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설계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벌써 한 달 전이다. 주방 배치가 가장 문제여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애초에 11자형에서 ㄱ자형, 다시 11자형을 거쳐 마침내 ㄷ자형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상수도는 바꿀 수 있지만 하수도는 기초에서부터 결정되어 나중에 바꾸게 되면 출혈이 크다. 그래서 기초공사 때부터 주방 싱크대는 확정되어야 했다. 


견적서도 받았다. 예상보다 초과 금액이 크다.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낮추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설계를 맡았던 김정호 소장님과 시공사 김채일 대표의 호흡이 잘 맞아보여서 안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이자 스트레스가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다. 직간접적으로 집을 짓는데 관여해봤던 지인들은 다들 애정어린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과할 때도 많다. 평당 건축비가 얼마니, 계약할 때 주의할 것이 무엇이니 등등 매우 구체적인 정보이지만 집도 집터도 사람도 다 제각각인 만큼 우리 상황과 무관하거나 거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지하게 듣지만 너무 귀 기울이지 않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평생을 건설 일을 하시고 본인의 집도 두 번이나 지어보신 장인어른이 "예쁘게 잘 지어봐라"라고 무심히 던지는 말씀이 참으로 고맙다. 


고마운 사람이 많다. 계속 자기 일처럼 봐주는 베짱이. 그리고 소나무. 현장에 있는 기존 주택을 철거해야 하는데 철거업체 선정에 애로가 많았다. 김 소장님도 김 대표님도 경험이 없어 여기저기 물어본 끝에 고물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계통에 있는 소나무가 소개를 해주었다. 전화 상으로 예측한 견적에 두배가 훌쩍 넘는 철거비가 나왔지만 그래도 소나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50만원 정도는 더 지출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래저래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11월 14일 마침내 기존 건물이 철거되었다. 오전 9시쯤 시작된 공사가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끝났다. 집이 허물어지고 보니 집터가 좀 넓어보였다. 예상치 못했던, 거실 창문을 가릴 것으로 예상되던 전봇대의 위치도 한전과 협의 끝에 옆으로 옮기게 되어 좋다. 철거 공사 전날 부랴부랴 이웃집에 감 한 상자씩을 돌리고 양해를 구했다. 철거 과정에서도 동장님, 동네 교회 목사님을 비롯해 이웃들 대여섯 명을 만났다. 하루 종일 현장을 지킨 나름의 보람이랄까. 적어도 10년을 살 동네이니만큼 이웃과의 관계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마음가짐이 전세 살던 때와는 많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얇팍한 내 심사가 드러나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덧붙이자면 뒷 집과 불란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전봇대 문제도 나름 깔끔하게 처리된 것 같아 다행이다. 현재 전봇대를 살리려면 뒷 집 땅에 전봇대를 하나 더 설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전봇대를 옮기게 되었으니 불란의 소지 자체가 없어진 셈이다. 


11월 19일, 오늘 건축 인허가가 나왔고 구청에서 인허가 서류를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산재 신청을 했다. 내일은 측량을 한다. 모든 것이 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들이다. 


거실 쪽 데크는 계속 고민스럽다. 장도리와 강물의 도움을 받아 할 것인지, 업체에 맡길 것인지. 일단 거실 쪽 데크는 업계에 맡기고 나중에 마당에 평상이나 데크를 배워서 해보는 것이 어떨지... 결국 문제는 예산, 비용이다. 이건 막판에 결정해도 될 것 같다. 


 














고병권의 책을 읽고 있다. 요즘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작가다. 이 두 권을 관통하는 것은 '(장애)운동'과 '앎과 삶'이다. 운동과 철학이 만날 때 지식과 실천이 어떻게 확장되고 생명력을 얻게 되는지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게 집을 짓는 일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나에게 집짓기는 과연 어떤 만남, 지식과 실천의 확장을 가져다줄 것인가. 


그 사이 11월 11일 참으로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갔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러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반대 주민분들이 올라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을 짓는다고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내심 불편하고 때론 한심하고 그렇다. 그런 면피라도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밀양 주민분들이 올라오시니 꼭 가야만 할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미류와 덕진을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었지만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것 또한 죄스러움인가.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만하고 계속 내년 3월 주택 완공시기 이후로 미루기만 하고 있다. 물론 3월 이후에도 집에도 손이 갈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손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다. 하여튼 최대한 시간을 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김정호 소장님이 집 이름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마땅이 잘 떠오리지 않는다. 집 모양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그러면 사람들에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물어야겠다. 어떤 그럴듯한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다보니 결국 이름이란 불리워지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이름 짓기는 나와 나의 가족의 몫이겠지만. 


내일 측량에서부터는 현장에 사진기를 가지고 나가 꼼꼼히 기록을 해야 겠다. 수첩도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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