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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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난다.

학교 도서관이 새로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고 한번에 두세권씩 책을 빌리곤 했다.

주로 외국 작가의 소설이었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일본 작가나 작품에 대해 비합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날,

어떤 호기심에 이끌려 이 책을 빌렸다.

책장을 연 그 순간부터 단숨에 이 책을 읽어 치웠다.

정말이다.


'읽어 치웠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개성적인 등장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가 치밀하게 표현해 내는 그들의 물리적인 관계와 심리적인 묘사를 두고 어떻게 책읽기를 중도에 멈출 수가 있을까.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아우르는 방식은 어떤땐 내게 몹시 낯선 방법일때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적인 혼란과 아픔이 더욱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여느때와 똑같은 하루를 함께 보낸 후에 절친한 친구가 혼자서 자살을 했다면 나는 그 삶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 친구가 만약 한 몸처럼 사랑했던 연인같은 이 였다면 나는 그의 상실을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들과 같은 시절에, 딱 그만큼의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을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들의 미숙한 청춘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몹시도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은 다른 것.

누구는 그것으로부터 성숙 하기도 하고 누구는 그것에 굴복 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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