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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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강의를 듣고 있는 자리는 상당히 거북하다. 지금 들었던, 가슴이 뛰게 만드는 이야기를
서둘러 나의 삶에 적용시켜보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극대화된 순간이기 때문에 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 기회를 빼앗기게 될 것만 같기 때문에 조바심이 나곤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을 만나는 순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각 섹션 마다의 '떨림'을 밑줄긋기 해가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그 쏠쏠한 재미는
분명히 책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의 즐거움의 몫이므로 남겨두고자 한다.
(페르마의 정리가 막 떠오르는..^^;)

'인터뷰특강'(04년 부터 총 2회를 맞은게 아닌가 한다.)은 한겨레21의 오프라인 강의 중,
'왼쪽' 색깔이 대략 느껴지는 인사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 대한 강의와 질의응답을
책으로 엮은 일종의 '우리 사회 바로 알기'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비야, 이윤기, 홍세화, 박노자, 한홍구, 오귀한. 이 독특한 6인의 독특한 인생의
이름은 좌, 우 라는 양쪽 화살표를 나누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번 쯤을 들어봤을 만한
그런 이름들이라 여긴다. '매니아'적인 취미나 '앎'의 깊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미 나 같은
어정쩡한 '중도소심좌파'도 알고 있는 이름들이니 말이다.

어쨌든,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좋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였지만, 특히 근간 인기를 얻고 있는
한비아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잊고 있는 혹은 찾지 못한 길고 긴 꿈에 대해 또 한번 매질을 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을, 기업을, 조직을, 가정을 그리고, 나를 꼭꼭 되짚어 보고 절대 가벼워지지 말라고
당부해주는 홍세화님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망망대해에서 '길'을 잘 찾지 못하고 있는 쓸쓸한 청년에게
호된 자극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무언가 계획을 해야하는데, 준비를 해야하는데 또는 무겁지 않을만큼의 지적인 호기심을 살살
간지럽힐만한 '꺼리'를 찾고 계신 분들에게, '좌, 우'를 가르고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가르는 이유를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글과 생각을 찾아가는 좋은 출발이 되리라고 여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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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 수학소설 골드바흐의 추측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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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고 나면, 수학자의 삶과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생을 바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동경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하나의 미스테리와 같은 구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때문에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제목 너무 길다..)는 부제(사실은 부제가 이 책의
타이틀이었으나, 쉽게 호기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호객행위'를 위해서 제목을
변경한 듯 싶다.)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다른 이름을 달고 있다.

일생의 목표를 오직 단 하나만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간다... 속된 말로 굳은 심지가 단단히 박힌 사람이다.
포기해야 할 시점을 모르는 것인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지가 강해서인지, 책속의 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학적인 환희와 어떤 희열이 있나보다. 솔직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자꾸 비교가 되는 건, 정수론에 많은 업적을 남긴 페르마와 페르마 이후의 많은 수학자들 그리고, 결국
1994년 '악명높은' 그 정리를 앤드류 와일즈 교수가 증명해 내는 과정까지를 생생하고, 흥미롭고, 긴장감
있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골드바흐의 추측은 결국 증명해 내지 못한(증명한 듯, 안한 듯 무언가
꺼름직함만 남긴) 페트로스의 실패 때문일까. 분명 무언가 서운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쉽게 접해볼 수 없는 수학자의 삶을, 한가지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풀어가려는 한 인간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은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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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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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늘 제목과, 표지 디자인과, 내지의 깔끔한 타이포를 최우선으로 삼던 나는
언젠가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타인의 리뷰로 살짝 맛을 본 다음에야, '강추'와 비슷한 타이틀이
있어야만 책을 사고 있다.  그래서일까. 선택은 어지간해서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선택으로 인한 내 선택은 '사고'와 '글', '인간', '사는 것'을 감동으로,
흥분으로, 부끄러움으로, 분노로 만들어버려, 결국 내 학습 분량을 최고로 방대하게 해 주는
고약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홍세화와 진중권이라는 기껏해야 이름 석자들만 간간히 기억하고, 몰라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미천한 호기심 때문에 '산'을 오르는 노고들을 감행했지만, 고작 이제서야(!) 김규항이라는, 그의
표현을 빌려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고,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두번, 세번, 매 페이지마다
가차없이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는 법을 이제야 알았을 뿐, 과연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누구에게도 떳떳함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문제다.

