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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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도 항상 깨어있어야겠어요...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 조그만 일에만...  

사법연수원이 생긴이래 처음이라는 집단행동(문제점과 명분에는 모두 동의가 되지만 웬지 밥그릇 지키기로만 보이는... 그 무수한 불합리와 부정의한 일들이 벌어질 때 그들은 어디서 뭘 했나?), 어느 공영방송사 전 사장의 눈부신, 혹은 눈물겨운 변신(다른 건 몰라도 엄모씨는 가족에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변신을 어찌 설명했을까? 이러면 안 되지만 고문해서 자백이라도 받고 싶다), 5억짜리 전세를 놓으며 전세란 대책을 골몰한다는 해당부처 장관(이 대목에서는 참, 할 말이 없다). 

분노의 방향은 다른 데로 돌려져야 한다.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이 자본의 왕국, 자본의 음탕함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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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병시절 우리끼리 하던 군대격언이 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당시 무서운 지휘관 참 많았지요. 또 이런 격언도 있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배식의 핵심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부족한 밥을 똑같이 나누는 것(고참이 좀 덜 먹기도 하고), 그에 앞서 오늘 밥이 얼마큼이고 뭐가 얼마나 모자라고 또 남는지 공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전우끼리의 신뢰는, 아니 전우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겠죠.

사랑받는 군, 자랑스런 군까지 못 가더라도 최소한 국민의 군대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전까지 작전 동영상을 알아서 언론에 배포하던 군이 이제는 기밀이라며 해경에게도 작전 동영상을 주지 않는다네요.

국민이 믿지 못하는 군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어쩌면 적보다, 무능한 군대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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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 국방부, 1일엔 "교전 없었다", 7일엔 "있었다"

석해균 선장 몸에서 해군 총알 나오자 당황, 은폐의혹 자초


2011-02-07 20:10:25


국방부가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해균 삼호주얼리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탄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하며 1주일 전 주장을 180도 바꿔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 다음 아고라에는 '석 선장 과연 해적이 쐈나', '석해균 선장, 아군 UDT 소지 MP5 총상으로 밝혀져', '석 선장 총상 6발, 해적이 쐈나, 아군 오발인가?'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들은 석 선장이 해적의 AK소총에 맞았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해적의 AK소총에 맞은 것이라면 몸이 산산조각 나야하는데 석 선장은 총탄이 몸 속에 박혀 있다"며 "우리 UDT 대원의 MP5 기관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의료진이 총탄 1발을 분실한 데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물증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렇게 소홀히 했을 수 있겠느냐"며 "일부러 축소 은폐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당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석 선장의 몸에서 꺼낸 총알 관련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통해 "석 선상의 총상은 해적이 쏜 총에 의한 것"이라며 "당시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일어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확한 탄두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예단하는 행위를 삼가해달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더 나아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 우리 UDT 대원이 사격을 했다는 허위사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며 "버젓이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음모론을 믿는 국민들이 일부나마 있다는 것"이라며 "제가 만나본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찾아서 사법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했다. 우리 사회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갈등을 부추기려는 간첩의 소행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들도 있었다"며 네티즌들의 의혹 제기를 '간첩 소행'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알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 하며 다음 아고라에 180도 다른 내용의 해명 글을 올렸다.

국방부는 "1월 21일 새벽 아덴만 여명작전간 UDT 작전팀이 선교로 진입할 당시 석 선장은 이미 해적이 쏜 총에 의해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며 "UDT 작전팀은 선교로 진입후 해적과 교전시 근거리에서 정확하게 조준사격을 실시하여 해적 7명을 사살하였다"며 석 선장이 쓰러져 있는 선교에서 '교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해경에서 발표한 UDT 작전팀의 권총 탄환으로 추정된다는 1발은 교전간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정확한 것은 현재 조사중인 국과수 최종 감식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도도하던 국방부가 불과 1주일 사이에 말을 180도 바꾼 것. 국방부는 이와 함께 아고라에 실었던 지난 1일자 반박글을 아무런 해명없이 신속히 삭제하기까지 했다.

인터넷상에 각종 의혹이 떠돌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다름아닌 정부여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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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1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침에 한겨레 1면 보다가 그럴줄 알았단 느낌이 들었어요. 뭐만 나왔다면 음모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이젠 주장하기 전에 국적 먼저 밝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격월간 <사람>이란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원고를 부탁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는데요. 저희 잡지에서 다음 호에 OOO을 특집으로 다루려고 하거든요."

