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인권단체에서 '르포와 인터뷰' 강연을 하게 되었다.
벼락치기로 강의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아 가져가지 않았다.
지금 다시 보니 내 고민만 잔뜩 써놓았다.
결국 결론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임을...
그래도 완성을 목표 삼아, 업그레이드를 취중에 결심하며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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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이야기할 르포라는 것이 어쩌면 실용적인 글과 문학적인 글의 중간 형태일 수 있고 그러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글쓰기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해요. 르포르타주는 기록과 보고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고 기록문학으로 불리고도 하는데 주로 저널에서 쓰는 르포와 르포문학 이렇게 나눌 수도 있지요.
대표적인 르포문학으로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과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카 찬가>를 들 두 있고. 르포는 저널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르포의 탄생이랄까 전성기를 맞게 해준 것도 저널의 탄생이었고, 저널이 제 역할을 잘 할 때면 굳이 르포가 쓰여지지 않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요. 대표적인 게 <카탈로니카 찬가>이고 80년대 한국의 르포 문학도 그렇죠.
중국에서는 르포의 기원을 <시경>에 둔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춘추시대 각지에 떠돌던 민요를 채집한 시집인데 공자가 집대성 했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든 중국은 르포의 전통이 깊다고 자부하고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속성상 많은 부분 공산당의 정책 홍보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강의안에 나와 있듯 반체제 르포가 꾸준히 수준 높게 발표되고 있는 거 같구요. 일본 같은 경우는 르포가 팔리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 이러한 점이 일본 문화와 사회의 강한 점인 것 같아요.
한국의 경우는 80년대 꽃을 피웠다 졌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김사량의 <노마만리>나 <보고문학의 제문제> 같은 것도 있지만 80년대 노동자 수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같은 작품과 황석영, 조세희의 소설, <침묵의 뿌리>도 있고, 잠입르포가 있었고. 그러다 곧 사그라 들었죠. 언론이 제 역할을 해서일 수도 있고. <말>지나 <한겨레> 같은 데가 나왔으니까.
그러다 최근에 르포가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왜 르포의 전성시대인가. 르포와 저널의 관계가 불가분이란 말씀을 드렸는데 저널이 피상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말들이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아랍 문제인데, 언제나 집단으로만 나오는 무슬림들과 팔레스타인 문제. 모든 사람들이 약간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안 좋다는 거죠. 한국의 경우에도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철거민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제가 얼떨결에 책 두 권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게 이랜드 노동자 인터뷰집 <우소꿈>하고 이번에 나온 <여기 사람이 있다>예요. 둘 다 1만 권정도 팔릴 거 같은데 출판시장에서는 대단한 일이죠. 왜 사람들이 이런 책들을 사볼까.
저널은 속성상 '요점만 간단히'이어야 하는데 사실 사람 사는 게, 또 갈등과 사건이라는 게 '요점만 간단히' 될 수 없는 것들이죠. 요점만 간단히 하면 핵심쟁점이나 주장은 전달될 수는 있지만 총체적 진실이랄까 하는 것이 드러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나 왜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하는지 기자회견에서 몇 문장으로 나오고 그걸 저널은 받아 적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만든 그 배경, 그 삶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큰 울림이 없지 않잖아요.
사람들은 팩트가 아니라 스토리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그런데 스토리라는 게 소설과 같은 허구, 잘 짜여진 구조에서 오는 감동도 있지만 '사실의 힘'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말짱 거짓말이라면 감동이 적죠. 그것이 거짓이어도 삶의 진실, 그 한 단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소설론에 있었던 거 같은데. 어쨌든 '사실의 힘'에 기대어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르포이기에 르포가 읽히는 게 아닐까.
서벌턴은 말 할 수 있는가
앞에서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철거민, 등등을 들었는데 이런 사람들을 서벌턴(하위주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구하, 스피박 이런 인도 사람들이 구술사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내놓은 개념이죠. 구술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불과 10년 좀 넘은 학문이에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르포의 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중요한 사건도 그렇지만 그건 워낙 영상기술이 뛰어나다보니. 그 과도기가 <칠레전투>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 친구는 기륭싸움만 벌써 몇 년째 쫓아다니고 있죠.
제가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는데 <마다가스카>란 영화가 있다고 해요. 거기 대사가 없는 물고기가 나오죠. 말을 할 수 없는 존재, 말은 하니만 그것이 지배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집단,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들, 이런 것이 물고기가 아닐까. 그럴 경우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하고 보고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 것이죠.
