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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
이현 지음, 김준영 그림 / 풀빛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참 좋다.

좋은 제목을 가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

한 학기에 몇 번 정도 묻는 말이다. 국어 영재 시험을 거쳐 선발된 아이들이라 내심 기대도 많이 되고 이 중에서 좋은 작가가 나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품어본다. 그러나 겨우 한 두 명만 "네, 작가가 되고싶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할 뿐 대부분은 의사나 판사등 미래가 보장된 흔한 직업들을 말한다.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그러나 누구나 될 수는 없는...

그런면에서 작가라는 직업은 관대하고 따사롭다. 특히나 문맹률이 극히 낮은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느낌을 가질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고 또 글자를 쓸 수 있으면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보면 간혹 무엇이 진실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동료 교사들은 나에게 '글짓기 상 타오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상을 타기 위해 글을 쓰라고 말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러이러하게 글을 쓰면 상을 탈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없다. 수십번 강조하는 말은

"너 자신이 글의 중심에 있어야해" 이다.

남에게서 들은 한두마디 말이나 인터넷에서 잠깐 훑어본 몇 가지 유식한 표현들이 좋은 글을 만들 수는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의 일부를 고스란히 종이에 옮겨놓는 것이다. 내 삶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기 위해 우리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누군가의 좋은 글은 그의 삶이 그러하듯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문예대회를 열고, 좋은 글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벽을 마주하며 좋은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도를 닦는 작가들은 우리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한 두번 찾아올까말까 한 그 천우신조의 기회를 위해 날마다 굶을 수는 없는 일...작가는 배고픈 직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권해주면 작가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날까?

앞서 말했듯 우리 사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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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문재 산문집’을 읽고...




‘푸른색이어야했어....’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혼자 중얼거렸던 말이다. 이문재 산문집의 표지색은 진한 주황빛이 아니라 짙푸른 초록색이어야 했음이 자명하다. 시를 쓸 때마다 손을 씻고, 반드시 초록색 잉크만을 사용했다는 네루다의 어딘가를 그는 닮아있었다. 사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그의 산문집 한 권 읽었다는 인연으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지금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영 편치않다. 그러나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그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직설적인 편이며,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뺨치게 입담이 좋다. 아마 기자생활을 오랫동안 한 탓이리라. 갓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기 이름 석자를 책 머리에 또박또박 내걸었다는 사실이 호기롭다.

이 산문집은 시종일관 ‘생태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관되게 흙과 생명을 연관짓고 있었고, 자연과 일치된 건강한 몸만이 지닐 수 있는 인간다움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시인이 북한산 초입에 자리잡은 수유리에 잠시 머물적 가꾼 텃밭이야기는 나로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농부의 쉰둥이 아들로 태어나 우물을 퍼내가며 어른이 된 시인은 도시에 편입해 완전히 적응해 살면서도 흙에 대한 미련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몇 평 되지 않는 텃밭을 갖게되자 수백마지기 농사짓는 촌로가 된 것 마냥 한껏 부풀고, 자못 엄숙하기까지 하였다. 고작 몇 줄 시로나 끄적이던 흙의 숨결을 아니 생명의 고귀함을 손톱에 흙물 들여가며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천원짜리 삽을 사서 몇 번 파보고 난 후 두 손을 들고만다. 뿌리기만하면 저절로 자란다는 상추나 몇 번 뜯어먹고 손을 놓았다. 책상앞에 앉아 펜대나 굴리던 골수 문학 시인에겐(제아무리 생태시인이라 할지라도) 입으로 들어가는 풀한포기 하나 호락호락 내어줄 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나니 요즘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너무 비슷해 ‘풋’하는 웃음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내 몸 속에 새 생명이 자리잡은 뒤 부터는 태교에 좋을법한 것들에 한 번씩 기웃거려보았다. 음악은 물론이며, 좋은 책이나 그림 등이 있으면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하고 태중의 아이에게 좋은 기운이 스며들도록 정성껏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고심끝에 결심한 것이 바로 텃밭가꾸기이다. 아파트 뒤편에 버려진 공터를 텃밭삼아 상추며 오이,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가지, 고추 등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자갈을 골라내고, 이랑고랑 살뜰히 만들고 난 후 거름을 사다가 얼추 맞게 둘러놓았다. 모종을 사러 가서는 주인아저씨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가 공부도 많이 한 양반들인 것 같은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는가라는 퉁도 맞았다. 그러나 나 역시 삽을 들고 하늘을 바라봤던 시인마냥 한껏 들떠 있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이제 막 살이 붙기 시작한 우리 아가에게 먹거리 하나만큼은 안심하고 챙겨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이냐며 연신 벙글거렸다. 글을 쓰다말고 잠깐 뒤켠 텃밭에 다녀왔다. 탱글탱글 방울토마토가 제각각 달려있다. 너무 새파래서 저것이 언제 빨갛게 익어가나싶다. 방울토마토는 상추와 달리 물을 주면 키면 웃자라는 통에 제대로 열매맺지 못한다. 고사직전까지 내버려두어야 제 스스로 악을 쓰고 열매를 키워낸다. 신기한 일이다. 반면 상추는 속아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잡초와 같이 무성해져버린다. 나는 알량하게나마 텃밭가꾸기를 시작하며 사람사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한 곁에서 크는 채소들도 제각기 자라는 법이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 한 세상 사는 이치 어찌하겠는가...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모습이 다르고, 그 성공에 다다르는 방법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음이 너무도 분명하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저마다 땅부자가 되어 어깨를 으쓱거릴때 기자생활하며 월급을 챙겨 사는 시인이 고개를 떨구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싶다. 제 역할을 잊어버리고 지내 종내 잃어버리고 말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지리산을 한바퀴 돌았던 일, 전기없이 켜지는 무공해 헤드랜턴에 의지한채 부인이라 짐작되는 K에게 연서를 적은 일, 청송의 아흔아홉칸 집에서 옛 초가를 그리던 일 등 적어도 이 산문집에 등장하는 시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푸른빛을 띄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금방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푸른 지하수를 끌어 올릴 것 같았다. 또한 시인으로서 본인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사명에 인색하지 않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타고난 글재주로 인하여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면서도 자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야마는 시인이라는 다부진 생각은 그의 뼈 속까지 새겨진 듯 했다. 그런 그는 한 그루 나무로 우뚝 서 살것이라 감히 짐작해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진한 주황색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나무 푸른 촉을 촘촘히 찍은 짙푸른 색 표지가 옳다. 아니면 연두색과 녹색이 군데군데 어울어진 상추잎 색이 제격이겠다. 눈을 감고 책 장을 넘기면 왠지 모르게 포근포근한 흙의 촉감이 느껴지는 책, 비온 뒤 비릿한 흙내음이 코끝에 묻어나는 책, 그리고 나도 모르게 40년 뒤 석유가 고갈되고 나면 내 후손들은 어찌 살아야하나라는 새삼스런 염려를 심각하게 해보게하는 좋은책. 나는 감히 그의 산문집을 이러한 부족한 표현들로나마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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