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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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오사카 성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성관계하는 동영상이 세간에 유출된다. 그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녀는 '미키 & 미치' 로 불렸다. 미키는 요시다 기미코, 미치는 가타하라 미쓰루였다. 동영상은 그쪽 계열 인터넷 게시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요시다 기미코는 사이타마현 W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용금고 직원, 어머니는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였다. 요시다 기미코는 공립학교를 거쳐 도내 사립대학을 졸업한 후 시가 현 M시의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 사회과를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그녀는 반성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고, 한가지를 꾸준히 생각하는 일도 없었다. 따라서 추상능력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가타하라 미쓰루와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두 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으므로 그쪽에 능숙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열한 살 경에 초경을 했고, 성기에 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 5학년 봄 성기를 최초로 의식하였으나 미숙하게 손가락을 사용하여 통증을 느꼈고, 곧 죄의식을 느껴 그만둔다. 생리통이 심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성격에 얼마간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사귀었던 두 명의 남자도 특이한 점은 별로 없었다. 첫 번째 남자는 촌티를 벗지 못한 군마현 출신의 대학생이었고, 두 번째 남자는 처음 부임한 학교 교사였다.


한편, 가타하라 미쓰루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 소지품 검사에서 공격용 너클이 튀어 나와 선생과 급우들은 그를 음울한 녀석이라고 기억했다. 여성관은 비뚤어져 있었는데 그가 여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대부분 전화방, 만남 사이트 등을 통해서였다. 그는 성적인 관계에서 유별나게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했다. 그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식은 집요하게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바이브레이터 등을 이용하여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가 자주 애용하던 DVD방 남자는 가타하라 미쓰루가 훔쳐보기, 도촬 등의 코너를 섭렵했다고 증언한다.

가타하라 미쓰루에게는 일상 생활을 하는 여성과 성교를 할 때의 여성이 동일인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에게는 성교를 할 때의 여성만이 '가면을 벗은 진정한 여성' 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혀 다른 둘이 만나게 된 과정은 어땠을까? 요시다 기미코의 경우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학생지도 차원이었다. 하지만 일단 만남 사이트에 '미키'라는 가명으로 가입하고 나니 호기심에 접속을 시도하게 되었고, 몇 건의 메시지를 받게 되자 조금 대담해지게 된다.

요시다 기미코가 자신의 프로필을 섹스어필하는 방향으로 고쳐 쓰자 메시지가 더 많이 날아왔고, 그 중 가장 무난한 사람과 만남을 시도한 바 그가 바로 가타하라 미쓰루였다.

가타하라 미쓰루는 요시다 기미코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못 생겼다'고 생각하여 실망했지만, 그녀의 가슴이 크고 직업이 교사라는 사실에 점차 흥분하게 된다. 요시다 기미코 역시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미키'는 별개라고 생각하여 '미치' 앞에서는 기꺼이 '미키'가 되고자 한다.


둘은 주 2~3회 관계를 맺었고, 그녀의 집에도 드나들게 된다. 바이브레이터와 같은 기구를 사용했음은 물론, 로프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미치는 미키에게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설득해 사진과 동영상도 찍기 시작한다.


요시다 기미코가 자신들의 성행위 장면이 모 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얼굴은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내심 불쾌했다. 하지만 점차 불쾌하다는 감정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그 사이트에 게시된 다른 여성들보다 풍만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미치와는 이제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치가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결심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요시다 기미코는 미키와 자신을 분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그 둘을 동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시다 기미코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 역시 진정한 자아와 '성적인 자아'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결혼 제안 이후 조급해진 미치가 미키를 데리고 자신의 모교에서 성행위 동영상을 촬영하다 교사에게 들키자 칼을 휘둘렀다가 체포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75년생으로 교토대 법학부 재학 시절인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게재되었다가 다음 해인 1999년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고 2000년 즈음에 사서 읽었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 나지 않는다. 의고체 문장이라고 하나 번역 후에 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일본 소설인데 중세 수도사 이야기가 나와서 다소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책 제목과 작가가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거의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빌려준 책은 아주 잘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빌려준 책은 단 한 권도 돌려받지 못했다. <원미동 사람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 줄도 너무 길다> 등등등.

