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지식의 정도가 얼마이든 혹은 경험의 질이 어떠하든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물음이다. 작가는 그녀의 소설 [종의 기원]에서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유진은 정신과 의사인 이모로부터 사이코패스 판정 받는다.

미국 브르크하멜국립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고통에 무감각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재범률도 높고 연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일반 범죄자들보다 높다.(출처:두산백과)'고 한다.

그러나 유진이 사이코패스라고해서 그의 즉흥적인 폭력성이나 존속 살인 행각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작가가 유진을 인격적 장애를 가진 이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그는 살인행위를 벌이는 동안 자신에게 그러한 장애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니 사이코패스라는 병리적인 진단명은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살인 행각에 대해 즉각적인 개연성을 부여하고 악인으로서의 인간의 진화를 구체화하기 위한 장치이며 실상은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심연의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주된 의도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유해한 본성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없이 그것을 규제하기에 급급하다. 마치 유진의 이모가 간질약이라고 속이고 알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말이다. 약을 처방하는 행위는 마치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선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를 유해한 반인격적 존재로 낙인찍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런 존재에게 주체적인 선택이나 인간적인 선처따위는 없다. 또한 악한 본성을 드러낸 인간은 선한 존재로 선택된 인간의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묵인한다. 이 또한 인간의 악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쯤되니 인간은 마치 악한 것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같다. 게다가 악이란 생각보다 치밀한 것이어서 선한 것으로 둔갑하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다. 이 책에 따르면 선한 본성이 악한 본성을 제압하기란 도무지 쉽지 않다. 그러니 악에게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그의 화를 돋구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섬뜩한 결론이다.


'도로는 한적하고, 12월의 밤은 스산하고, 바다는 부옇게 젖어 있었다. 저 앞 흐릿한 안개 속에선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책속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