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트 평전 - 대참사의 해부 역사 인물 찾기 26
필립 쇼트 지음, 이혜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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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킬링필드>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다닐 무렵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이것도 반공영화라고 단체관람을 시킨 것인지, 그나마 나은 반공영화여서 여러 목록 중에 학교 선생들이 선택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논다는 친구들은 화장실 다녀오는 척 하고 영화관 밖으로 내뺐지만, 나는 수업을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만족하며 그럭저럭 영화를 다 봤던 것 같다.  

그렇지만 군사정권이나 그 시다바리에 가까웠던 학교의 애초 의도나 목적과는 달리 이 영화를 보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영화의 줄거리나 결말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저녁무렵 허허벌판을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만이 인상에 남았다. 그 속에서 나는 TV나 영화에서 보던 한국전쟁 당시를 연상했는지 모른다. '킬링필드'라고 알려진 캄보디아 크메르루즈의 학살을 그래서 1950년대 무렵 벌어진 일로 한 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크레르루즈의 핵심 멤버이자 킬링필드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키우 삼폰인가 누온 체아인가를 인터뷰한 한계레21 기사를 보고 내가 알고 있던 기억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 킬링필드를 둘러싼 역사적이고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루즈가 왜 공산화 된 베트남과 전쟁을 했어야 했는가? 캄보디아 국왕이었던 시아누크는 왜 그들을 탄압하다가 다시 그들과 협력했고 마침내 다시 그들과 결별했는가? 무엇보다도 인민해방을 추구했던 크메르루즈가 왜 인민을 그토록 무참하게 학살해야만 했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 <폴 포트 평전>에 나와 있다. 필립 쇼트가 지은 이 책은 사실 평전이라기보다는 크메르루즈와 킬링필드에 대한 르포에 가깝다. 폴 포트와 그의 동료들은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의 호치민과 같이 식민주의에 맞선 민족해방의 이념을 프랑스 유학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에서 찾아냈고 중국과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서 그 이념을 구현하려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중국이나 베트남, 혹은 북한과도 달랐으며 훨씬 더 극단적이고 급진적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크메르루즈를 일반적인 공산주의, 맑스주의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소승불교와 앙코르와트의 재현이라는 캄보디아 민족 특유의 문화에서 발생한 변종으로 보고 거기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꽤나 설득력이 있다. 또한 캄보디아에서의 대량학살, 제노사이드는 크메르루즈 뿐만이 아니라 당시(그리고 지금 현재도) 캄보디아를 둘러싸고 있던 베트남, 중국, 소련, 미국과 같은 주변열강에게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음을 대단히 풍부한 사료와 증언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인간해방의 이념이 대량학살로 치닫게 되었는지, 그것도 특별히 부패하거나 비교적 타락하지 않았던 집단에 의해서 그러한 만행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나는 아직도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어쩌면 모든 '주의'와 '이념'의 극단은 이토록 무서운 것일까? 쇼트가 지적한 캄보디아 특유의 문화, 개인주의적이며, 위선적으로 보일만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현실에 대해 체념적인 풍토와 나치나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가 결합했을 때 인류는 이토록 심각한 위협을 직면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사회도 어쩌면 그런 위협에 대비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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優良出会い系サイト 2011-06-1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으로 서두에 보여드린 이미지는 디자인로그의 포토샵 강좌 게시물을 운영 중인 페이스북 'Design' 페이지로 공유한 모습입니다. 아주 깔끔하게 링크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페이스북 '코멘트(commets)' 소셜 플러그인을 완벽하게 설치하셔서 많은 페이스북 사
 

3월의 화두는 '기억'이다.  

3월1일 "친일은 어쩔 수 없었다"는 청와대 비서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폭행사건으로 동의대 사건과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법안이 도마위에 오르다. 

