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시나리오걸작선 42
배창호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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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에 해가 조용히 솟아오르면, 공중변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줄을 선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이곳에 언제나 한쪽 손에 '검은장갑'을 낀 아낙 명숙이 열 살 난 아들 준일, 그리고 정식 혼례를 치르진 않았지만 사실상 남편이라 생각하고 함께 지내는 태섭이 살고 있다. 태섭은 명숙의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셈이다.

명숙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지만 태섭은 도박으로 허송세월하며 '한달만' 타령을 했다. '한달만' 지나면 정식 혼례도 치르고 돈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이다. 명숙은 속이 타들어갔지만 꾹 참고 가게를 얻어 삶을 꾸려가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명숙과 눈이 마주친다. 기사는 명숙을 알은 체 한다. 그는 주석이었다.

주석은 명숙의 첫번째 남편이었고, 준일의 친부였다. 주석은 배운 것 없이 가난하게 살다 소매치기로 호를 날렸다. 경찰에 첫번째로 달려갔을 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명숙은 번번히 감옥에 가는 주석을 기다리며 하세월할 수 없어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검은 장갑은 그와 살 때 준일이를 홀로 키우다 뜨거운 물을 쏟아 생긴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 꼈던 것이다.

준일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엇나가다 급기야 도둑질을 일삼기 시작한다. 주석은 준일이를 자기가 제대로 키우겠다면서 명숙이도 다시 돌아와주었으면 한다. 한편 태섭 역시 명숙이 없인 못 산다며 속울음을 운다.

준일에게 친부의 존재를 알린 명숙이 주석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태섭이 명숙에게 '자신이 과거에 누구를 죽인 뒤 도망자의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한 뒤 경찰에 자수한다. 한달 뒤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데도 불구하고 태섭은 과거 자신이 죽인 자의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고도 용서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원작은 이동철의 소설이다. 이동철은 필명인데 본명은 이철용이다. 그는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엔 신한국당 지역구위원장을 지낸 다소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배창호가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연출했는데 김보연(검은장갑), 안성기(주석), 김희라(태석), 공목사(송재호) 등 상당히 화려한 배우들이 함께했다. 데뷔작인데도 1982년 대종상, 여우주연상(김보연), 남우주연상(김희라), 특별상 신인부문 감독(배창호)을 휩쓸어 상 복도 적지 않았다.

배창호는 이후 고래사냥(19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시대를 풍미한 작품들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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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링 룸 스토리콜렉터 80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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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교사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과 열정을 인정받은 교사 코라가 다량의 휘발유를 실은 차량을 호텔로 돌진시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 동료들과 이웃은 그녀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마을 보안관 루서 틸먼은 코라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오랫동안 써 온 소설을 발견하고 수사에 참고하기 위해 집으로 옮겨 놓는다. 한편, 그날 밤 코라의 집에 누군가 불을 질러 증거들이 깡그리 사라져버린다.

겨우 건진 소설을 조사하던 보안관은 그녀가 발작적으로 적어내려간 문장들을 통해 그녀가 최근 교사상을 받았던 장소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다.

한편, 나노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인류의 뇌를 통제하고자 하는 소시오패스 집단은 매년 위험인물 8천 4백명만 제거하면 평화로운 세계가 유지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유일한 골칫덩이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전직 FBI 요원 제인 호크.

루서 틸먼과 제인 호크는 각자의 사건을 따라 가다 '아이언 퍼니스'라는 곳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사건 해결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이 마을 주민 전체가 소시오패스 집단에게 뇌를 지배당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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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딘 쿤츠는 초기에는 여러 필명으로 SF소설과 스릴러를 발표했으나 1986년 부터 본명인 '딘 쿤츠'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해오고 있다.

딘 쿤츠는 종종 스티븐 킹과 비교되곤 하는데 플레이보이지에서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 스톤스라면, 딘 쿤츠는 비틀스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두 작가 모두 공포와 스릴러 계통 소설을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 딘 쿤츠가 공화당 지지자인데 반해 스티븐 킹이 민주당 지지자라는 점 등 대중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점을 잡지가 포착하여 언급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딘 쿤츠의 소설은 스티븐 킹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원만한 플롯과 안전한 전개, 예측 가능한 복선과 튀지 않는 결말 등이 진부한 느낌을 주는데 <위스퍼링 룸>도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의 세뇌("입후보자(만주 Manchu)놀이 하지")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 범죄 가능성 측정 아이디어를 적당히 버무려 만든 그저그런 서스펜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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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
정명섭.이가희.김효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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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어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소설을 찾아 읽었다. 당시엔 소설이 좋았다기 보다 지루한 학교에서 시간 때울 무언가가 필요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영한대역문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엔 영어, 한쪽엔 한글이 나온 그 책은 자율학습 시간에 떳떳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방편이 되어 주었다. 그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축약본,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 같은 것들을 매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가서 책 한 권씩 읽고 집에 돌아오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이라는 테마로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고, 배경이 된 곳을 답사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책이다.

