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5기 신간 평가단을 모집합니다.

1.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리영희 프리즘>이 좋았습니다. 제목처럼 리영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봄이 좋았고, 각기 이해한 리영희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2. 내 맘대로 좋은 베스트 5   

  <리영희 프리즘> / <역사의 공간> / <명의2> / <레인보우> / <헌법>

 

3.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의 한 구절  
 

  <리영희 프리즘>의 한 구절입니다.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스승이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우리를 각성케 하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이름이다.(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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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산책자 2010-03-3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닥나무님 5기 신간평가단이었군요. 전 이번에 뽑혔어요. 기대되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04-0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야인가요? 저는 '베짱이세실'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다^^
 

 

 

 

 

 

 

 

  

 

<쿠오 바디스>(1,2권) / 헨릭 시엔키에비츠 / 민음사 / 2005


쿠오 바디스


등장인물

베드로
비니키우스
리기아
페트로니우스
네로
악테

 

#1 페트로니우스의 저택


페트로니우스가 비니키우스를 기다린다. 비니키우스가 들어서자

페트로니우스: 오! 비니키우스. 무사히 로마로 돌아왔구나.

비니키우스: 삼촌!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페트로니우스: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다.

비니키우스: 전쟁은 정말 힘들었어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구요. 그런데 로마는 별일 없었나요?

페트로니우스: 네로 황제가 더욱 악랄해져만 간단다. 황제를 비롯해 도시 전체가 알 수 없는 열기에 싸여 있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비니키우스, 어차피 이 세상은 거짓 위에 세워져 있고 인생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단다. 영혼 또한 환상에 지나지 않지. 그저 우린 살아있는 동안에 즐거움만을 좇으며 살면 되지 않겠니? 이제 너도 전장터에서 돌아왔으니 로마에서 마음껏 즐기거라.

비니키우스: (회의적으로) 그런가요? 그런데 삼촌, 제가 전쟁을 하던 중 부상을 당했는데 아 울루스 장군의 집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집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뭔 가 다르던데요. 요란한 신상들도 보이지 않고 뭔가 경건해 보였어요.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특히 리기아라는 여종은 전혀 노예 같질 않았어요. 이야길 들어보니까 본래는 한 왕국의 공주였다던데, 나라가 망해 로마로 끌려왔다더군요. 아울루스 장군 부부도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구요. 뭔가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어요.

페트로니우스: 응, 아울루스의 아내인 폼포니아가 그리스도란 존재를 믿고 있다는 이야긴 들 었다. 그녀는 날 볼 때마다 그리스도는 하나이시며, 정의로우며, 전능하다고 말하곤 했지. 그런데 이 같이 불의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그 같은 신이 있기나 한단 말이냐? 난 이미 오래 전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감각을 버렸단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이냐?


#2 네로황제의 향연장

사회자:

비니키우스: 리기아, 다시 보는군요.

리기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비니키우스: 덕분에요. 어떻습니까? 로마 향연장의 이 화려한 분위기가. 술과 음악, 사람들의 끊이질 않는 웃음.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리기아: 그런가요? 그런데, 제겐 왜 이러한 모습들이 슬프게만 다가오는 걸까요? 이 모습들 을 불쌍히 바라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걸 당신은 아시나요?

비니키우스: 그게 무슨 말이요? 누가 이 모습을 불쌍히 생각한단 말이요? 리기아, 저 앞에 계시는 네로황제가 보이지 않소? 저 분은 살아있는 신이란 말이요. 또 다른 신 을 운운하는 불경함을 사과하시오.

리기아: 세상을 지배하는 분은 네로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이십니다.


악테: 지금 네로 황제께서 두 분을 보고 계십니다.



#3 감옥에서


리기아: 아아, 당신이군요! 저는 당신이 오시리라고 믿고 있었어요.

비니키우스: 리기아.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호와 구원이 내리기를 빌겠소.

리기아: 저는 경기장이나 이 감옥에서 죽을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어요. 그래서 와 주셨군요. 그리스도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예요. 저는 곧 주님의 품 안으로 돌아갈 거예요.

비니키우스: 아니오. 당신은 죽지 않소. 베드로 사도께선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 셨소. 그분은, 󰡐희망을 가지십시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요, 리기아. 그리 스도는 당신을 불쌍히 여기실 겁니다.

리기아: 그리스도 자신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이 쓴 잔을 제게서 거두워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주님은 하나님께 순종해 그 잔을 마셨어요. 그 주님을 위해 지금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기 자신도 고통을 받으 며 죽어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 에요. 보시다시피 이 곳은 무서운 감옥이에요. 하지만 저는 천국으로 가고자 합니다. 하늘에는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이 계십니다. 당신도 그 곳으로, 제가 있는 곳 으로 오시리라는 걸 잊지 마세요. 제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렇게 말씀드릴 거예요. 저는 죽지만, 당신은 제가 죽는 것을 보시면서 슬픔 속에 홀로 남게 되더라도, 지금 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요. 당신은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시겠죠? 비니키우스, 약 속해 줘요.

비니키우스: 주님의 이름으로 약속하겠소.


