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접수하자! 라는 제목을 달았다가 다시 바꾸어 달았다. 그저 그렇게 했으면 하는 내 욕망이 과다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하고 묻는다면 방법은 잘 모르겠다.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점령이든, 점거든, 접수를 했으면 한다. 

430 노동절 전야제를 건국대에서 열려고 하면서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작년에는 홈에버 상암점이 있는 월드컵 경기장 공원에서 했었다. 오랜만에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옆 동료에게 "원래 이거 학교에서 하지 않았나? 거기서 날밤 까고 하면서 주점에서 술도 마시고 했던 거 같은데."라고 했다. 나 같이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지, 올해는 장소가 건국대였는데, 총학생회와 일부(?) 학생들이 개최를 지원했다가 학교 측에서 문제삼고, 다수(?)의 학생들도 반대하는 바람에 어찌어찌 건대를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하게 된 모양이다. 나는 잡지 마감이라 가보지도 못하고 그 뒤에 학생들이 시위대에게 맞았다는 둥 하는 글을 봤다.(아래 링크 글)  씁쓸하다. 그리고 좀 화가 많이 난다. 

과연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한총련 출범식, 통일운동 행사, 노동자 파업 등등 학내 집회를 할 때마다 불거졌던 일이다.  운동권 총학생회가 이런 집회를 하면 비운동권은 학생 대다수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고 했다고 비난을 해댔다. 사실 운동권이 판을 치던,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존중받던 시절, 학교가 아무리 뭐라 그래도 총학생회가 오케이 하면 들어가서 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정확히 말해 86년 건대사태 이후 96년 연대사태 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명실상부한 해방구이자 저항문화의 산실이었다.

그러던 대학은 이제 편의점이 들어서고, 스타벅스가 들어서고, 홈플러스 같은 마트도 들어선다고 한다. 학교 앞 사회과학서점은 그야말로 왕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가지고 지금 대학생을 비난하거나 문제시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이에 대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나처럼 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어쩌면 그 때 대학의 주인은 분명히 학생들이고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민주적 선거로 뽑혔으니 총학생회가 오케이 하면 주인이 오케이 한다고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근데 아무리 민주적 선거로 뽑혔다고 해도 위임받은 권력이 권력을 남용하면 안된다는 요구, 그래서 외부 행사와 집회를 총학생회가 학생들 의사도 묻지 않고 치루는 것에 문제제기가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묻고 싶다. 대학의 주인은 대학생인가? 대학 운영에, 무엇보다 등록금 책정 같은 것, 교수 임용 같은데 일방적으로 학생들이 배제되는 것에 분노하고 문제제기 하면서 대학의 주인은 우리다, 학생들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학원 자주와 투쟁이란 말도 있었는데 대학을 독재권력, 자본권력에 종속되지 않게 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교수, 학교, 학생 3주체가 평등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학원 민주화의 내용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학교 밖을 나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위치가 바뀌었으니 생각이 변한 거라고 욕을 해도 할 수 없다.

공장의 주인이 노동자라면 대학의 주인은 교직원, 청소하는 사람, 수위실, 시간강사, 조교, 행정실 직원 등등 대학의 노동자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이 학문의 공동체라면 무엇보다 교수가 주인일 것이다. 현실에서 대학의 주인은 등록금 내는 대학생인가, 아니면 대학을 운영하는 오너, 이사장인가.

나는 서울대학이 서울대 학생, 교수, 교직원의 것도 아니고 교육부의 것도 물론 아니며 국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는 등록금이 다른 사립대에 비해 무지무지 저렴하다. 왜 그런가?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건물은? 교수 월급은? 사립대는 그럼 학생 등록금만으로 운영될까? 사립대의 국가지원금도 상당한 액수다. 돈만이 문제일까? 대학생이 받는 사회적 특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학생들, 억울하겠지만 나와보면 안다. 아니 지금 조금만 노력해서 같은 나이 또래 고등학교를 나온 이들의 생활과 비교를 해봐라. 예전보다 물론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은 하나의 특권계급이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이 지역사회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중반, 전남 광주에 있는 한 대학 축제에 간 일이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축제를 하는 대학에 대학생들보다 지역주민들이 훨씬 많았다. 막걸리판이 벌어지고 유모차가 돌아다니고, 대학운동장에 가요제를 보는 관객10만명 중 대부분은 그저 광주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5.18이 남긴 유산이자 기풍이라고 생각했고 무지 부러웠다.

오늘 어린이 날, 어떤 대학이 교정을 개방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도 대학 캠퍼스가 있는데 우리 집이 바로 앞이니 도서관에서  책 좀 보자고 하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비디오다. 하다못해 집 앞 초등학교는 일요일 아침이면 조기축구회 회원들에게 운동장을 개방하는데 말이다.

대학은 본래 학문을 탐구하는 집단공동체로 시작되었다. (물론 취업준비학원이 된 지금 이 말이 무색하지만... 그럼 대학의 주인은 기업인가? 슬프다) 학문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무엇보다 현실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하고 그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대학생을 위해서? 대학을 위해서? 물론 그들을 위해서도 사회가 대학을 접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를 위해서 대학을 접수했으면 좋겠다. 지역에 변변한 도서관 하나, 산책길 하나, 공원하나 없는 나라에서 대학을 그렇게 공적 공간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최소한 대학은 주인이 없는 사회공동체의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결론도 과격해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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