박완서의 <나목>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몰랐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책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두 권 모두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별로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라디오에 소개되는 사연들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은 있지만 그 이면에 '배운 작가'의 자의식이 느껴져서 싫었다. 물론 박완서 보다 한 술 더 뜨는 공지영도 있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서울이 배경이다. <나목>의 주인공 이경이 다녔던 미군PX는 미쓰코시 백화점이었다가 현재는 신세계 본점이다. 나는 2007년 부터 4년간 신세계 본점 바로 옆에 위치한 중앙우체국 6층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엔 매일 관광가는 기분으로 회사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서대문 뒤편의 달동네로 추정되는데 이곳도 나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그 달동네 위쪽에 예전 사직사라 부르던 곳이 있었다. 우체국 공무원들의 숙사로 사용 되다가 후에 우체국공익재단이 인수하여 현재는 암환자 숙소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금보라가 영희로 분하는 그 영화를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던 나는 대학 1학년 때 조세희의 작품집을 사서 읽었다. 사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외에는 다소 난해한 작품들이 많아 읽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서울 중림동으로 일제 시대 때부터 유명한 빈촌이었으며 현재는 성요셉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한다.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는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가 훗날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와 만난 일이 있다고 한다. 조세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김중미 작가가 읽고 빈민운동에 투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제가 몹쓸 짓을 하였네요"라고 말했다 한다. 자신의 작품이 오랜 기간 읽히고 공감 받는 사회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리라.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배경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에서 크래프트 어쿠스틱 기타를 사고 인터넷 보다 싸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악기는 인터넷 보다 오프라인이 쌌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음 작품은 나에게 충격과 전율을 안겨줬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작품의 배경은 세브란스 병원과 그 인근에 난립하던 포장마차로 짐작된다. <무진기행>을 필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의 분위기가 작품의 배경과 함께 오롯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역사>는 동대문과 창신동 일대가 배경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채만식의 <미스터 방>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연상케 하는 소설이다. 채만식은 일제 말기에 깨끗한 이름을 더럽혔는데 이를 부끄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의 배경은 피난민들이 모여들던 현저동과 서촌 일대이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대단지 사태, 즉 1971년 8월 10일 현재 성남시 수정구 일대에서 벌어진 봉기사건이 배경이다. 작가 윤흥길은 1973년 성남 숭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사건 2년 뒤 부임한 터라 학생들의 얼굴이 어둡고 소심했다 한다. 그러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은 청년을 우연히 만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뒤 학교를 그만 두고 소설을 썼는데 바로 이 작품이다.

한때 사랑했던 작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뒤를 잇는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99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이 정비된 곳이 아니었다. 2000년 들어서 인천시가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 지금과 같은 외형이 되었다. 월미도와 자유공원, 북성포구, 화도진 공원... 1990년대 초중반 까지 인천의 중심은 동인천이었고, 시위도 동인천 백화점 앞에서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때의 추억이 아직도 생각 나 인천에 가면 꼭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지만 쇠락한 도시 이미지는 감출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오정희는 박근혜 정부 최악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여하여 스스로 자신의 명성을 흙탕물에 버린 작가이다.

다음 작품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다.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고, 많이 선물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부천에서 3년간 근무할 때 가끔 원미동을 가보았다. 부천 내에서도 1기 신도시인 신중동과 그 이후 건설된 상동 일대에 밀려 상대적으로 낙후된 있는 곳. 지금도 전철역이 멀고 단독/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있어 개발이 더딘 탓에 과거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은 인천 만석동이다. 대학 다닐 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매년 여름이면 만석동으로 빈활을 갔다. 주거환경이 낙후되고 철거 위협이 있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다. 당시 나는 등에 들통을 짊어지고 재래식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소독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 어름의 여자아이가 자기집 화장실을 안내한 뒤 매우 창피해 하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작품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다. 황석영 작품 중 유독 손이 안 가서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인데 서울역과 용산 일대가 배경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일독해봐야 겠다.