#4  페트로니우스의 저택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안정감과, 어떤 불가사의한 빛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비니키우스가 뭔가 새로운 구출 방법을 찾아내지나 않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페트로니우스: 너는 요즈음 많이 달라졌구나. 내게 숨길 건 없다. 나는 너를 도와주려 하고 있고, 또 그런 능력도 있으니까 말이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느냐?

비니키우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도와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죽은 뒤, 저는 제가 그 리스도인이란 것을 고백하고, 그 사람 뒤를 따를 테니까요.

페트로니우스: 그럼, 모든 희망을 포기했단 말이냐?

비니키우스: 아닙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녀를 구해줄 것입니다.

페트로니우스: 너는 알고 있니? 내일은 그리스도인들을 황제의 정원에서 화형(火刑)시킨다는 것을.

비니키우스: 내일이라고요?


#5 비니키우스의 세례


비니키우스: 사도시여. 저는 벌레만도 못한 자입니다. 저는 전쟁터에서 숱한 사람을 죽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해 왔습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순결한 분이라 들었습니 다. 그런데 저 같은 자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베드로: 내 아들이여. 주님은 바로 당신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무엇이 잘못 인지, 죄인지 알지 못하던 당신을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순결한 피를 흘리셨소. 그 사랑이 당신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오. 비니키우스, 이제 그대는 그리 스도가 당신을 사랑함을 믿소?

비니키우스: 사도시여, 제가 아직 어린애 같으나 그리스도는 세상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황제 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계신 줄 제가 믿습니다. 또한 그가 나를 사랑하사 이 처럼 새롭고도 깨끗한 영혼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베드로: 이제, 당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6 쿠오 바디스


성문에 다다른 베드로

베드로: (뒤를 돌아보며) 당신이 보호하던 어린양들도 모두 흩어졌고 교회도 불타 없어졌습 니다.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일어나 성문을 나서려한다. 이때 로마로 들어가 시는 주님이 보인다)

베드로: (놀라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 나는 로마로 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베드로: 주여, 주님께서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작정이란 말입니까?

주님: 그렇단다. 베드로야. 내가 또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구나.

베드로: 주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힌다니. 아니야, 이건 내게 주신 주님의 십자가야. 로마 로 돌아가자.


베드로: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 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 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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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시간의 기억> / 김원일 / 문학과지성사 / 2001


슬픈 시간의 기억



나오는 사람들

윤여은: 교사

정례 이모: 여은의 이모

동네 아이들

황민우: 여은을 짝사랑하는 남학생

마리아 선교사

중년 신사

노인

방도식: 여은의 제자

전경수: 여은의 제자

곽기동: 의사, 여은의 제자

의사

형사


1막

1장 동네

여은이를 동네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한뎃 말로 놀린다.


동네 아이들: 여은이 입은 토끼 입/까치가 쪼았나 새앙쥐가 갉았나/째보는 시집도 못 간 대...


아이들 헤어지며, 손가락질 한다. 여은이는 고개 숙여 운다. 정례 이모가 수줍은 듯 다가온다.


정례 이모: (눈을 내리깔고 더듬으며)여은아, 괘, 괜찮아?

여은: 이모, 난 왜 째보로 난 거야. 아이들 놀림감 밖에 더 되냐구?

정례 이모: 여은아, 호, 혹시 예수님을 알아? 예수님을 믿으면 서, 성령으로 병자를 낫 게 해준대.   내 얽은 얼굴을 마, 말끔하게 해주시고 째보인 네 이, 인중도 예 수님이 꾸, 꿰매주실 거야.

여은: 예수님? 그건 그렇고, 이모, 성령이 뭔데 그렇게도 용해요?

정례 이모: 예수님은 죽은 나,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시니 나사로가 사, 살아났다잖아. 네가 예수님을 여, 열심히 섬기고 기도로 간청하면 예수님 이 니, 네 입을 보고, 내가 꾸, 꿰매주마 하실 거야. 그럼 찌, 찢어진 살이 감 쪽같이 붙게 돼.

여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2장 교회당 1

여은과 정례 이모가 교회당으로 들어선다. 교회당에는 엄숙한 분위기로 많은 이들이 앉아 예배드리고 있다. 여은과 정례 이모가 조용히 앉는다. 여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위를 계속해 살펴댄다.


정례 이모: (정면을 가리키며)저분이 바로 구, 구세주 예수님이란다.

여은: (살살 앞으로 기어나가며 가까이서 예수님상을 살핀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혼잣 말로)불쌍하기도 해라. 알몸에, 온몸이 상처 투성이네. 저런 꼴로 죽은 벌거숭이 서양 남자를 어른들이 섬기다니. 그런데, 이모. 이모 말대로 정말 저분을 열심히 섬기면 병이 낫고 병신을 면할 수 있을까?

정례 이모: (여은을 바라보며 웃는다)예수님은 하나님으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병자와 병신을 고쳐주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저렇게 죽으셨어. 여, 여은이와 나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꼬, 꼭 낫게 해주실테야.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나온다. 여은도 뒤돌아선다. 순간 음성이 들린다.


예수님: (음성으로)어린 딸아, 내가 너를 여태 찾았다. 나를 다시 만나러 오렴. 내가 찢 어진 네 입술을 고쳐주마.