4.3사건 같은 경우 8대2로 토벌대의 학살이 많았는데 이게 구술작업을 통해 드러났어요. 그런데 생존자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의 순서는 고발자, 이웃주민에 대한 증오가 가장 크고 그다음 산사람, 그리고 토벌대예요. 토벌대는 시대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산사람은 다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그사람들 선동 때문에 너무 많이 죽고 고생했다, 제일 미운 건 고발한 이웃들. 이게 반공이데올로기 아래 50년을 산 영향이죠. 그 과정에서 기록이 공백상태라는 것, 앞으로 이들의 이 기억을 어떻게 후대에 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죠. 구로동맹파업 같은 경우도 학출이나 명망가의 기록과 조합원의 기억이 차이가 나요. 우린 사실 그때 그런 거창한 노동해방, 그런 거 아니었다. 학출은 혁명을 하려고 했고 우리는 노동조건 개선, 그리고 동지에 대한 의리였다. 이런 것들이죠. 그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무관하게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한 사건에서 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기억하고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하고 그게 르포의 한 역할이라는 거죠. 용산 관련 책이 나왔지만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이란 게 있었어요. 사북은 그래도 조끔 기록이 되었지만 이건 거의 기록되지 못했죠.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들, 도시빈민을 싹 모아서 성남에 뿌려놓고 알아서 살아라, 한 10만명이 모이면 어쨌든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랬거든요. 그러다 폭동이 일어난 거죠. 민청학련 사건 같은 지식인의 피해는 잘 기록되고 기억되지만 이런 빈민들의 폭동은 폭동으로 기록되고 평가받기도 힘들죠. 한국전쟁 당시 가장 많이 학살당한 사람들이 한센인, 문둥병 환자들이었고.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언어 자체가 달라서 힘들어요. 결국은 그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역사쓰기 활동도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 같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는 세상이 올까, 뭐 이건 역사의 종언이나 문학의 종언 같기도 하고, 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글쓰기란 것이 예술성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어쨌든 르포는 그런 종언이 오기 전까지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해요.
르포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인터뷰
사람들은 기자를 왜 만날까요? 대부분은 기자를 만나기를 꺼려하죠.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할 게 있으니까 잘 만나고 이야기를 잘 해요. 특히 배운 사람들, 지위가 있는 사람들일수록 자기 생각(주장)을 조리 있게 이야기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도 개인적인 것,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보면 당황해요. 그런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거나 자기들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죠.
대추리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처음에 들어가면 기자라고 하면 주민들이 막 붙잡고 이야기를 해요. 너무 억울하니까. 좀 지나서 들어가면 다들 이야기를 안 해요. 해봤자 싶으니까. 그런데 유력언론사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면서 그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시키려면 이게 뭔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죠. 대부분 설득에 실패해요. 그런데 꾸준히 계속 가면 제가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정들어서 이야기를 해주는 거죠.
그래서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거죠. 김진숙 씨 경우 조선소 용접공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신뢰가 팍 되고 술술 풀리게 되는 거죠. 박영희 시인 같은 경우 직업만 수 십가지를 했어요. 신문배달, 용접, 광부부터 안 해본 일이 없으니까 공사판 가든 어디 가든 쉽게 말을 붙일 수 있죠. 근데 그리기가 쉽지 않으니까. 진심과 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어요. 일찍 가고 늦게 오고, 일 끝나도 죽치고 있고.
그런데 그러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묘하게 이야기의 과정 자체가 치유의 효과가 있어요. 한 세네시간 자기 이야기, 한번도 남에게 해본 적 없는, 자기 스스로도 잊어먹고 있었던 기억들을 들춰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속이 후련해지고 이게 어떻게 글로 써지든 됐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죠. 대개 그런 경우 인터뷰 글도 좋다고들 그래요. 한편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분도 진정성이 통하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다가서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터뷰는 신뢰의 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적의로 목적의식을 갖고 다가갈 경우 자신도 경직되고 자신이 경직된 채 다가가면 상대방은 더 경직되고 그렇죠.
