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바퀴벌레>처럼 자국민이 사망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헤리 홀레가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면서 시작된다. 

방송국에 출연하기도 했던 노르웨이 여성 잉게르 홀테르는 호주의 절벽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강간당한 뒤 목졸려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호주 정부는 실업률이 10%가 넘는 경제 상황에서 살인사건이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관광수입이 줄어들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수사에 전폭적인 협조를 보냈고, 앤드류 켄싱턴이라는 유능한 애버리진 출신 수사관도 붙여준다. 

수사를 시작하자 용의자들이 속속 튀어나오는데 그녀가 일했던 술집에서 추근댔던 매니저 알렉스, 최근 사귄 남자친구이자 마약상 에반스 화이트, 그리고 성기노출로 검거된 적이 있는 집주인 로버트슨 등이 유력했다. 하지만 모두들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던 시점에 오토 레흐트나겔이라는 게이 광대가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고, 그와 연관이 있었던 파트너 앤드류가 목메달아 자살하고 만다. 절망에 빠진 해리 홀레는 술에 손을 대고 창녀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비르기타가 목격하자 해리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앤드류가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해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오스트레일리아 경찰서의 동료들과 함께 범인에게 한발 한발 다가간다.


작가 요 네스뵈는 1990년대 중반까지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는 한편, 1992년에 결성된 5인조 Pop Rock Band인 Di Derre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6개월간 체류한 뒤 발표한 데뷔작이 바로 <박쥐>이며, 유리열쇠상과 리버튼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박쥐>의 훌륭한 점은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이 탄탄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애버리진의 역사와 신화가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점이다.

역자 문희경의 해설을 보면 1910년에서 1970년대까지 호주 연방정부는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미개한 원주민(애버리진) 가정에서 구출해 문명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복지법령'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부모에게서 강제 격리시켰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멀쩡한 가정을 두고 고아가 된 아동이 10만 명에 달했고, 이들을 '도둑맞은 세대'라고 불렀다. 1997년 호주 정부는 'Bring Them Home'이라는 '도둑맞은 세대 특별위원회 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하지만, 정식 사과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앤드류 켄싱턴이 바로 '도둑맞은 세대' 이다.

한편, 소설이 아쉬운 점은 역시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수수께끼 풀이' 부분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가 범인을 밝혀내는 데 역점을 두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역시 범인이 밝혀졌을 때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미스터리 계열의 소설로 분류되는 이상 아쉬운 점일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워크래프트
크리스티 골든 지음, 유정우 옮김 / 제우미디어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줄거리 http://blog.naver.com/rainsky94/220801656694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소설 버전으로 오크 영웅 쓰랄과 스톰윈드의 영웅 바리안 린의 아버지 세대가 등장한다.

쓰랄의 아버지 듀로탄은 지옥 마법이 모든 것을 죽게 만든다는 것을 동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굴단에게 막고라를 신청한다. 굴단은 듀로탄의 신념에 찬 공격을 무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든 오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옥마법을 쓰고 만다. 듀로탄은 지옥마법의 공격에 온몸의 생기가 흡수되어 사망하고 말지만, 오크들은 굴단이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지켜보게 된다.

한편, 레인 국왕은 굴단이 연 소환문 앞에서 싸우다 전사한다. 레인 국왕은 가로나가 자신을 죽이도록 권유하는데, 호드에게 있어 상대편 우두머리를 죽이는 것은 대단한 명예였기 때문이다. 레인 국왕은 가로나가 그 명예를 획득한 뒤 오크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 언젠가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평화에 기여하길 바랬다. 가로나는 울면서 레인 국왕을 살해하지만 스톰윈드는 그녀를 가장 중요한 적으로 오인하고 만다. 