여은이 뒤돌아선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마리아 선교사가 강대상 쪽에서 다가온다.


마리아 선교사: 네가 여은이니?

여은: (눈치를 보며 피하며)네.

마리아 선교사가 웃으며 다가와 여은을 꼭 안는다. 여은은 불편해 하며 품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여은이 밖으로 나간다.


마리아 선교사: 다음 주로 여은이 수술 날짜가 잡혔어요. 여은이에게는 말씀하지 마시구 요.

정례 이모: 네, 네 알겠어요. 고, 고맙습니다.


3장 집 1

여은: (거울 앞에서 신기해하며)이모, 정말 내 입이.......

정례 이모: (기쁜 목소리로)예수님은 사, 살아 계시지. 서, 성령으로 목사님을 통해 너 입을 고, 고쳐주셨어.


여은 이모와 함께 기뻐한다.


4장 기찻간 1

한 남학생이 여은이를 줄곧 쳐다보고 있다. 슬그머니 다가와 편지를 여은의 교복 주머니에 넣는다. 여은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윤여은님의 아리따운 모습이 꿈속에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외로운 사슴마냥 며칠 밤을 잠 못 이루었습니다......” 편지를 이내 찢는다.

기차 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여은이 기차에 들어선다.

민우: 저, 미, 민웁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시면......

여은 놀라 눈길을 돌린다.

민우: (여은의 손을 잡으며)제가 유, 유수역에서 내리겠습니다. 제발 시간 좀......

여은: (책가방으로 민우의 팔을 내리친다)이거 놓아요!

민우: 다, 다른 게 아닙니다. 잠시만 시간 좀......

여은: (힘있게 민우의 몸을 밀친다)이거 놓으란 말예요!

터널속이다. 사방이 깜깜해진다. 남학생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환해진다. 여은은 놀란 표정이다.


5장 기찻간 2

여은이 기찻간에 서 있다. 옆으로 두 남자가 서 있다.

중년의 신사: 쯔쯔, 기어코 숨을 거두었다더구먼. 마산까지 가서 일본인 양의에게 보였 는데도 결국 못 살려냈어. 머리 좋은 아까운 자식을 그렇게 잃고 말다니.

노인: 다리뼈는 그렇다 치고 갈비뼈가 몇 개나 나갔다던데 무슨 재주로 살려내요. 그런 데 민우 말이, 혼자 승강구 손잡이를 잡고 바람을 쐬다 열차가 굴로 들어 서자 갑자기 숨이 막혀 한 손으로 입을 막다 실수로 떨어졌다고 우기니, 그게 미 심쩍다 이 말입니다. 허긴 비가 오던 날이라 손잡이가 미끄럽긴 했겠으나 비오는 날 왜 난간에 서 있었는지......

중년의 신사: 친구와 장난치다 떨어질 수 있었겠고, 민우를 미워하던 한 반 애가 열차가 굴속으로 들어서자 민우를 밀어버릴 수도 있잖았겠습니까. 아닌말로 일본 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을 미워해 장난삼아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런데다 걔가 굴속에서 떨어지는 걸 아무도 본 사람조차 없었다니......


여은 괴로운 표정이다.


6장 집 2

여은: 주님, 제 발로 지서에 찾아가 제가 그를 밀친 죄를 자백해야 할까요, 이 비밀을 숨기고 있어도 될까요? 주님, 저는 이제껏 당신을 알았지만 마음 깊이는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성경도 읽으며, 기도도 하고, 경건하게 예배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이태껏 제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아브라함에 게 말씀한, 그런 고난과 절망이 없었습니다. 주님 무섭습니다. 죄가 무섭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를 어찌하오리까? 저를 용서하소서.


해설: 여은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초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2막

1장 교실 1

새 학기 첫 시간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 한 해 담임을 맡게 된 윤여은이에요. 반가워요.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올 한 해 우리 교실의 급훈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선생님이 적어 왔는데(한 학생을 가리키며)한 번 읽어 볼래요?

곽기동: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서로 사랑하라.

여은: 그래요,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은 서로를 사랑하나요? 우리가 이 교실에서 함께 배워야 할 게 참 많죠. 우리말도 배워야 하고, 덧셈․뺄셈도 배워야 하고...... 이것 도 참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1년 동안 꼭 잊지 않고 서로 배워야 할 게 바로 사랑이에요. 여러분, 사랑이 뭔가요? 선생님은 어릴 적 몸과 마음에 상처 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다녔죠. 여러분들과 같은 친한 친구들도 없 었구요. 모두들 절 보면 징그럽고, 무섭다며 놀리기만 했구요. 하지만 한 선교사 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 분은 말없이 다가와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저는 발버 둥을 쳤지만 그 분은 그럴수록 더 꼭 안아 주셨어요. 선생님은 태어나 그 때 처음 으로 사랑을 느꼈어요.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나의 상처와 아픔을 아시고 가만 히 다가와 꼭 안아주실 때 사랑을 느꼈던 거에요. 친구들이 서로를 볼 때 밉고 부 족한 점도 있을테지만, 감싸주며 안아줄 때 그 때 바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예 요. 우리도 서로를 꼭 안아주는 친구들이 되도록 해요. 알았나요?


