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꿈 - 간바라 메구미의 두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2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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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중반까지 흥미로움과 궁금증이 가파르게 고조되더니 순식간에 모든게 풀려 버린다.

엉킨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가위로 뚝 끊어 놓는 느낌이랄까.

주인공인 메구미는 참 특이한 인물이다.
능력있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완벽한 남자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수다스럽고 익살맞은 코미디 배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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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리본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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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작가는 천성적으로 고독한 사람인가 보다.

그의 글 곳곳에서 생에 대한 외로움, 때로는 절망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고독한 상황을 감내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글이든지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작가가 되는 것을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기도 한다.


그도 이 책에서 분명히 말한다.

자신이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는 철저한 사적 생활에 대한 명분, 몽상과 환상에 질서를 부여한 형태와 안식의 완성, 현실을 벗어난 사색의 시간과 책 읽을 시간에 대한 직업적인 권리 확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타인과의 은밀한 교감, 성가신 의무를 대신하는 삶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것, 스스로 선택한 진실과 윤리와 가치로써의 작품 세계의 형성화 (210쪽)를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 했다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밝힌 이런 이유만으로도 작가는 고독한 존재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며 고독한 존재가 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단지 그들의 고독이 알맹이없는 멋스러움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철저히 감내하여 일궈 낸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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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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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지식의 정도가 얼마이든 혹은 경험의 질이 어떠하든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물음이다. 작가는 그녀의 소설 [종의 기원]에서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유진은 정신과 의사인 이모로부터 사이코패스 판정 받는다.

미국 브르크하멜국립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고통에 무감각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재범률도 높고 연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일반 범죄자들보다 높다.(출처:두산백과)'고 한다.

그러나 유진이 사이코패스라고해서 그의 즉흥적인 폭력성이나 존속 살인 행각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작가가 유진을 인격적 장애를 가진 이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그는 살인행위를 벌이는 동안 자신에게 그러한 장애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니 사이코패스라는 병리적인 진단명은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살인 행각에 대해 즉각적인 개연성을 부여하고 악인으로서의 인간의 진화를 구체화하기 위한 장치이며 실상은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심연의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주된 의도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유해한 본성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없이 그것을 규제하기에 급급하다. 마치 유진의 이모가 간질약이라고 속이고 알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말이다. 약을 처방하는 행위는 마치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선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를 유해한 반인격적 존재로 낙인찍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런 존재에게 주체적인 선택이나 인간적인 선처따위는 없다. 또한 악한 본성을 드러낸 인간은 선한 존재로 선택된 인간의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묵인한다. 이 또한 인간의 악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쯤되니 인간은 마치 악한 것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같다. 게다가 악이란 생각보다 치밀한 것이어서 선한 것으로 둔갑하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다. 이 책에 따르면 선한 본성이 악한 본성을 제압하기란 도무지 쉽지 않다. 그러니 악에게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그의 화를 돋구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섬뜩한 결론이다.


'도로는 한적하고, 12월의 밤은 스산하고, 바다는 부옇게 젖어 있었다. 저 앞 흐릿한 안개 속에선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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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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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중편소설이 하나로 묶여 연작소설이 탄생했다. 각각의 소설은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중심엔 '영혜'라는 인물이 있다.

첫편인 [채식주의자]에는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경유를 밝힌다. 어느날 영혜는 남편의 성화로 허둥대다 손가락을 베이고 틈새로 방울지는 비릿한 피의 맛이 그녀를 기묘한 꿈으로 이끈다.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의 기억이 되살아 나고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은 개의 기억이 겹쳐진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온갖 추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듯 학대에 대한 기억은 무의식의 밑바닥에 꽁꽁 숨겨 두었던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잠재된 저항감이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표출된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기로 한다. 잔혹한 폭력의 결과물로 인식되어버린 고기덩어리를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몸안에 받아 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육식을 거부한 채식주의자라는 테두리안에 그녀를 가둬 버린다. 구체적인 범주안에 갇힌 이는 그 자체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또 다시 집단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계속해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고기를 그녀의 입에 강제로 쑤셔 넣고 순식간에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영혜는 자신의 손목을 그어 버림으로써 폭력에 대한 저항감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드러 낸다.

두번째 편인 [몽고반점]에서 영혜를 향한 시선은 형부인 인혜의 남편에게로 옮겨간다. 어느날 그는 인혜로부터 영혜의 몸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영감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몽고반점을 향한 열망은 그의 불순한 욕망과 묘하게 겹친다. 결국 그는 영혜와의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의도적인 예술 작품을 완성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것은 비윤리적인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단 한번의 예술적 탐닉으로 그동안 쌓아 온 예술가로서의 명성도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지위도 모두 잃는다.

마지막 편인 [불꽃 나무]에서 영혜는 육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흙 속에 뿌리를 박고 나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무가 자라려면 저절로 얻어지는 물과 햇빛만 있으면 된다. 나무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다른 존재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의 저항은 이제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 혹은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소멸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소멸을 통해 폭력의 대상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바램은 이상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물리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그녀의 정신은 점점 파괴되어 간다. 정신병원에 갇혀 죽어가는 영혜를 보며 혼자서 되뇌이는 인혜의 절규는 그래서 더 비참하다.

'하지만 뭐야.
그녀는 소리내어 말한다.
넌 죽어가고 있잖아.
그녀의 목소기가 커진다.
그 침대에 누워서, 사실은 죽어가고 있잖아. 그것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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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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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내재된 본능에 속한다'고 일찌기 프로이트는 말했다고 한다. 그 욕망이 말 그대로 이유도 목적도 없는 단순한 본능에 의해 발현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느끼는 고독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인간 내부에 자라기 시작한 고독은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파괴의 욕망을 표출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결점에는 죽음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은 삶에 대한 절망과 고독을 떨쳐 버리기 위해 사탕을 빨기도 하고 예술 행위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내부의 빈공간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다. 죽음은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이다. 그들이 고독해지기 전, 그들이 존재하기 전의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인 고독감에 헤매고 있다 한들 한번뿐인 죽음의 순간마저 철저하게 고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그들은 조력자를 찾아간다. 죽음의 방식을 의논하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소멸된 인생에 무슨 미련이 남았단 말인가. 결국 인간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 있을만큼 절대적인 고독은 감내하지 못하는 연약한 몸뚱아리인가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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