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8쪽


체르노빌은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다. 해독할 수 없는 암호다. 어쩌면 21세기를 위한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11쪽


그들은 이야기하며 답을 모색했다. 우리는 같이 고민했다. 그들은 자주 서둘렀고,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들이 하는 증언의 대가가 삶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그들은 이유 없이 서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행히도 살아 있는 동안 신호를 보냈다. -13쪽


체르노빌 땅의 사람은 불쌍하다. 그런데 동물은 사람보다 더 불쌍하다. ... 사람은 자신만 구하고 나머지는 다 배반했다. ... 멕시코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의 러시아 원주민들은 양식을 위해 죽여야만 했던 동물과 새에게 용서를 빌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동물들이 사람을 상대로 고소할 권리도 가졌다. -17쪽


한편 체르노빌에 대해서는 잊고 싶어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체로노빌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의식의 재난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던, 우리 가치관의 세상이 폭발했다. ... 현실은 사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19쪽


나는 이렇게 산다.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어디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는다. -52쪽


모든 것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무너져간다. 그 세상에는 악조차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는 이제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그 안에 답이 없다. 예전에는 항상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 왜 사람들은 기억할까? 나도 알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면서 뭔가 깨닫게 됐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57쪽


증언하고 싶다. 내 딸은 체르노빌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아직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고,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나는 못 기다린다. 

적어두었으면 한다. 당신들이라도 적어두었으면... 내 딸의 이름은 카탸였다. 카튜센카... 일곱 살에 사망했다. -69쪽


신문은 우리의 영웅성에 대해 떠벌렸다. 영웅다운 젊은이라고, 선한 일을 행하는 콤소몰 청년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가? 나는 알고 싶다. 책으로 읽고 싶다. 내가 직접 거기 있었음에도 알 수 없다. -114쪽


어떤 사람은 부인이 임신 중이라고 증명서를 떼 왔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이 아직 어리다고 했소. 물론 위험한 일이지. 방사선이라니까... 위험한 게 맞소. 하지만 누군가는 뭔가 해야 하지 않겠소. 안 그랬으면 왜 우리 아버지들이 전쟁터에 나갔겠소?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소.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나머지는 알아서 쓰시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117쪽


갑자기 잘 관리된 텃밭을 발견했다. 쟁기를 든 주인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봤다. 

"화내지 마세요. 이사 간다고 벌써 허가서를 제출했어요. 봄에 떠날 겁니다."

"그런데 텃밭은 왜 가는 거예요?"

"가을마다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해하지만, 조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125쪽


또 농담 들려줄까? 체르노빌 사고 후로 뭘 먹어도 상관없지만 똥은 납 상자에 싸서 버려야 한대. 하하하! 삶은 아름답지만, 제기랄, 너무 짧아. -126쪽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다. 기밀유지 계약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말해도 된다고 했다고 쳐도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 나는 침묵한다.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다답할 수 있도록 나와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나의 언어로... 나는 외롭다. -129쪽


차라리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었더라면...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이 쏟아지듯 밀려온다. 그곳에서 죽음은 일상이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130쪽


우리의 유일한 답변은 침묵이다. 아이들처럼 눈을 감고 생각한다. '꼭꼭 숨었으니까 못 찾겠지.' 무언가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우리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그러니까 결론은 잊을까? 기억할까? -142쪽


"왜 거기 남은 동물들은 도와주면 안 됐어요?"

그러게. 왜? 나도 생각 못 해본 거였다. 그래서 대답도 못 했다. ...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모두를? ...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175쪽


우리 삶은 그것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요. 체르노빌 주위를.... -180쪽


어떤 이들은 겁을 냈지만 나는 초대에 응했다. 들어갔다. 밥상 앞에 앉았다.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엇다. 다들 먹었기에 나도 먹었다. 술잔을 들이켰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럴 능력이 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 사람과 함께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운명을 나누는 것이었다. -206쪽

 

예술은 기억이다. 우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무섭다. 한 가지가 무섭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대신해버릴까 무섭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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