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한강 세트 - 전10권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유난히 ‘국사’와 ‘세계사’를 싫어했다. 당연히 시험 점수도 좋게 나올리가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과거 선생님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너무도 재미가 없게 들렸었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선생님을 통해 다 받는게 아니라, 심연으로 들어가 스스로 그 내막을 풀어나가는 자발적인 흥미가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그런 흥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 덕분으로 이미 남들이 다 알고 있고, 당연히 한 두 번쯤은 고민해 봤을 내용들을 나이 먹고, 이제야 허덕이듯 뒤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강>을 읽는 동안 참으로 많이도 웃었다.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고, 가슴을 쓸어 내렸던 적이 훨씬 많았다. ‘감동’이라는 두 글자로만 그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아득한 중,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4.19니 5.16이니 하던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직접 겪으셨던 그 숱한 이야기들. 비단 정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경제의 밑바탕을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셨다는 숭고한 사실. <한강>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듯이 그렇게 잔인하고, 눈물겹고, 설움에 복받치도록 소근거려 주었다. 어째서 나는 우리나라가 이토록 슬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국사’책에 쓰여진 단 몇 줄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닌, 살아 숨쉬는 아픔들에 무지했단 말인가? 후반부에 80년대 초반의, 즉 내가 어렸을 때 들었거나 겪었던 반공이나, 흑백TV, 사우디아라비아, 대학 데모들이 내 유년기에 일어났었음에도 말이다. 4.19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장면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목청 돋우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대학생처럼 비장했었는지. 그러면서도, 제 3자의 위치에서, 나라면 그랬을까. 유일표처럼 내가 가진 꿈이나, 당장 살아가야 할 이유들을 다 버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며 가슴이 터지도록 그 말들을 외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유일민처럼 어쩔 수 없는 자신과 가족들의 상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위장만 맴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렇게 너무 가벼운 소사들에만 목을 메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서른을 바라보면서 개인의 안위가 아닌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등의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철 모를 때 깊은 고민 없이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가 ‘사상 없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부끄러움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눈물과 피를 흘리며 부르던 그 노래를 나는 악보에 적혀있는 하나 하나의 음과 선 이외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 때에는 그저 노래가 좋았을 뿐이라는 자기 위안만 등에 업고서 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의 정권 틈에서, 아니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정치권의 협잡꾼들의 이야기들 읽으면서-물론 어느 정도 사료를 바탕으로 한 허구일테지만-또 엉망을 넘어 개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의원나리님들의 작금의 행태를 읽고, 보고, 느끼며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4.19로 금방 이어질 것만 같았던 민주화는 너무나 오랜 기간을 거치고 헤메이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비방과 흑색선전들. 잠잠하면 터지는, 우리네 부모님들을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억대의 미친 짓들은 꾸준히 터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래도 그래도 지금은 쥐도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그런 일들은 덜 해졌다는 점. (아닐 수도….) 어렸을 적에 통행금지가 기억나고, 학교마다 반공포스터, 반공글짓기, 반공독서회 등등이 기억나고, 선거 때면 사람들손에 들었던 수건이며 비누며 돈 봉투가 기억난다. 거대 권력의 통제 속에서 그게 통제인지 모르며 자랐던 무지의 세월이 기억이 난다. 왜 그래야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몰랐으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던 때. 부모님들의 세대가 겪었던 아픔을 들춰보려 하지 않고, 현재의 풍요로움이 당연한 행복으로만 알았던.

농민으로 살다, 서울로 상경해 평생을 반 거지로 살았던 천두만, 봉재공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폐병으로 죽은 여공, 버스 여 차장, 독일로 떠난 탄광공들, 여간호사, 사우디로 날아간 근로자들, 월남으로 달려간 젊은 청년들, 온몸에 기름을 붇고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던 전태일, 그리고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묵묵히 땅을 지키며 살던 수 많은 농민들. 그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2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을 만드는데 공헌한 분들이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GNP 1000불도 안되던 우리나라를 이제 1만불 시대로 만드는데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먼지를 마시고, 깊은 탄광에서 탄가루를 마시고, 먼 타국에서 24시간 365일을 뙤약볕을 마시고, 남의 나라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우리는 그렇게 그들의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또다시 깨닫게 해주던 구절들.

<한강>은 ‘역사’책이다. 학창시절 암기를 위해 두 세줄 외웠던 구절이 아니라, 한이 담겨있고 슬픔이 담겨있고, 아픔이 새겨진 우리의 살아 숨쉬는 역사책이다. 지하철에서, 독서실에서, 도서관에서, 집에서 이토록 하나의 책에 빠져 지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강>은 역사에 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주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내 구석 어딘가에 슬픔을 불러주었다. 읽는 내내, 하염없이 작은 내 존재와 내 일상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한편으로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힘을 주었다. 써 내려가고 싶은 여흥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하찮은 내 글귀가 오히려 <한강>이라는 작품에 누가될까 더는 못 쓸 것 같다. 읽기만 했던 나도 마지막 권을 덮으며 이토록 허전한데, 작가는 어떤 허망함과 쓸쓸함을 안고 살고 있을까. 너무 아픈 과거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