2장 교실 2

새떼 소리가 들린다.


여은: 여러분, 창밖의 기러기떼를 잠깐 볼래요? 무슨 모양으로 날고 있죠?

방도식: 응,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 (머리를 긁적이며)응, 시옷자요.

여은: (웃으며)맞아요. 누가 일러주거나 훈련시키지 않아도 기러기들은 열 맞춘 생도들 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띠를 만들어 날잖아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해요? 여러분 도요새를 알아요?

방도식: 응..... 모르겠는데요.

여은: 선생님은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몸집은 작지만, 날갯짓이 정말 힘차죠? 도요새는 오백만 년 전 신생대부터 이 지구상에 살아온 나그네새 에요. 봄가을에 시베리아란 곳에서 이 곳 까지 일만 킬로미터를 무리 지어 이동해 요. 누가 그 먼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도요새들은 끊임없이 제가 가야할 길을 가죠. 연어도 그래요.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끝에 모태의 강을 찾아 돌아와 알 을 낳고 죽죠.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늘 인도하세 요.


3장 교실 3

용의 검사날이다.

방도식: 경수야, 너 손톱이 그게 뭐냐? 시컴해가지구, 그게 손이냐 발가락이지?

전경수: 그런 넌 임마! 손 좀 씻고 다녀라. 넌 그게 손이냐 탄 누룽지지?

곽기동: 야, 어쩌냐? 3반 애들은 손톱 긴 애들은 회초리로 진창 맞았다는데. (다리를 절 며 제 자리로 오며)선생님 오신다!


윤선생이 들어온다.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살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살핀다.


여은: 방도식, 전경수, 곽기동!

도식,경수,기동: (기어가는 목소리로)네!

여은: 수업 끝나고 남아요.

전경수: (아이들을 쳐다보며)우린 이제 죽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있다. 여은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 온다.

여은: 더운 물이에요. 여기에 모두들 손을 담가요.


아이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양동이에 손을 담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여은이 다가가 아이들의 손을 씻는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한다. 여은이 주머니에서 손톱깍개를 꺼내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깎는다.


3막

1장 전쟁

해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한다. 윤선생이 재직하던 학교는 문을 닫고 그는 도립병 원의 보조 간호사로 나선다. 전투는 치열했다. 병원은 복도에까지 부상병으로 초 만원이었고 하루 평균 수십 구의 시체가 매장지로 떠났다.


수술대가 놓여 있고 의사와 윤선생이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의사: 복부 파편상이구만.

여은: 수술을 해야겠지요?

의사: 윤간호사, 이 아이가 인민군이라는 거 몰라? 이 아인 수술 규정에 위반된다구. 발 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이 아이는 물론이고, 한 간호사와 나 역시 살아남지 못할 거야. 지금은 전쟁중이야. 다들 미쳐있다구.

여은: 선생님, 이 인민군 아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에요. 금방 죽어가는 환자를 놔두고 모르는 체 할 순 없잖아요. 의사의 사명이 무엇이죠? 죽을 때까지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의사의 사명 아닌가요?

의사: 자넨, 사람이 왜 그렇게 콱 막혔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구. 현실을 똑바로 보란 말야. 더구나 인민군이 다시 들이닥친다고 하더군. (가운을 벗으며)여러 소리 말 고 나랑 같이 여길 피하자고. 자네 목숨이나 챙기라구.

여은: 아니요. 전 여기 남겠어요.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이 곳을 뜰 수는 없어요.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환자를 두고 떠날 수는 없어요.

의사: (고민하며 가운을 다시 입는다)서둘러야 되겠어. 마취제와 지혈겸자를 준비해. 취 사실에 가서 물도 끓이고.

여은: 예, 선생님.


2장 고문

해설: 인민군이 잠시 지역을 점령했으나 곧 물러가고, 국군에 의해 수복이 된다. 곧이어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업이 시작되었다.


여은이 의자에 묶여 있다. 형사가 취조 중이다.


형사: 윤여은, 선생 출신이라 봐줬더니 이년이 거짓말만 둘러대! 네 년이 한 일이 무슨 짓인지 아는 거야? 의사를 꼬셔대 인민군만 골라 치료를 하고 말야. 너 빨갱이지? 사범학교 다닐 때부터 학습해 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수업 시 간에 사상을 주입해왔던 거지? 얼른 대답하지 못해?

여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종입니다. 신분과 지위, 부귀와 빈 천을 따지지 않으시고 모든 이를 사랑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아이를 치료한 것 뿐입니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입니까?

형사: (여은을 발로 치며)이런 빨갱이년, 뭐가 어째? 말 잘하는 거 보니 진짜 빨갱이군. 그럼 교사로서 모은 돈은 다 어디에 둔 거야? 대남공작금으로 사용하지 않았냐 구?

여은: 제가 평소 돈을 모아 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다. 돈이 조금씩 모이면 고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교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힘이 닿 는대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아닙니까?

형사: 흥,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어. 빨갱이라고 실토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어. 전시에 너따위 하나 죽여봤자 누가 알 성 싶어? 마지막 기 회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나간다)

여은: 주님, 저를 구해 주옵소서. 나를 어찌 버리십니까? 욥과 예레미야도 고난을 당하 였으나 하나님을 의심치 않았다 했습니다. 주님,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내게도 그들과 같은 믿음을 주소서.