작년 여름에 영화를 보고 나서 8~9개월 정도 와우를 다시 했다. 출시 초기부터 2007년 첫번째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 까지 하다 근 10년을 잊고 있었던 게임이다. <군단> 확장팩 적응에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건너 뛴 확장팩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그렇다 치고' 게임을 진행하려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아서였다. 결국 소설로 돌아왔고, 지금 <아서스>를 읽고 있는데 꽤 흥미진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5년 7월 16일 화요일. 한 남자와 여섯 여자가 가고시마 시에서 집단 자살을 했다. "가고시마 시 시로야마 동굴 집단자살 사건" 이것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청의 정식 명칭이다. 남자의 이름은 기우라 겐조. 사망 당시 나이는 48세. 기우라는 집단자살이 있기 전 1년 동안 열 명의 살인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시즈오카 현 하마마쓰 시에서 여관 경영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하마마쓰는 대기업이 즐비한 활기 넘치는 산업도시였고, 1958년 매춘방지법이 완전히 시행될 때까지 스틱 걸 이라는 매춘부를 알선하는 조직이 발달한 곳이기도 했다.

기우라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고 성적이 뛰어나 재수도 하지 않고 곧장 도쿄대 문과에 합격했고, 졸업한 뒤에는 도내 국립대학의 조교수로 취임했다. 그런 그가 서른셋이 되던 해, 돌연 광역 폭력단인 류진연합 조장의 딸 후미에와 결혼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로부터 다섯 달 후, 기우라는 아내 후미에를 목졸라 살해한다. 그는 살인은 인정했지만, 살해 동기를 비롯한 여타 사항에는 모든 진술을 거부한다. 법원은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기우라는 1심 판결을 인정하여 항소하지 않고 복역한다. 출소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다섯이었다.


출소한 기우라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여관을 경영하다 몇몇 남녀를 이끌고 도쿄로 진출한다. 그곳에서 작은 여관 경영자들을 회유해 매춘을 알선하면서 부를 쌓던 기우라는 나고야, 니가타, 삿포로, 하코다테에까지 거점을 만들면서 이른바 이동매춘집단을 조직한다.


기우라가 경찰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도쿄의 여관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여관 주인 가족과 보증을 서준 여동생의 가족 모두가 실종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폭력단 교쿠잔카이의 조직원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유력한 용의자로 기우라가 지목되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기우라는 여자 여덟 명을 데리고 가와고에의 거점에서 도주하여 시로야마의 동굴에서 동반자살을 한다. 유일한 생존자는 우타라는 열 다섯 살 난 소녀였다.


------


30년이 흐른 뒤, 그 사건으로 숙부를 잃은 한 저널리스트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조각난 퍼즐 조각들을 제자리에 끼워 맞추던 저널리스트는 유일한 생존자 우타의 증언을 통해 전체 그림을 완성한다.


(아래는 소설의 결말임)


기우라는 친누나와 상간하여 우타를 낳는다. 우타는 중국인 여자의 양녀로 자라다가 기우라의 여관에 합류한다. 기우라가 아내와 결혼한 이유는 누나와 닮았기 때문이고, 그녀를 살해한 이유는 추측컨데 그녀의 간청 - 정신병 때문에 겪는 고통을 기우라가 끝내주었으면 하는 -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설이 억지를 쓰기 시작하는 것은 그 뒤부터이다. 근친상간, 아내살해라는 극도의 신산함을 가슴에 품은 사내가 여관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고 조폭들과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관계를 이어간다?

어쨌든 <올드보이>와 <짐승의 성>을 적절히 교배한 듯한 이 소설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나 출판될 법한 충격적인 소재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르포르타주 형식을 빌어 긴장감을 고조시켜 가는 수법은 매우 훌륭하나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은 단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녹정기 세트 - 전12권 - 개정판
김용 지음, 박영창.강승원 옮김 / 중원문화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명이 멸망하고 청이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다. 강희(康熙)의 아버지 순치황제는 본래 24세의 나이에 사망했다고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작가 김용은 순치황제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야사에 근거해 소설을 전개시킨다.

야사에 따르면, 순치황제는 후궁 동귀비를 몹시 사랑했는데 그녀가 급사하자 늦게라도 황후에 봉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예법과 달라 될 일이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문득 허탈함에 빠진 순치황제는 24세의 나이에 출가하고 말았다고 한다. 


어쨌든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강희에게는 아직 천하를 확실히 거머쥘 힘이 부족했다.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 건국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언제 배신할 지 모르는 오삼계라는 막강한 군부세력이 외곽에 버티고 있었고, 오배라는 대간신 역시 막강한 권세를 틀어쥐고 강희의 권위에 수시로 도전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양주의 여춘원이라는 기생집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태어난 위소보(韋小寶)가 강희와 관계를 맺게 된다.

