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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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박정희의 조카의 친구와 친구였다. 무안인가, 장흥인가의 시추권을 따내어 박정희의 조카의 친구와 같이 무안인가, 장흥인가에 있었다. 시추권을 따내기 위해 그 지역 군수를 만나러 갔을 때, 군수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박정희의 조카의 친구를 자기 자리에 앉히고 자기가 손님석에 앉았다.

어머니는 천상 여자였다. 전남대학교 앞에서, 광주역에서, 도청에서 무슨 시윈가를 한다고 떠들썩할 때, 어머니는 말 못하는 나를 꼭 안고 집에 있었다. 커튼도 치고, 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한 하루를, 하루가 일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집은 하숙을 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조선대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지금 그들은 거의 5. 18 공동묘지에 있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이면 아마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이성이 없었으므로, 나는 살아남았던 것 같다.

내가 죽었더라면 만화 전두환을 읽으며 치를 떨 수도, 알라딘에서 리뷰를 올리며 희희덕거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불의를 못 참는 아버지 역시 어쩌면 그 때 광주에 없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위험한 하숙집에 있었던 어머니 역시도 운이 좋았다.

지금 5. 18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나의 이웃사촌들에게, 이성이 있고 용기가 있어 불행했던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집에 기거하며 청춘을 불살랐던 하숙생들에게 '만화 전두환'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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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사이코 테라피스트의 심리여행
권문수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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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심리치료사, 이를테면 '컬러 오브 나이트'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정신과 상담을 해주고 환자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그러다가 사랑이나 원수의 관계로까지 그 의미가 변질되기도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사이코 테라피스트'다. 정신과 의사는 주로 약처방과 관계된 일들만을 한다. 이 책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것 말고도 이 책은 처음 만나는 진실들을 여러 가지 보여주는데, 심리학 서적 중 가장 솔직한 시선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진솔했던 부분은 저자가 치료한 사람 중, 진정한 의미로 '치료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굉장히 허무하고 짜증났다. 모든 사례들의 결말이 "그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이거나, "그녀가 그렇게 떠나가는 뒷모습을 나는 차마 잡을 수 없었다."로 끝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심리치료사야!

그런데 저자(권문수)가 이야기하는 심리치료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책을 넘기면서 알게 됐다. 심리치료사가 하는 일부터 이야기해 보자.

심리치료사는 환자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병 때문에 실제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법의 도움 안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대신해준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지고 있는 빚까지 여러 형태로 삭제/소멸해주기도 한다. 주거지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환자를 병원에 감금시키거나 약처방을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말하자면 테라피스트가 일차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제대로 된 생활의 보조인 셈이다.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병은 완치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신질환 자체가 특정한 정신의 발달, 또는 퇴행으로 오는 것으로, 모두에게나 있는 정신의 작용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가볍거나 무거운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거의 모든 정신질환의 뿌리가 '외로움'에 있다고 한다. 100% 공감한다.

여기서 테라피스트의 2차 치료, 궁극적인 치료의 의미가 나온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기도 한데, 그것은 우리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 외로움이 타인을 가격하기도 하고, 타인과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다'는 말에는 '인간을 향한다'라는 희망이 더 깊게 새겨져있다고 믿는다. 치료를 위한 치료, 그 너머에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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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롭다,에 담긴 '인간지향'.. 그러니 외롭다고 느끼는 건 희망적이네요.
아무느낌이 없는 게 문제지.. 리뷰 잘 읽고 추천합니다.^^

산도 2007-08-1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꿈보다 좋다고... 그래도 그렇게 믿는 이들이 테라피스트라면 희망에 더 가까이 가는 거겠죠~ ^^
 
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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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 동안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있었고, 개인적인 대소사도 겪었다. 시간이 흘러갔고, 시간의 흐름만큼 나도 조금씩 변해간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잊어버리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리진'이 늘 있었다. 잊혀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리진'이나 '신경숙'을 마주하면 다시 인간 '리진'이 생각났다. 이것도 인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리뷰 쓰기가 참 힘든 책이 있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혼신을 다한 책이 그렇다. 근래에는 '남한산성'과 '리진' 정도가 있다.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 혼신 때문에 코끝이 찡해지기 때문이다. 김훈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소재를 치밀하게 써나갔고, 신경숙은 자신이 써보지 않았던 소재를 충만하게 풀어냈다. 그렇게 되기까지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울음들을 삼켰을까.

간혹 '리진'이 생각난다. 그 여인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질기게 이어나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렇게 내게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리진'에게 내가 말을 걸고 싶어진다.

