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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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은막의 스타 최여사를 외할머니로 둔 민수. 외할머니가 죽고, 살던 집이 사채업자에게 넘어가자 여자친구 빛나와 당연하다는 듯 이별하고 혼자가 된다.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긴 민수는 최여사의 책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하는 일이라곤 인터넷 퀴즈 채팅방을 전전하는 것. 민수는 그곳에서 퀴즈를 풀다보면 어쩐지 자신의 존재 의미가 확인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민수는 '벽속의 요정'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민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가 좋아졌다.

한편 같은 고시원 옆방에는 공무원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수희가있었다. 민수는 그녀와 오며가며 얘기를 하다 친해졌고, 어느 날엔가는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얘기도 나눈다. 하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지적인 유희와는 거리가 멀었고 먹고 사는 고단함이 한껏 묻어나는 대화였다.

수희는 어딘지 현실과 동떨어진 민수의 태도, 그리고 박학다식한 면모를 동경하지만 민수는 그녀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가진 돈이 떨어져 가던 어느 날 퀴즈쇼에 나가 우승을 하면 상금을 받는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퀴즈방 참가자들도 거드는 통에 민수는 퀴즈쇼에 참가한다. 하지만 퀴즈쇼 우승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벽속의 요정'을 만났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민수의 착각이었다. 사실 '벽속의 요정'은 퀴즈쇼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민수가 엉뚱한 여자에게 말을 거는 순간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뒤 민수와 '벽속의 요정'과 다시 만난다. 한눈에 '벽속의 요정'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둘은 대화가 잘 통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진 민수는 데이트 장소에 나갈 차비나 밥값도 없었다. 민수는 염치 불구하고 수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을 하는데 그녀는 선뜻 민수에게 돈을 건냈주었을 뿐 아니라 더 필요할 거라며 더 주기까지 했다.

얼마 뒤 수희가 자살한다. 아마도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친구와 공무원에 자꾸 떨어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런 것 같았다.

그녀의 자살과 고시원에서 내쫓긴 사건으로 민수는 비로소 현실의 냉혹함을 자각하게 된다. 수상한 지하 퀴즈쇼에 참가하게 된 것은 이런 조바심 탓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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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팔기 힘든 것이 바로 지식이다. 지식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생산해 내지 않기에 날것의 지식은 구매자가 별로 없다. 그래서 소설에서 지식을 뽐내는 것은 인세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물결과 인터넷 바람을 타고 그 지식을 소설에 녹여내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잡다한 지식을 이미지에 녹여 내고 생활의 고단함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만들면 '쿨함'이 된다. 이 '쿨함'을 파는 것이다. 그 '쿨함'이 존재하지 않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어림 없는 것임에도 잘 팔린 이유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현실이 너무 고단했으므로 '쿨함'이라는 단 꿀을 빨며 나뭇가지에 메달린 자신의 처지를 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쿨함'을 그대로 파는 것은 하수이다. 이 '쿨함'을 다시 '생활'에 녹여내고 반성과 성찰을 조미료로 첨가하거나, 시대인식과 어떻게든 결합시켜 반자본주의적 결론으로 유도하면 이제 독자 뿐만 아니라 평론가의 찬사도 받는다.

김영하 만큼 '쿨함'과 '생활'을 잘 녹여낸 소설가도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잡다한 지식을 뽐내며 돈벌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김영하의 작품들은 재미를 보장한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소설 속 세계에 나는 풍덩 뛰어들지 못하겠다. 그것은 작가 자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소설을 잘 '지어내는' 작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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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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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영은 연애도 사랑도 인생도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나영은 성우와 연애를 하고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는 지훈이라고 따로 있다. 나영은 지훈과 때때로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는데 이런 둘의 관계를 절친인 은주와 수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성우는 지훈을 은근히 의식하고 경계했고, 은주는 지훈과 사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적 연애가 그렇듯 나영과 성우가 열정이 다해 헤어지고, 은주와 지훈도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어 멀어진다.

얼마 뒤 지훈이 나영에게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너였다고 고백한다.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도 유일하게 두 번 본 드라마가 있다. 허영만 원작, 김래원 남상미 주연의 2008년 드라마 <식객>이다. 식재료를 고르고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거나 경연을 벌이는 설정에 청춘 남녀의 풋풋함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 즈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다. 무레 요코의 <카모메 식당>이나 아베 야로의 <심야 식당>,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제빵왕 김탁구> 등이 이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역시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에게 오늘의 작가상 영예를 안겨준 <백수생활백서>와 함께 산 책인데, 2011년에 사서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는다. <백수생활백서>는 꽤나 참신했었는데 이 책은 연애와 요리라는 두 가지 재료가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밋밋한 맛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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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한동림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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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진형은 애인 인숙과 유령에 대해 이야기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떠올린다. 그날 진형은 빈소를 지척에 두고 낯선 여자와 동침했다. 그 기억은 부끄러움이 되어 진형을 괴롭혔다. 맏손주였던 진형은 숙부를 도와 할머니 염습을 하고 장례를 치른 기억을 떠올린 끝에 인숙에게 유령이 있다고 했다. 인숙은 유방암과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유령이 있다면 다행이라며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귀가>

