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 15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누마타 신스케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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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이와테로 전근을 간 후 물류부서에서 일하는 '히아사'와 친해지게 된다. 마음을 터놓고 낚시를 다니고 내키는 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즈넉한 기분을 맛보는 생활은 나름대로 충족감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어느 날, 히아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퇴사를 하게 된다. 퇴사 이유야 대충 짐작이 갔지만, 히아사가 빠진 자리는 왠지 허전했다.

얼마 후 히아사가 찾아와 낚시를 가게된다. 히아사는 얼마 뒤 다시 찾아와 상조에 가입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지난 번 히아사의 방문 때 눈치 채지 못한 무신경을 반성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나고, '나'는 우연히 히아사와 같이 근무했던 아줌마로부터 히아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히아사가 뻔뻔스러울 만큼 자신에게 실적을 졸라댔고 돈까지 빌린 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히아사의 행방을 수소문해 그의 아버지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의 얘기들을 듣는다. 히아사는 대학을 합격한 뒤로 4년 간 집으로부터 등록금과 생활비를 받아갔지만 학교에는 입학 조차 한 적이 없고, 졸업장을 위조해 자신을 속였기에 의절했다는 것. 히아사의 아버지는 히아사를 찾을 생각도 없었지만, 죽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이데 강으로 가서 낚시를 하다가 그 강에서는 좀처럼 낚기 힘든 무지개송어를 낚는다. 누군가 방류를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상류에 양어시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상류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제목 영리(影裏)는 '그림자의 뒤편'이라는 뜻으로 본래 電光影裏斬春風(전광영리참춘풍) 이라는 불교 선종 용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번역하자면 '번갯불이 봄바람을 벤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속뜻은 '인생은 찰나지만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작가는 자신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 중 하나로 지진으로 집이 파괴되고 생활 기반을 잃는 모습을 본 경험을 꼽는다. <영리>에서도 이면을 들여다 보게 된 계기는 동일본대지진이다. 그저 태평한 사람으로 보였던 히아사가 왜 아버지를 속이고, 과거 동료에게 돈을 빌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주인공 '나'가 동성애자인 것을 히아사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림자의 이면에 또 다른 삶이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때로 그런 비밀들이 '지진'이나, '사망' 같은 이벤트 때문에 드러나기도 한다. 마치 번갯불이 어둠을 조금 내몰아 색(色)을 보여주듯이.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에서도 이츠키가 죽게 되면서 또 다른 이츠키가 드러나지 않는가. 


간결하고 품격 있는 문체와 과감한 생략을 도전적으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일본 문예지 <분가쿠카이> 신인상과 제158회 아쿠타가와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4505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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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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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알랭 드 보통은 영국에서 성장했고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십대 초반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는 소설과 수필에 철학, 역사, 종교, 미술, 예술사 등 다양한 관심 분야를 알기 쉽게 녹여내는 재능있는 작가이다. 이 책 <동물원에 가기>는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 중 70번째 작품이다. 


9편의 단상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사랑의 역설에 관해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글귀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에서는 슬픔과 쓸쓸함이 주는 위안, 따분한 장소가 주는 매력, 일상의 소중함, 공항과 동물원에 대한 단상 들이 담겨 있다. 인용된 그림들은 걸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딘지 위안을 주는 면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점에 착안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어딘가 황량하고 쓸쓸한 것들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찬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이에 부대끼는 황량한 겨울이 오면, 우리도 조금 더 위안을 얻게될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3948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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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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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총과 칼이 나오지 않아도 폭력이 난무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데미언 샤젤 감독의 <위플래쉬> 같은 작품. 그런데 그런 작품들에는 공통된 룰이 있다. 절대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이 룰을 적용시키면 심리게임은 선혈이 난무하는 잔혹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자신의 '본심'을 감추면서도 상대편의 '욕망'은 백일하에 드러내야 하는 이 게임의 참가자는 '경쟁심과 질투심'이라는 연료를 무제한으로 태우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결승점에 도달하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경쟁자'와 '질투심' 뿐. 소금물을 마시며 갈증을 견디는 이 게임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사이 료의 <누구> 역시 이런 심리 느와르 작품에 속한다. 


<기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로 스바루 신인상을 타며 화려하게 문단 신고식을 마친 아사이 료는 1989년생으로 <누구>로 2012년 하반기 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누구>는 다쿠토, 고타로, 미즈키, 리카, 다카요시 다섯 명의 취업활동 분투기를 SNS와 현실을 직조하며 보여준다. 

'다른 이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 '더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에 곁을 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허세'만 남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내'가 싫어 결딜 수 없게 되면 '자아'가 분열하여 '제2의 나'를 창조하게 된다. <지킬과 하이드>이다. 


SNS 계정을 파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해 다른 이를 공격하고 깍아 내리는 '나'.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타자'는 공포스럽지만 낯설지는 않다. 그 역시 '자신의 냄새'를 '나'에게서 맡았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므로.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3244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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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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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트와일라잇>에서 제임스에게 공격 당해 큰 부상을 입은 벨라. 다행히 결정적인 순간에 에드워드에게 구출되어 목숨을 건진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벨라는 생일을 맞아 칼라일 가족의 초대를 받는다. 여러가지 선물을 뜯어보던 벨라가 흠칫 하더니 손가락을 빼낸다. 종이에 손을 베고 만 것이다. 칼라일과 에드워드는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재스퍼는 즉시 으르렁 거리며 벨라를 노린다. 일촉즉발의 순간이 지나가고, 에드워드는 자신들의 존재가 언젠가 벨라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벨라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얼마 뒤 칼라일 가족은 또 다른 선한 뱀파이어 가족이 사는 데날리로 떠난다.


