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쁜 날 낮은산 어린이 11
공지희 지음, 윤정주 그림 / 낮은산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영모가 사라졌다]의 작가 공지희가 새로 쓴 이 책은 외롭게 버려진 듯 살아가는 준서가 특별히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하고 싶은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자신을 거지라 놀리고 새로 맞은 짝은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바보라고 하며 둘이 잘 만났다고 비아양대지만, 준서는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도 않고 냄새난다고 구박도 안하는 새 짝이 너무 예쁘고 좋다.

집을 떠나버린 엄마, 매일 술만 드시는 아빠, 그래서 급식비도 제대로 내기 힘들고 옷이나 신발등도 낡고 헤어지고, 누가 돈을 잃어버리면 도둑으로 오해받는 준서는 항상 주늑들어있다. 

그럼에도 준서는 나름의 기쁨을 찾는 아이다. 친동생을 만나서 기쁘고, 친구들과 축구놀이를 해서 기쁘고, 고양이를 집에 대리고 와서 기쁘고...

그렇게 기쁜날이지만, 엄마가 동생을 두고 영영 안돌아올 것 처럼 가버리고, 아빠는 준서와 동생을 키우기 싫다고 나가버려 슬픈이 밀려오려 한다. 준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울어서는 안 된다. 오늘은 기쁜 날인데, 내 동생 은지랑 다시 함께 살게 된 날인데, 꿈속에서도 기다려 왔던 날인데."

앞뒤가 꽉 막힌듯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준서처럼 우리는 슬픔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그 답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준서와 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들의 아픔과 그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찾으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장정 - 전2권 세상을 뒤흔든 368일
왕쑤 지음, 송춘남 옮김, 선야오이 그림, 웨이웨 이 원작 / 보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사회주의 중국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인 오늘날의 중국을 바라보면서 <대장정>을 읽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텍스트로 꽉차인 책인 아니라 커다란 흑백삽화와 짧은 글로 만들어진 책이라니.. 그런데, 처음 펼쳐읽을때는 몇 쪽 만이라도 읽어보자하는 생각으로 펼쳤는데, 막상 읽다보니 다 읽지 않고서는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영화처럼 펼쳐진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의 발자취
책을 펼쳐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대장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동안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같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모습과 대장정 시기 중요 사건들을 생생하게 펼쳐보여 주고 있다.

대장정 초기 홍군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 버린 처참한 '샹강 전투', 권력에서 물러나 있던 마오쩌둥이 극적으로 권력을 잡게 되는 '쭌이 회의', 대장정 시기 홍군의 가장 대담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루딩교 전투' ,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늪에 빠져 죽어 갔던 죽음의 땅 '쑹판 대초지'의 모습은 홍군과 함께 행군을 하는 것처럼 실감나게 다가온다.

'삼국지'보다 재미있다
1년이 갓 넘는 시기를 다루기는 하였지만, 책 속의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희망과 절망,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대장정을 이끈 공산당 지도부만을 중심으로 놓치않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대장정 속의 인물들에 대해 하나 하나이 표정을 실감나게 살렸다. 세밀하면서도 강한 느끼을 주는 그림들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재현시켜 준다.