동의대 사건 당사자들은 명예회복법에 의해 민주화운동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사건의 진상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용산참사 촛불은 벌써 두 달 넘게 밝혀지고 있지만 다가오는 어둠은 훨씬 짙다. 또 하나의 청산이 필요한 과거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4.3, 5.18이 다가온다. 지난 10년간 이 사회는 무엇을 기억했는가.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투쟁이다. 기억의 정치, 기억의 투쟁은 지금 현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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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이산)로서, 소수자로서, 타자로서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시선과 목소리는 너무나 소중하다. 국가주의, 국민주의에 갇힌 사람들의 기억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로부터 지난 10여 년의 과거청산에 대한 평가와 성찰이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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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전수되고 기념되고 기록되는가. 4.3(사태, 항쟁, 봉기, 사건이라는 이 다양한 이름과 기억)을 통해 본 한국 근현대사의 라쇼몽. 기억은 정치적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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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pickEr 2009-04-29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도서관에서 낡디낡은 '침묵의 뿌리' 들춰 봤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 또 다른 증언이지 르포를 통해' 현재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허락없이 둘러보다 갑니다..^^*

나무처럼 2009-04-29 13:28   좋아요 0 | URL
조세희 선생의 사진과 글도 그렇지만 거기 실린 아이들의 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읽은 지 오래 되어서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봐야겠다는...

ragpickEr 2009-04-29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아이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눈물이 찔끔 날만큼..저도 다시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어야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라며..
 
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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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물론이다. 특히 어쩐지 있어보이고, 알듯 모를 듯 한 모더니즘 시인들의 세례를 흠뻑 받았던 내게는 '좋은 글은 쉬운 글'이라는 말은 새로운 각성이었고 글쓰기의 지침이었다.  

그러다 요즘 관심이 가는 글은 어려운 글이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그렇고 존 버거의 '제7의 인간'이 그렇다.  

'제7의 인간'은 유럽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르포라고 하기에는 왠지 상식과 어긋나는 것 같다. 6하원칙도 새로운 사실도 없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철학적 단상과 사유의 깊이가 더 해가지만 구체적 서사도 클라이막스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주노동의 문제는 사실 복잡한 문제다. 또한 이주노동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고 힘겹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가 쉽게 쓰여진다면 위선이 아닐까.  

힘겹게 이 책을 읽어나가며 들었던 생각이다. 되도록이면 쉽게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는 있는 그대로를 써야 한다. 각색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존 버거의 시선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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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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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아고라에서 여론조작을 했다고 수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한 가지다. 반정부적 행위라는 것. 또한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한 법무관 2명을 파면시켰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가 절멸되는 듯하다.

책장에서 몇 달 전에 읽은 '자유에 대하여'(존 스튜어트 밀, 필맥)를 끄집어냈다. 한번쯤은 들어봤지만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당췌 1800년대에 써졌다고 믿기지 않는 책.  

존 스튜어트 밀은 "이른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는 "개인에 대해 사회가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라고 그는 말한다.(책 11p) 다시 말해 그는 권력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고 이 한계설정이 바로 '자유'라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한다. "신에 대한 도발은 신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의 도발은 인터넷이 알아서 할 일이고 네티즌의 도발은 네티즌들이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이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발끝만이라도 그들이 따라간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끝으로 이 책에 따르면 자유의 암흑기였던 중세, 가장 관용적이지 않은 가톨릭 교회에서도 '악마의 대변자'라는 사람을 임명하여 성인을 인정할 때 성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주장하게 했다고 한다. 이 정부에게 그조차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악마의 대변자'는 언제나, 그리고 지금 더더욱 필요하다.   
참고로 밑줄 그어 놓은 몇 군데를 옮겨본다.(강조는 내가!) 