에드워드의 빈 자리를 메워준 것이 제이콥이었다. 벨라는 제이콥과 오토바이 수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고 에드워드를 잊는 듯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를 향한 마음은 갈 수록 커졌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매혹 당한다. 결국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한 벨라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려 한다.


한편, 미래를 보는 앨리스가 이 광경을 예견하는데 하필이면 에드워드가 앨리스의 생각을 읽게 된다. 사실 벨라는 구출되었지만 에드워드는 벨라가 자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오인하여 이탈리아로 떠난다. 에드워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볼투리 일가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대중에게 노출함으로써 '자살' 목적을 이룰 계획이었다. 에드워드를 구하기 위해 앨리스는 벨라와 함께 이탈리아로 날아가 볼투리 일가를 만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벨라의 '면역' 능력이 다시금 확인된다. 


한편, 제이콥은 늑대로 각성하여 칼라일 일가에게 오래된 평화조약을 상기시킨다. 조약에는 인간을 '죽이면' 조약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깨물면' 파괴된다고 쓰여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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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과 마찬가지로 책의 2/3를 하이틴 로맨스에 할애하고 있다. 2부는 <로미오와 줄리엣> 2막 6장을 책 서두에 적어놓은 뒤, 마치 알리바이가 확보된 양 대놓고 플롯을 차용한다. 

제이콥은 역시나 꿩 대신 닭 역할을 하다 가차없이 버려진다. 늑대인간쪽을 훨씬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26208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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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록을 부탁해 -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의 로맨틱 하드록 에세이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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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전축을 사오셨다. 큰형은 부활 2집을, 작은형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데뷔 앨범을 사다가 들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들은 '춘천가는 기차'와 '김성호의 회상'이 좋아 김현철과 김성호를 사다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가 갈렸던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Alice Cooper의 Lace & Whiskey 앨범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후 친구가 들려준 Sex Pistols의 원초적인 사운드와 이웃나라 일본의 헤비메탈 그룹 Loudness와 Anthem이 준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Helloween, Yngwie Malmsteen 따위를 빌려 들으며 조금씩 록음악을 접하다가 큰형에게 기타를 배우고, 멜로디 위주의 L.A.Metal을 쉬엄쉬엄 듣다가, 자연스럽게 3M(Metallica, Megadeth, Metal Church)과 Slayer, Anthrax, Kreator 등 스래쉬 메탈에 다다른다. Nirvana, Pearl Jam, Alice in Chains가 나오기 전까지의 스토리이다. 


Alternative 광풍이 분 뒤 헤비메탈 씬은 초토화 된다. Metallica가 Load와 Reload를 발표하며 무릎을 꿇었고, 기존 밴드들이 해체 분화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제대로 된 앨범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Progressive Rock이나 Art Rock으로 나아가는 녀석, 블루스나 재즈 쪽으로 눈을 돌리는 녀석들이 생겨나는 등 그야말로 춘추전국이 펼쳐지게 된다. 단 하나의 터부만 지키면 되었다. 가요와 팝은 멀리한다는 것. 그게 왜 그토록 불문율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러한 음악 여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잡지 Hot Music이었다.Rolling Stone 이나 일본잡지 Young Guitar에서 베낀 것임에 분명한 기획물들이었지만 폐간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드록을 부탁해>는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스래쉬 메탈이 정점을 찍고 얼터너티브 록에 자리를 넘겨주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잘 쓰지 못했다.


사실, 다른 장르의 예술 영역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나마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감할 구석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림을 보여주면서 썰을 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옛날 노래들을 듣게 되는가? 아니다. 지금 노래 듣기도 바쁘다. 

90년대 중반, 한창 음악을 들을 때 전설처럼 회자되던 그룹들이 있다. Led Zeppelin, Cream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그룹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혁명적인 사운드를 맛본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가 없다. 

꼰대 마인드 생각하면 된다. '나때는~' 마인드.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감수성은 동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시대를 견디면 고전이 되지만, 고전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재미를 느끼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필연적으로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에 헤비메탈(하드록이라고 했지만 소개하는 그룹은 대부분 헤비메탈이다)을 들었던 사람으로 독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책을 읽는 내내 모든 그룹, 모든 노래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어라, 그럼 나가린데... 여기 써 있는 얘기들은 그 시대에 음악을 들었던 메탈 키드라면 다 아는 얘기다. 음반 소개책자나 핫뮤직에 써있던 얘기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다라면 책으로 만들 것까지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자 두시탈출 컬투쇼의 PD이다. 책 표지에도 그 타이틀을 걸었다. 그쪽으로 뭔가 새로워야 한다. 근데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다. 그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음반과 그룹 소개 중간에 에피소드를 하나 끼워 넣는 것에 만족하는데 '사귀던 여자애가 헤비메탈을 좋아했다'와 '그런데 사귀던 여자애가 죽었다!' 가 전부이다. 그외에는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쳤을 법한 반항심리와 자기성찰이 전부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 아, 그리고 중간중간 여자애가 기타 거꾸로 맨 사진이 있는데 어떤 컨셉인지 모르겠다. 스토리와도, 책 컨셉과도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데 줄기차게 등장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2083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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