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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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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파헤치기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이라는 제목과 작가인 밀란 쿤데라를 매치해보았을 때 떠올랐던 것은 이 책이 그가 소설을 어떻게 구성해나가는지, 즉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 하지만 이 에세이는 어떻게 쓰는가보다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에 초점을 깊숙이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이런 착각에 있어서는 제목의 '기술'이란 단어에 내가 얽매여 상상의 나래를 펼친것일지도.

 

   <소설의 기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들은 문학작품이나 이 시대의 소설들에 대한 그의 견해와 쿤데라의 어시스턴트이자 평론가인 살몽과의 대담, 그리고 소설에 관한 쿤데라의 미학의 열쇠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 속에는 쿤데라 자신의 작품의 언급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문학작품들도 줄곧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통해 쿤데라가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선호하는 작가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있으며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헤르만 브로흐 이 세 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광적일 정도로 몰두해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에 대한 단상의 챕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쿤데라 마니아라면 그의 소설을 다시금 하나씩 떠올려 행복을 맛볼 정도로 중요한 그의 키워드가 나열되어있다. 가벼움, 소설, 소설가, 키치, 젊음.. 등.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쿤데라의 문학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는 책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을 읽지 못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사전지식이 없는데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단지 많지 않았을뿐.... ^^; 만약 그의 작품을 기억속에 진하게 남겨둔 독자라면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아주 감사한 부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에 있어서 그 작가의 작품에의 언급은 독자들에게는 통쾌한 즐거움이 되는 법이니까.) 책 소개에 의하면 '쿤데라의 소설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이 책을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쿤데라의 소설을 모두 읽고 마지막에 펼쳐볼 '쿤데라 문학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식을 먼저 얻길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만약 소설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작가의 견해가 궁금하다면, 혹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기술'이 필요하다면 순서는 굳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정신은 복잡함의 정신이다. 모든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소설의 영원한 진실은 이것이지만, 묻기도 전에 존재하면서 물음 자체를 없애 버리는 단순하고 성급한 대답들의 시끄러움때문에 점점 들리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정신에서 옳은 것은 안나나 카레리나 중 한 사람 뿐이다. 앎의 어려움과 잡을 수 없는 진실의 어려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세르반테스의 원숙한 지혜는 거추장스럽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34p)

 

  모든 시대의 모든 소설은 자아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당신이 어떤 상상의 존재, 인물을 창조해내는 순간부터 당신은 저절로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죠. 소설 자체가 지닌 근본적인 물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소설의 역사에서 상이한 경향과 상이한 시대가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이 물음에 대한 상이한 대답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p)

 

  소설의 인물은 살아 있는 존재의 모방이 아니에요. 상상적 존재지요. 실험적 자아고요. 이렇게 하여 소설은 그 시작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돈키호테를 실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는 무척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 기억에서 그보다 더 생생한 인물이 누가 있습니까? 제 말뜻을 잘 이해하세요. 저는 독자와 그들이 지닌 욕망, 즉 소설의 상상적 세계에 실려 간혹 그것을 실제와 혼동하고 싶은, 소박한 만큼이나 정당한 욕망을 비웃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에 심리적 리얼리즘의 기법이 필수불가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54p)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의 몸으로 들어오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 바깥에서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에 있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건 수위건 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적 성찰이란 본질적이고 의문적이고 가설적인 겁니다. (116p)

 

  저는 항상 소설을 두가지 차원에서 구성합니다. 첫 번째 차원에서는 소설적 이야기를 구성하죠. 저는 그 위에다 주제를 전개합니다. 주제는 소설적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에 의해 끊임없이 가공됩니다. 소설이 주제를 버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해 버리면 싱거워지고 맙니다. 반대로 어떤 주제는 이야기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어요. 이러한 주제의 취급 방식을 저는 일탈이라고 부릅니다. 이 일탈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잠깐 동안 소설의 이야기를 포기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에 대한 생각은 모두 일탈이죠. 소설의 이야기를 버리고 주제(키치)를 직접 공략하는 겁니다. (123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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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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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물결을 일으켜라 <하워드의 선물 - 에릭 시노웨이, 메릴 미도우>

