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 -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민주주의
임미리 지음 / 이매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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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괴물을 만들었는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 흥미롭게 금방 읽어버린... 그리고 ‘영토성‘에 대해 눈뜨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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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 한국저항운동과 열사 호명구조 질문의 책 14
임미리 지음 / 오월의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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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열사로 호명되는가? ‘열사 해체기‘에 열사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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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기록자와 구술자의 대화는 결국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로 수렴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꿈, 내가 나의 삶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그녀들은 생경한 무언가를 만난 듯 머뭇거렸다. -8쪽


내가 이 손을 놓고서 멀리 떠난다 해도 우리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이 사회 속에서 여전히 받아가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생에서의 내 삶이 그걸 위해 쓰여도 좋습니다. 우리 아이와 어미인 저는 이번 생을 그렇게 같이 살다 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미가 그렇듯, 이 아이로 인해서 나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26쪽


'그럼 그렇지. 다른 애들보다 반응이 약간 느리긴 해도, 너 잘 크고 있는 거지' -37쪽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질문 몇 개 던지고, 애를 한두 번 본 것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무지막지한 말을 하나,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남편과 엄청 욕을 하고 결과지 받으러 가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40쪽


부모의 장애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면, 아이의 장애는 온 미래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44쪽


아버님이 대놓고 저한테 '정신과를 갈 사람은 애가 아니라 너다'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아버님이 원하는 병원에, 원하시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 잡아주시면 제가 검사를 받을게요. 저는 아버님 며느리니까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대신 제가 아버님한테 돈 대달라고 안 할 테니까 제 아이를 가지고 제가 하는 거는 신경 안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71쪽


그녀는 아직 둘은 부부라기보다는 부모일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데 이 사람만한 파트너는 없다며 신랑을 '동지'라고 표현했다. -79쪽


누군가 쌍둥이를 안 좋은 눈으로 보고 있어서 힘들면 가족이 아닌 척해도 돼. 그래도 엄마는 뭐라 하지 않아. 왜냐면 네가 그걸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걸 엄마는 아니까. -89쪽


미래 어머님, 미래는 잘 가르치면 일상생활은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 올해 대통령으로 누굴 뽑을지에 대해서는 함께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108쪽


재활은 삶이라는 긴 여행을 가기 위한 도움닫기다. 미래가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려고 할 때 무엇에 서툴고 어려움을 느끼는지, 미래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듣고 만들어 가는 일이다. ... 그런데 의외로 장애를 '아픈' 거라고 말하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 재활은 치료라기보다는 장애라는 특성을 가진 이들에게 맞추어 제공되는 교육과정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124쪽


정말 학년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들하고 상담하면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요. ... 해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정말 슬펐어요. -132쪽


주목에 비난이나 비하의 시선이 담기면 견디기 힘든 무게가 사람을 짓누를 수 있다. 주목에 내재한 양극단의 감정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가장 극명히 드러내주는 것이리라. 노골적인 폭력과 다른 이러한 시선의 폭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사람의 마음을 갈아낸다. .. 그렇게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는 장애아의 어머니에게 내면화되어 자신을 겨누는 창이 된다. -190쪽


'돌발'이라는 말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의미한다. ...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발달장애인의 '다른' 행동은 맥락도 의미도 없이 튀어나오는 이상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194쪽


그냥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그냥 조금 커서 내가 무거운 거 들고 갈 때 걔가 그냥 들어주는 정도? 지금은 안 들어주고 다 나 주거든요. 지 가방도 벗어서 나 주니까. ... 그것만 했으면 좋겠어요. 지 거 나 안주고, 지 것만이라도 들고... -267쪽


헬로키티랑 저랑 동갑인데 그렇게 오래 사랑받는, 

독수리오형제처럼 지구를 지키고 정의를 지키는, 

꿈을 꿀 수 있는 그림을,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281쪽


"네. 대답을 해요. 그런데 몸으로 하니까, 기다려주세요." ... 발달장애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애인이 이해 대상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해요. -287쪽


