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7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음,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읽은 2차세계대전 전후소설 중 최고였습니다. 감히 평생을 가까이 두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아직은 이웃으로 지내던 어느 날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유대인 꼬마의 성장은 사회의 퇴화와 걸음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독일이 권력과 폭력, 광기에 뒤덮일수록 '프리드리히'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가볍게 읽히는 소설인데, 문학적 상징과 비유가 잘 녹아내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난장이 눈사람- 작품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며, 무기력한 유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후에 '프리드리히'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화자인 '나'의 망치놀이- 집단의 권력이 갖는 광기에 대한 상징이며, 그것이 '프리드리히'라는 개인적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레쉬의 슈나이더 유품 도둑질- 죽은 사람의 물건을 훔침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대인 박해를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이것 말고도 더 풍부한 내용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게 가장 깊이 남게 될 장면은 바로 사람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사회가 폭력적일수록 인간은 더 아름다워지나 봅니다. '아브라함의 가게에서 고집부리며 물건을 사간 노파', '옳은 판결을 해 준 멋진 판사', '프리드리히를 사랑한 헬가'...... 아무래도 이 비극적인 책은 저에게 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로,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모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는 '저녁에'라는 김광섭 시인의 유명한 시의 싯구 일부를 제목으로 차용했습니다. 1969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시절이 언제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 책을 드는 것만으로 우리는 두 세 걸음쯤 뒤로 물러서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또는 그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완전히 유치해져보자는 암묵적 동의가 성립되고 나면, 가슴 먹먹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대학생이 군사정권의 시절에 우연히 만난 여학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이유에선지 그를 멀리합니다. 인연이 없었던 걸까요? 그의 인생의 몇 페이지에 그녀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할만큼 충분히 가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이 없는 시대라, 연락처를 알지 못하면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와 그녀는 몇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상대방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삶이란 그 여자 박은영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립고, 언제나 정체불명이고,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그런 것... ...아닌가?

그에게 그녀 박은영은 청춘의 가장 찬란한 무엇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에게 청춘은 눈을 가린 채 횃불을 들고 있듯 어리석은 시간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엇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청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이이기에, 그의 진실함에 코 끝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청춘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김규환 지음 / 김영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목숨을 걸 각오로 임하라'

이 책의 저자 김규환 명장이 가장 많이 한 말입니다. 어린 동생을 부여잡으며 자살을 실패하고 질긴 목숨을 이어간 어렸을 때부터, 그에겐 늘 흉터처럼 남아있는 말이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어놓으라면 정말 책 한 권 분량이 나올만한 많은 일들을 해낸 사나이, 그러나 단 한 마디로도 요약되어지는 사나이. 그래서 '명장'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명장'이라는 말은 대개 '그 분야의 달인'에 붙여주는 칭호니까요. 저자 김규환은 '목숨을 걸 각오로 삶을 대한 분야'의 명장입니다.

또 하나 이 책에 숨어 있는 감동코드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영웅'입니다.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학비가 없어서 무식할 수밖에 없었던, 온갖 차별과 편견이 난무했던, 피폐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나라의 소시민이었던, 바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정말 '목숨을 걸 각오로' 살지 않으면 살아내기조차 버거웠던 분들, 그들에게 바치는 성공의 엔솔러지입니다.

무식할 정도의 부지런함, 회사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믿음, 거기에 학습법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수험생들에게도 팔려고 하는 출판사의 상술,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해버리는 명장 김규환의 촌티나는 얼굴-나의 아버지의 얼굴-. 그게 이 책을 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의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은 첫 책, 그러나 그 뜨거운 열정 때문에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분에겐 차마 권할 수 없는 책. 그래서 이 책은 제가 두고두고 읽을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껴안아 준다는 것은 두 팔로 감싸서 품에 안다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금이 작가의 책에서는 '서로 껴안아 주는 것'의 향기가 납니다. 내가 너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를 안아주는 것, 그래서 서로 껴안아 주는 것에 대한 평등함과 온기가 느껴집니다.

표지의 두 나무처럼 유진과 유진은, 같은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느끼는, 그러나 또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아이들입니다. 소설은 이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주인공 노릇을 합니다. 한 번은 큰유진이, 그 다음 번은 작은 유진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것 같은 두 아이의 이야기는, 가만히 들어보면 서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심과 배려가 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질투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아이는 아픈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결말까지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소설의 형식조차도 '서로 껴안아 주기'임을 알겠습니다. 큰유진의 이야기를 작은 유진이 껴안아 주고, 작은 유진의 이야기를 큰유진이 껴안아 주고 있다는 걸요. 그렇게 어른들이 주인공일 수 없는 아이들의 사춘기는, 결국 아이들의 힘으로 극복되어지나 봅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보단 훨씬 무게감 있는 분량인 책입니다. 또 그 분량만큼 많은 '장치'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장소설임에도 분명합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껴안아 줄 수 있게, 많은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어린이표 - 웅진 푸른교실 1, 100쇄 기념 양장본 웅진 푸른교실 1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 웅진주니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의 직장에 있기 전에, 1년 정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좋은 선생님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저는 저 몰래 아이들에게 '나쁜 선생님 표'를 아주 많이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동화를 많이 써 주시는 '황선미 선생님'의 작품 하나를 또 보게 되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가 외모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자랑스러운 우리 문학이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평등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면 '나쁜 어린이 표'는 '이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쁜 어린이 표'를 주는 선생님에게 '나쁜 선생님 표'를 주는 건우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데요. 제가 진짜 속이 상했던 건, '그룹화'하기 위한 선생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 건우의 순수성에 대한 훼손입니다. 또 선생님의 그릇된 행동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좋은 의도 또한 아이에겐 큰 부담감이 생길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어떤 '순수'를 훼손하고 있다면,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요? 앞으로는 무엇도 훼손시키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또 다시는 '나쁜 어른 표'를 얻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표가 없어져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