어쩌다 집어든 책인데 소설의 배경들이 대학시절 돌아다녔던 곳이거나 직장과 연관이 있는 곳이어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인천과 서울 뿐 아니라 다른 곳을 배경으로 한 2편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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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윤경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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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위장의 밤 >

대형 마트를 운영하여 재벌급 부를 축적한 마사키 도지로의 희수 축하연이 그의 저택에서 개최된다. 파티 도중 주인공인 도지로가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서재로 도지로를 부르러 갔던 사람들은 그가 천장에 메달린 채 대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세번째 부인 에리코는 아직 정식 혼인을 못 했기 때문에 유산을 못 받을까봐, 부사장이자 사위인 마사키 다카아키는 지분 상속 결과 후계에서 밀려날까봐, 그의 사망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시체를 산으로 옮겨 한달 쯤 후에 발견되게 만들되, 그 사이 이혼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혼인관계를 만들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가 사라져 버린다. 범인은 왜 도지로의 시체를 숨겼을까? 현장은 어떻게 밀실이 된 것일까?

< 덫의 내부 >

부동산 업자이자 사채업자인 야마가미 고조가 욕조에 몸을 담근 상태에서 사망한다. 아내 미치요는 고조의 평소 행동거지와 너무 다르다며 그가 타살당했다고 주장한다. 정황을 보니 그는 감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범인은 어떤 계획을 세워 그를 죽이려 했을까?

< 의뢰인의 딸 >

미유키가 집에 와보니 경찰이 와 있다. 2층에는 엄마 다에코가 심장을 칼에 찔려 사망한 채였다. 경찰은 사망 추정 시각 아버지 요스케가 처제 오쓰카 노리코를 만난 사실을 확인하고 용의자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다에코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다 보니 문화센터의 나카노 오사무라는 남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그가 집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 탐정 활용법 >

후미코라는 여성이 남편 아베 사치오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탐정이 남편과 불륜 관계로 추정되는 여자의 사진을 찍어서 가져다주자 후미코는 흠칫 놀라더니 조사 중단을 요청한다.

얼마 뒤 후미코의 20년 지기 마나베 부부와 후미코의 남편 아베 사치오가 한 호텔에 묵는다. 마나베는 아내 아키코에게 후미코도 온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마나베와 아베가 맥주를 마셨는데 둘 다 죽고 만다. 마나베의 아내인 아키코는 남편이 따라준 맥주가 잔을 넘치려 해 남편 잔에 따랐다고 진술한다.

경찰은 아베 사치오의 불륜 상대가 마나베 아키코였고 이를 알게된 마나베가 둘을 독살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나베가 안주를 가지러 간 사이 아내가 맥주를 먹지 않고 자신에게 따라주는 바람에 모르고 이를 마신 마나베가 어이없이 죽게 되었다는 것이 경찰의 추리였다.

< 장미와 나이프 >

와에이 대학 교수이자 이공학부 학부장인 오하라 다이조 교수는 둘째 딸 유리코가 임신한 것 같다는 주치의 하야마의 말에 분개한다. 딸에게 아이 아빠를 대라고 겁박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다이조 교수는 조교들 중 한 녀석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그런데 얼마 뒤 큰 딸 나오코가 술에 취해 유리코의 침대에서 자다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정황상 그 날 알리바이가 없었던 조교 간자키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간자키도 자살하고 만다.

이것으로 사건은 끝나는가 싶었지만 탐정들은 전혀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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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발매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유성의 인연>과 같은 공전의 히트작들이 소진되자 다소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초기 작품들까지 번역 발간하여 그런 듯 하다.

<장미와 나이프>에 등장하는 탐정클럽은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이름이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남녀 한쌍이 등장한다. 이들은 독자에게 수수께끼 풀이를 대신 알려줄 뿐 추리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개성 없는 무색무취의 인물들이 소설 진행을 도와주는 느낌이랄까.

<위장의 밤>의 범인은 다카아키다. 그는 횡령을 추궁하는 마사키 도지로를 충동적으로 살해한 뒤 자살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시체를 발견한 사람 중 하나가 '요새 경찰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금방 알아낸다'는 말에 타살이 드러날까봐 부랴부랴 시신을 숨긴 것이다.