불이 꺼진다.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자 1: 윤선생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자 2: 윤선생님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제자 3: 우리 선생님을 풀어주세요!


해설: 보통학교 학생 학부모와 교회 교인들이 수감된 경찰서 마당까지 몰려왔다. 그들의 탄원으로 윤선생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풀려났다. 전쟁이 끝났다. 여은은 결혼 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아들을 양자로 들여 키우며 산다. 윤선생은 도교육청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낙도나 작은 분교의 평교사를 지원했다. 외딴 섬에 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곳에 교회가 없다면 젊은 목사를 청빙해와 자신이 개척 교회를 세우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3장 교실 4

여은이 강의 중이다.


여은: 이 시간은 시인 천상병님의 「귀천」을 공부하겠어요. 천상병님은 깊은 고문의 상 처로 평생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산 분이에요.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맑고 밝은 시 를 지으시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다 주었죠. 선생님이 한 번, 읽어보겠어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여은 복부에 통증을 느낀다. 몸이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인다. 아이들이 놀래하며 선생님에게 달려간다.


아이들: 선생님, 선생님!


4막


1장 병원 1


해설: 여은은 신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방도식, 곽기동이 선생님 주위에 있다.


방도식: (여은을 향하며)선생님 기억하세요? 저희 반에 홍동시라는 애가 있었잖습니까? 별명이 홍시였는데 얘가 동네 애들과 남의 밀밭에 들어가 밀 서리를 했는데, 그 만 이 홍시만 주인한테 잡혔지 뭡니까? 이튿날 학교로 통고가 오자 방과 후 선 생님이 홍시를 데리고 밀밭 주인을 찾아가 학생을 잘못 가르쳐 죄송하다며 백 배 사죄하시고 선생님이 서리하여 베어진 밀밭에 무릎 꿇어 홍시 대신 한 시간 벌을 서시고, 홍시는 한 시간 동안 꼴을 한 짐 베라는 일감을 맡겼지 뭐예요. 선생님 기억하세요?


여은은 웃기만 한다.


방도식: 곽박사, 자네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지?

곽기동: 집에서 산 넘고 개울 건너 십 오리 길을 다리 절며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은 내 게 늘 용기를 주시고 보릿고개 때는 도시락을 여러 개 준비해 오셔서 나처럼 점 심 굶는 반 애들에게 나누어 주셨지. 졸업을 앞두고 반 애들에게 선생님께서 장 래 희망을 물으시자, 나는 의사가 되어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 고 말했잖았나? 선생님이 그 말을 새겨들었다, 논 몇 마지기에 목을 매는 우리집 까지 찾아오셔서, 기동이가 이제 글을 깨쳤으니 보통학교 졸업으로 충분하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나를 공립중학교에 입학시켜주셨어. 졸업할 때까지 납입금을 보태주시기까지 했으니 그런 은공을 살아생전 잊으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야. (여은을 향하며)선생님은 제게 영원한 어머님이십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선 생님 건강 지켜주십사고 기도부터 드리지요.

여은: (수줍게 웃으며)곽박사님 기도 덕분에 제가 이렇게 오래 살고 건강하잖아요.


2장 병원 2

여은: (힘겹게)전 선생님, 저기 성경책에서 구약 이사야 53장을 찾아 좀 읽어줘요.

전경수: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 고를 아는지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 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은: 고마워요, 전 선생. 모두 쉬쉬하지만, 전 알아요. 신장으 암이 온몸으로 저, 전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전경수: (민망해하며)선생님 절대 체념 마시고 힘을 내세요. 포기하시면 안돼요. 제가 옆에서 힘이 되어 줄게요.

여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3장 임종

여은: 저는 세상 사람들 앞에 교사로서의 품위를 보이려 위선이란 옷을 입고, 모범으로 꾸미며, 내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멸시를 당했거나 수 난과 박해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같은 죄인이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 에 들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이런 참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왔겠지요. 저희 죄를 알지 못하는 뭇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저희가 당할 고통을 대 신 당하시며 그 고통이 하도 괴로워, 나를 어찌 버리셨나이까, 나의 영혼을 하나 님께 맡긴다고 말씀 하셨지요. 주님, 주님은 메시아이시니 몸은 비록 죽더라도 이 여식으 영혼을 구원해주소서......

주님만은 알고 계시죠. 저는 사범학교에 다닐 때 한 남학생을 사지로 몰아넣는 죄 를 지었습니다. 하늘 아래 영원히 숨겨지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야말로 그 살인죄를 평생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 남학생은 하늘나라로 갔겠지요. 저으 죄 까지 그 남학생이 지고 침묵하며 눈감았으니 주님이 그 선행을 이뻐하셨겠지요. 그런데 주님, 한 가지만 더 살짝 말씀드릴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도 여성인데 왜 자식 낳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아기 젖 먹이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여운 줄 저라고 왜 몰랐겠어요. 주님, 제 어리광을 받아주세요. 등잔을 들고 주 님 오시기를 밤새 기다린 신부으 마음을......하늘나라는 사철 꽃이 지지 않는 아 름다운 동산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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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서커스> / 최인석 / 책세상 / 2002 

 

확신과 주저 사이에서

최인석론




1.



