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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레스코 ㅣ 홍신 엘리트 북스 90
아베 프레보 / 홍신문화사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이야기는 <귀인의 수기>를 쓴 저자가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6개월쯤 전, 우연히 만난 청년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청년의 이름은 슈발리에 데 그뤼였는데, 매춘부 무리 -행실이 나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아메리카행 선박에 실릴 예정인- 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가 보살피고자 한 매춘부의 이름은 마농 레스코였다.
슈발리에는 P에서도 명문가로 알려진 집안의 자식이었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아미앙에 보내져 철학 과정을 마칠 예정이었으나, 우연히 마농 레스코를 만나 한 눈에 반해 자신의 인생을 흙탕물에 내던지고 만다.
당시 마농은 부모의 뜻에 따라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녀원에 갈 처지 -였거나, 그렇게 주장하는 처지- 였다. 마농은 슈발리에가 도피를 제안하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에 응해 수중에 있는 얼마간의 돈으로 쾌락을 좇으며 아무런 계획 없이 순간을 살아낸다.
젊고 아름다운 두 남녀는 돈이 있는 동안은 서로를 애무하고 정념을 채워주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마농은 천성이 어리석고 사치욕과 쾌락이 충족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다른 사내에게 몸을 의탁하고 사치품과 연금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슈발리에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그를 애무하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슈발리에는 어찌어찌 B라는 사내로부터 마농을 되찾아오지만, 마농은 그 뒤로도 M.G.라는 돈 많은 중늙은이와 그 아들로부터 일정한 금전을 약속 받고 가차 없이 슈발리에를 배신했다 .
결국 슈발리에는 그녀의 사랑을 얻는 길은 풍족한 돈으로 그녀의 허영을 충족시켜주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 사기 도박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실제로 얼마간 돈을 따기도 하여 쏠쏠한 재미를 본 슈발리에는 자신의 인생이 어쩌면 순탄하게 흘러갈 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집이 화마에 휩싸이는가 하면 하인들이 돈을 도둑질해 도망치는 등 불운이 찾아오고 인생은 그의 계획과 달리 나락으로 치닫는다.
그럴때마다 슈발리에는 디베르쥬라는 친구의 우정을 서슴없이 이용했다. 물론 종교적 열정이나 미덕에 대한 열망이 아주 잠깐 그에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마농의 아름다운 모습에 번번히 굴복한 슈발리에는 망나니 짓을 멈추지 못했고, 끝내 감옥에 갇힌 뒤 무리하게 탈옥하는 과정에서 살인까지 저지른다.
결국 슈발리에와 마농의 끝간 데 없는 행동은 '아메리카로의 강제 이송'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신대륙에서 정직한 삶을 개척하려던 슈발리에는 마농의 미모에 반한 또 다른 사내와 결투를 벌인 끝에 그를 상처 입힌 뒤 사막으로 도주한다.
쇠약해진 마농이 사막에서 끝내 목숨을 거두자 시체를 묻어 준 슈발리에는 탈진해 무덤 위에 쓰러진다.
뒤늦게 슈발리에가 결투 당시 손속에 정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된 마을 사람들이 슈발리에를 찾아나서고, 결국 구출된 그는 다정한 친구 디베르쥬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의 방탕한 행실로 인해 충격을 받아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아베 프레보는 작품 속 슈발리에 처럼 유서 깊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종교와 군대를 오가며 열정을 불태우다, 저작에 몰두해 <귀인의 수기>라는 소설을 쓰게 된다. <마농 레스코>는 <귀인의 수기> 7권 중 마지막 권에 해당하며, 1731년에 발표된 이후 수없이 중판되었고 발레와 오페라, 영화 등으로 여러차례 각색되어 제작 되었다.
슈발리에와 마농의 비극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정념으로부터 시작되어, 솔직함으로 증폭된다.
작품 속 마농은 외견상 슈발리에를 배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언제나 '슈발리에를 사랑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되뇌이며, 그녀의 이러한 고백은 거짓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녀는 자신만의 도덕관과 정조관념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뿐 그 이상의 불순한 의도를 품을 만큼 복잡한 것은 계획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순진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자신의 욕망에 정직한 악녀이다.
그렇다면 슈발리에의 잘못은 무엇인가? 그 역시 정념의 불길에 솔직하게 몸을 내맡겨 미덕과 신념을 내팽개친 죄밖에 없다. 그는 마농의 육체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독점적으로 차지할 수난 있다면 다정한 친구의 우정도 버릴 수 있고, 사기를 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생명을 빼앗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이 될 수 있다.
결국 만나서는 안 되는 두 젊은 조합이 만나 상대방을 기진맥진하게 하고 영혼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저당 잡혀가며 삶 자체를 파괴하는 한바탕 살풀이를 한 끝에 한 사람은 죽음으로 퇴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돌아온 탕아가 되어 이야기는 끝이 난다.
정념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욕망을 동기로 하는 행동의 묘사는 훌륭하지만,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매우 단순하게 처리하는 점과 우연적인 사건들이 반복되는 점 등은 다소 소설을 유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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