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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책을 고를 때 늘 제목과, 표지 디자인과, 내지의 깔끔한 타이포를 최우선으로 삼던 나는
언젠가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타인의 리뷰로 살짝 맛을 본 다음에야, '강추'와 비슷한 타이틀이
있어야만 책을 사고 있다. 그래서일까. 선택은 어지간해서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선택으로 인한 내 선택은 '사고'와 '글', '인간', '사는 것'을 감동으로,
흥분으로, 부끄러움으로, 분노로 만들어버려, 결국 내 학습 분량을 최고로 방대하게 해 주는
고약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홍세화와 진중권이라는 기껏해야 이름 석자들만 간간히 기억하고, 몰라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미천한 호기심 때문에 '산'을 오르는 노고들을 감행했지만, 고작 이제서야(!) 김규항이라는, 그의
표현을 빌려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고,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두번, 세번, 매 페이지마다
가차없이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는 법을 이제야 알았을 뿐, 과연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누구에게도 떳떳함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문제다.
스스로를 소시민이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성공'의 가도를 쫒으며, 높은
빌딩의 꼭대기 그것도 펜트하우스에 있는 삼성이라는 그림을 부러워하며, 그 삼성을 움직이는
이건희라는 인물을 대단한 지식인으로 인정하며, 처세술, 경제, 경영, 마케팅 등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몸 값을 올려 연봉을 높이고, 그래서 결국 돈을 손에 쥐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분명 이 책은 사실 껄끄러운 책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은 분명 내가 가지고 있고 품고 있던 많은 것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나.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90년대 대학 생활에서 그저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과 사회주의에 대해서 자뭇 진지한
학습을 진행하였고, 우러르던 한 선배의 목소리와 그의 행적을 동경했었다. 물론, 내가 아닌
숱한 무리들이 그러하였고, 우리는 늘 한배를 탄 '동지'라며 술을 마시며 대학의 사치스러움과
주어진 자유에 서글퍼했다. 수 년이 지나 같은 동아리의 후배들을 보면서, 선배들, 동기들과
나는 이야기한다. "그때 우리는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이래?"
- "그렇다면, 너희들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 - p. 48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동경하던 그 선배는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만 살아남은 것일까. '그'만 그가 그토록 '투쟁'을 부르짖고, 수배와
도피를 일삼던, 그렇게 절실하게 투쟁을 하던 '그'만 세상을 일깨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현재 후배에게 혀차는 소리를 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부끄러웠다.
둘.
안다는 것은 행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바다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우리는 행하지 않는 善을 말한다.
얼마전, 무료로 기독교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형과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를 기독교인'화'하려는 형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사실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나 개인에게 있어 기독교, 예수는 사실 철지난 믿음이었다. 주변 지인들과 조금 떨어진 교인들이
보여주는 기독교와 교회의 행태는 내게 더이상 믿음의 가치를 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없는,
그저 '겉과 속'이 다른 무리들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와 형이 대화를 나눈지 십분이
지났을까. 너댓 무리의 교복입은 중학교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들어왔다.
바로 우리 옆 테이블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앉자마자 그네들은 라이터를 테이블에 던지고, 담배를 함께 피우기 시작했다.
"야야! 담배 꺼. 니들 중학생 아냐? 여기 이렇게 어른이 있는데 담배를 펴도 되는거야?"
부끄러웠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던게 아니었다.
당시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내 일행이라는게 부끄러웠던 게다.
처절히도 비겁했으며, 내가 알고 있는 善을 행하지 못하고, 그 善을 행한 사람을 부끄러워했다.
우리가 초중고, 대학교까지 16년 넘게 배워온 '인간'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도리와
윤리, 도덕, 용기, 이런 '좋은' 의미의 단어들은 도대체 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가.
부끄러워했음을 나는 한동안 지독하게도 부끄러워하고 있다.
셋.
왜 일부러, 꼭, 사서 무대위에서 20분 '쇼'와 같은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언젠가 그를 축하해 주러 갔었기 때문에 '빚' 갚으러 참석한 듯한 무리들의 냉냉한 박수를
받으며, 왜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 무리들 속에서 쇼를 해야하는 것인가.
서른 명이 안되도, 고작 열명 남짓 모여있어도, 하루 내내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이들이 있어
내가 행복한, 그녀가 행복한 그런 결혼식을 하면 왜 안되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누르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고, 하루 하루를 경쟁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무엇하러 아이를 낳고, 고생을 하며, 가사분담, 고부갈등, 집안경제, 양육문제 등등, 정말
짧기만한 우리 인생을 왜 아이를 낳아 재미없이 살려고 하는 것일까. 어차피 아이를 낳아도 키우는데
힘들고, 남은 일생을 아이를 위해 출근하고, 퇴근하고 우리네 부모님처럼 왜 버려야 할까...
그가 키우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가 그런 나를 또 부끄럽게 만든다.
결국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아이 기르는 것 자체만을 두려워하며 피하려 하는 것이었다.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사람'으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상하, 좌우 선 안에서 지금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느쪽이든 선택해야만 했을 4,50년대와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더 70년대의 역사속에서
나는 그가 그려봤을만한 선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부끄러웠다.
상황과, 환경과, 주변 인물들과, 내 삶속에서 나의 선택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길고도 오랜
고민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가 알고 있는, 그가 고작해야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많은 그의 글들은 자꾸만 오히려 일부러 우리를 불편함속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 불편함이 자꾸만 즐겁게 만들 것 같다는 점이다.
- "좋은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 p.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