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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단길로 간다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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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세상은 자꾸 나에게 어리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선택의 연속인데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생일 선물로 무얼 받고 싶은지 묻는 지인에게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대답하지 못한 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다 '연령별 갖고 싶은 생일선물'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컴퓨터에 물어보고 있다니... 거기엔 얼토당토 않은 내가 개성없이 연령으로 묶여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저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다 보니 그럼 내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도통 대답할 수 없는 질문뿐입니다. 나조차 모르는 나를 누구에게 물어야 한답니까. 그런 나에게 열 네 살 홍라는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금씨 상단의 대상주 홍라는 고작 열 네 살입니다. 바다에서 만난 풍랑으로 어미를 잃고 혼자 상단을 떠맡게 된 어린 아이. 지금 나이로 환산하자면 중학교 1학년인 셈이지요. 열 네 살이라는 나이는 같은데 우리가 느끼기에 발해국의 열 네 살과 2013년의 열 네 살은 다르기만 합니다. 한 살의 분량은 분명 다르지 않을 터인데 발해국에서 하나의 상단을 책임질 수 있었던 나이가 지금은 왜 철없는 아이로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어미를 잃고 슬픔에 빠져 아비에게 맡겨져야 마땅할 아이 홍라는 상단의 대상주가 되어 상단을 책임지기로 결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홍라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겠지요. 물론 곁에는 그녀를 지켜주는 무사 친샤가 있고 천문을 읽어주는 초보 천문생 월보가 있으며 어찌어찌 이들과 함께 길을 가게 된 쥬신타와 비녕자가 있습니다. 십 대의 아이들 곁에 친구가 있듯이 홍라에게도 친구가 생긴 셈입니다. 그러나 여느 행복한 여행자처럼 그들의 여정이 핑크빛 에피소드로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행이 되어 떠나는 그들에게는 행운도 불운도 그들과 함께 하지요. 오히려 많은 난관이 예고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이란 일부러 문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요.

그러나 여행길에서 그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갈등은 비단 어린 나이인 그들에게만 닥치는 일은 아닐 겝니다. 그것은 이미 어른이라 규정지어진 나 역시 겪고 있는 일이니까요. 어느 누가 친지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을 것이며, 엄청난 사건 앞에서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른들은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이라 어리석은 우리는 상상하게 되지요.-도대체 어른은 몇 살부터일까요? 그래서인지 고집쟁이, 새침떼기 홍라 역시 어른 흉내를 내느라 붙잡고 싶은 친구 손도 외면하고,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척,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은 척 노력합니다. 그래서 외롭지요. 이 이야기는 이런 떼쟁이, 어른 흉내쟁이 홍라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굳이 힘든 교역길을 가겠다는 홍라에게 아버지 아골타가 묻습니다.

 

p109 “굳이 교역길을 가려는 이유는 무엇이냐? 어머니 때문이냐? 상단을 지키고 싶은 거냐?”

홍라는 묵묵히 있었다. 어머니 때문이고 상단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홍라는 어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 알게 되었을까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은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분명하고 선명한 이유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더 큰 역할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린 그런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쁘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귀기울여 들어준다면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깟 나이는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발해국 금씨 상단 대상주 홍라는 열 네 살임에도 어른이고, 나는 서른을 훌쩍 넘었는데도 철없는 나이로만 여겨집니다.

 

혹자는 어른을 더이상 소리내며 울 수 없는 나이라고 하더군요. 슬프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센 척, 수없는 척척척이 모여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홍라는 척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될 것 같아 부럽습니다. 홍라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홍라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어른이 아이에게 주어야 할 것은 시간과 믿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리다고 대신 해 주기보다 어려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다가 자라는 것이라는 믿음, 그것을 느긋하게 지켜봐 줄 시간. 그러다 보면 우리의 아이들이 훌쩍 자라있겠지요? 그래서 오늘 전 여섯 살 짜리 내 딸아이와 식탁에 앉아 야쿠르트를 먹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인생에 대해서 싸움에 대해서 화해에 대해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구요? 천만의 말씀. 고승의 선문답과 같은 우리의 대화로 전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아니 제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린 아이가 어린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읽히는 동화 한 편에 제 생각이 너무 거창했나요? 그러나 이 동화 한 편으로 전 홍라의 비단길이 단순한 교역의 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단길은 도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일 뿐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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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1-24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