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관에서 우연히 선영이를 만났다. 학원 선생님을 시작해서 바쁘다는 그애. 예전처럼 잘 해주고 싶지만 그때와 지금은 뭔가 다른 것 같은 어색함에 나의 태도도 우물쭈물 했다. 시간의 간극을 넘어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긴 어려운가.. 하는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인데.. 여튼 빗속을 헤치며 버스를 타러 가던 선영이의 뒷모습이 마음에 맺힌다.

 아이스 스톰이란 영화와 칼리토란 영화를 봤다. 칼리토는 괜찮은 영화였지만 명작이라고 하기에는 그랬다. 파이란에서 느꼈던.. 왜 건달의 최후는 항상 불쌍해야 하는가.. 뭐 이런 클리셰한 결말의 아쉬움.. 여자 주인공은 예뻣다. 스트립바에서 보여주던 그녀의 몸동작과 대비되는-약간 속물적인가- 그녀의 지고지순한 마음은 그녀의 미모를 한층 더 돗보이게 하였다. 아이스 스톰은 명작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무슨 시나리오를 저렇게 서늘히 잘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말하면 스릴러 같은데 스릴러는 아니다. 흔히들 문학에서 얘기하는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해부한 영화인데 홍상수 영화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브로큰백 마운틴 보다 슬픈 영화의 풍경들은 가끔 내 삶의 조각 조각에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공포와 슬픔을 들춰내고 또 돌이켜 보게 한다. 이제 말러 10번째 씨디가 끝나간다.. 만쉐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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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이 이성을 짓 누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나답지 않다고들 한다. 나의 내면이 규정한 내모습과 타인들이 규정한 내 모습이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가끔 그 간극을 메우기 힘들정도의 시각차이를 보이는 이를 발견한다면 매우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아주 예민해 있거나 타인의 생각에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가질 때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나의 생각의 범위엔 급격히 경계선이 그어진다.

과연 저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내가 그런 인물인가 하는.. 즉 자기 검열이 일어나는 거다. 작가들이 가장 두려워 한다는 자기 검열이 나의 내면속에 일어 나는 것이다.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혹자는 소심하다고 한다. 그런데 기실 소심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얼마나 대범하기에 자신이 만든 수직의 파문을 별 것 아닌 양 치부하는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편협함과 이기주의가 그런 쉬운 언어의 파편들을 덩어리째 던지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김동률 4집의 노래 중에 '사랑하지 않으니까요'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그런 편협한 이기주의의 대표성을 띌만한 사람이 나온다. 물론 그녀는 그의 마음을 얼마나 할퀴는지 혹은 애수에 젖게 하는지 무관심 하다. 다만 그녀의 관심은 자신의 세계가 붕괴하지 않게 잘 보존하는 것이다. 나름 공들여 쌓은 탑들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끊임없이 보수와 관리를 하고.. 그러다 어떤 탑은 자신이 쌓은지도 모른채 방치하는. 나쁜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인 그런 행동들이 어쩌면 그의 성을 공고히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것은 아니고..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엔 세상사 다툼과 불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말이 잠시 새는 것 같은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타인에 대한 평가는 신중하지 않으면 하지 말 것이며 혹 신중하더라도 상처가 될 말은 굳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통찰력과 예지력을 뽐내려는 듯 타인을 자신이 만든 척도안에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내린다. 그리고 그런 통찰력을 인정 받기 위해서 노력한다. 무수히 던져 놓은 그의 예지 중 하나라도 들어 맞는 다면 그는 다시금 우쭐해져서 더많은 평가를 내린다. 공명심이 자극한 이러한 인금나름은 많은 선망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든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아무래도 오늘 읽었던 아첨의 기술이란 책의 영향인지 마키아벨리즘과 영합하는 듯한 내용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첨의 기술이란 제목은 유혹의 기술이란 책이 많은 독자를 유혹한 뒤 나오는 일련의 '..의 기술' 이라는 패턴을 따른 아류작으로 보이는데 원제는 아마 다른 것이 아니였을까 한다. 오히려 대인관계를 매끄럽게 해주는 처세술 용 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블로그에서 온라인 상의 현자(賢者)들이 써놓은 글 귀들이 무더져 가던 나의 이성을 예민하게 한 것 같다. 이러한 예민한 이성의 날카로움은 줄 곧 나의 몸에 생채기를 내었기에 무디게 만들었건만 방학 이후로 시작된 나의 잡학에 대한 탐욕이 다시금 이성의 예리함을 더욱 뾰족하게 하였다.