한편, 흑백의 단조로운 색이 주는 거친 느낌은 대장정의 고난과 힘든 여정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 그것이 대장정이다
굶어 죽으면서도 양민들의 양식을 허투로 빼앗지 않은 중국 홍군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비록 그것이 공산당이 권력화 되기 전의 모습일 지도 모르고, '사회주의'중국이 자국의 역사를 포장하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일지라도 자기 이익에 급급한 현대인에게는 사람이 결국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대장정에서 강조했던 '없는 자의 친구', 죽음도 가져가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다시 족쇄가 되어 '가장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일지 모를 오늘의 중국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도 중국의 고대사인 삼국지보다 중국 근대사의 대장정은 오늘의 중국을 이해할 중요한 역사텍스트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중국 근대사가 외부의 시각으로 씌였진 것에 반하여, 이 책은 중국 내부의 시선에서 바라본 중국 근대사라는 면에서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다른 하나의 지랫대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 - 테레진 수용소 아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 1942~1944
프란타 바스 지음, 이혜리 옮김 / 다빈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 막상 닥치기 전에 더 크게 느껴진다. 죽음은 정해진 일이라 생각하며 옆에서 누가 죽어가고, 그다음쯤에 내가 죽어야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저항, 순응, 정신적 장애, 그리고 신에 대한 갈구 등을 흔히 생각할 수 있다. 이 책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에 담긴 내용은 위에 열거한 그 무엇도 아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게토가 아닌 공간에서,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아이들다운 그림으로 주변의 일상을 아이들의 솜씨로 그려낸 듯이 느껴진다. 시는 냉정한 관찰을 보여주기도 하고, 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변해하는 자신을 날카롭지만 한껏 꺽어서 표현해내고 있다. 지옥 같은 절망보다는 섬세하고 관조적으로 표현한다. 아이들의 처했던 상황을 생각하며 예상했던 내용들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아이들의 그림은 왜 그랬을까? 아이들의 시는 왜 그럴까? 검열이라는 죽음의 조건 앞에서 숨죽여 표현해야 했을 아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열연한 아빠의 모습처럼 아이들에게 사실을 연극처럼 꾸며서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고 싶었던 지도 선생님, 프리에들 디커-브란데이스의 바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아우슈비츠로 가면서도 아이들의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니면, 아이들은 이미 죽어가는 모습들 속에서, 부모와의 이별속에서, 비인간적인 생존의 조건 속에서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희망을 향해 ‘나비’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와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게토에 속한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란 죽음과 목숨을 건 탈출, 그리고 나찌의 멸망으로 해방되는 것이지만 어느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에 공포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탈출! 탈출한 아이들이 음식을 훔쳐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다가, 어느 친절한 농가에 들어가서 헛간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착한 농부들도 언제 캐쉬타포에 의해 자신들까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아이들은 언제 고발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떨며, 결국 탈출은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연장에 불과하다. 탈출에 성공한다면? 스웨덴으로 탈출한 유대인 소녀의 소설에는 간신히 탈출한 두 남매가 테레진(체코에 속한 게토의 이름)에서 티브진으로 죽은 엄마의 소식을 듣고 함께 있지 못한 괴로움으로 고통 받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탈출하는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는 죽임이 일어난 곳이든, 그곳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든, 멀리 떨어져 가족의 죽음을 두손 놓고 바라봐야 하는 곳이든 항상 존재한다.


그 공포에서 최선의 선택은 그림과 시를 통해 희망을 생각하고, 인간다움을 느껴보고, 사랑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결국, 가슴 가득 생각할 만한 여백이 가득한 이 책은 아무생각도 나지 않게 하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거나 한다. 유태인의 절박한 죽음을 느껴볼 장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언제 태어나 어느 곳에서 갇혀 살다가 언제 죽었다는 소개 글이 전부다. 감정을 이끌기 위해 이러저러한 사설을 늘어놓지 않아 책을 읽는 동안 친절하지 않은 기획자를 욕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후에 느끼는 긴 여운이 오히려 그 덕분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지금도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아이들이 처한 죽음의 순간에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토해내는 언어와 시와 그림들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그 작품들을 보며 어떤 것들을 느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의료계의 진실을 말하는 두 개의 목소리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남점순 옮김, 문예출판사, 2000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 2005



'어느 의사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로버트 멘델존은 소아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로 한때 현대의학의 열렬한 신자였다. 오랜 의사 생활을 통해 현대의학이 온통 부조리와 허구와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현대의학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현대의학이 인류에게 해만 끼치는 공적이며, 수많은 광신도들을 거느린 죽음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은 왜 현대의학을 믿을 수 없는가, 왜 현대의학을 배척해야 하는가, 그 이유들을 소상하게 나열하고 있다. 첨단 의료란 멋진 것이고, 그 기술을 가진 명의에게 치료받으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심지어 의사들이야말로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대체 이러한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현대의학에 대한 멘델존의 불신은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책은 그가 어떤 병원의 외래병동 소장으로 있을 때의 경험을 소개한다. 그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아이엄마에게 "아이에게 배변훈련을 시키고 있습니까?"하고 질문을 한 후, 네 살이 되도록 배변훈련을 받지 않은 남자아이들에게 방광경 검사를 받도록 했다고 한다. 방광경 검사는 중장년의 방광암, 전립선암, 자궁암 등의 검진에 이용되는 검사로 일종의 내시경을 요도에서 방광 내에 삽입해 방광 내부의 이상 여부를 조사하는 검사인데, 이 검사를 네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행한다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하여 그는 의사들에게 배변에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비뇨기과장으로부터 그는 이런 불평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실은, 자네가 (배면에 관한) 질문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내 전문의 실습생 교육계획이 엉망이 되게 생겼어. 실습생이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년 정해진 수만큼의 방광경 검사를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1년에 150회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 검사를 중지하는 바람에 할당량을 채울 수 없게 돼서 실습생들이 몹시 곤란해 하고 있어."

환자를 보호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대학병원에서는 의학실습생의 자격증 확보를 위해 건강검진이 행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는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온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교환 당사자간에 정보가 불균형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의료정보에 있어서 일반인들의 상식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사를 맞으라면 맞아야 하고, 약을 먹으라면 먹어야 하고, 검사를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권위적인 의사들에게 일일이 그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의료비만 잔뜩 지출하고 병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멘델존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의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의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의사의 인간성을 짐작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전문지식이 있는지도 알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라는 것이 멘델존의 설명이다.