<달>은 '한번 책을 산 작가의 책은 반드시 한 권 더 사서 본다'는 습관 때문에 샀던 책인데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만 있다.


<얼굴 없는 달>은 프랑수와 모리아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비밀만 가득하고 암울한 비밀이 없는 인간에 대해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내면에 암울한 비밀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이야기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 프랑수아 모리아크


성적인 측면은 자주 어둡고 암울하게 다루어지거나 '무시의 대상' 이 된다. 성적 욕구가 무시되거나 어둡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이루어낸 많은 가치있는 것들과 배치(背馳)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당히 이성이나 법, 제도, 종교 등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 해도 워낙에 성격이 다르다 보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쳐서 이룩한 모든 것들 저변에 깔려 있는 동물적인 욕구의 음험한 냄새. 그것을 어떻게 적당히 손질하여 조화롭게 배치(配置)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은 법과 도덕, 종교에 필적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성적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수면 위로 부상한다. 문제는 이 욕구에 대해 정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으면 비뚤어게 된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욕구는 '無'를 잡아 먹고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난 그것은 숙주인 자아를 벗어나 실체를 가진 덩어리가 되고, 자아를 짓누르고, 자아를 변질시킨다. 이를 의식한 자아의 선택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성적 자아와 이성적 자아의 분리이다. 물론 분리는 성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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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야 삼촌
윤정모 지음 / 다리미디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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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동생이 '휴가를 가야하니 아버지를 맡기겠다'고 통보한 뒤 '나'의 집 앞에 삼촌을 세워 두고 도망 가버렸다. 삼촌은 이제 겨우 오십줄이었는데 머리에는 온통 서리가 내렸고 기억 상실을 동반한 치매끼도 있었다. 4수생 아들 은수와 감옥에 있는 남편 만으로도 우울한 내 생활에 치매에 걸린 삼촌까지 끼어들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삼촌을 데리고 놀이터로 간다. 갑자기 삼촌이 눈을 까뒤집더니 '나'에게 "와 무섭다고 하지 않노?" 라고 묻는다. 모래밭으로 데리고 갔더니 자갈을 골라 주며 '먹어보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치매 노인 노릇을 시작할 참인가 싶어 울상 짓던 '나'는 문득 과거의 기억 한 자락을 떠올린다. 눈을 까뒤집어 보이며 '나'를 웃겨 보려던 삼촌, 땅콩을 골라주던 삼촌. 그렇다. 삼촌은 지금 열 다섯 소년 때로 돌아간 것이다. 엄마와 헤어져 외갓집에 맡겨졌던 어린 '나'를 부모처럼 보살펴 주던 그때의 삼촌으로.


전쟁이 터졌을 때 '나'의 엄마는 스물 셋이었다. 아버지는 나팔장이였다. 읍내에 들어와 공연하던 아버지 모습을 본 엄마가 첫 눈에 반해 쫓아다녀 둘은 결혼했다. 피난 도중 아버지가 군에 차출 당하고, '나'와 엄마만 외갓집으로 향한다. 도중에 우방군의 오폭으로 기차가 폭파되고, '나'와 엄마는 한참을 걷다가 곰박사니 때문에 온 몸을 긁게 된다. 마침 발견한 냇가에서 목욕을 하는데, 군인들이 엄마를 발견하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나'는 큰 뒤에야 엄마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된다.

외갓집에 '나'를 맡기고 엄마는 아버지를 찾는다며 집을 나가버린다. '나'를 돌보아준 사람은 인보 삼촌과 인구 삼촌이었다. 인구 삼촌이 지금 치매를 앓고 있는 꾸야 삼촌이다.