여러 의미에서 당신이 내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걸,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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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눈물 1 세계신화총서 6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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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몇 년 전부터 이 하나의 단어가 온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한다. 나 같이 변화에 민감한 사람은 물론이고, 시사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중국의 변화와 기대, 우려와 질투에 대한 목소리를 듣고 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수많은 억측과 사실 속에서 우리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문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최근 위화의 '형제'에 이어 중국작가의 큰 작품이 하나 더 나왔다는 사실은 중국의 다양성에 우리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젊은 작가가 이번에 들고 온 것은 '중국 신화의 현대적 재구성'이다.

'눈물'은 중국 4대 민간신화 중 하나인 <맹강녀 신화>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작을 보지 못해 비교할 순 없겠지만, 쑤퉁이 재구성한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낯선' 작품이었다. 만리장성의 축조를 위해 끌려간 치량이라는 남편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이 전부인 간단한 스토리의 이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비극과 희극이 사이좋게 공존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또는 신화의 전형에서 멀리 비껴가있다.

잘 썼냐 하면 꼭 엉성한 아마추어의 솜씨 같기도 하고, 신화 이야기냐 하면 그냥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럼 비범한 것이냐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것도 같고, 슬픈 결말이냐 하면 희망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죽은 완치량을 찾아가는 떠돌이 아내, 눈물의 힘으로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주인공 '비누'의 생생함이다.

'비누'는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마을에서 태어나 머리카락으로 눈물을 흘리는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남편 치량의 실종으로 온 몸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되며, 치량을 찾아 몇 천리를 가는 동안 그 눈물의 힘으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긴다. 허약하며 강인한 이 여성상은, 종내에는 만리장성의 일부를 허물어뜨리게 되는데,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이 여인이 '신적인 존재'에 다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비누'의 여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무한에 가까운 인구만큼이나 광범위하다. 그래서 '눈물'은 다양한 질곡의 중국사를 우회해서 표현하는 또 하나의 중국 엿보기가 될 수 있다. 이 군상들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비누'는 중국 역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우는-또는 포용하는- 약하고 슬픈 신이다.

'눈물'은 이상한 작품이다. 한 번 읽으면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이고, 두 번 읽으면 '신화'가 된다. 오늘날 주목받는 나라가 된 중국이라는 활시위는 이러한 민초들의 눈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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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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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의 홍수 속에서, 국내 대형 작가들의 신작 속에서, '드.디.어' 우리 문학의 신인이 등장했다. 만사 다 제쳐두고, 일단 반갑다.

'달의 바다'는 언론고시에 번번이 낙방한 백수 주인공이 상심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할머니의 유언과도 같은 부탁으로 20년 전에 집나간 이모를 찾아 미국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구성은 주인공인 20대 중반의 백수 '은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현재형 사건과, 가출한 고모가 할머니에게 은밀히 보냈던 7장의 편지글의 교차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고모의 편지글이 문장이면 문장, 묘사면 묘사, 밀도면 밀도, 모든 면에서 '완성'에 가까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근(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주목받는 김애란의 문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탄탄하고, 적확하며, 자기 통제가 가능한 일정 수준 이상의 표현력.

현재형 서술의 부분에서는 아직 신인의 글이라 군데군데 어색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차라리 그것은 김연수의 '스무 살',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과 같은 치기어린 대담함의 부분으로 보여서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넉넉한 아량을 베풀며 작가의 다음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하는 힘이 된다. 더 호의적으로 보자면, '은미'라는 소시민적 텍스트의 리얼리즘을 확보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해설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쉽게 읽혀내려가는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수한 장치들을 설치해놓은 듯 보인다. '은미'와 '이모',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적 억압기재들의 소극적 표출, 반대로 '아버지',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보수적 남성주의. 그 중간지점에서 자기 자신의 양면성과 대립하고 있는 '은미'의 단짝친구. 그리고 몇 년 전 폭풍처럼 몰아닥쳤던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이모'를 역할모델로 하는 주인공 '은미'의 성장까지. 해석의 여지가 분명한 여러가지의 장치들이 큰 하나의 플롯에 감금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되어지고 있어서 이야기가 풍요롭다.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작은 절망과, 그것과 일정한 양의 희망을 동시에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앞뒤 분간 못하는 어린 나이부터 100세를 앞에 둔 노인까지 어느 누구도 절망에 초연하진 않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그 작은 절망보다는 같은 크기의 희망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이모'가 할머니와 주인공에게 남긴 '달의 뒷면에 새긴 희망'처럼, 독자의 마음에도 희망이 감염되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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