- 인민의 의지라는 것의 실제 의미는 인민 가운데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적극적인 부분의 의지, 다시 말해 다수파 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다수파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였다.(16p) 

- 오직 한 사람 말고는 인류 모두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한 사람이 인류를 침묵하게 만들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만큼이나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 만약 그 의견이 올바른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반대로 그 의견이 그릇된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꾸는 것과 거의 같은 정도로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 즉 진리와 오류의 충돌을 통해 셩겨나는, 진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과 보다 생생한 인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 (37p)  

- 어떤 문제를 자기의 입장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71p) 

- 삶이 하나의 유형으로 획일화될 때까지도 저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유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모두 다 불경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극악무도하고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139p) 

- 해악은 정부가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과 힘을 불러일으키는 대신에 자신의 활동으로 그들의 활동을 대체할 때, 그리고 정부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하고 때로는 반박을 하는 대신에 그들로 하여금 속박속에서 일을 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비켜서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들의 일을 대신 나서서 할 때 시작된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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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할인마트 고객만족센터 직원이 우연히 휴대전화를 습득하게 된다.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주인에게 전화를 돌려받고 싶으면 "전화를 공손하게 받고 절대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부터 자기가 시키는 일을 하라고 협박한다.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던 주인은 위험한 요구가 계속되자 마침내 마트 직원을 잡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지난 2월 19일 개봉한 스릴러 영화 <핸드폰> 이야기다. 여기서 마트 직원 역을 맡은 배우 박용우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감정 노동자의 슬픔을 다룬 첫 상업영화"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성희롱에만 초점을 맞춘 언론의 선정적 보도 


공교롭게도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콜센터 텔레마케터 여성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많은 언론은 아예 다루지도 않았지만 또 많은 언론은 콜센터 텔레마케터 열 명 중 서너 명이 성희롱을 경험한다는 내용과 함께 그 구체적 사례를 나열해가며 성희롱에 초점을 맞췄다. 성희롱에 대해 회사 측에서 대응 매뉴얼은 고사하고 아무런 사후조치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말미에 한두 줄 적어놓았으니 선정적 보도는 아니라고 반론을 펴는 언론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일하게 토론회를 충실히 보도한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원과 텔레마케터들은) 고객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의외로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면접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는 "자기최면으로 내성이 생겼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66.1%가 비정규직으로 매우 불안정한 노동 상태에 처해있으며 감정노동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관리자로부터 일상적인 감시를 받으며 90% 이상이 업무 수행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자기최면은 어쩌면 생존방식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감정노동은 서비스산업 노동 가운데 특히 소비자와 직접 접촉이 많은 노동 형태를 일컫는다. 자신의 감정과 몸의 표현 등을 조절해 고객의 기호에 부응하려고 힘써야만 하는 감정노동의 심각성이 알려진 것은 지난 뉴코아-이랜드 노조 파업을 통해서였다. 반복해서 100원짜리 물건을 사며 고액권을 내밀거나 사용한 물건을 무턱대고 교환해달라는 고객들의 괴롭힘에도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상냥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칫 고객만족센터에 이름이 접수될 경우 쉬는 날 시간외 수당도 없이 나와서 한 시간씩 90도 절을 하며 예절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형할인마트 직원의 스트레스는 그 자체로 심각한 폭력이다. 
 

최소한의 성실성만이라도 보여주길
 

마찬가지로 콜센터 상담원이나 텔레마케터들도 성희롱만이 아니라 욕설과 같은 언어폭력, 노래를 불러달라거나 모닝콜을 해달라는 막무가내의 요구에도 전화를 먼저 끊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감정노동은 소비자에 대한 성실성(성실이라고 하면 대개 부지런함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됨"이다)이 관건인데 회사는 이를 임금도 노동조건 개선도 아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노동 감시를 통해서 강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감정 노동자는 소비자에게 당하는 모욕과 회사로부터의 비인격적 대우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로 정신과 육체만이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위협받는다. 
 

감정 노동자들이 영화 <핸드폰>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콜센터 상담원과 텔레마케터들이 알맹이 빠진 기사를 보고 그래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뤄주었다며 감지덕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권력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향한 감정노동까지는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다만 언론들이 최소한의 성실함만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 미디어오늘 '미디어바로미터'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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