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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록을 부탁해 -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의 로맨틱 하드록 에세이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7월
평점 :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전축을 사오셨다. 큰형은 부활 2집을, 작은형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데뷔 앨범을 사다가 들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들은 '춘천가는 기차'와 '김성호의 회상'이 좋아 김현철과 김성호를 사다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가 갈렸던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Alice Cooper의 Lace & Whiskey 앨범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후 친구가 들려준 Sex Pistols의 원초적인 사운드와 이웃나라 일본의 헤비메탈 그룹 Loudness와 Anthem이 준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Helloween, Yngwie Malmsteen 따위를 빌려 들으며 조금씩 록음악을 접하다가 큰형에게 기타를 배우고, 멜로디 위주의 L.A.Metal을 쉬엄쉬엄 듣다가, 자연스럽게 3M(Metallica, Megadeth, Metal Church)과 Slayer, Anthrax, Kreator 등 스래쉬 메탈에 다다른다. Nirvana, Pearl Jam, Alice in Chains가 나오기 전까지의 스토리이다.
Alternative 광풍이 분 뒤 헤비메탈 씬은 초토화 된다. Metallica가 Load와 Reload를 발표하며 무릎을 꿇었고, 기존 밴드들이 해체 분화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제대로 된 앨범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Progressive Rock이나 Art Rock으로 나아가는 녀석, 블루스나 재즈 쪽으로 눈을 돌리는 녀석들이 생겨나는 등 그야말로 춘추전국이 펼쳐지게 된다. 단 하나의 터부만 지키면 되었다. 가요와 팝은 멀리한다는 것. 그게 왜 그토록 불문율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러한 음악 여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잡지 Hot Music이었다.Rolling Stone 이나 일본잡지 Young Guitar에서 베낀 것임에 분명한 기획물들이었지만 폐간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드록을 부탁해>는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스래쉬 메탈이 정점을 찍고 얼터너티브 록에 자리를 넘겨주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잘 쓰지 못했다.
사실, 다른 장르의 예술 영역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나마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감할 구석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림을 보여주면서 썰을 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옛날 노래들을 듣게 되는가? 아니다. 지금 노래 듣기도 바쁘다.
90년대 중반, 한창 음악을 들을 때 전설처럼 회자되던 그룹들이 있다. Led Zeppelin, Cream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그룹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혁명적인 사운드를 맛본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가 없다.
꼰대 마인드 생각하면 된다. '나때는~' 마인드.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감수성은 동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시대를 견디면 고전이 되지만, 고전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재미를 느끼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필연적으로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초반에 헤비메탈(하드록이라고 했지만 소개하는 그룹은 대부분 헤비메탈이다)을 들었던 사람으로 독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책을 읽는 내내 모든 그룹, 모든 노래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어라, 그럼 나가린데... 여기 써 있는 얘기들은 그 시대에 음악을 들었던 메탈 키드라면 다 아는 얘기다. 음반 소개책자나 핫뮤직에 써있던 얘기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다라면 책으로 만들 것까지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자 두시탈출 컬투쇼의 PD이다. 책 표지에도 그 타이틀을 걸었다. 그쪽으로 뭔가 새로워야 한다. 근데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다. 그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음반과 그룹 소개 중간에 에피소드를 하나 끼워 넣는 것에 만족하는데 '사귀던 여자애가 헤비메탈을 좋아했다'와 '그런데 사귀던 여자애가 죽었다!' 가 전부이다. 그외에는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쳤을 법한 반항심리와 자기성찰이 전부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 아, 그리고 중간중간 여자애가 기타 거꾸로 맨 사진이 있는데 어떤 컨셉인지 모르겠다. 스토리와도, 책 컨셉과도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데 줄기차게 등장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20835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