위소보는 천성이 게을렀고 배움을 귀찮아 했다. 다만 임기응변과 도박, 거짓말에는 능했는데 그 재주가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다 보니 왠만한 시련은 이러한 잔재주로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 위소보가 모십팔이라는 호걸과 사귀게 된다. 모십팔은 반청복명(反淸復明)을 가슴에 아로세긴 호걸로, 가는 곳마다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싸움이 반복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황제가 기거하는 성에까지 들어가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상대는 태감(내시) 해로공이었는데 그의 무공은 가히 천하무적이었다. 위소보는 해로공과 그를 수발드는 소계자를 정식으로 상대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독약을 써서 소계자는 살해하고 해로공은 눈을 멀게 만든다. 하지만 모십팔이 해로공에게 당해 생사를 알 길이 없게 되자 위소보는 어쩔 수 없이 눈이 먼 해로공에게 자신이 소계자라고 사기를 쳐서 목숨을 연명한다.

그런데 해로공은 눈이 멀어서 그런지 위소보를 소계자라고 믿고 특이한 일을 시켰다. 그것은 매일 같이 도박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도박을 해서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해로공의 목적은 도박 상대인 도서관 관리인에게 환심을 사서 <사십이장경>이라는 책을 훔쳐내는 데 있었다. 도박이라면 밥 먹는 것 보다 좋아하는 위소보는 신이 나서 도박을 하러 다녔고, 그러다 우연히 소현자라는 또래 친구를 사귀게 된다. 둘은 만날 때마다 무술을 겨루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었는데, 얼마 뒤 위소보는 소현자의 정체를 알고 충격에 빠지고 만다. 그는 다름아닌 청나라 황제 강희였던 것이다.

강희는 자신이 황제라는 것을 밝히고 난 뒤에도 위소보를 친구처럼 대했고, 위소보 역시 강희가 스스럼 없이 대하는지라 그를 위해 몇 가지 부탁도 들어주고 바깥에서 겪은 모험담도 들려주며 신뢰를 쌓아 간다.

한편, 해로공 역시 진짜 정체는 따로 있었다. 그는 순치황제의 충복으로 밀명을 받아 단경황후와 그의 아들 영친왕이 화골면장에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궁 안에 잠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낸 범인은 태후였다. 해로공이 태후에게 사실관계를 추궁하며 다툼을 벌일 때 위소보가 이 내용을 듣게 된다. 태후는 위소보를 어떻게든 죽여 없애려 하지만, 위소보는 임기응변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강희의 신뢰를 얻어 계속 벼슬은 높아만 간다.

위소보가 강희를 위해 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간신 오배를 찔러 죽인 일이었다. 그런데 오배는 강희도 죽이고 싶어했지만 천지회 사람들도 오배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위소보는 자연 천지회 사람들로부터도 추앙을 받게 된다. 이 사건으로 위소보는 천지회 총타주 진근남의 제자로 받아들여지고, 청목당의 향주로 추대되기까지 한다.

이로써 위소보는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건 조직 천지회의 중요 인물이면서, 강희제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아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그야말로 명나라와 청나라 양쪽 모두로부터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된다. 궁에 들어서면 온갖 시위 대신들이 위소보에게 아첨했고, 밖을 나서면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위소보의 영웅됨을 칭찬했다.