정말로, 우리는 세상 밖에 있다.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나의 감촉이 사라졌다. 아! 나의 성, 나의 작센산(産) 모직옷, 나

의 버드나무숲. 저녁, 아침, 밤, 낮들......난 지쳤다!

난 분노를 위한 나의 지옥이, 오만을 위한 나의 지옥이, 그리고

애무의 지옥이 있어야 할텐데. 지옥들의 모의(謀議)가.

지긋지긋해 죽겠다. 이건 묘지다. 나는 구더기들에게로 간다. 공

포 중의 공포로다! 사탄이여, 어릿광대여, 너는 너의 매력으로 나

를 분해하고 싶어한다. 나는 애원한다! 쇠스랑의 타격을, 한 방울

의 불을.

아! 다시 삶으로 떠오르기! 우리의 추한 모습에 눈길을 던지기!

그리고 이 독, 정말로 저주받을 이 입맞춤! 나의 연약함, 세계의

잔혹함! 맙소사, 불쌍히 여기시오, 날 숨겨주오, 나는 너무 행실

이 나쁩니다!―나는 숨겨지고 숨겨지지 않는다.

불로 천벌받은 자와 함께 되살아나는 것은 바로 불이다.

―<지옥의 밤> 부분(김현 譯)


  랭보(A. Rimbaud)의 어린 날을 마냥 즐겁게 해주던 성(城)과 작센산 모직옷과 버드나무숲은 이제 저녁처럼, 아침처럼, 밤처럼, 낮처럼 사라지고 있다. 19세기 말 그가 목도한 부르주아 문명은 그 있는 곳을 세상 밖이며 지옥이며 묘지로 바꾸고 만다. 그는 이제 자본주의 문명과 중산계급에 저주와 조롱을 퍼붓는다.

  작가 최인석(崔仁碩)이 목격하는 현금의 자본주의 세계도 랭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작품들이 탄광촌, 매음굴, 감옥, 군대, 판잣집 촌 등과 같은 시대의 아픔과 슬픔이 결집된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좋은 증거가 될 듯 싶다.

<나를 사랑한 폐인(廢人)>(<나를 사랑한 폐인>, 문학동네, 1998)에서 자칭 폐인국의 왕인 동찬은 랭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가출, 어쩌면 랭보의 평생은 가출의 연속이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이 궁핍하고 비참한 세계와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로? 베를렌과 파리의 시인들 속에서도, 홍해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그는 위엄을, 자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출을 한단 말인가? 어쩌면 랭보가 가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쪽문이 악덕과 조롱, 그리고 상상의 세계였다.(19면)



  최인석의 소설들은 이내 날카롭게 다듬어진 촌철(寸鐵)처럼 '궁핍하고 비참한 세계와 삶'의 급소를 찔러대고 있다.

  근작인 중편 <서커스 서커스>(책세상, 2002)도 예외는 아니다. 우렁이들이 서커스를 해야만 돌아갈 줄 아는 자본주의 세계를 그 역시 우렁이가 되어 느릿느릿 그려내고 있다. 우렁이가 그려낸 우렁이들의 서커스를 들여다보자.


2. 우렁이들의 서커스; 우렁이의 생태학적 보고서



  윤상준의 아들 승호가 여자 친구 주희에게 들려주는 <우렁이와 장꾼>  우화는 이렇다. 우리가 아는 여느 우렁이처럼 이 우렁이 각시도 하루에 한 번씩 여자로 변해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밥도 짓는다. 그런데 각시의 옆에는 농사꾼이 아닌 장사꾼이 있다. 그는 힘든 장사 일을 때려치우고 <사람으로 변하는 우렁이!!! 관람비는 단돈 오백원!!!> 간판을 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다. 전국의 관람객들은 앞다투어 서커스하는 우렁이를 구경하고, 장꾼은 엄청난 부자가 되어 서울에서 대학 나온 예쁜 여자를 구해 결혼도 하고 새끼도 낳고 잘 먹고 잘 산다. 그리고 우렁이는 철망에 갇혀 살다 죽는다.

  이야기를 들은 주희가 '징그러운 패러디'라고 쏘아붙이듯 그저 장난기 서린 상상력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뭔가 꺼림칙한 우화이다. 승호의 부연 설명을 들어보자.