스스로를 소시민이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성공'의 가도를 쫒으며, 높은
빌딩의 꼭대기 그것도 펜트하우스에 있는 삼성이라는 그림을 부러워하며, 그 삼성을 움직이는
이건희라는 인물을 대단한 지식인으로 인정하며, 처세술, 경제, 경영, 마케팅 등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몸 값을 올려 연봉을 높이고, 그래서 결국 돈을 손에 쥐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분명 이 책은 사실 껄끄러운 책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은 분명 내가 가지고 있고 품고 있던 많은 것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나.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90년대 대학 생활에서 그저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과 사회주의에 대해서 자뭇 진지한
학습을 진행하였고, 우러르던 한 선배의 목소리와 그의 행적을 동경했었다. 물론, 내가 아닌
숱한 무리들이 그러하였고, 우리는 늘 한배를 탄 '동지'라며 술을 마시며 대학의 사치스러움과
주어진 자유에 서글퍼했다.  수 년이 지나 같은 동아리의 후배들을 보면서, 선배들, 동기들과
나는 이야기한다. "그때 우리는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이래?"
- "그렇다면, 너희들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 - p. 48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동경하던 그 선배는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만 살아남은 것일까. '그'만 그가 그토록 '투쟁'을 부르짖고, 수배와
도피를 일삼던, 그렇게 절실하게 투쟁을 하던 '그'만 세상을 일깨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현재 후배에게 혀차는 소리를 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부끄러웠다.

둘.
안다는 것은 행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바다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우리는 행하지 않는 善을 말한다.

얼마전, 무료로 기독교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형과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를 기독교인'화'하려는 형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사실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나 개인에게 있어 기독교, 예수는 사실 철지난 믿음이었다. 주변 지인들과 조금 떨어진 교인들이
보여주는 기독교와 교회의 행태는 내게 더이상 믿음의 가치를 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없는,
그저 '겉과 속'이 다른 무리들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와 형이 대화를 나눈지 십분이
지났을까. 너댓 무리의 교복입은 중학교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들어왔다.
바로 우리 옆 테이블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앉자마자 그네들은 라이터를 테이블에 던지고, 담배를 함께 피우기 시작했다.
"야야! 담배 꺼. 니들 중학생 아냐? 여기 이렇게 어른이 있는데 담배를 펴도 되는거야?"
부끄러웠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던게 아니었다.
당시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내 일행이라는게 부끄러웠던 게다.
처절히도 비겁했으며, 내가 알고 있는 善을 행하지 못하고, 그 善을 행한 사람을 부끄러워했다.
우리가 초중고, 대학교까지 16년 넘게 배워온 '인간'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도리와
윤리, 도덕, 용기, 이런 '좋은' 의미의 단어들은 도대체 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가.
부끄러워했음을 나는 한동안 지독하게도 부끄러워하고 있다.

셋.
왜 일부러, 꼭, 사서 무대위에서 20분 '쇼'와 같은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언젠가 그를 축하해 주러 갔었기 때문에 '빚' 갚으러 참석한 듯한 무리들의 냉냉한 박수를
받으며, 왜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 무리들 속에서 쇼를 해야하는 것인가.
서른 명이 안되도, 고작 열명 남짓 모여있어도, 하루 내내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이들이 있어
내가 행복한, 그녀가 행복한 그런 결혼식을 하면 왜 안되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누르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고, 하루 하루를 경쟁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무엇하러 아이를 낳고, 고생을 하며, 가사분담, 고부갈등, 집안경제, 양육문제 등등, 정말
짧기만한 우리 인생을 왜 아이를 낳아 재미없이 살려고 하는 것일까. 어차피 아이를 낳아도 키우는데
힘들고, 남은 일생을 아이를 위해 출근하고, 퇴근하고 우리네 부모님처럼 왜 버려야 할까...
그가 키우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가 그런 나를 또 부끄럽게 만든다.
결국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아이 기르는 것 자체만을 두려워하며 피하려 하는 것이었다.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사람'으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상하, 좌우 선 안에서 지금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느쪽이든 선택해야만 했을 4,50년대와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더 70년대의 역사속에서
나는 그가 그려봤을만한 선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부끄러웠다.
상황과, 환경과, 주변 인물들과, 내 삶속에서 나의 선택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길고도 오랜
고민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가 알고 있는, 그가 고작해야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많은 그의 글들은 자꾸만 오히려 일부러 우리를 불편함속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 불편함이 자꾸만 즐겁게 만들 것 같다는 점이다.