위소보는 이후 강희의 명을 받들어 순치황제를 라마들로부터 구해내고, 몽고와 서역의 반란을 지혜로 무력화시킨다. 또한, 나찰국(러시아)과 손 잡고 청나라를 치려한 신룡교를 무력화시키고, 나찰국 소비와 여왕과 관계를 맺어 외교적 성과도 거둔다. 태후가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어 적절히 조치했고, 오삼계의 반란 평정에도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여인들을 희롱하는데, 목왕부의 방이와 소준구 목검병은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사랑을 얻고, 쌍아라는 여인은 오배를 죽여 과부들의 한을 풀어준 덕에 하녀로 하사받게 된다. 이자성과 오삼계 모두의 눈을 멀게 한 진원원의 딸 아가는 정극상에게 홀딱 반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소보가 계략을 써서 몸을 빼았고, 홍교주의 부인 역시 혼란한 틈에 몸을 탐해 애를 베게 만든다. 건녕공주는 소설 속에서 마조히스트로 그려지는데, 어쨌든 그녀도 위소보에게 몇 대 얻어맞은 뒤 위소보의 여자가 되고, 증소저 역시 별다른 개연성 없이 위소보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위소보의 위태로운 줄타기는 강희가 위소보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끝이 나고 만다. 하지만 강희는 위소보가 자신을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던진 것은 거짓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위소보의 목숨을 살려주고, 위소보 역시 강희가 훌륭한 왕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사십이장경>에 씌여진 곳을 허물어 청나라의 명맥을 끊는 짓은 하지 않는다.


녹(鹿). 사슴은 들짐승으로 덩치는 크지만 성질은 온순하여 단지 풀이나 나뭇잎만 먹고 살면서 다른 동물을 해치는 법이 없다. 맹수가 잡아먹으려고 덤비면 사슴은 단지 도망칠 수밖에 없고, 만약 도망치지 못하면 맹수의 밥이 되고 만다. 옛사람들은 종종 사슴을 천하(天下)에 비유하곤 했다. 세상의 백성들은 온순하고 선량하여 남에게 압박과 박해를 받기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정(鼎). 옛날 하(夏)나라 때의 우왕(禹王)은 구주(九州)의 금을 거두어들여서 9개의 커다란 솥을 주조하였다...후세에 천하의 주인이 된 자는 <좌전(左傳)>에서 보면 9개의 솥(鼎)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 두 글자가 합해진 녹정(鹿鼎)은 천하의 패권을 뜻한다.

녹정기(鹿鼎記)는 장편 12부와 단편 3부를 남긴 김용의 마지막 작품으로 1969년 10월 24일부터 명보(明報)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72년 9월 23일 탈고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김용은 절필을 선언하였고, 몇 차례 새로운 소설에 대한 구상을 발표한 적은 있지만 실제 작품이 씌여진 적은 없다. 따라서 녹정기 이후에 김용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은 모두 위작이다.


녹정기의 결말은 위소보가 자신의 아버지가 한인, 만주인, 몽고인, 회족사람, 서장인 중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서 끝이 난다. 김용의 초기 작품이 한족 정통성에 기대어 씌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크나큰 변화이다. 시대적으로 <벽혈검> 바로 다음 시대를 다루고 있어 <벽혈검>의 인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중원문화 편집부가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놓고 있어 이야기 진행을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다.


첨언.


1. 중원문화 편집부가 소설 속 사건을 편리한대로 해석해서 80년대말 사회과학책에나 나올 법한 주석들을 달아 놓은 것은 못내 거슬린다. 그냥 되는대로 진보적 해석을 가하는 식인데, 소설 속에서 약을 먹이는 부분이 나오면 "미제국주의자들이 제3세계 민중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것을 빗대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그것도 자주, 반복적으로.

중원문화는 예전에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적 논리학>이니,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따위의 책들을 펴내던 출판사인데, 특이하게도 김용의 무협지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고 있다. 역자 박영창도 프로필에 민주화운동으로 2년간 옥고를 치루었노라고 쓰고 있다.


2. 그런데, 김용의 대표적 위작 중 하나가 <장백산맥>이다. <장백산맥>의 역자 서문을 보면, 역자가 중국에 갔다가 서점에서 김용의 신작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서 단번에 번역을 하여 책으로 내었노라는 식으로 써놓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장백산맥>의 역자 중 한 명이 박영창이다.