또 한 가지는 성차별적인 발언일 수 있는데 대개 남성들의 경우 자기주장을 앞세우죠. 서사와 느낌을 이야기하지를 않아요.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문제였고 자기는 이래서 옳다. 뭐 이런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때 당신은 무엇을 했고 왜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랬는지, 그 일을 당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런 게 중요한데 그런 걸 이야기하는 데 남성이 더 서툰 것 같아요. 물론 여성도 그렇죠. 이런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할 필요가 있어요. 이야기를 쭉 듣다가 그럴 때는 이랬을 거 같은데 어떠셨어요? 그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던가 아니면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지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런 걸 키워주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한 가지 기억이라는 것, 이야기, 기억이라는 게 재구성되고 편집되는 거죠. 대부분 자기에게 유리하게 기억이 편집되니까 인권피해자 상담에서 애로가 많을 거예요. 변호사들 같은 경우는 그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많이 하죠. 상대방이 공격할 내용을 미리 보완해야 하니까. 그런데 자칫 공격적으로 하다보면 상대방이 위축되고 그렇잖아요. 우리는 변호사가 아니니까.
그런 문제와 함께 자신의 언어가 없다보니까 자신의 기억과 느낌도 지배언어로 기억하게 되고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배언어로 기억된다는 것은 지배자의 사고방식을 따른다는 말이기도 해요. 자신이 넝마주의였다는 것, 부랑자였다는 것을 범죄자와 동일시 하고 차별이나 침해를 받아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게 언어가 가진 힘이랄까, 좀 무섭죠. 물론 왜곡된 기억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죠. 80년대 용비어천가를 썼던 조선일보가 중요한 기록물인 것처럼. 하지만 언어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의 언어를 어떻게 배운 사람인 내가 그대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죠.
이것은 인터뷰 전체로도 그래요. 한 인간을 길어야 세 네시간, 아니면 이삼일동안 만나서 그를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결국 편집하고 선택과 집중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줄 수 없으니까, 여기서도 왜곡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죠. 중요한 것은 왜곡을 최대한 줄이는 일, 그리고 정직하게 쓰는 일이 아닐까 해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지만 그 평가가 최대한 정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뷰 당시에 싸우지 않고 돌아와서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주관적 평가도 위험하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그런 거 같지는 않아요. 펜은 칼 앞에서 대단히 약한 존재죠. 저는 오히려 펜은 칼보다 야비하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그럴 여지가 많죠. 그래서 펜대를 굴리는 사람은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세치 혀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듯이 말이죠.
인권활동가와 르포문학
여기 있는 분들이 인권활동을 하는 분들이니까, 인권활동과 르포쓰기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하위주체들이 대부분 인권침해를 많이 겪는 분들이고 국민에서 배제된 사람들, 시민권 없는 사람들이다보니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겠죠.
또 한 가지는 글을 쓴다는 것이 자기 언어, 자기 문체, 자기 스타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남들과, 지배자, 주류와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기라는 생각을 해봐요.
저는 운동사회 주류의 언어와도 다른 비주류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들의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식상한 비판, 구태의연한 주장으로 비춰지거나, 교조적으로 빠지거나 관념적이지 않으려면 말이죠.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나도 그래, 이게 사실 가장 편하게 사는 방법이기도 한데, 그러면 자기 글을 쓸 수는 없거든요.
또 하나는 다큐 찍는 사람이 있는데 어렵게 올해 프랑스유학을 갈 수 있게 됐어요. 근데 취소를 한 거예요. 작년에. 왜 그런가 하면 올해 한국이 너무 중요한 다큐의 현장이 될 거 같다고. 저는 반신반의 했지만 벌써 곧 5월인데 두고 봐야죠. 그게 촛불 이후 술자리였으니까.
제 직장상사인 박OO씨가 지금 용산은 계급전쟁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저도 동감하고 작년 촛불과 PD수첩, 미네르바, 전교조 등등 내전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다면 작년 촛불은 엠비정부에게 선제공격을 한 거죠. 근데 이게 한국전쟁 때처럼 자체 역략이나 과학적인 정세 판단 없이 38선을 넘어버린 것이어서 일단 낙동강까지 밀어붙였다가 최근은 압록강까지 밀리는 거 아닌가. 그러면 중공군이 있어야 다시 휴전선 근처로 갈 텐데. 우리의 중공군이 누가 있나 싶으면 없구나. 그래서 지는 싸움 아닌가. 저쪽은 조중동도 있고 북한 미사일, 일본 뭐 다 있는데.
그런데 이게 지는 싸움이든 이기는 싸움이든 물고기들은 그 와중에 대량 학살당하거나 수난을 당하겠죠. 그것을 기록하는 것, 물고기들의 수난이야말로 땅따먹기 같은 역사가 아니라 진정한 역사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활동가들의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