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자크 주아나 지음, 서홍관 옮김 / 아침이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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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이 제목으로 되어있다고 해서 이 책이 인물중심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면 빨리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뿐만 아니라 그 후계자들, 히포크라테스 학파 전체와 그들이 저술한 책까지도 모두 서술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서술의 중심도 학파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의술에 대한 서술들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 사료, 시대 상황과의 영향 등 인문학적, 철학적 내용에 두고 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일반인의 관점에서 몇 가지 잘못된 지식의 수정이 필요하다. <선서>의 앞부분은 히포크라테스가문에 들어와 의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가문의 의술을 이어가기 위해 지켜야 할 내용이 들어있다. 선서가 가문 내부의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새로 제자를 받아들일 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반부에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외부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할 의사의 윤리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다. <히포크라테스 총서>는 히포크라테스가 쓴 내용뿐만 아니라 후계자들이 쓴 글들과의 총합을 말한다. 문체나 사고방식이 히포크라테스의 것으로 보기 힘든 저술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느 것이 '진짜 히포크라테스 저술'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소금이나 커피와 같은 어떤 식품이 어떤 경우에 몸에 좋으냐 안 좋으냐는 논쟁들은 가끔 언론을 통해 전달되어 혼란을 주곤 한다. 그와 같은 진단의 과정들은 2,500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들이 <섭생>으로 환자의 건강을 위해 고민했던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체질의 분석, 약물, 소작(불로 지지는 수술)등 치료기술의 많은 부분이 변했음에도 서양 의학의 뿌리로 히포크라테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질병과 환자, 그리고 의사의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지 않나 싶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살았던 페리클레스 시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적 풍토는 동시대를 살았던 히포크라테스의 의술에도 나타난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 간질을 '신성한 병' 등으로 보는 종교적 태도로부터 벗어난 이성적인 관점, 당시에 당연시 되었던 대중 앞의 치료과정에서 근거 없이 내리는 진단과 치료에 대한 비판 등으로 과학적인 의술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또한,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한다'는 넓은 의미의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시민과 노예,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 다양한 임상사례를 통해 모든 인간의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의사의 지위를 이용해 부와 권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능력을 환자의 질병치료와 고통을 줄이기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의사의 윤리는 <총서>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두께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의학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인문교양 서에 가깝다. 2,50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 의술의 기본토대를 상세히 다루면서 당시의 그리스의 문화적· 사회적 요소들과 함께 묶어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사료와 구성의 탄탄함,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과 분석은 책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의사이자 시인인 번역자의 번역은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듬어진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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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속으로 - 성장 신화는 끝났다
홍성국 지음 / 이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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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의 여파가 상당히 지속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현금으로만 보유하고 있어 설비투자는 사상최저를 밑돌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몰린 자금은 실물경제에 투자되지 않고 300조원의 부동자금으로 남아있다. 투기를 방지하면서 경기를 부양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디플레이션 속으로』는 한층 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전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진행되고 있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발생근거로 과학 기술의 발달, 이데올로기 시대의 마감, 세계화(Globalization), 자원의 고갈과 환경문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을 들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물 과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반도체•자동차•컴퓨터 등의 생산속도는 현저히 증가됨에 비해 새로운 수요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과잉생산물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선진국들은 ‘세계화’를 앞세워 개도국의 시장개방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성장하는 시장으로서 냉전시대의 공산권 국가와 저개발국의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중국의 예에서도 보듯이 신흥공업국과 기술선진국간의 기술격차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수요창출이 아니라 공급과잉의 한 원인으로 되고 있다. 생산물 과잉은 공급단가를 낮추어야 하지만 석유등을 비롯한 자원고갈과 새로운 자원소비국의 등장으로 물가인상이 수반되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는 가속화 될 전망이다. 생산인구의 감소와 국가의 구성원의 고령화에 따른 소비 부진도 한몫을 하리라는 전망이다.