 "이놈의 세상 꼴이 그런걸. 이놈의 세상엔 장사꾼하고 우렁이가 있는 거야. 우렁이는 장사꾼에게 잡혀 평생 고생만 하다 죽는 거고, 장사꾼은 우렁이를 철망에 가둬놓고 배 두들기고 놀면서 돈을 버는 거고. 난 뭐가 되어야 하지? 넌 뭐가 되고 싶어? 우렁이가 되어야 하나, 장사꾼이 되어야 하나? 둘 다 싫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16면)



  승호는 둘 다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선택한다.(18면) 영화를 만드노라면 장사꾼도 우렁이도 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그런데 대체 영화가 무엇이기에 그에게 이런 확신을 가져다 준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영화는 '협동작업에 의한 예술활동'(아르놀트 하우저<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창작과비평사 1999, 310면)이다. 여타의 예술 장르 대부분은 개인적인 고투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영화는 작가, 감독, 카메라맨, 미술감독, 각종 기술자 등의 공동작업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영화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 관중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유럽의 근대문명이 그 개인주의적 도정에 오른 이래 불특정의 집단적 군중으로서의 관중을 위해 예술을 생산하려 한 최초의 기도이다. 창작 주체 안에서의 호환(互換), 창작 주체와 관중간의 호환을 통해 영화는 예술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영화와 닮은 연극도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인석의 90년도 작인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에서 물신(物神)사회의 한 화신으로 여겨질 만한 박형욱과 대결하는 그의 아내 오명실이 연극에 끝없이 집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명실이 연기하고자 한 배역에게 비둘기라는 한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명실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명실은 안다. 그것은 윤조(그것이 여주인공의 이름이다)의 환상이다. 윤조에게는 물론이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힘을 주는 환상이다. 그것이 없이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행복에의 꿈이요, 의지다. 고통과 거짓과 억압과 추악함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그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이요, 의지다. 그러나, 윤조에게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그것은 그 꿈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방법에 대한 아무런 탐구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윤조의 꿈은 허구로 떨어지고 윤조의 의지는 고집으로 전락한다.(202면)



  명실이 연극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살을 맞대고 서로를 향해 소리 지를 수 있는 '살아있음'을 그 안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은 어디까지나 연극을 뿐이다. 윤조에게 비둘기라는 환상이 허구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듯이 연극 역시 한 순간의 도취 혹은 승리일 뿐이다.

  우화에서 보았듯이 우렁이와 장꾼은 함께 이윤을 만들어간다는 합력(合力)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입장의 대립이라는 쉬이 건너지 못할 강이 놓여져 있다. 승호의 미완 시나리오인 <우렁 각시 서커스>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렁이는 장꾼에게 사랑을 주고자 하지만 사랑에 전연 관심 없는 장꾼은 우렁이를 통해 얻는 돈만을 원하고 있다. 모지게도 등을 맞대고 돌아선 상황에서 마음을 함께 하기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승호의 영화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는 힘주어 확신하지만 그에게서 우리가 튼실한 미더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작품 초반부 그의 비명횡사도 우연만은 아닌 듯 하다. 승호도 역시 우렁이일 뿐이었다. 승호의 죽음 후 등장 인물들의 주위를 맴도는 환영(幻影)이 승호일 거라 짐작하는 것도 그저 환상으로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렁이들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이다.

  승호의 죽음 이후 이야기를 이끄는 상준은 그의 아들의 확언―"그는 우렁 각시 서커스의 장사꾼이다."(136면)―대로 장꾼일까? 그는 실제 직업이 장사꾼(금은방 주인)이다. 그리고 승호의 시나리오 속에서 장꾼의 아들이 책 만드는 사람이나 책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장꾼이 돈이 되는 일을 하라며 꾸중하듯이 상준도 역시 아들 승호의 평소 행태를 꾸짖고 그가 장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아들에게 장꾼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렁이의 삶이 곧 약자의 삶임을 상준은 체험을 통해 그리고 선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영상가의 임대 상인들이 임대료 문제로 싸움박질 하는 걸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승호의 화법에 따르면 이것은 욕망과 욕망의 싸움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승자도 패자도 욕망이다. 그들의 영주(領主)는 욕망, 그들은 욕망의 포로요 욕망의 전사, 이곳은 욕망의 전장이었다. 유일한 승자는 그러니까 욕망.(135, 136면)



  욕망이라는 영주가 다스리는 봉토(封土) 안에는 강자와 약자가 살고 있다. 강자는 장꾼과 같이 얍삽하여 비굴하리 만치 욕망에 복종한다. 반면 약자는 우렁이처럼 굼실대는 바람에 욕망으로부터 호된 타박을 듣는다. 욕망에 지배된다는 것은 분명 비굴한 일일 테지만 장꾼은 소용없을 법한 저항을 애초부터 내던지고 욕망의 수하로 들어간다. 그리고 우렁이라는 굼떠 보이는 존재를 지배함으로 그들에게 강자로 군림한다. 상준이 이해했던 세계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승자는 아닐지라도 강자로나마 자위(自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 그는 역시 승호에게도 같은 삶을 강요한다. 하지만 승호의 죽음 이후 상준은 더 이상 자신이 강자가, 또한 장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슬기라는 아들과 채팅을 즐기던 소녀에게 욕정을 품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며 고백한다.



  그 장꾼은 바로 나다. 난 내 우렁 각시들을 다 팔아먹었어. ......아무도 안 남기고 아무것도 안 남기고 다 팔아먹어 버렸다.......그런데......이제 와 돌아보니, 나 역시 누군가의 우렁 각시에 불과했던 것 같구나. 누군가가 날 팔아먹어 버린 것 같아. 그게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채로 난......장사 잘 하고 잘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169면)



  자신이 우렁이임을 힘겹게 깨닫는 상준이지만, 아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또 다른 우렁이들인 조카 승태의 친구들에 의해 비명횡사한다. 원뿔 꼴의 껍데기에 짧은 목을 잔뜩 움츠려야만 겨우 살아낼 수 있는 세상, 이 곳이 바로 지옥이, 그리고 묘지가 아닐까?