닷새째 계속된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중학생 아이와 어머니를 본다. 불현듯 형과 어머니의 기억이 의식에 스며든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던 어머니지만, 정작 형이 아플 때는 제대로 된 약을 쓰지 못해 형이 불구가 되었다며 일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나'를 형으로 착각해 누렇게 변색한 이불을 한사코 물려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불을 불에 태우니 그 안에서 어머니가 감춰둔 돈이 흘러 나왔다. 형은 그 돈은 내 다리 값이라며 서럽게 운다.

<빛 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사장 면전에 사표를 던진 영훈을 위해 동료 직원들이 송별회를 열어주겠다고 한 곳이 하필이면 창신동 환희였다. 동료들은 나를 대단한 영웅인양 추켜주었다.

그 술집에 대한 기억은 은주와, 그녀를 유다처럼 배신했던 못난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술집에서 '나'는 억병으로 취했고, 따라온 여자와의 관계도 치루지 못한다.

<피어나는 산>

황학산 성불암에서 평섭은 목탁을 깎으며 장영감의 지리한 과거사를 듣는다. 겨울은 불상 조각장이들에게 긴 휴식과 정착을 의미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 휴식기에 들어갈 참이다. 불상을 깎는 평섭의 의식 속으로 그림에 미쳐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저주하던 어머니의 기억 따위가 떠올랐다.

그러다 한 여자가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추위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산 꼭대기로 가겠다는 둥, 백화산으로 데려가 달라는 둥 횡설수설한다. 평섭은 여자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쉬게 해주며 상념을 이어갔다.

다음 날 여자는 자취를 감추었는데 덮고 있던 담요를 관세음보살상에게 씌워 놓고 떠났다. 담요를 치워보니 관세음보살상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난>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던 현숙이 훈련을 위해 산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한다.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며 시시포스의 신화와,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함께 캠프를 나섰다 실종된 박선배의 기억 따위가 떠오른다.

<변태 시대>

삼류영화관에서 그는 <빠삐용>으로 추정되는 영화를 보고 있다. 주인공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고, 옆자리에 호모가 앉아 추근댄다. 그의 의식이 과거로 향한다. 도로에서 들렸던 기관총 소리, 아내와 태중의 아이가 사망한 기억.

탈출에 실패한 영화 속 주인공이 스크린에 비추고, 그 스크린을 나방 한 마리가 영사기에 비춰 가로 막는다.

<핏빛 바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에 '나'는 혼란을 느낀다. 아버지는 분명 내 손으로 죽였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정신과의사를 앞에 두고 '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집을 나간 어머니, 형과 '나'를 학대했던 아버지. 형은 나를 아버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집을 나갔고, 나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최근 죄책감에 형사에게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있다니.

의사는 내가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틈입하는 기억. 찾아낸 형, 그리고 형에게 학대받았음이 분명한 조카들. '내'가 죽인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단 말인가.

<혹서의 계절>

며느리 옥순이 마을 앞 횡단보도에서 화물트럭에 치어 숨진 뒤 아들은 손자와 손녀에게 함부로 하며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날 며느리의 죽음을 지켜본 목격자들은 자살 같다고 했다. 김노인은 억장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빵공장을 빌려 한여름에 땀을 바가지로 쏟아가며 일을 했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그런 현실에 절망에 트럭에 몸을 던졌을까.

아이들과 아들, 그리고 김노인이 다시 희망을 부여잡고 빵공장을 열어 빵을 만들다 김노인은 깨달았다. 과로와 탈수가 현기증을 일으켜 며느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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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림 소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과거의 한 장면이 틈입하며 시작된다. 과거는 대게 아팠던 기억들인데 상처가 벌어진 채로 잊혀지거나 무의식 속에 묻혀있던 순간들이다. 그 과거는 현재로 이어져 있으므로 어느 때고 상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띠고 있다. 소환된 과거는 현재와 의식 속에서 뒤섞인다. 현실과 과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경계의 어느 부분을 한동림은 소설로 포착해낸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때로 과거는 윤색되거나 왜곡되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과 만나 격렬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고, 재해석되며, 현재와 화해를 시도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작품 해설에 앞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한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한편,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한강은 한동림의 동생이다)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그 지점에서 이뤄지는 진지한 성찰과 탐구가 우리를, 그리고 이 사회를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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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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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때문이었다. 장정일은 자신의 꿈이 '무엇무엇'이 되어 5시에 퇴근한 뒤 딱딱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었노라고 그 책에 적고 있다.