디플레이션에 대해 마르크스는 “전쟁을 통해 생산력을 파괴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거나, 기존의 시장을 철저히 착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몇 년의 전쟁을 통해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한 미국은 실업률이 줄지 않고 있다. 생산력이 고도화 됨에 따라 기계 시설이 인력을 상당부분 대체하였고, 고급기술 중심의 산업만이 성장되었기 때문이다. 실업 문제 외에도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지 않는 것은 기축동화로서 달러화의 위력 때문이다. 만약, 유러화가 새로운 기축통화로서 성장하여 달러화의 위력을 감소시키거나 중국•한국•일본•EU등의 달러보유국들이 미국의 국채투자를 동시에 회수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에서 출발된 대공황이 올 수도 있다.

왠지 으쓱한 이런 내용들이 19세기 후반 마르크스가 쓴『자본론』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자생적 사회주의가 발생할 수 있지만 가서는 안될 길로 못박고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을 피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고 한다. 다만, 구성원들이 자본주의의 끝없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국가나 개인들의 협력적 관계를 제안하고 있다. 좀 이해하기 힘든 결론이다. 명쾌한 결론을 얻을려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뛰어난 경제학 천재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요소들 중에는 IT외에도 나노기술 과 BT(Biology Techlogy)가 새로운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해줄지, 생산물 과잉을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해소하게 될지. 선진국이 후발 공업국가의 기술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할지,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 개발될지 등 아직 많은 변수들이 남아있다. 이 책의 완결성에는 의구심이 있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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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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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과 1995년의 세계 100대 기업을 조사해 보면, 3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은 10~20%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야 애초부터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오랜 기간동안 생존하면서 성장하는 기업들의 내명에는 그럴만한 성공요소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기업의 총합만한 규모를 가진 국가경영의 노하우를 배워 기업의 성공요소를 찾아보기에 좋은 텍스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세 가지 리더십의 키워드를 추출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즉생死卽生의 리더십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광해군이 과거시험장에서 책문策問을 냈다.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입니다.” 36살의 젊은 선비 임숙영이 직격탄을 날렸다. 광해군의 진노로 임숙영은 삭과削科의 위기에 처한다.

목숨이 위태로울지 알면서도,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 임숙영과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임진왜란 등으로 크게 쇄약해진 조선이 그 후로도 300년을 더 지속할 수 있었을까? 사즉생을 개인의 인성으로 본다면 좁은 시각일 것이다. 시대와 시스템의 토대가 있었음을 임숙영 외에도 많은 선비들이 내놓은 대책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약, CEO인 임금이 시대적인 위기의식을 공감하지 못하고, 발칙한 발언과 행동을 포용할 체계가 없었다면 임숙영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재 활용의 리더십

많은 대책의 내용들에서는 사람을 모든 일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간곡히 간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왕은 인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ꡔ책문ꡕ의 선비들이 공통으로 간언하는 것은 인재 스스로가 등용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즉, 인재들이 국가와 백성을 위해 죽도록 일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덕과 지혜를 고루 갖춘 왕의 몫일뿐이다.


수평적 리더십

‘책문’이라는 과거제도를 통해 젊은 엘리트들에게 국가경영의 대책을 구하는 것은 수평적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GE의 잭 웰치를 비롯한 많은 성공한 경영인들이 경직된 기존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수렴 창구와 조직 전체의 통합을 도모할 유력한 수단의 하나로 수평적 리더십을 활용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선의 리더십을 현재적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이러한 모습들이 아닐까. 사원 선발과정에서 회사와 관련된 주제를 놓고 대책을 내놓게 하여 신선한 아이디어와 인재선발의 기준으로 활용한다. 또한, 해고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옳다는 믿음으로 발언하고 실행하는 직원과 부서를 장려하고 기업의 경영층이 그것을 인용할 수 있는 언로를 충분히 보장하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명령 전달 및 보고체계를 흔들 일은 아니지만, 지위와 역할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기회를 만들어 본다면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중요한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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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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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지만, 초보 아빠 딱지를 아직 못 벗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직 아이와 서투른 대화조차도 못하는 것으로 봐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동화책이나 청소년 소설이 그런 나에게 도움을 많이 준다. ~! 나도 어렸을 때는 이랬었지!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애들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많지 않은 청소년 소설 중에『유진과 유진』은 함께 읽고 대화하기 좋은 책이다.