멘델존의 책이 심각하게 읽히는 책이라면, 의과대학에서 기생충 학자로 재직중인 의학박사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말하는 방식의 의외성이다. 의사라면 의사에 걸맞은 폼을 잡아야 하겠지만 저자는 전혀 권위적인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캐주얼한 어법은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얼마나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고발해준다.

서민 역시 멘델존처럼 환자를 실습대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실습이 필요하다면 굳이 환자들의 항문에 손을 넣을 필요가 없다. 똑같은 인간인 학생들 역시 직장(直腸)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학생들끼리 서로 직장검사를 한다면, 서로간의 유대감도 얼마나 커지겠는가." 라고 말할 때 저자는 심각한 내용을 심각하지 않은 어법을 빌어 말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탈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매스컴에서 대머리의 선행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으며, 방송사나 신문사 등에서도 기자를 뽑을 때 일정 비율 이상을 대머리로 뽑아야만 진정한 탈모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머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대머리의 우월성을 역설한다면,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뽑고 대머리인 척 위장을 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겠는가." 라고 그는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의 구분이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의 문제, 즉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서적이다.

채식주의나 성장 클리닉 등의 문제점, 호르몬제, 비타민제 복용이나 헬리코박터 박멸 등의 문제에 대해 이 책은 객관적인 의사 입장에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제왕절개나 피임 등의 문제점과 우리가 가진 잘못된 의학상식을 하나하나 짚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거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의약품을 계발했다는 내용들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의사의 이해관계와 제약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모종의 공모가 생길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 어떤 약이 혈압강하에 좋다, 어떤 약이 헬리코박터를 박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라는 식의 발언들도 이런 식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결국 의학에 관련한 기사들을 일백 프로 신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의료계의 문제를 의료계 밖에서가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이런 그의 내부 고발은 그가 '기생충에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내과의사나 외과의사보다는 기생충학자가 병원의 이해관계나 권력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료계의 문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전력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의사와 병원의 '비하인드 스토리'쯤 될 것이다.

이 책은 의료계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씌어진 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설파하고 있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의사에 대한 친근감을 불러온다. 퇴근 후에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친구처럼 의사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 '서민'의 이름이 더욱 '서민'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한 고백과 서술이 갖는 힘이다.
                                                                                                               
 
www.readersguide.co.kr  :  김보일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포크라테스
자크 주아나 지음, 서홍관 옮김 / 아침이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이 제목으로 되어있다고 해서 이 책이 인물중심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면 빨리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뿐만 아니라 그 후계자들, 히포크라테스 학파 전체와 그들이 저술한 책까지도 모두 서술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서술의 중심도 학파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의술에 대한 서술들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 사료, 시대 상황과의 영향 등 인문학적, 철학적 내용에 두고 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일반인의 관점에서 몇 가지 잘못된 지식의 수정이 필요하다. <선서>의 앞부분은 히포크라테스가문에 들어와 의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가문의 의술을 이어가기 위해 지켜야 할 내용이 들어있다. 선서가 가문 내부의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새로 제자를 받아들일 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반부에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외부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할 의사의 윤리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다. <히포크라테스 총서>는 히포크라테스가 쓴 내용뿐만 아니라 후계자들이 쓴 글들과의 총합을 말한다. 문체나 사고방식이 히포크라테스의 것으로 보기 힘든 저술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느 것이 '진짜 히포크라테스 저술'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소금이나 커피와 같은 어떤 식품이 어떤 경우에 몸에 좋으냐 안 좋으냐는 논쟁들은 가끔 언론을 통해 전달되어 혼란을 주곤 한다. 그와 같은 진단의 과정들은 2,500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들이 <섭생>으로 환자의 건강을 위해 고민했던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체질의 분석, 약물, 소작(불로 지지는 수술)등 치료기술의 많은 부분이 변했음에도 서양 의학의 뿌리로 히포크라테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질병과 환자, 그리고 의사의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지 않나 싶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살았던 페리클레스 시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적 풍토는 동시대를 살았던 히포크라테스의 의술에도 나타난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 간질을 '신성한 병' 등으로 보는 종교적 태도로부터 벗어난 이성적인 관점, 당시에 당연시 되었던 대중 앞의 치료과정에서 근거 없이 내리는 진단과 치료에 대한 비판 등으로 과학적인 의술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또한,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한다'는 넓은 의미의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시민과 노예,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 다양한 임상사례를 통해 모든 인간의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의사의 지위를 이용해 부와 권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능력을 환자의 질병치료와 고통을 줄이기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의사의 윤리는 <총서>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두께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의학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인문교양 서에 가깝다. 2,50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 의술의 기본토대를 상세히 다루면서 당시의 그리스의 문화적· 사회적 요소들과 함께 묶어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사료와 구성의 탄탄함,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과 분석은 책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의사이자 시인인 번역자의 번역은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듬어진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