내가 막상 장정일의 못 다한 꿈을 이루려고 그 직업을 가져보니, 장정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빙충이였다. 업무는 5시에 끝나지 않았고, 잘리지 않는다 뿐이지 스트레스가 심했으며, 주거 역시 불안정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무수히 많았고, 전쟁이 나면 어디로 가서 무엇무엇을 하라는 것까지 카드로 적어 속박했고, 월급은 겨우 먹고 살만큼 줬다.

그러다보니 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업무가 바뀌기를, 진급을 해서 직급이 올라가기를, 다른 곳으로 발령 받기를 바라며 유예된 시간을 견디곤 한다. 그리고 기다리던 진급이, 보직 변경이, 전보 발령이 이뤄지면 다시 다음번 진급을, 다음번 보직 변경을, 다음번 발령을 기다리며 괴로운 시간을 견딘다.

그렇게 한 20년 뺑뺑이를 돌면 얼추 남은 직장생활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거지반 결정이 되는데, 문득 허탈한 생각이 든다. 다음번 진급을, 발령을 위해 현재를 견디다 보니 가장 중요한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참고 견딘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되는 아이러니.

정유정이 악을 다루는 방식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주인공과 함께 저 밑바닥으로 함께 떠밀려 가며 광적으로 휘갈겨대는 묘사는 사뭇 빼어난 데가 있어 몰입감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지만, 다시 현실로 빠져나오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때로 인물들에 휘둘려 허우적 대거나,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정쩡한 지점에서 힘이 달려 마무리 짓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런데 <완전한 행복>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고유정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이미 출발점이 명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호흡과 내공이 강해진건지 잘 모르겠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저 문장을 읽노라니 매번 현실을 부정하며 다음번 이벤트까지만 어떻게든 참고 버티자는 식으로 직장 생활을 해온 내 과거가 오버랩 된다. 완전한 행복이 어디있겠는가. 그저 다음 진급, 다음 발령만 바라보며 달려온 내 직장생활도 어찌 보면 저놈의 '완전한 행복' 신기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8904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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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슬럼버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사카이 마사토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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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기는 대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모리타로 부터 8년 만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나간다. 둘은 대학 시절 어느 날처럼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함께 햄버거를 먹고 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리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빚을 진 자신에게 접근한 수상쩍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리타는 '모든 것이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이니 도망치라고, 너는 오즈월드처럼 되고말 것이라고' 하며 아오야기를 차에서 밀어낸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차에서 나온 아오야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경찰들로부터 일단 도망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이 들려온다.

매스컴은 총리, 그리고 총리 암살범 아오야기의 친구 모리타가 폭사했다고 떠들어댔다. 아오야기를 뒤쫓는 경찰들은 서슴없이 아오야기에게 총질을 해댔고, 매스컴은 아오야기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속속 제시했다.

하지만 영상 속 '아오야기'는 아오야기 자신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닮은 이가 사칭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최근 2년간의 일들이 아오야기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년 전 아이돌 린카를 구해주어 매스컴으로부터 영웅처럼 취급되던 일,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누명을 쓴 일, 친근하게 접근한 여성으로부터 무선헬기 조정을 배운 일 따위였다. 그리고 모리타의 마지막 말, '너는 오즈월드처럼 되고 말 거야' 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오즈월드는 케네디를 암살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감옥으로 압송되던 중 잭 루비에게 살해 당했다. 오즈월드가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엔 여러가지 의심쩍은 정황이 있었지만 진실은 묻혀버리고 만다. 아오야기는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후배 가즈, 그리고 첫사랑 히구치 등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시작 부분 기억나?" 그렇게 말한 뒤 모리타는 첫 부분을 흥얼댔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옛날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는 의미던가?"

"반사적으로, 대학 시절 함께 놀던 때가 떠올랐어."

"대학 시절?"

"돌아갈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는 늘, 그 시절 우리가 떠올라."

"골든 슬럼버". 가즈는 노래를 그치더니 말했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라는 구절을 반복했다.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옛날에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어느새 다들 나이를 먹고."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사카이 마사토 주연의 2010년판 영화 <골든 슬럼버>와 노동석 감독, 강동원 주연의 2018년 리메이크작 <골든 슬럼버>,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2008년도 소설 원작까지 <골든 슬럼버> 여정을 마쳤다.

찬란했던 한 때는 거창한 목표를 공유했다거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함께 매진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찬란했던 게 아닐까 싶다. 목적 없이 보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믿음, 신뢰, 이해, 그런 것들은 어떻게 다시 만들어보려 해도 억지로는 안된다.

어른이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가족이라는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최소 계약단위에 매몰되어, 살기 위해 직장에 나가다 보면 '목적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잊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함께 빈둥댔던 친구와 선후배 얼굴이 떠오르면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도입부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를 흥얼거릴 수 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863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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