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쳔 뒤 덮을 수가 없었다. 

스베툴라나 알렉시에비치가 말하는 이른바 '목소리 소설'은 가닿지 못할, 문학만의 또다른 경지.

아니 수많은 목소리들로 인해 이제 겨우 가닿을 수 있게 된 문학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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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따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채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45쪽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용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85쪽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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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 책(글 잘 쓰는 법 따위)은 거의 사지 않고 읽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차례 지인의 극찬을 접하면 사지 않고,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을 잘 쓰는 법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것, 글쓰기 자체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주옥 같은 문장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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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쪽


글쓰기는 기예의 영역이다. 12회차 수업으로 글쓰기를 정복할 수 없다. 불가능성을 안고 출발하는 일이다. -34쪽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심심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 작가와 독자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 선생과 학생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치안적 질서는 각 개인의 능력과 재미를 제한한다. 한 사람이 직업의 특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존재로 변신할 때, 자기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42쪽


소설가 조세희는 1970년대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을 한 권 썼고 그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했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조세희의 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넘기다가 이 대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졌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44쪽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 것이다. 누구도 삶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과 경험의 코뮨적 구성 원리를 인식한다면, '경험의 고갈'이라는 난감한 사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54쪽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55쪽


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57쪽


소설가 김연수는 글 쓰는 일이 "아랫도리 벗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용기가 충만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글을 써내는 과정에서 문제에 직면하면서 용기가 솟아난다는 말일 것이다. -63쪽


자꾸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거 앞에서 글도 과제를 내려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하얀 화면을 글로 메우다보면 '응시'의 힘이 생긴다. 그리고 똑바로 볼 수 있따는 건 더는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나를 따라오는 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승냥이인지 형체가 모호할 때 훨씬 두렵다. -64쪽


홍대 앞 유명한 북 카페에도 써 있는 카프카의 말.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83쪽


김현은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따.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95쪽


니체는 어느 누구도 책이나 다른 것들에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없다며 "체험을 통해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96쪽


"봉합된 우정보다는 드러난 적대가 낫다"는 까칠한 니체의 말을 빌려 우정의 비평을 권한다. -109쪽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구조주의'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115쪽


좋은 글은 질문한다. ...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118쪽


더 다양한 종족과 관계하고 더 낯선 이방인과 접속한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깊어지는 건 아니다.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한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 -128쪽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것이다. '관습적 해석에 저항하는 글을 재미있게 쓰자.' -129쪽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137쪽


"나는 격류 옆에 있는 난간이다. 누구든 잡을 수만 있다면 나를 잡아도 좋다! 그러나 나 너희들을 위한 지팡이는 아니다"라는 니체의 무장에서 난간과 지팡이의 차이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142쪽


문장이 길든 짧든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153쪽


별자리적 글쓰기는 벤야민의 글쓰기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 맞추는 직물적 단계다." -169쪽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은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눈앞이 흐려져서 문장이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할 때 특효약이다. 얼마나 명확한가. 나의 역능만큼 써진다는 엄정한 진리. 영감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채워진 글은 날로 기대하지 말라는 일침. 뭔가 전율을 가져오는 '신의 한 수' 같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은 갈망의 산물이 아니라 습작의 결과다. -171쪽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딜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황현산)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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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결국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은 기록을 전제로 이뤄진다."

기록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분석은 드물다. 어쨌든 '기록'에 대한 또 하나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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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센터에서 자서전을 쓰는 할아버지는 "인간은 누구나 종국에는 작가를 꿈꾼다."라고 대답하셨다. -11쪽


기록하고 기록물을 살피는 행위는 자신을 만드는 과정이다. 기록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록은 살아가는 목적이자 방법이며 생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불멸을 꿈꾸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12쪽


오롯이 사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 개인의 독자성은 사람들과 더불어 엮이며 사회로 흘러나왔다가 다시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잉태한다. 국가 주도로 작성된 기록물이 아닌 민간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 개인의 기록물이 지닌 공공성에 주목하는 까닭은 기록이야말로 우리의 '공유 기억'을 만드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13쪽


인간은 결국 죽는다. 전 생애에 걸쳐 축적한 기억과 경험이 다른 세대에게 전승된다. 개별적인 인간은 소멸하되 기록하는 인류는 미래를 꿈꾼다. -17쪽


역사란 앞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할 기록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DNA 밖에 기록을 남긴다. 인간에게는 생존본능 외에 문화전승의 본성이 있다. -24쪽


상상이 현실 세계를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동안 사실을 알려야 한다. 공유의 토대가 견고하고 깊고 방대할수록 상상은 현실이 된다. ...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공유의 기억과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기록'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사회적 기억으로 환원하지 못하면 재앙은 반복되고 불멸을 꿈꾼 인류는 사라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가 보여주었듯이. -37쪽


소수자로부터 출발한 평등과 인권에 관한 투쟁은 모두 기록의 부족으로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기록에서 타인의 삶을 배우는 이들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협업이 필요하다. ... 역사는 결국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은 기록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45쪽


쿨란스키는 <시카고 트리뷴>의 카리브 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7년 동안 대구의 역할 변천사와 생태를 취재하고 자료를 고증하여 대구 인류학을 썼다. 대구가 '어느 바다'에 서식하느냐에 따라 어부들의 흥망성쇠가 갈렸다. 해류에 따라 움직이는 물고기가 인간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한 것이다. 왕이나 국가가 아닌 물고기가 우리네 삶을 보존해왔다. -46쪽