자꾸 흔들려야지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죠.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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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회과학은 아직까지 '사건'에 천착하지 못햇거나 깊이를 갖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 한 10년쯤 지나면 <오월의 사회과학>처럼 <세월호의 사회과학>이란 명저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한 소박한 기대도 사치스럽게 생각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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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해는 사건 원인의 분석과 규명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은 아렌트가 지적하듯이 "그러한 일들이 전적으로 가능한 세계와 우리 자신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끔찍한 사건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 세계와 그런 세계가 가한 폭력성에 상처 입은 자아 간의 불화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해와 그것의 선물인 화해는 인지적인 과정일 뿐 아니라 실천적인 과정이 된다. 세계와 자아의 불화는 단순히 인지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아와 세계 양편에서의 변화를 동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쪽


... 사회적 고통에 대한 기술적 분석은 때로 희생자 고유의 언어를 특유한 일반적, 전문적 언어로 전환시켜 고통에 관한 표현과 경험을 바꿔 버린다. 고통, 죽음, 애도의 실존적 과정은 우리가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이성이나 기술에 의해 변질되며, 이러한 변질을 통해 고통의 치유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옅어진다. 의학은 고통의 실존적, 도덕적, 미적, 심지어 종교적 측면을 관료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다. -58쪽


'외상'이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그 기저에는 '사건, 구조, 인식과 행위 간의 인과관계'가 자리한다. -64쪽


정체성의 수정 과정은 곧 집단의 과거를 탐색하고 재기억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란 사회적이고 유동적일 뿐 아니라 현재의 자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현재와 미래를 직면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전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확보된다. 부연해 두자면 재현을 통한 외상의 일상화 과정은 문화적 외상의 특수한 사회적 의미를 결코 상쇄시키지 않는다. 보다 폭넓은 공중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참여하면 문화적 외상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의 영역이 확대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결합으로의 효과적인 길을 제공할 것이다. -66쪽


장엄한 기념식전의 장소를 구축하는 것보다, 오히려 충실한 현전으로서의 긍정적 장소를 거부하면서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어긋남의 경험을 천착하는 자리에서, 범람하는 애도에 대한 타협 없는 저항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유포되는 애도에 대한 타협 없는 저항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세월호의 죽음은 개인 차원의 자연사가 아니기에 애도는 정의의 문제로, 산 자들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한 정의로 건나가야 한다"는 철학자 김진영의 전언에 나는 지지를 보낸다. 애도는 산 자들이 죽은 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죽은 자들에게 어떻게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인지를 발본적으로 묻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03쪽


다시 말하면 '애도 공동체'라고 떠벌리는 산 자들의 '안심해 버린' 공동체에 포섭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인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원한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원한의 감정을 "그 사회의 객관적 존재 방식과의 관련하에서 리얼하게 파악"하고 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애도의 정치의 출발점인 것이다. -104쪽


죽음에 대한 의미 부여, 그리고 그 한 표현으로서의 애도의 정치는, 비극으로 점철된 지난 60여 년의 한국 현대사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해 왔다. 그 힘의 정당성은 아마 기나긴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인류 사회가 보편적으로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성스러움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그 최소한의 성스러움마저 사라져 버린 사회, 유족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애도'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지 자문해본다. 우리는 죽음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서의 시대 구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낯선, 새로운 시대를 몸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08쪽


국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단지 사람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것뿐이다. ...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우리 앞에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144쪽


'국가의 특수법인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생명, 안전 영역의 전면적인 민영화는 이미 내재적으로 시장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지향한다. -172쪽


신자유주의적 국가 개혁의 산물인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안전, 위험 부분의 외주화, 고용 조건의 유연호와 같은 국가 장치의 재구조화의 맥락에서 시민의 생명, 안전과 관련한 권력의 작용 방식이 변화하는 양상 가운데 빚어진 사건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진도 앞바다를 우리 모두가 처한 현실적 보편성 속에서 국가 장치의 구성적 결핍, 또는 그 근본적 무능력과 대면하는 장소로 재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3쪽


