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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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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법 2부작’으로 『한국의 문화적 문법』(정수복, 생각의 나무)을 다룰까 했다. 황우석 사태를 거론하며 오늘의 한국사회를 진단했다는 서평에, 때맞춰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 D-War’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책을 집어드니 책값 18,000원이 발톱에 가시처럼 박혔다. 아마도 얼마 전 읽은 『남한산성』이 없었다면 속절없이 이 책을 사들고 나왔을 게다.

휴가시즌임에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긴급 투입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시기 47일 동안 성안에 갇힌 말(言)들의 전쟁이다. 싸우자는 김상헌과 항복하자는 최명길.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인조와 노회한 영의정 김류. 거기에 대장장이 서날쇠와 정복자 후금의 칸까지. 이들의 생사와 존엄을 건 말다툼 사이에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다는 작가 김훈이 서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는 그의 소심한 말은 분명 진심이겠지만 진실은 될 수 없다. 소설의 제목이며 무대인 ‘남한산성’은 결국 소설의 주인공인 셈이자 그 자체로 세상에 대한 김훈의 지독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디워’는 용들의 싸움 대신 말들의 싸움으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바야흐로 돈 대신 표를 벌어보려는 이무기들의 혹세무민이 난무한다. 어느 누가 난세에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 했던가.  

- 2007년 9월 씀. 제목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시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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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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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20주년을 즈음해 각 언론사들마다 작심한 듯 그때 그 시절을 들춰냈다. 당시 거리를 가득 메운 가공할 양의 최루가스와 후미진 골목이나 건물 화장실에서 내 허파를 한 바퀴 휘돌아 나왔을 담배연기. 이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마는, 하여튼 87년은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해이니 어느덧 20년이다.

이상하게도 어떻게 담배를 입에 물게 되었는지, 언제 입담배가 속담배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자율학습을 마치고 인적 드문 놀이터에서 끽연을 즐기다 아파트 경비에게 걸려 달밤에 ‘엎드려 뻗쳐’와 ‘쪼그려 뛰기’를 했던 일이나, 의기양양하게 대로변에서 담배를 물고 건널목을 건너다 틀림없이 부부싸움 끝에 집나왔을 형사를 만나 온갖 공갈협박을 당하고 마음 졸였던 그 수난들만큼은 생생하다.

이러한 나의 수난사는 명함도 내밀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 수난이 아니라 잔혹이란 단어를 써야만 제대로인 이 땅 담배 피우는 여성의 숙명을 그린 책이 『흡연여성 잔혹사』(서명숙 지음. 웅진)이다.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술잔과 따귀가 날아들고 욕설이 난무하는 에피소드들은 그나마 서정적이다. 목숨 걸고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우다 마침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여고생에서부터 흡연을 이유로 이혼을 당해야 했던 한 어머니. 담배 피며 차를 몰던 중년여성이 음주단속 경찰을 보고 놀라 서둘러 담배를 끄고 창문을 내리며 무심결에 “저 담배 안 피웠는데요” 하고 말았다는 대목에까지 이르면 그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뿌리 깊고 치밀한가를 1/10쯤 겨우 짐작할 수 있으려나.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결혼하면 시부모의 눈치 보랴, 임신 전, 중, 후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아이에 시달리랴, 감히 남성인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고행은 끝날 줄 모른다.

오늘 이 순간 또 여러 사람 담배 물게 하는 <시사저널>의 편집국장이었던 지은이 서명숙은 책 말미에서 결국 달리기, 여행 등에 대한 중독으로 담배에 대한 중독을 물리쳤다며 금연을 권하고 있지만 아직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여성동지들은 어찌할 것인가. 부디 이 땅 담배 피우는 여성들에게 복 있을지언저.  

- 2007년 7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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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미있죠. 저도 수십 차례의 금연시도에 항상 좌절하는데....

담배를 피우게 된 단초를 제공한 선배의 사고가 가슴이 아리네요. 김훈의 추천사도

괜찮고요 ^^

나무처럼 2009-08-2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훈의 추천사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다시 찾아봐야지...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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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유유상종이라 어울리는 놈들 중에 반은 결혼을 안 했고, 결혼한 반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아이가 없다. 그래서인지 술자리에서 이 사건이 자주 술상에 오르내린다. 아예 대놓고 사내가 좋냐, 계집이 좋냐하고 물어보는 치도 있다. 대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나 같은 놈 나오면 어쩌누’ 싶으면 딸이고, 험한 세상 유난히 험난해 보일 때는 반대다. 문제는 이런 안주거리가 아니라 녀석이 아내 뱃속에 들고부터 ‘불안’이란 놈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에세이 『불안』은 사랑의 결핍과 속물근성, 주위의 기대와 같은 개인적 이유에서부터 능력주의와 사회의 불확실성의 증가란 사회적 원인까지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섬세하게 짚어놓은 책이다.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 보면 결국 불안은 자본주의 삶의 조건이자 방식이다.

