며 작가의 다음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하는 힘이 된다. 더 호의적으로 보자면, '은미'라는 소시민적 텍스트의 리얼리즘을 확보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해설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쉽게 읽혀내려가는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수한 장치들을 설치해놓은 듯 보인다. '은미'와 '이모',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적 억압기재들의 소극적 표출, 반대로 '아버지',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보수적 남성주의. 그 중간지점에서 자기 자신의 양면성과 대립하고 있는 '은미'의 단짝친구. 그리고 몇 년 전 폭풍처럼 몰아닥쳤던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이모'를 역할모델로 하는 주인공 '은미'의 성장까지. 해석의 여지가 분명한 여러가지의 장치들이 큰 하나의 플롯에 감금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되어지고 있어서 이야기가 풍요롭다.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작은 절망과, 그것과 일정한 양의 희망을 동시에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앞뒤 분간 못하는 어린 나이부터 100세를 앞에 둔 노인까지 어느 누구도 절망에 초연하진 않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그 작은 절망보다는 같은 크기의 희망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이모'가 할머니와 주인공에게 남긴 '달의 뒷면에 새긴 희망'처럼, 독자의 마음에도 희망이 감염되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