- "좋은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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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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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문학생도들에게 수학과 과학은 참 따라가기 힘든 분야 중에 하나이다. 애초에 문과를 선택했던 이유도 수학을 못해서였고, 물리, 화학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법칙과 화학수식 등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과연 시간여행은 가능한 것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블랙홀이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외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등등의 미스터리와 같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주제들은 생각보다 과학 분야에 많이 치중되어있는 것 같다.

인터넷 서점에서 산지 거의 일년이 되어가도록 진도를 못나가고 그저 서문과 몇 페이지 정도만 읽어버리고 말았던 . 어떤 힘에 이끌려 다시 이 책을 잡았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꽤나 멋드러진(?)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새롭고, 색다른 힘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잡은 유치한 욕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거의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고, 책을 덮는 순간, 달콤한 향기를 맡은 나비처럼 과학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어쩌면 그저 궁금한 상태로 놓아 두었을 많은 그러한 지식들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근의 곱과 같다’ 정말 난제(難題)이다. 만약 내가 정말 이 이론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여러 전문 서적을 뒤졌다면 한 시간도 안되어서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공식 전체를 설명해주는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설명을 피하고, 오히려 각각의 인자들에 대한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공식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E, M, C, ² 을 만들어낸 인물들이 조연이 되어서 각각의 인자들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과학적 상식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때에 정말 딱딱하게 배웠던 이론들을 너무나도 즐겁고, 흥미롭게 다루고 있으며,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으나, 현대 물리학, 나아가 양자역학까지 이르는 대수학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E=mc²의 탄생, 유년, 성장기로 나뉘어 이 공식에 대한 역사, 적용 범위 및 관련 대상들에 관하여도 상세히 묘사해 주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공식의 인자에 대하여 뒤 샤틀레,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 세실리아 페인, 하이젠베르크 등과 같은 여러 실존 과학자들의 살아있는 과학이야기도 전개된다.

과학은 경이로운 학문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지적 호기심은 이제 아주 머나먼 우주까지 펼쳐지고 있다. 물론, 그 수 많은 이론들과 학설들이 정설로 인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과 더불어 얼마전 스필버그가 제작한 TAKEN이라는 SF 시리즈에서처럼, 어쩌면 우리의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서 명쾌한 해답을 줄런지도 모른다. 비록 내 세대에 알 수는 없지만, 짧지 않은 우리의 생이 다할 때까지 늘 궁금해하고 그걸 풀려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인생에 대한, 우주에 대한 즐거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참 좋은 책인데도 많이 읽혀지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좋은 책은 서둘러 절판되기를 바란다는 떠도는 말도 있지만, 좋은 책이기에 많은 분들이 과학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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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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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쓰고나니 너무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한게 아닌가싶다.
거의 한달 꼬박 태백산맥의 염상진과 김범우와 하대치 들과 함께 보내고
마지막 10권을 덮는 마음이 쓸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공 표어를 만들고, 반공 포스터에 반공 서적을 읽으며 자라왔던 유년기를 그려보면서,
아픔의 근현대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민족'이라는 말을 되뇌여본다.
다소 편파적이며 편향적이라는 리뷰도 있지만, 분명 태백산맥은 그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 세대에게 놓칠 수 없는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

도서관 구석 서고에서 한강을 읽으며 안타까워하고, 내가 그자리에 있었더라면
과연 나는 당당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꼬리를 물었던 것 처럼,
내가 공산주의자가 되었을까, 그저 기회를 잘 타는 인간이 되었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여전히 무지한 백성으로만 남았을까 하는 물음이 마찬가지로 생겨나게 되었다.

나를 알려면 민족,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거창한 수식어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부모님의 부모님이 겪었던 가족사가 될 수도 있는
실로 한 맺힌 이야기들. 아주 나중에 내 아들에게 언젠가 쓸쓸하게 들려줘야 할 아픈 이야기들.
끊어져서는 안될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몇 십년 후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게 될지 모르는
'패배자들'의 이야기들. 역사를 담은 소설에서 그들의, 우리의 이야기를 빼곡히 기억해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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