 

 

 

 

 

 

   '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단다. 단, 한번에 되지는 않을거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최고의 교수라고 불리우는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의 어머니가 그에게 한 말이다. '당장의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어느 곳에 쏟아야할지 판단하며 살아가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하워드의 인생철학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말이라고 느꼈던 부분이다. 단순한 희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무턱대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워드의 선물>은 저자인 에릭 시노웨이가 스승인 '하워드'에게 자기 혹은 주변 사람들의 고민들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고민상담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워드 교수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인해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우연히, 정말 운좋게 가까이 있던 제세동기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다. 제자인 에릭은 묻는다. "쓰러지셨을 때 아무런 후회도 들지 않으셨나요? 살아난다면 이런 것들은 완전히 바꿔서 살아봐야지 하는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 하워드 교수는 대답한다. '내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했던 일이 후회되는 게 한 가지도 없다'고. 그리고 에릭은 깨닫는다. 정작 후회되는 인생을 살았던 건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하워드의 지혜를 간직하기 위한 <하워드의 선물>집필을 시작한다. 에릭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고민들의 해결책을 하워드에게 묻는다. 그 고민들은 모두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고민들, 그리고 더 좁게 들어간다면 대체적으로 미래를 위한 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워드 교수가 책의 첫 머리에서 전환점을 맞았듯, 그가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 또한 전환점이다. 전환점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의미없는 직선에서 생동감있는 곡선으로 진행되게 된다. 이 전환점은 인생 곳곳에 숨겨져있다.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선 삶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에 확실한 성공이나 실패는 없다. 성공과 실패, 그것은 그들을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 전환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접 조각할 수 있는 인생의 지혜가 <하워드의 선물>에 담겨져 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 때문에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가는 것과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다행히 세상은 구석구석에 전환점이라는 의미 있는 지표들을 숨겨놨어. 다만 사람들이 그걸 못 보고 지나쳐서 문제지. 심지어 자신이 전환점에 서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해. 설령 알아챈다 하더라도 건설적인 고민 없이 단순하게 반응할 뿐이고. 이게 다 전환점을 단지 '우연히 일어난 일'로만 여기기 때문이야. 그러니 자기 인생인데도 마치 구경꾼처럼 행동할 수밖에. (31p)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네.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나? (56p)

 

  성공한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그들의 실패담에 대해서 물어보게. 그러면 다들 이렇게 대답할 거야. '그건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실패였다'라고. 똑같은 실패라도 쓸모 있는 실패가 있고 쓸모없는 실패가 있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오직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에게만 달려 있지. (102p) 

가득 채워진 상태가 궁극적인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돼. 세상만사는 항상 밀물과 썰물이 있는 법이니까. 꽃이 피면 반드시 지는 것처럼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가득 찬 항아리가 아니라 그 속의 비어 있는 여백이라고 봐야 해. 그래서 훌륭한 건축가는 여백에 대한 계획부터 세우고, 작곡가는 쉼표의 쓰임새를 먼저 고민하는 거야. 나 역시 항상 100퍼센트 행복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 다만 매일매일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행복하길 바랄 뿐이지. (117p)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엄청난 시간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 노력의 오류에 빠지게 되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아주 높게 잡아놓고는 "이거야말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야"라고 외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를 '불가능은 없다, 할 수 있다'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물론 근면하고 성실한 정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핵심역량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일반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눈을 크게 뜨고 다각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62p)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라네.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전진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92p)

 