사건을 통해 나타난 진리에 충실한 주체가 출현하지 않는다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만 갖고는 아무런 의미도 끌어낼 수 없다... 결국 사건은 그것을 통해 드러난 진리에 충실하고자 하는 주체의 행위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176쪽


'사건에 대한 권리... 이 개념은 피해자가 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 사태에 입장을 표명하고, 해법을 제안하며, 그 이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공적인 지위를 의미한다. 4.16연대의 인권 선언 초안이나  유엔 인권 피해자 권리 장전이 밝힌 피해자의 '존엄'과 '인정'도 피해자를 국가가 제시한 처방전의 수동적인 수취인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 주체로 표상하는 것이 요구된다. -348쪽


한국은 구조의 표출이었던 외환 위기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비정규직과 취업난과 불평등이 만연하 국가 상태를 만들고 말았다. 인간을 위한 국가 개혁의 기회를 실기한 결과가 오늘의 고통스런 인간 현실인 것이다. 물질주의, 시장주의, 기업주의 제일 담론으로 초래된'단기적' 외환 위기로부터 아무런 구조도 개혁해 내지 못한 '장기적' 후과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세월호 사태는 예외도 특수도 아니다. -365쪽


우리에게는 '국가를 위한 유공'과 '국가에 의한 희생'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말이 두 가지가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둘은 분명 다르다. 특히 개별 생명의 망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자는 개인 결단의 측면이, 후자는 구각 책임의 측면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다른다. 

그러나 개인의 한시성과 유일성, 인간 공동체의 영속성과 전체성을 같이 고려할 때 둘을 통합해 이해하는 것은 위에게 '개별 생명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과 관련해 어떤 통합적 지혜를 줄지 모른다. -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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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을 곳이 너무 많다!

<모멸감>의 연장에서 한국사회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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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25쪽


군인에게 우호(또는 환대)의 권리가 없다는 것과 그가 물건처럼 소모된다는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환대는 사람의 권리이며, 환대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미하엘 유르크스의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는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그들은 중간의 무인 지대에서 만나 담배와 술을 교환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축구를 하였다. 사령부는 당황하여 이 사근을 은폐하려고 하는 한편, 적과 친교 행위를 하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리라고 엄명을 내렸다. -42쪽 각주


현대의 사형제도는 이와 대조적으로, 범죄자를 격리된 장소로 끌고 가서 소수의 입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범죄자가 이미 사회 바깥에 있다는 생각은 그를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의 고통은 어떤 상징적인 가치도 갖지 않으며,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역시 '동물 복지'를 논할 때와 유사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문제에 집중된다. -54쪽


노예제도가 도입된 후 버지니아에서 성장한 많은 살마들이, 그 이전 세대와 달리 열렬한 공화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무었이 있었는데, "적어도 법률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뜻에 거의 전적으로 굴종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제군주에 지배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노예의 존재는 버지니아인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평등의 감정을 북돋우었다. ... 노예가 아니라는 바로 이 점에서 소농은 대농장주와 동등했던 것이다. -63쪽


남아공 백인들은 흑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그들에게 성원권을 주지 않기 위해 반투스탄이라는 외국을 발명하였다. -72쪽


왜 어떤 범주의 사람들-흑인, 재일조선인, 불가촉천민 등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럽다고 여겨지는가? ...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73쪽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는 더글라스의 명제... 모든 사람과 사물이 우주적 질서 안에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더글러스의 명제는 자리들, 혹은 그 자리에 배정된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상대성과 상호의존성을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야말로 차별을 은폐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이다. -75쪽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사회는 여성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잘못 인쇄된 글자처럼, 여성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78쪽


오염의 메타포는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이 지배계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함의한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는 것이다. -80쪽