알라딘에서는 싸이에서 보다 좀 더 좋은(내 주관적 기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프라인의 인맥이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강하게 작용한 싸이월드보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것 같은 알라딘 블로그가 좀 더 다양한 소통의 장이 되지 않을까 한다. 밖에는 꾸준히 비가 오고 어제 들어온 말러 전집은 이제 4장만 더 들으면 된다. 훈련을 하는 듯이 클래식을 듣는 것이 내가 봐도 상당히 가혹한 취미 같지만 -어쩌면 내가 사디스트적 경향이 있는거 같기도 하고- 기실 이러한 수련 없이 하나의 취미가 오롯이 내것이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모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저 많은 방명자들은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알고 왔는지 궁금하다. 그런의미에서 댓글 남기면 안잡아먹지^^ㅋ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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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7-2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은 역시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읽다가 마지막 줄에서 깜짝! ^ ^
비 오는 날의 말러는 좀 무거울 것도 같은데...

바밤바 2007-07-20 13:35   좋아요 0 | URL
원래 심각한거 안좋아해요~ 근데 남들은 심각하다 그러네요 ㅎ
잘지내시죠? 우리 아는 사이인가.. ㅋ^^

2007-07-20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0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린 마젤의 말러 전집이 도착해서 쭉 듣고 있는데 날이 밝았다. 이 영감은 교향곡 하나를

두시간 넘는걸 작곡을 하질 않나.. 기타 교향곡도 80분이 넘어 가는 것도 많고..

천인 교향곡 같은 경우는 천명의 연주자가 필요하고.. 특이한 사람이다. 

그리고 5번 교향곡에서는 꾸준히 나왔던 성악부분이 안나온다.

이게 7번째 씨디인데 총 14장이라서 절반을 더 들어야 한다.

음악 듣다가 심심해서 리스트 정리 작업을 했다. 전혀 나답지 않은 짓이다. 지금 방청소도

안하고 있는데.. 엄마가 자꾸 뭐라 그런다.. 청소하라고.

말러 5번의 아디지오 악장이 영화 청연에 삽입 되었다 그러던데.. 들어봐도 모르겠다.

나는 청연 보면서 베토벤 5번 4악장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쇼팽 피협 1번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그런거 같기는 한데 여튼 신기했다.

아는 곡이 나와서 신기했다기 보다는 좀 쌩뚱맞은 느낌이 들어서 특이했다.

일주일 뒤에 한자 1급 셤 보기로 했는데 아직도 공부를 안하고 있다. 그 동안에

교양은 많이 늘었는데 남들처럼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공부는 갈 수록 등한시 하는것 같다.

이러고 보니까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교양 쌓은 거지 논거나 다름 없기에..

그나저나 이넘의 교양은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 사이에

교양의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하루에 책 1권 이상씩 읽었는데 아직도 내공이 부족한거 같다.

앎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해하는법.. 앎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도 다 남들보다 앞서려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또다른 적응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천박한건데..

그래도 교양있는척 하는 것보다 천박한 쪽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양있는척 하는 자들은 곡학아세하고 혹세무민 하지만 천박한 사람들은

파시즘에는 이끌릴 망정 학문을 더럽히지는 않기에.. 말러 씨디가 튄다.

다시 청연에 나오는 아디지오 악장을 들어 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들어 보련다.

번스타인의 5번 아다지오가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이번 달엔 카드값이

7자리로 나올지도 모를 정도의 과소비를 했기에.. 참자.. 뭐 애들한테 회식비 걷어서

카드로 긁고 한 것도 있지만 내 개인적 소비도 만만찮기에.. 오늘은 해가 안뜬다.

비올려나 보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드려야 하는데.. 오늘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이니까 아침에 목욕탕 갔다가 검찰청으로 가야겠다. 봉사활동 하러..

이놈의 미친 학교는 봉사활동을 안하면 졸업을 안시켜준다.

차선책으로 택한 정책이라는건 알겠는데.. 정책에 수동적으로 따라야 되는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이 듬뿍 샘솟는다. 그래도 웃어야지~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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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생각들에 잠식 될 때면, 그저 한없이 꿈만 꾸던 옛 기억을 돌이켜 봅니다.

새롭지는 않지만 언제나 지루하지 않았던 그 꿈들 속에 나의 시간은 일생을 주춤거립니다.

바로 서야지.. 바로 서야지.. 꿈이 마음을 지배했던 날에도 나는 외칩니다.

언젠간 바로 설 날이 있을거라며 끝없이 촐싹대던 작은이의 마음은

검댕칠 당한 옆집의 꼬마마냥 제풀에 울어 제낍니다.

하루가 6년 처럼 길게 느껴지던 날이 하루가 아니 였음을

이제야 깨달았지만

작은 마음에 서린 시퍼런 눈물자욱은 다시금 눈을 감으라 합니다.