3. 녹정기 말미에는 중편 <백마소선풍>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카자흐 지역에 숨겨진 보물지도를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지는데,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문화가 뒤쳐지는 카자흐인들에게 당나라가 선물했던 일상용품이었다는 내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캠퍼스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조경식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함부르크 대학의 저명한 사회학과 교수 H.하크만은 최근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밥시라는 이름의 제자와 뒤탈없이 헤어지는 것이었는데, 마누라 가브리엘이 슬슬 관계를 눈치 채려는 시점이었기에 시급을 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격정에 휩싸여 교수실에서 관계를 한 뒤 줄곧 주도권을 밥시에게 빼앗겨온 터라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하크만에게 묘안이 하나 떠오른다. 밥시는 졸업논문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을 담으려 했는데, 이 주제에 대한 집착이 강했기 때문에 만약 하크만이 논문 지도 과정에서 그 내용을 다루지 못하게 하면 관계를 정리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하크만은 밥시와 관계를 정리하는데 성공한다. 격정에 휩싸여 다시 한번 관계를 가졌다는 점과, 그 모든 광경을 창밖에서 작업하던 공사장 인부 네 명이 목격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그들은 하크만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려 보여주었다)


얼마 뒤, 밥시는 하크만의 사회학과를 떠나 연극에 출연하게 된다. 그런데 연극의 소재가 하필이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강간을 당하는 내용이었고, 밥시는 연극이 끝난 뒤 발작적으로 '자신은 이와 똑같은 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소리친다. 밥시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몰랐다. 하크만이 자신을 차버린 것 같다는 쓰라린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므로 배역을 계속 맡겨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어쨌든 이 소동은 소문이 되어 대학의 여러 구성원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부터 복마전이 시작된다. 먼저 여성담당관 바그너는 이 사건을 크게 문제 삼아 자신이 학내 여성인권을 옹호하는 수호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총장은 여성담당관 지지를 등에 업고 재선을 손에 쥐기 위해 사건을 이슈화한다. 베르니는 총장 눈에 들어 부총장 자리를 따내기 위해 징계위원회를 진실과 무관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학과의 얼치기 교수는 여성과 외국인의 이해가 때로 일치한다는 점에 착안해 강간범 처단에 앞장선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부채질하는 것은 언론인데, 대학 졸업에 실패한 좀머라는 사이비 기자가 사건을 강간사건으로 규정하고 사실과 추측을 대충 뒤섞어 기사화한다.


사건이 점차 심각하게 흘러가자 밥시는 자신이 '강간당했다'고 말한 것은 단지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고 고백하지만 각자 바라는 바가 있었던 대학 구성원들은 전혀 밥시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베르니가 공사장 인부들에게 위증을 사주하기까지 하자 꼼짝없이 하크만은 강간범이 되고 만다.


추저분한 강간범이 되기 직전, 베르니는 딸인 사라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자신과 밥시가 내연관계였음'을 양심고백하고 대학을 떠난다.


------


작가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1940년생으로 1997년까지 20여년간 함부르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한 뒤부터는 작품활동에 전념하여 <교양>, <남자>, <영국문화사>, <샤일록 신드롬>, <서클> 등을 발표하였다. 작품의 무대가 함부르크 대학이기 때문에 작품이 발표된 뒤 언론과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들을 실제 인물들과 결부시켜 추리하는 일에 한동안 골몰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이 창안한 <체계 이론>의 문예학적 수용에 앞장섰는데, 역자인 조경식에 의하면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구성, 주변 세계에서 일어난 일회적 사건의 의미적인 재생산, 다시각주의와 상대주의, 코드 등의 개념이 <체계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다양한 층위의 욕망과 모순들이 진실을 호도해가는 과정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가는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고, 환경과 타자를 자신의 욕망에 유리하도록 바꾸는데만 골몰한다. 그나마 작품에서 가장 균형잡힌 인물은 치트카우라는 언론인이다. 그는 나치에 저항했기에, 좌파에 대해 쓴소리를 해댄다. 치트카우는 좌파 운동으로 인해 모든 사회적 영역이 도덕화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고, 그 결과 도덕이 인플레 상태가 되어 평가절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치트카우는 나치에 저항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인물이다. 그가 좌파적 견해에 반대하는 논지는 당당하다. 그 논지에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치트카우와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다.

반면,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남한 사회에는 보수를 자처하는 사이비들이 들끓을 뿐, 진정한 보수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일제에 부역했거나, 부역한 자의 자손이거나, 부역한 자의 자손에 기생하여 친일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건국절을 만들어 친일행위를 세탁하려 하거나, 천황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서 바친 자를 신격화하는 일 따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