이제 삶의 물결을 일으켜보자,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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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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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하나의 용기를 얻습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오늘, 또 하나의 용기를 얻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사랑의 따뜻함을 그려놓은 것도 많지만 힘을 주고, 많은 일을 극복해나갈 힘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곳을 접하고 슬럼프가 왔을 때 <절벽에 대한 몇가지 충고>라는 시를 만났었는데 그 짧은 시 안에서 문장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오랫동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오늘 만나게 된 그의 글은 그가 받은 격려와 의지의 말들을 다시 독자들에게 나눠주는 듯한 한 산문집입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 매체에서.. 그리고 그밖에 여러 곳에서 그가 얻은 소중한 교훈들이 시인의 따뜻한 말들을 더해서 우리에게 건너옵니다. 구구절절 어렵게만 느껴지는 말들이 아니라 그저 한번 눈으로 스치고 지나가도 마음에 남는 그런 쉬운 문장으로 우리들 마음에 단비가 내려진 느낌입니다.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 눈높이를 맞추어 풍족해질 수 있는 이야기, 가끔은 보고 지나칠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교훈들과 함께 정호승 시인이 끄적였던 시들이 딸려옵니다. 대체로 에피소드에 마지막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는 그 시들이 참 좋습니다. 감사한 위로에 선물하나 떡하니 더 받은 느낌인 것 같아서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꼭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말들'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독자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정호승시인의 말투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에 차를 타고 가면서 듣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따뜻한 글들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이렇듯 매일매일 한개씩 읽으면 참 좋을 텐데, 저는 아쉽게도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밀린 책이 많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혹시나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매일 한 에피소드씩 시간이 날 때 짬짬이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 바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가 정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서 매일 하나씩 들을 수 있다면 하루하루 참 행복한 아침이 될 것 같아요.

 

 

  

  손은 인생의 온갖 무늬를 만듭니다. 기쁨과 슬픔의 무늬가 고스란히 손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손은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손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합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역경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손 또한 갖가지 모양과 표정을 지닌 얼굴입니다. 평생 농사를 지은 농부의 손은 고단하고 거친 얼굴을 지니지만, 아기의 볼을 쓰다듬으며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의 손은 곱고 부드러운 얼굴을 지닙니다. (115p)

 

  인생은 형식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게 곧 인생의 형식입니다. 그 생각 속에 실수와 후회가 있고 고통과 상처가 있어도 그렇게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에는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생 자체의 힘에 움직여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133p)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열심히 노력하는 이의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목적은 결과일 뿐, 목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이 중요할수록 과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목적에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목적에 다다르게 됩니다. (171p)

 

  저는 몽골에서 처음 말을 탈 때 천천히 달리던 말이 느닷없이 퍽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자칫 땅바닥에 나뒹굴 뻔했습니다. 다시 말을 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말을 끌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말이 더 이상 저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실패는 넘어지는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진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4p)

 

  혼자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이라면, 홀로 있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다는 것이 외로움과 관계가 있다면 홀로 있다는 것은 고독과 관계가 있습니다. 외로움이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면 고독은 절대적이고 존재적인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롭지만 홀로 있을 때는 외롭지 않습니다. 혼자 있다는 것이 이기적이라면 홀로 있다는 것은 이타적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함께 있을 수 없지만, 홀로 있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274p)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이다. 행복과 불행도 순간이고, 선한 생각과 악한 생각도 순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순간순간 자신답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정호승 시인도 공감했다는 법정스님의 말. 순간에 충실하자, 순간에 실망하지 말자, 순간을 사랑하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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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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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갈림길 - 윌리엄 폴 영>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여러개의 길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옳은지 갈팡질팡하다. 내가 이 선택을 함으로써 벌어지는 모든 주위의 변화와 결과가 걱정되어, 그냥 무작정 걸어보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앤서니 스펜서는 오로지 물질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의문의 사고로 이상한 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이다. 육체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채로. 그는 (그의 영혼) 생각치 못했던 세계에서 성스러운 존재들을 만나게되고, 자신 안에 깊이 잠들고 있던 갈망과 사랑, 희망, 신앙과 같은, 생전에 바라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형태로 그 전에 살고 있던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야기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택의 순간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그의 두번째 이야기. 그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전의 삶을 되돌려 놓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들과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게 된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신성하게 읽게 된 <갈림길>. 세계사 서포터즈를 통해 원고를 한번 읽고, 완전히 책 모양을 갖추게된 이것을 두번째 읽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의존하는 믿음의 대상인 신앙, 그 기독교적인 의문점들을 이 책에서는 환상적으로 영상화된 텍스트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요소 자체가 신비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신비로운 것 투성이인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일궈내야할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윌리엄 폴 영은 진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관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아마도 '모든 인간이 하나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입맞춤을 통해 미끄러져내려가는 주인공의 영혼을 봐도 그렇기도 하고. 그 보이지 않는 끈 사이에 수많은 선택의 길이 있고 또 그 길에 갈림길이 이어져 있는 듯 하다. 그 엄청난 갈림길에서의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골라내야할지, 또한 어떤 마음으로 잡아야할지를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그 셀 수 없는 선택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그 길의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끝에서 황량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믿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 그것이 답인 것 같다. 