언젠가 돌아 볼 오늘은 내일이 주인이 되게 하자며 

세차게 눈을 감아 버리는 치기어린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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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시스템은 익숙지 않다. 나태한 천성이 기존의 나와바리로 회귀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건방진 천성.. ㅎ 키신이 연주했던 라이브 실황 앨범이 왔다. 항상 예전 연주자들의 음악에

익숙해져 왔던 터라 키신의 타건이 산뜻하게 들린다. 그가 연주하는 쇼팽은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이 앨범을 냈을 때의 키신의 나이가 10대 중반 내지는 후반이였을 테니

쇼팽의 초기 작품들을 명쾌히 표현한게 아닐까 한다. 오늘도 드팀전님 서재에서

여러 리뷰를 보고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한번 돌아봤다. 와정지와라는 말이 언제나

나에게 적합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그 추상적 언어를 내 눈앞에 현실화 시킨 것이

그분의 사상과 글이 아닌가 한다. 고등학교때 국어 샌생님이 기호 선생님도 그분과

사상이 많이 비슷하셨더랬다. 조금은 더 냉소적일지도 모를 그분의 삶과 오묘히

오버랩 된다. 여지껏 방랑 하고 있는 나의 젊음은 지나친 노쇠화 현상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가 일반인 보다 빠르게 노쇠화 하는 이런 느낌은

10여년간 앓고 있는 지병의 결과로 치부하는게 적당할 것 같다. 비겁한 책임 회피가 아닌

나름 객관적 이성의 판단이다. 별것도 아닌 것이 손을 대면 될수록 커져 버려 이젠

자각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아프지는 않되 다소 힘든 이 병마와의 싸움을 위하여

나의 잡학에 대한 열정은 시작되었다. 왠지 철학이나 사회학 심리학이나 역사를 꾸준히

연구하면 인간과 사회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나의 마음에도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지 않을까 하여 시작했던 공부들.. 항상 지식의 과포화 상태라고 여겼는데

알라딘에서 활동 하시는 분들 보니까 그냥 스스로 안주하고픈 나약함이였던 것 같다.

이 블로그는 사람들에게 또하나의 자신을 보여주는 훌륭한 PR도구이자 사람을 만나는데

검열(screening)하는 시간을 줄여 타인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홍보의 천재였다던 괴링이 이런 인터넷으로 그의 사상을 홍보했다면 자뭇 어떤 형태가

나타났을지 궁금하다. 히틀러가 괴링을 이용한게 아니고 괴링이 히틀러를 이용했다고

보는 나로서는 둘 다 똑같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히틀러가 세계 최고의 악당 두목으로

불리우기엔 그에 필적할 인간들이 여럿 있다고 본다. 다만 틀러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대세인 20세기에 그 따위 일을 저질렀기에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는게 아닐까..

마오쩌둥도 나쁜놈인데 이 인간은 사회적으로 규명이 안된 악당이라서 아직 영웅 비스무레한

대우를 받고 있다. 아.. 이제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이 연주되고 있다.

2번은 많이 들어 받고 3번은 루빈스타인이나 아쉬케나지 등으로 몇번 들어봤는데

쇼팽 답게 아름답긴 하다. 근데 이 곡은 왠지 쇼팽의 시정과 퇴폐적 우울증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 처럼 들린다. 아.. 3번이 아니였다.. 다음 트랙이 3번이다..

환상곡이 였다. 어쩐지 아름답더라.. 난 3번 들을때 아름답다는 생각은 별로 못했는데..

요즘 음악을 많이 들었더니 여러 음표가 머리에 혼재되어 떠다닌다.

이제 3번 나온다. 항상 장송행진곡 다음으로 들었던 곡이라.. 앞이 허전하다.

피소 2번 4악장이 나오고 들렸던 이 알레그로 부분이 이제야 제 목소리를 내는거 같다.

역시 방학은 좋다.. 과외나 잡일을 안해도 집에서 뭐라 안하니까 내 세상이다..

놀러 가고 싶다. 좀 특별한 사람과 많이 익숙한 곳으로 놀러 가고 싶다.

내게 있어 여행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누군가와 어떻게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항상 내 글을 보면 정신 산만한 불안증세 가득한 인간이 글 쓴거 같다.

나는 인상주의적 글쓰기라고 역설하고 싶다. 그때 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모니터에

두드리는 거다. 그런 조각조각이 모여서 하나의 글이 된다는게.. 인상주의적 글쓰기다.

내가 창조한 문파다. 움하하하하! 점점 도라이가 되어 가는거 같다.

여튼 알라딘 블로그는 이래서 좋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막 써도 된다. 다만 공개된

자리에 쓰는 이유는..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의 생각하에 쓰는 글이 추후에 읽어 봤을 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키신의 쇼팽 피소 3번은 예쁘다. 음색도 예쁘고.. 조금있다가

말러 전집오는데.. 말러 싫어라 하는데 방학이라서 할 일 없어서 샀다. 조금 있으면

바빠질테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부유하고 싶다~ 풉풉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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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제임의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연상케 하시는 페이퍼군요.
좋아요 :)
의식하지 말고 즐겁게 쓰세요. 거기서 자기만의 인상주의 글쓰기가 나오더군요.

바밤바 2007-07-1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껄껄 근데 의식의 흐름 기법을 떠올릴때마다 오상원의 유예라는 소설이 더 자주 떠올라요. 수능 공부 한다고 많이 봐서 그런가.. ㅎ 근데 아바타 사진 멋지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