 

『유진과 유진』은 동명이인인 두 아이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다가 유치원 원장한테 당한 성추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 두 유진은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겪었지만, 다른 가정환경에서 8년 여를 떨어져 있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다시 만난다. 큰 유진작은 유진으로 구별되는 두 아이의 내면에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를 통해 아프지만 나름대로 치유되고 있는 모습과 때밀이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강하게 문지르고 잊어버려야 돼!라며 아이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더러운 무언가를 지워내려는 엄마를 통해 기억상실과 잠재된 공포의 모습으로 담겨있다.

 

큰 유진과의 만남으로 작은 유진의 기억의 실타래는 풀려가며, 성추행의 고통보다 더 큰 소외감 속에서 담배와 춤을 통해 주어진 삶의 질서로부터 일탈을 시도하게 한다. 한편 좋아하는 남자친구의 엄마가 던지는 그런 애라는 편견과 절교 선언은,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오는 또 다른 가해가 되어 큰 유진의 상처를 헤집고 덧나게 하는 고통을 가져온다. 성격과 학교 성적 등의 차이를 가진 두 유진은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그들만의 고통의 공통분모를 통해 화해하고 친밀한 유대가 형성된다. 아이들의 동반가출과 그로 인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한 부모들의 반성을 통해 부모와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화해를 모색한다.

 

작가는 성폭행과 성추행 사건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분해하여 두 아이와 그들의 부모, 주위 환경의 문제로 전환하여 소설을 풀어내고 있다. 동명이인을 주인공으로 한 구성이 말해주듯이, 작가는 동일한 경험과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아이에게 주변이 어떻게 반응하고 풀어가느냐에 따라, 그 상처의 깊이와 고통의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엄마를 비롯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고 대화하기에 좋은 징검다리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피 엔딩이 예정된 결말과 어디선가 봤음직한 인물 설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 이금이만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탄탄한 구성,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은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의 따뜻한 감성은, 부모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을 자각된 작가의 언어를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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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09-0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룬 소설인 것 같네요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자를 먹으며 낮은산 어린이 7
이오덕 지음, 신가영 그림 / 낮은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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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를 읽다 보면 감자에 대한 감상이 절로 떠오릅니다.

감자는 구황식물이라, 흉년 때에는 배고픈 우리 선조들에게 생명을 살려준 고마운 것이라는 얘기도 생각이 납니다. 어머님의 사랑도 볼 수 있어요. 밥솥에 묻어둔 감자 한 알을 아이 손에 쥐어주며 바라보는 어머님 얼굴의 미소를 보세요. 감자는 아이들의 만남입니다. 마땅한 간식거리 없는 옛 시골에서 감자를 모아 나눠먹는 시커매진 아이들의 얼굴의 밝은 웃음도 떠오릅니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말씀이나 올바른 국어사용에 대한 꾸짖음을 몇 번 맛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주셨네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감자일까요? 감자는 과거 어려운 시절의 가난한 삶의 흔적일 수도 있는데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 애기를 하면서 고생한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 얘기들 중에서 단골메뉴의 하나로 나왔음직한 얘기라 아이들이 싫어하는 주제일 수도 있는데요.

선생님은 연세가 드셨어도 감자를 즐겨먹고, 감자를 먹는 산골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살아서는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살고 싶었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감자를 좋아하는 하느님 옆에서 감자를 먹고 싶다고 하시네요. 부족한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에게 감자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뒤에 붙인 얘기로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고만 하셨지만, 사실은 언제나 아이들과 더불어 웃고 싶었던 할아버지 이오덕 선생님의 마음인 것 같아요. 생활환경이 바뀌었다지만, 과거에 살았던 할아버지 이오덕 선생님과 요즘의 아이들이 서로 웃으며 감자를 까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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