사람이 수행적이라는 것은 사람다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83쪽


제주도에서 흔히 그러듯이 택시를 종일 대절한 승객은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미묘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는 운전사가 근무에서 벗어났다고 간주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지, 아니면 운전사가 여전히 근무 중이라고 규정하고 따로 식사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 그가 운전사와 따로 앉기를 고집한다면, 운전사는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운전사와 함께 식사를 한다면, 택시로 돌아갔을 때 그는 더 이상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없을 것이다. 즉 그는 운전사를 다시 비가시화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85쪽 각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얼굴이 있는 듯이 행동하고, 우리의 얼굴에 대해 존중을 요구함으로써 얼굴이 실제로 거기 있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대방의 사람 연기에 호응하고, 그의 얼굴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며, 그가 얼굴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말하자면 얼굴은 상호작용 속에서 가정되고 또 실현되는, 의례적인 픽션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대해 의례를 행함으로써 서로를 사람으로 임명한다. -87쪽


상호작용 의례를 통하여 우리가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그의 인격이다. 다시 말해 그의 안에 있는 "사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고프먼에게 이 인격은, 초기의 사회활르 통하여 개인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타인들의 협조에 힘입어 표현되고 확인되는 무엇이다. -115쪽


외부의 관찰자로서 우리는 직원이 재소자를 너무 가혹하게 대한다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직원의 입장에서 이러한 가혹함은 불가피한 것이다. 직원은 제소자의 인격을 말살하여 다루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 재소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것은 좋지 않다. "재소자가 인간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21쪽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이유로, 혹은 신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는 이유로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받는 장애인처럼, 낙인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고 사랑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관심의 대상은 그의 인격 전체가 아니라 인격에서 돌출된 부분, 즉 낙인이다. -122쪽


'사회'를 대표하여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는 이 정상인들은 자기 앞에 있는 낙인자들을 아무나 덥석 껴안음으로써 자기가 그들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정상인들이 이렇게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123쪽


체벌은 폭력인 동시에 일종의 의례이다. 체벌이 체벌당하는 사람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다른 모든 의례와 마찬가지로, 체벌은 맞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을 포함한 행위자 모두가 행위의 의미와 절차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무언의 협력을 할 때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 폭력의 의례를 순수한 폭력과 구별시켜주는 것은 바로 동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체벌당하는 사람이 순순히 체벌에 협조하지 않을 때, 폭력은 점점 강도를 높이며 일종의 광기를 띠게 된다. -129쪽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 하지만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이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131쪽


근대화와 관련하여 나이주의는 양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나이는 누구나 먹기 마련이므로, 나이에 따른 서열화는 지위나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접받을 기회를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인 특징인 나이를 앞세움으로써, 나이주의는 재능과 업적을 중시하는 근대 사회의 원리에 저항한다. -133쪽 각주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짓고 , 사회 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142쪽


사회적 성원권은 이 점에서 시민권과 분명히 구별된다.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시민권과 달리, 사회적 성원권은 의례를 통하여 끊임없이 확인되어야 한다. ... 사회란 결국 이러한 의례의 교환 또는 의례의 집단적 수행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상적 지평이다. - 144쪽


근대는 복장에 따라 여전히 신분적 차별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복장을 통한 위장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열어놓는다. 이것이 복장의 민주주의가 정확히 의미하는 바이다. 옷을 제대로 차려입는다는 것이 교육받은 중산층을 기준으로 정의되어 있으므로, 노동자 계층이 이 기준을 따르는 것은 신분을 위장하는 일이 된다. -150쪽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감의 결여 탓으로 돌린다. -160쪽


구조와 상호작용 질서는 개념적으로 구별될 뿐, 현실에서는 결합되어 나타난다. 지위와 특권을 분배하는 구조를 내버려둔 채,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모욕이라는 공적 문제를 해결할수 없을 것이다. -165쪽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167쪽


"괴롭힘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경멸의 문제" -167쪽 각주


사람이 걸인에게 돈을 줄 때 눈길을 피하는 이유를 이런 각도에서 생각배보아도 좋을 것이다. 걸인에 대한 이 같은 '비인격 취급'은 상호작용 의례의 위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걸인을 도우려고 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걸인에게 말을 거는 순간, 당시은 더 이상 그에게 돈을 줄 수 없게 된다. -173쪽


