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회과학은 아직까지 '사건'에 천착하지 못햇거나 깊이를 갖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 한 10년쯤 지나면 <오월의 사회과학>처럼 <세월호의 사회과학>이란 명저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한 소박한 기대도 사치스럽게 생각되는 요즘이다. 


________




그러므로 이해는 사건 원인의 분석과 규명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은 아렌트가 지적하듯이 "그러한 일들이 전적으로 가능한 세계와 우리 자신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끔찍한 사건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 세계와 그런 세계가 가한 폭력성에 상처 입은 자아 간의 불화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해와 그것의 선물인 화해는 인지적인 과정일 뿐 아니라 실천적인 과정이 된다. 세계와 자아의 불화는 단순히 인지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아와 세계 양편에서의 변화를 동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쪽


... 사회적 고통에 대한 기술적 분석은 때로 희생자 고유의 언어를 특유한 일반적, 전문적 언어로 전환시켜 고통에 관한 표현과 경험을 바꿔 버린다. 고통, 죽음, 애도의 실존적 과정은 우리가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이성이나 기술에 의해 변질되며, 이러한 변질을 통해 고통의 치유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옅어진다. 의학은 고통의 실존적, 도덕적, 미적, 심지어 종교적 측면을 관료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다. -58쪽


'외상'이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그 기저에는 '사건, 구조, 인식과 행위 간의 인과관계'가 자리한다. -64쪽


정체성의 수정 과정은 곧 집단의 과거를 탐색하고 재기억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란 사회적이고 유동적일 뿐 아니라 현재의 자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현재와 미래를 직면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전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확보된다. 부연해 두자면 재현을 통한 외상의 일상화 과정은 문화적 외상의 특수한 사회적 의미를 결코 상쇄시키지 않는다. 보다 폭넓은 공중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참여하면 문화적 외상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의 영역이 확대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결합으로의 효과적인 길을 제공할 것이다. -66쪽


장엄한 기념식전의 장소를 구축하는 것보다, 오히려 충실한 현전으로서의 긍정적 장소를 거부하면서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어긋남의 경험을 천착하는 자리에서, 범람하는 애도에 대한 타협 없는 저항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유포되는 애도에 대한 타협 없는 저항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세월호의 죽음은 개인 차원의 자연사가 아니기에 애도는 정의의 문제로, 산 자들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한 정의로 건나가야 한다"는 철학자 김진영의 전언에 나는 지지를 보낸다. 애도는 산 자들이 죽은 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죽은 자들에게 어떻게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인지를 발본적으로 묻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03쪽


다시 말하면 '애도 공동체'라고 떠벌리는 산 자들의 '안심해 버린' 공동체에 포섭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인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원한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원한의 감정을 "그 사회의 객관적 존재 방식과의 관련하에서 리얼하게 파악"하고 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애도의 정치의 출발점인 것이다. -104쪽


죽음에 대한 의미 부여, 그리고 그 한 표현으로서의 애도의 정치는, 비극으로 점철된 지난 60여 년의 한국 현대사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해 왔다. 그 힘의 정당성은 아마 기나긴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인류 사회가 보편적으로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성스러움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그 최소한의 성스러움마저 사라져 버린 사회, 유족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애도'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지 자문해본다. 우리는 죽음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서의 시대 구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낯선, 새로운 시대를 몸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08쪽


국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단지 사람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것뿐이다. ...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우리 앞에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144쪽


'국가의 특수법인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생명, 안전 영역의 전면적인 민영화는 이미 내재적으로 시장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지향한다. -172쪽


신자유주의적 국가 개혁의 산물인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안전, 위험 부분의 외주화, 고용 조건의 유연호와 같은 국가 장치의 재구조화의 맥락에서 시민의 생명, 안전과 관련한 권력의 작용 방식이 변화하는 양상 가운데 빚어진 사건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진도 앞바다를 우리 모두가 처한 현실적 보편성 속에서 국가 장치의 구성적 결핍, 또는 그 근본적 무능력과 대면하는 장소로 재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3쪽


사건을 통해 나타난 진리에 충실한 주체가 출현하지 않는다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만 갖고는 아무런 의미도 끌어낼 수 없다... 결국 사건은 그것을 통해 드러난 진리에 충실하고자 하는 주체의 행위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176쪽


'사건에 대한 권리... 이 개념은 피해자가 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 사태에 입장을 표명하고, 해법을 제안하며, 그 이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공적인 지위를 의미한다. 4.16연대의 인권 선언 초안이나  유엔 인권 피해자 권리 장전이 밝힌 피해자의 '존엄'과 '인정'도 피해자를 국가가 제시한 처방전의 수동적인 수취인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 주체로 표상하는 것이 요구된다. -348쪽


한국은 구조의 표출이었던 외환 위기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비정규직과 취업난과 불평등이 만연하 국가 상태를 만들고 말았다. 인간을 위한 국가 개혁의 기회를 실기한 결과가 오늘의 고통스런 인간 현실인 것이다. 물질주의, 시장주의, 기업주의 제일 담론으로 초래된'단기적' 외환 위기로부터 아무런 구조도 개혁해 내지 못한 '장기적' 후과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세월호 사태는 예외도 특수도 아니다. -365쪽


우리에게는 '국가를 위한 유공'과 '국가에 의한 희생'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말이 두 가지가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둘은 분명 다르다. 특히 개별 생명의 망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자는 개인 결단의 측면이, 후자는 구각 책임의 측면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다른다. 

그러나 개인의 한시성과 유일성, 인간 공동체의 영속성과 전체성을 같이 고려할 때 둘을 통합해 이해하는 것은 위에게 '개별 생명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과 관련해 어떤 통합적 지혜를 줄지 모른다. -38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