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으로 나오는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내 명함에는 '편집기자'라는 직책이 적혀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기자,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성역 없이 정론보도에 임하는 기자, 절대권력에 맞서 휘어지지 않았던 기자는 분명 7, 80년대 명예로운 직종이었다.그 과정에서 동아일보 사태가 있었고 한겨레가 탄생했고 또 생각해보니 시사in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이 '기자'라는 말을 명함에서 떼어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물론 르포도 쓰고 인터뷰도 하지만, 대개는 기획하고 원고청탁하고 원고독촉하고 교정보고 편집하고 교정보고 출력하고 교정보고 책나오면 발송하는 일이 80%를 차지하니 기자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최근 "기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우선 강희락 경찰청장의 성접대 발언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출입기자들. 그들 자신이 지금도 경찰에게서 성접대를 받고 있기에 모두 함께 침묵하기로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현직 경찰청장이 과거에 기자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문제보다, 그 왕년의 전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랑스레 떠벌렸다는 경찰청장의 뇌구조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의 침묵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자들의 침묵 속에서 은폐된 진실을 모르고 지내는 것일까. 분명 기자는 이런 면에서 무관의 제왕답다.
다음 한 가지는 요즘 기자들 반, 주민 반이라는 봉화마을에서 온 소식. 주로 사진기자들이 대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기 위해 파견된 모양이다. 당사자도 얼마전에 글을 올렸다지만,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 시국에서 뜰에 나와서 어떤 각도로, 어떤 표정으로, 무엇을 얼마나 지켜보고 있는지 누가 궁금해 할까. 이건 마치 연예가 중계도 아니고 말이다. 또 한편 자발적으로든 데스크의 지시에 의해서든 지금도 봉화마을 뒷 산에 올라 망원렌즈를 드려다보고 있는 기자의 심정은 어떨까.
달리는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며 쓰다보니 글이 끝도 없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밑에 달린 <미디어오늘>의 기고글에 달린 리플들을 보며 독자는 기자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뉴스는 무엇이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또 궁금하기도 하지만, 내 명함에서 '기자'라는 말은 꼭 빼리라는 취중 결심을 밝히는 것으로 오늘은 마무리하며 2탄을 기약해야겠다.
그런데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칼보다 펜이 더 야비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