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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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이나 글쓰기의 지침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다. 하긴 그런 류의 책이었다면 애시당초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글이나 말이 인용되었지만 그것은 작가의 생각을 길잡이 해주는 차원이다. 한페이지 남짓 쓰여진 짧은 글에서 그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풀어낸 것이 더 쉽게 다가왔다.


작가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밥벌이 수단으로까지 팽창되었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겠지만 그 과정마저 애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글쓰기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이쯤되면 불치병 수준이다. 재밌는 것은 병을 앓는 작가도 그 모습을 보는 독자도 즐겁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난 부럽다.


묵직한 것이 명치끝에 걸려 있는 느낌이 한 해 전부터 들기 시작했다. 뭔가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왜 쓰고 싶은지는 몰랐다. 고민을 하다가 시작한 것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책 읽는 것이라면 원래부터 좋아라는 것이니 쉽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소재를 찾는 것은 쉬웠다. 그렇지만 리뷰를 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써 내려 가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읽어 봤다. 비판적인 통찰과 수려한 문장은 내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비참했다. 그러나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묵직한 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힘을 빼고 생각나는대로 쓰기로 했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닌데 심각해질 거 뭐 있나.


작가도 그런 말을 한다. 너의 얘기를 쓰라고. '너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남들 앞에 내놓는 일이 쑥스럽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라( 77쪽)'고 말이다. 나는 작가의 말을 들어 용기를 내기로 한다. 부끄럽지만 계속해서 나를 드러내 보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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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2-2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쓰신 글도 충분히 재능있으신듯요!
좋은 리뷰 많이많이 써주세요 ^^

책읽는사라 2017-02-26 08:17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니 기분 좋네요^^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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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에서 느낀 배신감을 소설 <28>에서 또 한번 경험한다. 주인공이 죽을리 없다는 당위에 대한 배신감이다. 게다가 죽음의 순간이 너무 슬프다.


원인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존에 대한 이기적인 갈망은 인간을 극한 상황으로 내몬다.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없다면 너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의 본성이다. 평소같으면 그 본성은 심연에 고이 숨겨져 있겠지만 재앙이 닥친 비상사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심을 들먹이거나 도의를 따질 수 없다. 즉각적인 생존만이 결단을 내리는 기준이 된다. 인구의 절반이 죽어 나가는 버림받은 도시에서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도시와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아비규환 상태는 절망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갈등은 있을지언정 인간성 자체를 놓아 버리지 않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선을 택한다.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짐승까지 아우르는 선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이 모든 장치를 극대화 시킨다.


실재로 이와 같은 재난이 닥친다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악의를 드러낼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 모두가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하는 일은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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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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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난다.

학교 도서관이 새로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고 한번에 두세권씩 책을 빌리곤 했다.

주로 외국 작가의 소설이었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일본 작가나 작품에 대해 비합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날,

어떤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을 빌렸다.

책장을 연 그 순간부터 단숨에 이 책을 읽어 치웠다.

정말이다.


'읽어 치웠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개성적인 등장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가 치밀하게 표현해 내는 그들의 물리적인 관계와 심리적인 묘사를 두고 어떻게 책읽기를 중도에 멈출 수가 있을까.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아우르는 방식은 어떤땐 내게 몹시 낯선 방법일때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적인 혼란과 아픔이 더욱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여느때와 똑같은 하루를 함께 보낸 후에 절친한 친구가 혼자서 자살을 했다면 나는 그 삶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 친구가 만약 한 몸처럼 사랑했던 연인같은 이 였다면 나는 그의 상실을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들과 같은 시절에, 딱 그만큼의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을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들의 미숙한 청춘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몹시도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은 다른 것.

누구는 그것으로부터 성숙 하기도 하고 누구는 그것에 굴복 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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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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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간 엄마가 마련한 새로운 집은 호은의 엄마 윤진이 자신의 존재를 성숙시켜가는 곳이자,

지난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장소이다.


어린 호은은 아빠가 배제된 집이 엄마에게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묵묵히 그곳에 속하기로 한다.

하지만 어린 호은에게 그것은 엄마라는 존재가 머무는 '집',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일까?

호은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기숙사로 들어간다.

엄마의 집이 같은 서울땅에 있음을 아는 친구는 없다.

그녀는 결핍된 실체로서의 자신이 속한 집을 스스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호은 앞에 나타난 아빠.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이복 동생을 맡기고 사라진다.

난감해진 호은은 엄마의 집에 동생을 데려간다.

어처구니없이 전남편의 아이를 맡게된 윤진은 전남편을 찾아 나서지만

아마도 시골로 들어갔을거라는 말만 전해 들을 뿐이다.

하는수없이 윤진은 자신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간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기이한 동거가 호은으로 하여금 엄마의 집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평범한 친척 아이처럼 전남편의 아이를 대하는 엄마,

아빠의 전처와 같이 살게 된 호은의 이복동생,

그리고 엄마와 동생과의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 끼어버린 호은.

각각 다른 처지에 놓인 세 여자의 비범한 일상은 엄마의 집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찾아간다.

그리고 저마다 타의로 얽힌 관계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화해를 시도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의 집>은 물리적 공간의 의미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적 공간의 역할까지도 더해 가면서 비로소 그들 각자에게 걸맞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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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문장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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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춘문예 삼관왕의 영예를 안겨준 단편소설 세편이 모두 들어가 있는 소설집이다.

다른 작품까지 포함해 총 아홉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에 각기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흔하디 흔한 일상적인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은 불안감이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얕은 바람에도 물결을 만드는 호수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들은 불안을 야기시키는 원초적 아픔을 치유받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애시당초 치유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포기한 것인가.


그들의 아픔은 태생적으로 그들에게서 파생된 것이다.

물론 그 아픔을 확대시킨 것은 그들을 이질적으로 보는 타인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괴리감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당연히 속시원한 해피엔딩은 없다.


작가의 문장은 짧고 간결하다.

그녀의 짧고 간결한 문장은 주인공의 정서와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불안정한 정신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제격이다.

그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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