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조선의용군을 연구해온 서울시립대 교수 염인호가 최근 주목할 만한 저서를 냈다. 무려 722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다. 그동안 그는 해방 이후 중국 동북 지역으로 진출한 조선의용군 및 한인의 동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머리말에서 그동안 발표했던 여러 편의 논문 가운데 15편을 선정하여 대폭 수정·보완한 뒤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평자가 보기에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역사비평사 펴냄)은 주로 1940년대 조선의용군의 활동을 다루었던 <조선의용군의 독립 운동>(나남 펴냄)의 후속작이 아닌가 한다. 염인호는 연변대학교(2001년)와 북경대학교(2010년)에서 각각 반 년간 체류하며 연구와 강의를 했고, 재중국 한인의 민족운동에 관심을 갖고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연구 방향을 초기의 민족운동가 개인에서 민족운동 단체나 조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민족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재중국 교민 사회로 넓혀왔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러한 동향을 반영한 역작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새삼 중국 동북 지역, 즉 만주 문제의 엄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사실은 중국 동북 지역(만주)과 남북한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의 선봉에는 10개의 만주 조선인 연대가 있었다"라는 책 뒷 표지의 문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만주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 준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병력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가 만주에서 이동한 한인들이 주력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의 중앙청을 점령한 부대 역시 만주에서 온 조선인민군 제4사단의 18연대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상당한 충격에 빠지게 한다.

다 알다시피 중국 동북 지방은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 발해의 고토일 뿐만 아니라, 항일 투쟁의 전적지가 도처에 산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매우 전략적 가치가 높은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난 8월 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 지방을 전격적으로 방문하여 국내외의 큰 관심을 끈 적이 있다.

특히 김정일은 길림 육문(毓文)중학교와 하얼빈 등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투쟁과 연고가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그 배경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였다.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 기간의 한중 관계를 되돌아볼 때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전개한 항일 투쟁은 그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러한 사실을 바로 <또 하나의 한국전쟁>을 통해 재확인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론과 제1부 연변 조선인의 '조국'과 한국전쟁, 제2부 북만주 지역 조선인 사회와 독립동맹의 조국 통일 전략, 제3부 중국 국민당 지구 한국독립당의 조국 통일 전략과 좌절, 결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연변 지역 조선인 사회, 2부는 북만주 지역, 3부는 중국 국민당 점령 지역의 조선인 사회를 다루었다. 주요 내용과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 대결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곧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전쟁 초기, 중국 동북에서 온 조선인 부대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이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을 때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북한에 크게 불리해지다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역전되었다. 이처럼 불리했던 전세가 다시 반전되자,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즉 일제 시기 항일 투쟁을 통해 형성된 '채권자 의식'이 사라지면서 자연히 중국 연변 지역(과거 북간도)의 북한 귀속론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비교적 순조롭게 연변 지역에 '조선족자치구'를 성립시켰다. 또 중국 안의 다른 소수 민족과 달리 자기 조국(남한과 북한이지만 주로 북한을 지칭)을 지닌 존재로서 '국방의 의무'를 규정받았던 만주 한인들의 특수한 지위가 약화되었다고 한다.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을 계기로 중국 동북의 한인 사회는 점차 중국 일반 사회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변화의 귀결로서 중국 동북 한인들의 공식적인 조국관이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한반도의 두 국가는 만주 조선인(또는 한인)의 조국으로 간주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1950년대 후반 '반우파 투쟁'과 '민족 정풍 운동'을 거치면서 '중국 유일 조국관'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중국 동북 거주 조선인들을 일컫는 '조선족'이라는 명칭도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중국 동북 지역의 한인 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차례로 북한으로 들어가 최종적으로 10개 연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조선인의 귀환'으로 평가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들의 '입북'을 대체로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정부의 '파병'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한국전쟁>에서 저자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이러한 사태가 '조선인의 귀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①중국공산당 스스로 만주 조선인의 조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임을 인정했다는 점, ②조선인 부대의 간부 및 일반 병사들이 '만주기지론'과 조국애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입북을 '귀환'이라 간주했다는 점, ③입북은 부대 단위로 이루어졌지만, 나중에 집단적으로 중국으로 돌아간 예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만주 조선 사단의 입북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파병이 아닌 조선인의 귀환"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지만, 현재 한국학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색적인 주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추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필자의 경우 염인호의 이러한 주장이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국 동북 지역 거주 한인들은 국공내전의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그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고, 북한 정권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약 3분의 1 정도의 서술 비중으로 다룬(491~677쪽) 제3부 '중국국민당 지구 한국독립당의 조국 통일 전략과 좌절'에서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했던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이 추진했던 남북 통일 전략과 여러 가지 노력을 서술하였다.