미국 사람들이 지금 총으로 구한 안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면 한국에 나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 돈으로 안전을 사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또 빈곤하게 만드는 지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12주(새롭게 알았는데 이쪽은 대개 ‘주’ 단위로 따진다)를 넘긴 아내는 일단 유산 가능성이 확 줄었다며 안심했지만, 주위에서는 곧 조산의 불안에 시달릴 거라 예언했다. 한 20주 정도 넘기면 일찍 나와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살릴 수 있지만 그때부터는 정신지체, 자폐 등등 돌은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걱정꺼리가 될 거란 저주도 서슴지 않는다. 

그뿐인가. 이 사회는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상은 온통 지뢰밭이고 전쟁터라고 떠들며 불안을 마케팅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 영화감독 말마따나 불안은 영혼을 충분히 잠식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혼뿐만이 아니라 나의 지갑까지도 잠식당하고 말 것인가. “제 먹을 복은 다 갖고 태어난다”는 아내와 나의 팔자론(論)은 위태롭고 우리의 지갑은 몹시 ‘불안’하다.  

- 2007년 5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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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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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계의 이단아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동경하며 그들의 1할 2푼 5리 승률을 “치기 힘든 공 안 치고 잡기 힘든 공 안 잡는” 비주류의 철학 ‘귀차니즘’으로까지 승격시켰던 소설가 박민규가 이번에는 ‘탁구 치는 왕따 중학생’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창작과 비평> 계간지에 연재했던 소설 「핑퐁」이 책으로 묶인 것이다. 그렇다고 박민규의 말마따나 소설에 학부모나 선생, 또는 감독이나 코치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미에 가서는 가당치 않게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했다는 라인홀트 메스너나 미국 흑인 해방운동을 했던 말콤X가 나오기도 한다.

굳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자칭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인 왕따 중학생 둘이 우연히 탁구를 배우게 되고, 어쩌다 핼리 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여하고, 터무니없이 인류 대표선수와 탁구시합을 하다가, 상대가 그만 과로사하는 바람에 이기게 되고, 마침내 세상을 이 모양으로 계속 둘 것인지 아니면 인류를 언인스톨(삭제)시켜버릴 것인지의 선택권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계는 다수결이다. 에어컨을 만든 것도, 말하자면 자동차를 만든 것도, 석유를 캐는 것도,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 알고 보면 그렇다. 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

다수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주인공이 끝끝내 폭력을 견뎌내야 했던 까닭은 “왜 좀더 잘해주지 못했나 후회가 돼요.”라 말하고 다시 수업에 열중할, 스스로는 단 한번도 주인공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믿을 과반수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은 랠리(탁구경기에서 공을 주고받는 행위, 이를테면 의견을 갖고 대화를 하듯)의 중요성을 서서히 깨닫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슬아슬한 듀스로 연명해온 인류의 생사여탈이 걸린 경기에 내몰린다.

그래서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느냐고? 소설보다 세상이 더 잔인한 법. 굳이 소설을 보지 않고 9시 뉴스만 틀어도 알 수 있지 않나?  

- 2006년 1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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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유나바머 지음, 조병준 옮김 / 박영률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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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아흐메드 파델 나잘 알 할라일레(Ahmed Fadel Nazzal al-Khalayleh). 1966년 혹은 67년 요르단 출생. 현상금 2,500만 달러가 걸린 테러리스트.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던 인물.


일명 ‘알 자르카위’라 불리던 한 사내가 6월 7일 미군의 폭격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그의 죽음을 “반테러 전쟁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했다는데, 만약 정당한 전쟁이란 게 있어 이 말을 들었다면 테러당한 심정이었으리라. 뜬금없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테러나 폭력은 어떤 경우,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말꼬리를 잡자면 선거 과정이 아닌 경우 테러나 폭력은 명분만 좋으면 용납될 수도 있다고 들린다. 혹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한 스스로의 처지를 고려해 한 말은 아닐까.


솔직히 나는 테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다. 정의하기도 경계 나누기도 자신 없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테러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으며, 대개 폭력은 테러만이 아니라 그 전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 바로 <유나바머>란 책이다. 17세에 하버드에 입학해서 25세에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곧 버클리대 종신교수가 되었으나 2년만에 교수를 그만둔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 ‘유나바머’(Unabomber)는 그가 주로 항공사와 대학으로 폭탄을 우편배달 하는 수법을 썼기에 FBI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체포되기까지 총 16차례 폭탄테러를 하였으며, 주 테러 대상은 과학자였다. 95년 그는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선언문을 게재해 줄 경우 테러를 멈추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두고 미국 사회는 테러범의 협박에 굴복할 것인가, 공공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해당 언론사, 미 법무장관, FBI 국장 등이 모여 게재를 결정했다. <유나바머>는 그렇게 해서 언론에 실렸던 선언문을 묶은 책이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란 선언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산업사회와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일관한다. 깨알 같은 글씨에 재미도 없지만, 사상이 불온하거나 생각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무릎을 치며 동의를 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2006년 6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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