"저는 잡지에 원고 안 씁니다."

"바쁘시겠지만 다음 달 말까지만 써주시면 되는데, 이 주제에 대해 필자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는 없는지..." 

"전 잡지에는 글 안씁니다. 미안합니다."

 

하루종일 언짢았다.

잡지를 만들다보면 청탁을 거절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유도 여러 가지다. 일이 너무 바빠서, 집안에 일이 있어서, 쓰고 있는 게 있어서, 주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서, 이미 다른 데다 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등등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잡지도, 널리 알려진 잡지도 아니고, 고료는 정말 쥐꼬리만하고 그러니 못 쓰겠다고 하면 도리가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신선한 주제, 새로운 접근, 다른 시각을 기획하려고 하면 필자 찾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둘러보면 교수도 많고 학자도, 연구자도, 전문가도 넘쳐나는데 그렇다.  

흔쾌히 써주마 했다가 마감을 훌쩍 넘겨 편집자를 괴롭히는 분들이 야속할 때도 있다. 청탁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필자가 쓴 관련 글들은 찾아보는데 다른 데 쓴 글을 거의 옮겨놨거나 재탕 삼탕한 글을 받았을 때는 당혹스럽다. 한 가지 주장(혹은 이론)을 너무 울거먹는다는 생각이 드는 연구자도 있고 자기 분야가 아닌데 지나치게 기웃거리는 것 아닌가 싶은 학자도 있다.(물론 정말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게다가 원고료도 마다하시는 다수의 훌륭한 필자-교수, 연구자, 전문가 님이 이 동네에는 더 많다. 다만 마감은 고무줄이지만^^)

존경스럽고 늘 많이 배우고 있지만 솔직히 학자라면, 연구자라면 기본적으로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매체에 품앗이를 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드는 분도 있다.   

그런데 어제 통화한 교수님은 그 정반대 경우였다. 단호했다. "잡지에는 글을 안쓴다."는 말은 곧 학술지나 단행본을 위해서만 글을 쓴다는 말로 들렸다. 어떻게 학자가, 또는 연구자가 이런저런 청탁에 다 응하고, 이런저런 잡지에 글을 쓰면서 무슨 시간이 있어 자기 학문을 연구하겠는가. 그 시간에 자신의 연구에 더 몰입하고 집중하는 것이 자신에게, 그리고 한국사회에 더 충실한 전문가로서의 역할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잡지에는 안 쓴다."는 원칙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원칙이 그리 나쁘지 않고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교수님이 재직하고 있는 국립대는(굳이 국립대가 아니더라도) 교수님의 연구활동에 세금도 들어가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에 걸맞는 사회적 발언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건 아닐까? 왜 학술지, 단행본은 되고 잡지는 안 될까? 최소한 OOO이란 주제가 어떤 취지이고 지금 시기 무슨 의미인지는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네다섯개의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힌다.   

우리는 모든 순간순간 최선의 삶을 살수는 없다. 아니 어떤 이는 신처럼, 성자처럼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다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래서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은 범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잡지에는 글을 안 쓴다는 교수님에게,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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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1-20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 평가에 잡지는 그야말로 잡스럽게 취급해서 그렇겠죠. ㅎㅎ 뭐, 실력도 없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나무처럼 2011-01-20 02:15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겠는데... 청탁 전에 찾아본 바로는 실력도 있고 나름 진보적(?) 관점을 가진 듯한 분이셨는데.. 게다가 사회과학 분야여서 제가 받은 충격이 더 심한 듯합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지구과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문과를 지망한 학생들은 대입시험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 했죠. 그 지구과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대뜸 칠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선을 쭉 긋고는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선이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의 일생은 이 점보다도 짧다고 그럽니다. 또 이 선이 우주의 역사라면 지구의 역사 또한 이 점보다도 짧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다단계 회사 대표나 사이비종교 교주의 ‘포스’를 물씬 풍기던 분이셨습니다.  결론인 즉은, 이처럼 방대한 범위에서 대입시험에 나올 20문항을 뽑으니 문제가 그 얼마나 쉽겠나, 그러니 다들 지구과학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전혀 ‘과학’같지 않았던 지구과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놈의 입시만 아니라면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수학까지도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란 사실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있지요. 