조선의용군 출신 지도자들이 미국의 남한 진출을 경계하면서 만주(중국 동북 지방)를 기지로 한 '조국 통일' 역량 구축을 구상했듯이,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했던 민족주의 계열의 한국독립당 세력 역시 비슷한 맥락의 통일 전략을 구상, 실천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소련의 북한 진주가 남한 공산화 기도로 계속될 것으로 보고, 중국 동북을 '민주 기지'로 강화하여 미국과 협력하는 한편, 북한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고 한다.

당초 그 구체적 방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남한으로 조기 귀국시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독립당은 곧 광복군 확장 운동에 착수했다. 그러나 중국 관내 지방에서 이들의 광복군 확군 운동은 주체적 역량 부족과 미국의 임시정부 불승인 방침 등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수만 명 규모로 북한으로 들어갔던 선의용군 출신들과 달리, 광복군의 주요 지도자였던 이범석 지휘 하에 1946년 5월 남한으로 돌아온 광복군의 규모는 5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중국 관내 지방에서 실패를 경험한 한국독립당은 "중국과 합작하여 민주 세력을 다소라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하여 북한의 공산 세력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독립당은 중국 동북의 국민당 점령 지역 각지에서 한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코자 하였다. 그러나 1947년 중국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중국국민당은 크게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독립당 계열의 활동 역시 크게 위축되었다.

결국 1948년 고립되어 중국공산군에게 포위된 남만주의 심양(瀋陽) 부근 국민당 지구 한인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그 결과 일부 유산자와 지식인들은 전세 비행기로, 다수의 일반 동포와 가난한 농민들은 걸어서 천진(天津)을 향했고, 그곳에서 미국이 보내준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주로 중국 학계에서 중국 현대사의 일부로 취급되었던 1940년대 후반 중국 동북 지역 한인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의 일부로 수용하고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이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봉우리 위에서 만주 한인의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지닌 조선(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한반도에 대한 조국애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연변·길림·목단강시 등에서 발행된 한글 신문과 중국 당안관(檔案館 : 정부기록보존소의 일종) 소장 문서, 문화대혁명 시기 남겨진 원자료들을 통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격동기 한국 현대사의 치열했던 현장을 되살리고 있다. 격동의 역사에 투신했던 중국동북 한인들의 삶과 투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사실상 거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던 해방 직후 중국 동북 지역(만주) 한인들의 동향, 특히 조선의용군을 중심으로 한 한인(조선인)들의 동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이 추진한 만주 진출 및 조국 통일 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학술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연변 지역의 북한 귀속 문제 등은 아직도 우리에게 상당한 여운을 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아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중국에서는 '만주'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주로 중국 동북 지역(지구) 또는 동북, 동3성 등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만주'로 불렀고, 지금도 우리에게는 '만주'가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중국 동북 지방, 또는 '중국 동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 책은 심양(瀋陽) 등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 제1지대의 활동이나 변천과정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상당한 서술의 불균형이 아닌가 한다. 제1지대는 '이홍광지대'로도 불렸는데, 나중에 북한 인민군의 6사단의 주력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남만주의 조선인 사회는 차후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 :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이란 책의 제목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제목이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 들어왔거나, 중국으로 돌아간 한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향후 심층적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굳이 사족을 달자면 목단강(牧丹江) 지역을 북만주로 분류할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자는 목단강 지역이 원칙적으로는 '동만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또 속표지 바로 다음에 있는 '연변·목단강지구' 지도에 표시되어있는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바꿀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초 성립 당시에는 '자치구'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치주'로 바뀌었고, 현재도 자치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새삼 중국 동북 지역, 즉 만주 지역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이곳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 정세와 국제 관계, 이 와중에 커다란 정치 세력을 형성한 한인 사회의 위상, 그를 둘러싼 국제적 안목과 외교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여 이 책이 한국전쟁과 재중국 조선족(조선인) 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깊이 다가온다. '부록'에 실린 방대한 참고 문헌과 원자료 목록, 새로 발굴한 사진과 중국 당안관 문서 등이 저자의 성실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 부단한 노력을 말없이 증거하고 있다.

이 책의 발간 의미는 매우 크고 장점도 많다. 학계나 교육계, 일반에 기여하는 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상당한 전문적 학술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 소양만 있는 일반인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비교적 평이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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