보야 삼촌과 꾸야 삼촌은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다. 특히 꾸야 삼촌이 그랬다. 꾸야 삼촌은 매일 울기만 하는 '나'를 위해 토끼를 잡아 주었고, 익살스러운 짓으로 웃음 짓게 만들었다. 전선이 밀려 내려와 외갓집도 위태로와 졌을 때, 식구들은 경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때 꾸야 삼촌은 함께 피난갈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길잡이 시킨다고 꼴을 베던 꾸야 삼촌을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꾸야 삼촌이 뒤꼍에서 달려나왔다. 꾸야 삼촌은 우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뒤꼍 벽에 세워진 멍석에 몸을 말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꾸야 삼촌은 우리들이 피난 가 있는 동안 군인들을 따라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당시 꾸야 삼촌이 많은 시체들을 보았고, 그 시체들 속에는 꾸야 삼촌의 친구와 '나'에게 잡아다 준 토끼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꾸야 삼촌은 군인들을 무서워 했다.


외갓집인 나우리로 어느 날 엄마의 편지가 날아 들고 '나'는 삼촌과 함께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의사인 새아버지와 재혼을 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과거의 그 사건 때문인지 아이를 갖지 못했다. 외갓집에서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잊혀져간다.

다시 삼촌을 만난 것은 삼촌이 군기피자가 되어 서울로 도망왔을 때였다. 삼촌은 과거의 사건 때문에 군에 가느니 차라리 잡혀가겠다며 무서워했다. 새아버지가 빽을 써서 편하다는 카투사에 넣어 주었는데, 얼마 뒤 엄마에게 '누님 살려달라' 는 편지가 와서 다시 일반 군대로 옮겨준다.

제대하던 날 기찻간에서 여자를 만난 삼촌은 그 여자와 결혼한다.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새아버지의 권유로 오토바이를 타고 의약품 배달하는 일을 얻었는데 1년만에 사고가 나서 그만 두게 된다. 그 뒤로 삼촌은 차만 보면 무서워했다.

숙모가 임신하자 삼촌은 어떻게든 돈벌이를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전화 가설 브로커 노릇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화국장이던 친구 아버지가 갑자기 파면 당하자 '와이로'를 썼던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징역을 살게 된다. 그 뒤로 삼촌은 빈둥거렸고, 숙모는 집을 나가버린다. 당시 새아버지도 모르핀을 복용하다 수사가 좁혀오자 자살해버린 참이었으므로 두 집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삼촌 집에 찾아갔다가 삼촌이 아이들과 농약을 먹으려는 걸 간신히 말려놓은 '나'는 '나'라도 돈을 벌어야 했기에 장당 50원짜리 번역일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삼촌네 막내 동우가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동우에게 보상금이 조금 들어오자 숙모가 집으로 들어와 살림을 다시 합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는 보상금까지 챙겨서 야반도주한다.

삼촌은 낙심하다가 대구에 지방 공무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군인과 민간인의 교통사고에 휘말렸다가 수배가 된 삼촌은 또 다시 우리집으로 도망을 와 숨어 살았다.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서거할 즈음, 삼촌은 기소 중지가 된다. 찬우 대학 등록금이라도 벌 요량으로 삼촌은 포장마차를 시작한다. 엄마는 삼촌을 지극정성을 돕는다.

82년에는 좋은 일 두 가지와 슬픈 일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좋은 일은 찬우가 대학에 합격한 일과, '나'와 남편의 사업이 빛을 보게 된 일이다. 국가원수의 기록물을 취급하게 된 남편의 출판사는 날로 번창하게 된다. 