능력주의 사회의 도래는 상속제도의 소멸을 가져오지 않았다. 상속의 방식 혹은 전략을 바꾸어놓았을 뿐이다. 부모들은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대신에, 자녀의 몸에 그것을 투자하고 그 몸을 물려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상속자이면서 동시에 투자 대상, 즉 재산 자체가 된다. ... 가족은 만성적인 갈등상태에 놓인다. 부모의 상속 프로젝트에 동의하지만, 물건 취급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아이들, 재산관리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엄마, 가장이면서도 이 프로젝트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빠가 갈등의 세 주역이다. -187쪽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내가 '우리'에 속하는지 아닌지 나는 어떻게 아는가? ... 먼저 환대가 재분배를 포함한다는 점을 확인하기로 하자.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소품이 필요하다. ... 그러므로 환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ㅎ시작할 때 먼저 장난감을 나누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아무리 욕심 많은 아이라도 상대방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서로 초대할 수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살림을 나누어준다. -193쪽


환대 역시 주는 행위이지만, 이 줌은 증여로 계산되지 않는다. 환대란 주는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197쪽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이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실로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우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204쪽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다. (각주) 이것은 민주주의가 현대 정치의 기본 원리라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에서이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삶을 이해하고 비판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 원리로 돌아간다. 헌법은 이 원리에 따라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 원리에 의거해서만 법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무리 요원하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자기가 해별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209쪽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예컨대 국적이나 출신 계급이나 인종이나 성별, 심지어 언어와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 서사에 통합되는 한에서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 자체임을 뜻한다. ...(“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215쪽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도래해 있다. -242쪽


자기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벌거벗은 생명은 아직 완전히 벌거벗은 게 아니다(이는 발화의 장소성이라는 주제로 우리를 이끄는데, 우리가 벌거벗은 생명들의 인권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하더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 담론의 취약성은 그것이 신학적 관념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담론의 실천과 분리하여 비장소화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246쪽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뜻한다. 사회는 산 자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죽은 자들 역시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 -259쪽


... 광주항쟁 이후의 모든 대규모 집회가 어째서 축제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형식을 띠었는지 설명해준다. 광주항쟁은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첫날”이자, 그것에 선행하는 시간을 압축하는 “역사의 저속 촬영기”였으며 축제(1987년과 1990년 군중이 애도 공동체를 형성했던 대규모 시위들, 2007년과 2008년의 촛불집회들)의 모습을 하고 되돌아왔던 “항상 동일한 날”이었다. 축제가 만들어내는 ‘절대 공동체’ 속에서 역사의 연속성은 폭파되며, 죽은 자의 시간과 산 자의 시간이 뒤섞인다. -257쪽 각주 


현대 사회의 도덕의 기초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의 원리이다. 즉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신성함이란 바로 이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259쪽


참된 것과 합의된 것을 동일시하는 이러한 입장은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비판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 공리주의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266쪽


모든 희생 담론은 개인이 죽은 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믿음을 전제한다. 그의 육신이 소멸한 후에도 성원권은 소멸되자 않는다는 것처럼, 달리 말해 그의 자리가 공동체 안에 계속 남아 있다는 것(무덤, 기념비, 동상, 위패 등은 바로 이 자리를 표시한다)-이는 그가 죽은 후에도 사람자격을 유지한다는 말도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 사람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갖는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269쪽


만일 서바이벌 로터리가 국가의 은유라면, 그것은 푸코적인 의미에서 생명을 관리하는 국가일 것이다-‘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국가, 이 국가는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지만, 동시에 바로 그것을 구실로, 그들로부터 언제든지 성원권을 박탈할 권한을 갖는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국가의 구성원들은 사람의 지위를 빼앗기고 벌거벗은 생명의 상태로 떨어질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276쪽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무 때나 주권자의 명령만으로 벌거벗은 생명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며, 구성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 그들 사이에 연대가 모두 파괴되어 그들이 다만 인구로서 존재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77쪽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 골파장 건설에 반대하며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운 농민들, 구조조정에 저항하며 연좌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 투쟁의 형식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점거, 누워있기, 안자 있기, 아니면 장소를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 몸 자체가 여기서는 언어가 된다. 몸은 문제의 장소 위에 글자처럼 씌어진다. ‘나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 위하여. ... 그러므로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해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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