 

 

 

희망사항이야말로 그의 적이었다. 만약에, 이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같은 생각들은 그의 에너지를 갉아먹었고 성공과 자기만족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고, 망상이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믿고 싶은 자기 위안일 뿐이었다. 일단 죽고나면 남는 것은 지나온 삶의 환상뿐이리라.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스쳐가는 허망한 추억들을 간직한 삶의 환상, 삶이 소중한 것이라는 신기루의 작은 단편들뿐이리라. 그 모든 것이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희망사항이 그의 적이라는 사실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리라. 희망은 하나의 미신일 뿐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38p)

 

지금 그는 세 가지 선택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는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자유가 그를 흥분시켰고 또 두렵게도 했다. 마치 불과 얼음 사이의 줄타기처럼. (46p)

 

기쁨과 즐거움을 꼭 팔아야만 가치가 있을까? 댐을 만들어 강물을 가두면 늪이 되는 법이지. (116p)

 

지금 당신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당신의 기억이 조합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당신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거죠. 지금 당신은 뿌리를 바라보고 있는 뿌리예요. (227p)

 

중간지대와 이후의 삶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한 것들로 지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저절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에요. 그중 많은 부분이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주위에 널려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짓는 겁니다. (233p)

 

믿음에는 모험이 따르죠. 관계에도 항상 위험이 따르고요. 하지만 결론이 뭔지 아세요? 관계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떤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엉망이고, 어떤 관계는 오래가지 않고 또 어떤 관계는 힘들어요. 반면 어떤 관계는 수월하기도 하죠.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해요. (367p)

 

 

 

 

"마지막 대화가 곧 그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과 평생 맺어온 관계 전체가 곧 그 사람이다."

 

책 속에서 찾은 말.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짧지만 강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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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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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 - 이승우> 

 

 

 

 

 

  이승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1년전 북콘서트에서,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실감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그의 가장 최근 책이었던 <지상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장황한 이야기에 그 독특한 문체가 너무 놀라웠던 나는 2시간 거리의 홍대 소극장까지 혼자 발걸음을 옮겼었다. (물론 기사를 써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그때의 놀라움을 안고 읽은 <생의 이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쇼크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높지않은 나에게도 이 소설은 탄탄하고 깊이있게 느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작가탐구'의 필자가 작가 박부길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박부길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잡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그는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된 신앙과 글과 단 하나의 여자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생의 이면>의 독특한 점은 박부길의 삶을 그가 직접 쓴 허구의 구절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박부길의 문학은 그의 삶으로 온통 지배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감춰진 죄의식과 욕망을 책의 초반 화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소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박부길의 인생의 한 쪽 면만이 아니라 '생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그러나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가짜의 인물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 속 박부길의 모습 중 몇몇의 요소와 작가와 닮아있다고 여긴것도 나의 독자로서의 야릇한 엿봄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부길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모습에 허구의 삶이 여러번 입혀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 자신의 혼이 온통 담겨있다는 이 책은 세계문학에 버금가는 우리고유의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74p)

 

사람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드러운 왜곡이다. 반영이라면 왜곡의 반영이다. 개별적인 무의식의 꿈을 공식화함으로써 현실을 넘어가려는 욕망, 그것이 신화를 탄생시키고, 신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84p)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1p)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115p)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p)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앙드레 지드

 

또 하나의 탐독대상이 늘어났다.... ㄷㄷㄷㄷ 이승우 작가의 전집 다 읽고 싶어짐 ㅠㅠㅠ

이동진 님은 전집 거의 다있던데 역시 멋짐 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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