슬픈 일 두가지는 할머니와 숙모의 죽음이다. 숙모의 장례식장에 간 우리는 숙모가 중앙부처의 고위공직자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숙모의 새 식구들은 찬우와 동우가 숙모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것에 고인에 대한 예의라면서. '나'는 진짜 예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분노한다. 하지만 삼촌은 혼자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며 숙모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남편 출판사에서 잠깐 일을 맡아보던 삼촌은 어느 날부터 설사병이 났다며 출근을 안하더니 얼마 뒤 대학 수위가 되어 나타난다. 찬우가 다니는 대학교의 수위였다. 84년에 찬우가 학내 시위 도중 끌려간다. 남편이 빽을 써서 찬우를 빼내 주지만 86년도에 찬우가 집에 오더니 '살인마를 옹호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얼마 뒤 강도가 들었는데 '나'는 그것이 찬우 짓임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출판사의 호황과 '나'의 안락한 생활은 94년 즈음에 끝이 난다. 남편은 유력한 인사를 만나 위성방송사업을 계획했고, 출판사는 내가 경영하게 된다. 남편은 자본금을 끌어대며 사업을 구체화 시켰고, 나는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동독 작가를 만나 작품을 계약하는 등 야심차게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IMF가 터지고, 사업은 부도가 나고 만다. '나'와 남편 명의의 재산은 모두 차압을 당했고, 그러고도 빚갈이가 안 되어  남편은 구속된다. 그 때 엄마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내준다.


그런 생각들 끝에 설움이 북받힌 '나'는 삼촌 앞에서 엉엉 운다. 삼촌이 그 옛날 어렸을 적의 '나'를 달랠 때처럼 토닥여 준다. '나'는 부엉이가 정말 사람 눈을 빼먹는지, 피난 갔다 와서 없어진 토끼를 삼촌이 잡아 먹었는지... 그런 것들을 어린아이처럼 삼촌에게 묻는다.


이제, 어머니도 삼촌도 '나'의 곁에 없다.

동독에서 들었던 얘기인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들이 동독 여성을 강간하자 그녀들이 고발을 했다고 한다. 강간을 한 소련군들은 붙잡혀 총살을 당한다. 서독에서도 미군들이 강간을 했는데, 서독 여성들은 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이한 사실은 동독 여성들은 그 뒤로 오래도록 정신병에 시달렸는데 서독 여성들은 그럭저럭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삶의 모든 부분에 천착하는 복잡 미묘한 여성 심리 때문일까? 확실한 대답은 알 수가 없다. 엄마도 전쟁 중에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 뒤로 엄마는 나, 삼촌, 그리고 손자인 은수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아붓는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삶의 목적인 듯이.

삼촌은 지난 3월 위암으로 죽었다. 숙모도 위암이었다. 한평생 착하게만 살았던, 하지만 너무나 재수가 없었던 삼촌이 숙모를 만나 행복하길 빈다.


2~3개월 가량 눈이 너무 아파서 독서를 별로 못했는데, 그 때 궁여지책으로 <라디오 문학관> 같은 옛날 프로그램을 들었다. <꾸야 삼촌>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책의 초반부를 성우들이 조금 낭독하고 뒷부분은 작가가 나와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는데 못내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 결국 책을 사서 보게 된 것이다. 송기숙의 <암태도>, 최수철의 <고래뱃속에서>, 그리고 <꾸야 삼촌>을 당시에 들었는데 앞의 두 책은 절판이어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윤정모의 소설은 97~8년 즈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 <고삐>였던 것 같다. 너무 교조적인 느낌을 받아 그 뒤로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꾸야 삼촌>은 그때의 윤정모와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아주 잘 쓰인 소설은 아니지만 가볍게 읽히는 소설도 아니고,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대목이 많은 소설이다. '우리 부모가 저렇게 살았던 것을 '내'가 봤었지'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라디오에서 듣기로 <꾸야 삼촌>에서 작가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로 또 어떤 작품 활동의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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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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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리투아니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헬렌 킴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헬렌 킴의 모델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짐작은 <작가의 말>에서 확인 된다. 작가는 그 사람과 소설 속 인물을 혼동해선 안된다고 주의를 주지만, 사실 그 주의 때문에 독자는 짐작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주의'의 진의가 의심된다.