<덫의 내부>는 채무관계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이 작당하여 야마가미 고조를 살해한 것이다. 이들은 일부러 싸움을 일으켜 세탁기에 부딪혔고 나중에 야마가미 고조가 누전된 세탁기에 감전된 것으로 처리하려 했다.

<의뢰인의 딸>의 노리코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다. 남편은 이를 알면서도 미유키에게 '엄마가 바람 피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자살했다'고 사실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바람 상대에 대한 원한까지 겹친 남편은 처제를 설득해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언니인척 전화를 걸어 내연남을 집으로 유인하여 그가 범인인 것처럼 몰아가려 한 것이다.

<탐정 활용법>은 이중 트릭이다. 범인은 친구 사이인 아키코와 후미코. 아키코는 남편에게 바람 피우는 것을 들켜 이혼을 강요 당하고 있었고, 후미코는 주식에 손을 댔다가 폭락하여 수습해야 할 상황이었다. 후미코는 자신의 친구 아키코와 남편 아베 사치오가 불륜인 것처럼 정황을 만든 뒤 아키코의 남편 마나베가 둘을 죽이려다 아키코만 극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꾸민다.

<장미와 나이프>의 범인은 유리코다. 유리코는 다이조 교수의 친딸이 아니라 혼전에 교제하던 기쿠이 교수의 딸이었다. 기쿠이의 조교 간자키가 이를 알고 유리코를 협박하자 유리코는 평소 미워하던 배다른 언니 나오코와 기쿠이를 한 번에 제거한 것이다. 임신중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공범은 주치의인 하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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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지음, 강성욱 옮김, 장운갑 편역 / 경성라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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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일할 때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여 구입했다.

책날개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지은이 알루모룰레 스마나사라는 1945년 생으로 스리랑카 상좌 불교 장로라고 하는데, 13세에 출가해서 '득도 했다'고 쓰여있다.

내가 아는 '득도' 뜻이 여기 쓰인 것과 다른 건가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 두고, 그는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가 '득도는 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것인지' 고마자와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일본 테라바다불교협회에서 초기불교 전도와 명상지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 소개를 읽다보니 어쩐지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끝까지 다 읽었다.

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는 철저히 이분법적인데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이고, 화를 참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책 앞부분에 나오고, 이후로는 지리한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알루모룰레 스마나사라는 '극단적인 관념론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남이 나에게 화를 내게 만드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라'는 것이 그 비법이다. 이는 어떤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인데, 남이 때리면 맞고 누가 내 목을 치려 하면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석가는 '예컨대 무서운 도둑들이 들어와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은 자신을 붙잡고서 '이놈을 베어버리자. 재미있을거야' 하고 생각하여 단지 그 이유만으로 톱으로 자르려고 한다고 합시다. 그때조차 '싫다'라고 화를 내서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 당신들은 부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불제자가 되고 싶다면 그 정도의 각오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죽임을 당하는 순간조차도 만약 화를 내면 마음은 흐트러지고 지금까지 쌓은 덕은 모두 무효가 되어버리며 지옥에 가게 된다. 그러니 죽임을 당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된다.(176p)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조언인가. 누가 내 목을 치는 순간 화를 내면 지옥행 확정이라니!

게다가 지은이는 일본에 오래 살아서인지 몰라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하는 방법으로 친절하게 '이지매'를 권한다.

불교 신자들의 경우 절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모른 체해서 소외시키고 무시합니다.(114p)

'당신은 나에게 손해를 줬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117p)

아니 나를 때리고 죽이려고 해도 화를 내지 말고 참으라고 하더니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이지매를 권한다고? 물론 뭐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부연설명은 있지만 통상 위와 같은 방법을 이지매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지은이가 득도한 사람은 커녕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한 사람이 맞나 하는 의문도 여러 곳에서 불쑥 불쑥 든다.

누군가 괴롭히면 저는 화를 내지 않고 '그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사람을 괴롭히려고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안다...그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낄 수 있도록 반쯤 놀리는 기분으로 어떤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212p)

불교에서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괴롭히는 것인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얘기이긴 한데, 그럼 지은이가 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방법은 가르쳐 드리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제가 가르쳐준 방법을 쓰기라도 한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212p)

여기서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나머지 30여 페이지를 훌훌 넘기며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9615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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