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책(글 잘 쓰는 법 따위)은 거의 사지 않고 읽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차례 지인의 극찬을 접하면 사지 않고,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을 잘 쓰는 법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것, 글쓰기 자체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주옥 같은 문장들도...
----------
<1984년>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쪽
글쓰기는 기예의 영역이다. 12회차 수업으로 글쓰기를 정복할 수 없다. 불가능성을 안고 출발하는 일이다. -34쪽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심심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 작가와 독자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 선생과 학생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치안적 질서는 각 개인의 능력과 재미를 제한한다. 한 사람이 직업의 특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존재로 변신할 때, 자기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42쪽
소설가 조세희는 1970년대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을 한 권 썼고 그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했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조세희의 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넘기다가 이 대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졌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44쪽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 것이다. 누구도 삶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과 경험의 코뮨적 구성 원리를 인식한다면, '경험의 고갈'이라는 난감한 사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54쪽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55쪽
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57쪽
소설가 김연수는 글 쓰는 일이 "아랫도리 벗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용기가 충만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글을 써내는 과정에서 문제에 직면하면서 용기가 솟아난다는 말일 것이다. -63쪽
자꾸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거 앞에서 글도 과제를 내려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하얀 화면을 글로 메우다보면 '응시'의 힘이 생긴다. 그리고 똑바로 볼 수 있따는 건 더는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나를 따라오는 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승냥이인지 형체가 모호할 때 훨씬 두렵다. -64쪽
홍대 앞 유명한 북 카페에도 써 있는 카프카의 말.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83쪽
김현은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따.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95쪽
니체는 어느 누구도 책이나 다른 것들에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없다며 "체험을 통해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96쪽
"봉합된 우정보다는 드러난 적대가 낫다"는 까칠한 니체의 말을 빌려 우정의 비평을 권한다. -109쪽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구조주의'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115쪽
좋은 글은 질문한다. ...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118쪽
더 다양한 종족과 관계하고 더 낯선 이방인과 접속한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깊어지는 건 아니다.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한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 -128쪽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것이다. '관습적 해석에 저항하는 글을 재미있게 쓰자.' -129쪽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137쪽
"나는 격류 옆에 있는 난간이다. 누구든 잡을 수만 있다면 나를 잡아도 좋다! 그러나 나 너희들을 위한 지팡이는 아니다"라는 니체의 무장에서 난간과 지팡이의 차이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142쪽
문장이 길든 짧든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153쪽
별자리적 글쓰기는 벤야민의 글쓰기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 맞추는 직물적 단계다." -169쪽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은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눈앞이 흐려져서 문장이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할 때 특효약이다. 얼마나 명확한가. 나의 역능만큼 써진다는 엄정한 진리. 영감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채워진 글은 날로 기대하지 말라는 일침. 뭔가 전율을 가져오는 '신의 한 수' 같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은 갈망의 산물이 아니라 습작의 결과다. -171쪽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딜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황현산)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