헬렌 킴이 초등학생이고, 화자가 재수생일 때 둘은 처음 만나게 된다. 만나게 되었다고 표현했지만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화자가 헬렌 킴을 지켜봤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부산 부민동 골목길에서 헬렌 킴은 눈에 띄였다. '금발의 제니'를 연상 시키는 외모에 한국말, 그것도 부산 사투리를 구사했으니 매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헬렌 킴이 한국아이들과 놀다가 심한 모욕을 받게 된다. '미국년'이니, '아이노꼬(튀기)'니 하는 말이 오간다. 헬렌 킴은 자신이 한국인이 맞다고 항변하면서도 당황한다. 그 모든 장면을 뒤에서 말없이 지켜본 사람이 둘이 있었으니 화자와, 헬렌 킴의 아버지이다. 헬렌 킴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교육시키고 화자와 인연은 그것으로 그만인 듯 했따. 


둘이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10년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 남자들>이라는 연극을 통해서였다. 화자는 극단의 총무를 하고 있었는데 헬렌 킴이 음악을 맡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리투아니아 인이므로 잘해 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 뒤 화자와 헬렌 킴은 연극, 뮤지컬 등을 매개로 마치 오누이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둘은 마치 근친의 기억을 간직한 남매와 같았고, 주위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 같았다. 


헬렌 킴은 한국인과 한 번 결혼하지만 이혼하고, 화자 역시 이혼 전력이 있는 여배우와 결혼했다가 파국을 맞는다. 둘 사이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인연이 계속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조우했을 때는 함께 '길거리 대학' 강좌를 듣는답시고 뮤지컬을 연구하기도 한다. 후에 한국에서 육체관계를 맺게 되고, '근친의 추억'을 형질전환시키고 싶어하는 화자와 그러고 싶지 않은 헬렌 킴의 욕망이 상충되어 헤어지게 된다. 근 30년간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난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몰락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라고 해야할까. 소설은 치졸하고, 유치하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주인공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과 대화하다 살의를 느끼는 대목이 나온다. 이문열의 전 생애가 어쩌면 '독학자의 자격지심', '左에는 끼기 싫고 右에는 끼고 싶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등의 점철이 아니었나 싶다. 

'홍위군 운운'과 '임화의 딸이 양공주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풍문'을 굳이 써내려가는 대목은 치졸했고, 예술을 만드는 자와 주입당하는 자의 이분법은 이문열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이문열은 결국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건가. 그래서 이토록 소설이 중언부언인건가. 민망하고 민망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67078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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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배 삼국지 1 (책 + MP3 CD 2장) - MBC 라디오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프로젝트 배배 삼국지 1
MBC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제작팀 지음, 김도상 극본, 나관중 원작 / 아이엠비씨(엠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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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라디오 삼국지 시리즈는 총 세 가지이다. 2001년 고우영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배철수가 해설을 곁들인 삼국지(MBC), 2004년 양지운이 해설을 맡은 귀로 듣는 삼국지(EBS), 그리고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삼국지(MBC)가 그것이다.

가장 몰입도가 높은 버전은 양지운이 해설한 귀로 듣는 삼국지였다. 세종에서 인천 가는 국도길 150km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배 삼국지는 양지운 버전에 비하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이 책은 라디오 대본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고 4장의 CD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세종국립도서관에서 CD가 필요해서 책을 대여했다.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홈페이지의 다시듣기에는 초반부 파일이 누락되어 있는데, 부록으로 들어 있는 CD가 바로 방송분을 실어놓은 것이어서 초반부를 들을 수 있다. 눈이 잘 안 보이고 아파서 최근 '라디오 듣기'에 다시 빠져 들었는데, '듣는다'는 행위가 주는 편안함을 새삼 발견한 듯 하여 기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66878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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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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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는 11년 전 끔찍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나카하라는 광고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했는데, 아내 사요코와 초등학교 2학년생인 딸 마나미 이렇게 셋이서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카하라가 회사에 가고 아내 사요코가 장을 보기 위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든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마나미를 보고 놀란 도둑은 마나미의 입에 재갈을 물린 후 목 졸라 살해하고 만다.