그대 이집트인들은 홍수가 일어난 때부터 다음 홍수가 일어날 때까지를 1년이라 정했다. 그렇게 했더니 안에 365일이 있었다. 이것을 다시 달로 나누고 달을 일로 일을 시로 나누었다. 자연의 변화를 시간으로 세분하고 규칙을 찾아야 나일 강의 범람에 대비해 제방을 쌓을 수 있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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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8쪽


체르노빌은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다. 해독할 수 없는 암호다. 어쩌면 21세기를 위한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11쪽


그들은 이야기하며 답을 모색했다. 우리는 같이 고민했다. 그들은 자주 서둘렀고,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들이 하는 증언의 대가가 삶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그들은 이유 없이 서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행히도 살아 있는 동안 신호를 보냈다. -13쪽


체르노빌 땅의 사람은 불쌍하다. 그런데 동물은 사람보다 더 불쌍하다. ... 사람은 자신만 구하고 나머지는 다 배반했다. ... 멕시코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의 러시아 원주민들은 양식을 위해 죽여야만 했던 동물과 새에게 용서를 빌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동물들이 사람을 상대로 고소할 권리도 가졌다. -17쪽


한편 체르노빌에 대해서는 잊고 싶어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체로노빌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의식의 재난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던, 우리 가치관의 세상이 폭발했다. ... 현실은 사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19쪽


나는 이렇게 산다.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어디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는다. -52쪽


모든 것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무너져간다. 그 세상에는 악조차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는 이제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그 안에 답이 없다. 예전에는 항상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 왜 사람들은 기억할까? 나도 알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면서 뭔가 깨닫게 됐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57쪽


증언하고 싶다. 내 딸은 체르노빌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아직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고,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나는 못 기다린다. 

적어두었으면 한다. 당신들이라도 적어두었으면... 내 딸의 이름은 카탸였다. 카튜센카... 일곱 살에 사망했다. -69쪽


신문은 우리의 영웅성에 대해 떠벌렸다. 영웅다운 젊은이라고, 선한 일을 행하는 콤소몰 청년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가? 나는 알고 싶다. 책으로 읽고 싶다. 내가 직접 거기 있었음에도 알 수 없다. -114쪽


어떤 사람은 부인이 임신 중이라고 증명서를 떼 왔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이 아직 어리다고 했소. 물론 위험한 일이지. 방사선이라니까... 위험한 게 맞소. 하지만 누군가는 뭔가 해야 하지 않겠소. 안 그랬으면 왜 우리 아버지들이 전쟁터에 나갔겠소?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소.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나머지는 알아서 쓰시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117쪽


갑자기 잘 관리된 텃밭을 발견했다. 쟁기를 든 주인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봤다. 

"화내지 마세요. 이사 간다고 벌써 허가서를 제출했어요. 봄에 떠날 겁니다."

"그런데 텃밭은 왜 가는 거예요?"

"가을마다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해하지만, 조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125쪽


또 농담 들려줄까? 체르노빌 사고 후로 뭘 먹어도 상관없지만 똥은 납 상자에 싸서 버려야 한대. 하하하! 삶은 아름답지만, 제기랄, 너무 짧아. -126쪽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다. 기밀유지 계약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말해도 된다고 했다고 쳐도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 나는 침묵한다.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다답할 수 있도록 나와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나의 언어로... 나는 외롭다. -129쪽


차라리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었더라면...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이 쏟아지듯 밀려온다. 그곳에서 죽음은 일상이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130쪽


우리의 유일한 답변은 침묵이다. 아이들처럼 눈을 감고 생각한다. '꼭꼭 숨었으니까 못 찾겠지.' 무언가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우리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그러니까 결론은 잊을까? 기억할까? -142쪽


"왜 거기 남은 동물들은 도와주면 안 됐어요?"

그러게. 왜? 나도 생각 못 해본 거였다. 그래서 대답도 못 했다. ...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모두를? ...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175쪽


우리 삶은 그것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요. 체르노빌 주위를.... -180쪽


어떤 이들은 겁을 냈지만 나는 초대에 응했다. 들어갔다. 밥상 앞에 앉았다.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엇다. 다들 먹었기에 나도 먹었다. 술잔을 들이켰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럴 능력이 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 사람과 함께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운명을 나누는 것이었다. -206쪽

 

예술은 기억이다. 우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무섭다. 한 가지가 무섭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대신해버릴까 무섭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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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17쪽


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8쪽


이야기의 사원을 쌓아갈 원료들, 그건 언제나 넘쳐난다. 도처에 이 벽돌들이 굴러다닌다. 벽돌이 사원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그곳, 따스한 사람의 목소리, 과거가 생생히 반추되는 그 목소리 속에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감춰져있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비극이 담겨 있다. 삶의 혼돈과 욕망이. 삶의 유일함과 불가해함이. 목소리 속에 이 모든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진짜 원본들이. -26쪽


광학에는 '집광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피사체를 잡아내는 렌즈의 정학도를 말한다. 전쟁에 대한 여자의 기억은 감정의 긴장도나 고통의 지수로 볼 때 그 집광력이 가장 높다. -28쪽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 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32쪽


시간, 이 또한 우리들의 고향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그네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시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들은 사랑한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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