지구가 또 한 바퀴 먼 길을 돌았습니다. 2011년 한 해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칠판에 찍힌 점은커녕 훅하고 불면 분필가루처럼 날아가 버릴 찰나일 수 있지만 지난해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난 연말에 동갑내기들은 이제 마흔 살이라고 구시렁거렸지만 저는 속으로 마흔이든 마흔 다섯이든 빨리 둘째가 커서 어린이집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도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보면 새삼 칠판에 그어진 줄이 떠오르고, 시간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누구는 한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이 1이라고 할 때 백 살 노인에게 1년=1/100인 셈이니 이렇게 계산하면 열 살의 1년=0.1이고 마흔 살 1년=0.025가 되어 열 살 때 비해 마흔 살 때는 시간이 네 배나 빠르게 간다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공식을 알려주더군요.


좀 더 과학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강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먼저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시계 말고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지요. 어느 심리학자가 70대 노인 그룹과 20대 젊은이 그룹으로 나누어 눈을 가린 뒤 한 번은 1분, 2분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마다 신호를 하게하고, 그 다음에는 1분, 2분마다 얼마나 지났다고 느끼는지 말하게 했습니다. 실험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노인 그룹은 실제 1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1분이 흘렀다고 답하고, 실제로 2분이 흘렀는데 40초밖에 안 됐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생체시계가 빠를 때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져 강물보다 뒤처지게 되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강물(시간)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행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매순간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는 어린 시절은 길게 느껴지고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성인이 되면 짧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이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라네요.


머리를 많이 쓸수록 뇌에 주름이 많이 잡힌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시간에도 주름이 잡히는 모양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벌써 100년 전에 발표됐다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니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거나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처한 조건 그리고 기분에 따라 1분 60초, 1년 365일이 다 같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안 해본 싸움 없이 다 해봤다는 기륭의 1895일은 어떠했을까요? 용산참사로 가족과 동지를 잃은 이들이 장례식까지 견뎌야 했던 355일은 또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시답지 않게 시간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번호 <사람>에 실린 기륭과 용산에 대한 글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막바지, 6년간의 질기고 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사측과 조인식을 했다는 기륭 소식을 접하고는 ‘쓰잘~데 없지만 그래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난해한(?) 요구에 성심껏 답해준 김소연 님의 글에는 1895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시간의 주름들이 자글자글합니다. 방귀를 뀌고 잠꼬대를 하며, 단식을 하다  나물을 캐고, 안동찜닭을 먹으며 싸워온 그 주름들은 칠판을 가로지른 한 줄 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일 테지요.


이제 곧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째가 됩니다.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님이 인터뷰에서 했던 “정말 후회되는 건 장례식을 치룬 거”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1년, 그리고 그로부터 또 1년은 과연 얼마큼의 길이, 얼마큼의 무게일까요?


늦어진 마감에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해를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폭설과 한파로 한반도가 다 몸살입니다. 수십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는 가축들이며 4대강 사업으로 소리 소문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은 어떤가요. 이 살처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죽여놓고는 전투 중에는 불가피하게 따르는 피해가 있다며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지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늘 그런 식이지요.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부수적 피해’와 부대끼며 결코 누구도 부수적인 존재일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더디 가는 생체시계를 너무 탓하지 마시길. 눈가나 이마 혹은 뱃살 어딘가에 새로 잡힐 주름에도 부디 노여워 마시길.


- <사람> 48호에 실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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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경 2011-01-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안녕하세요 ㅎ
아마도 여기 이름이 꽃경내로 뜨지싶은데요(' ')
알라딘이 헌책방을 한대서
몇년 전 아이디 헤매고 겨우 찾아 들어왔어요.
돌아다니다보니 문득 여기 생각이 나는 거예요
'맞다! 알라딘이었지!' 하면서.
그래서 또 포차 르뽀르타주 르포... 하면서 찾아왔어요.
책읽기는 여전하시네요~ 서평 읽어보고 해야겠어요.
스산한 생각들이 스쳐가는 연말이기도 했고
<사람> 시작하는 말이기도 하군요.
새해 첫 책자가 사랑-48호라서 느낌이 좋아요ㅎㅎ
송년회 때 못 오셔서 신년회 해야된다구 막 그랬어요.
두아기의 아빠라 얼마나 바쁠까,싶기도 하구요.
짬 내서 다같이 얼굴 함 봐요^ ^

나무처럼 2011-01-10 17:41   좋아요 0 | URL
노래방까지 갔다는 송년회 이야기는 형석씨한테 들었어요. 신년회는 기필코 나가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