범인은 9일만에 체포됐다. 히루카와 가즈오라는 이름의 범인은 48세였는데 6개월 전 지바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났었다. 살인강도로 복역 중에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아 가석방된 모양이었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범인이 당연히 사형 판결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모든 죄를 순순히 시인하던 히루카와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면서였다. 그는 '소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반성하고 있다', '사죄하고 싶다' 따위의 말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비슷한 사건들을 살펴보던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절망했다. 재판부는 마치 범인을 살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판사들은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 '범행에 계획성이 없다', '동정할 만한 점이 있다'는 식의 단서를 달아 사형을 피해가고 있었다.

다행이 검사측과 경찰의 끈질긴 보강수사로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된다. 새로운 증거들은 모두 히루카와의 살인이 계획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히루카와는 사형을 언도 받는다.

그 사건 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켰기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11년이 지난 지금,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가 나카하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알려준다. 범인은 곧바로 자수를 했는데 이름은 사쿠조, 나이는 68세, 무직에 혼자 산다고 했다. 나카하라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강도가 아니냐는 물음에 형사는 여러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계획적인 범행인데 너무 빨리 자수한 점, 9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길거리에서 사람을 찌른 점 등이 이상하다고 했다. 남자의 딸이 대학병원 의사라는 점도 부자연스러웠다.


나카하라는 아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 헤어진 뒤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최근 무엇을 했는지 조사 한다. 사요코는 헤어진 뒤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에 나가 활동했고, 친구 지즈코의 도움을 받아 잡지사에 기사를 투고했다. 최근 기사는 도벽에 관한 기사였는데, 이 기사에서 나카하라는 이상한 사례를 발견한다. 도벽에 빠진 여러 명 중 제일 마지막에 실린 여성이 마음에 걸렸다.


한편, 범인 사쿠조의 사위 니시나 후미야는 어머니 다에코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아내인 하나에의 아버지가 살인범임이 밝혀졌으니 집안의 명예를 위해 헤어지라는 것이었다. 하나에는 여러가지로 다에코의 마음에 안 들었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고, 혼전에 이미 임신을 했으며, 손자 쇼는 아들 후미야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도 들었다. 

이상한 점은 후미야의 태도였다. 그는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하나에와 헤어질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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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꿈 속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실수로 건물에 불을 냈다거나 하는 따위의 꿈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어느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나게 된다. '아... 이건 꿈이야' 하는 자각이 든 뒤에도 현실로의 안착을 미루며 그 불안감을 곱씹게 된다. 얼마나 불안했던가를 더욱 생생하게 느껴야, 내가 얼마나 안온한 현실에 발 딛고 있는지 더욱 실감할 수 있다는 듯.

어릴 때엔 잘못의 크기가 더 커보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고, 어른들은 절대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된다. 그래서 어린애들이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자기파괴적인 결론이다.


프롤로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수수께끼 풀이에 관련이 있을 것이므로 사오리와 후미야에게 뭔가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반복해서 등장하는 '자살하기 좋은 숲'을 연결시키면 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수께끼 풀이 보다는 작가가 던지는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편이 작품을 음미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십자가는 죄를 진 사람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이 지는 십자가가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하다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사죄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사죄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이청준의 <밀양>에서 아이를 살해한 범인이 감옥에서 신을 받아들인 후 '피해자 가족의 어떠한 복수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온화한 얼굴로 말한다. 피해자 어머니는 절규한다.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http://blog.naver.com/rainsky94/22066784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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