3. 유토피아―아무데에도 없는 나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에서 처절하리 만치 슬픈 우렁이들의 서커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우렁이들이 살만한 그 곳은 대체 어느 곳에도 없단 말인가? 우선 최인석의 그동안 작품들을 통해 그가 바라 본 세상과 바라는 세상을 살펴보고 <서커스 서커스>에서는 그의 바람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도 알아보자.

  10여권의 그의 소설들을 일별하며 느낀 것은 그가 바라 본 세계는 날이 갈수록 어둡고 음습해져만 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6년 장편 <구경꾼>이 소설문학사 주관 제6회 '小說文學賞'에 당선됨으로 희곡 작가에서 소설가로 새로이 자리매김한다.

  21세기를 세 해나 보내는 현재까지도 그의 소설들이 어두워져만 가는 것은 왜일까? 그의 초기작들이 분명 일정의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숱한 작가들이 천착했던 '노동 문제'와 '정치 문제'에 그 역시 골몰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잠과 늪>(실천문학사, 1987)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김대리를 뒤로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뭔가 후광에 싸인 듯한 노조위원장 태재영에게 김대리의 아내 박경선이 끌리는 것은 작가의 문제 의식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또한 <새 떼>(현암사, 1988)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여 운동권 출신이자 그 자신 노동자인 한태훈이 이야기를 이끈다는 사실도 덧붙여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서문에서 작가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획득해내는 변화만이 이 나라를 진정으로 민주화시킬 것이요, 분단된 이 나라, 이 겨레를 통일시킬 것이며, 이 나라 금수강산에 이빨을 박고 있는 외세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요, 마침내는 진정한 인간 해방의 지평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7면)



  87년의 항쟁의 함성이 채 가시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 해방의 지평'이라는 지금에 와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말도 이해가 간다.

  그는 이후로도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살림, 1990)와 <인형 만들기>(한길사, 1991)와 같은 당대 현실을 충실히 그려내는 작품들을 내 놓는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그것은 혹 그가 바라는 세상에 변화가 와서가 아닐까?

  90년대 초반 잇따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당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뼈아픈 배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최인석은 이제 대뜸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에서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를 끄집어낸다. 시체 애호증 혹은 시간(屍姦)을 뜻하는 네크로필리아는 일종의 페티시즘(fetishism)이다. 생명 없는 것에 대한 애착과 숭배라는 점에서 자본제 사회의 화폐에 대한 물신 숭배와 그 의미가 통한다.(서영채 <알레고리에서 심연으로>, <문학동네> 1997년 여름호.)
 


  이념의 장막이 걷혀 가는 과정 속에서 최인석은 좌절감마저 금새 걷어 버리고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이제 그는 바야흐로 '제2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다. 그는 이 때 다시금 "스물 여섯 해를 살았으면서도 세계의 핵심에 이르는 글은 아직 한 줄도 쓰지 못했다."(<한국문학> 1980년 6월 신인상 당선 소감)라는 초심(初心)을 되새겼는지도 모른다.

  최인석은 95년 <내 영혼의 우물>(고려원)을 상재하며 제2의 유토피아를 찾아 침잠(沈潛)한다. 그는 이제 환상성을 도입하여 그의 작품 세계의 반경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간다.

  그가 환상(幻想)을 들고나서는 것은 왜일까?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환상이란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느끼는 상념(想念)을 말한다. 이제 최인석은 현실에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그려낼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그동안 현실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고 현실에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눈에 가득한 현실의 문제들을 그려내지만 여전히 그 문제들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이제 그는 현실에는 없는 상념들을 동원하여 눈에 보이진 않지만 현실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들을 탐구하고, 현실에는 없는 유토피아를 더욱 치열하게 그려나간다.

 <세상의 다리 밑>(<내 영혼의 우물>)에서 이복기 병장은 여호와의 증인이었기에 현실 가운데서 천국을 가졌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하지만 군 입대 후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와 갈등이 일고 이내 배교자(背敎者)가 되어 세상으로 뛰쳐나간다. 이제 그의 앞에는 무엇이 펼쳐져 있는가? 그가 생각했던 천국은 사실 지옥이었다. 그런데 서둘러 지옥을 빠져나오자 이제 다시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병장은 외친다.



  "죽다니요? 내가 왜요? 죽지 않아요. 하지만, 이대로는 못 삽니다. 낙원을 찾을 겁니다. 없으면 만들 겁니다. 그것이 나라가 됐건 종교가 됐건 만들어서라도 살 겁니다."(108면)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절절히 다가오는 것이다. 환상은 현실에 없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기에 현실의 문제들을 더욱 많이, 그리고 깊게까지 담아낼 수 있다. 유토피아 도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환상성 도입은 이에 대한 증거가 될 만하다.

  작가의 육성이 흥건히 녹아있을 법한 자전적 소설인 <소설가 최보(崔甫)의 어제, 또 어제>(<나를 사랑한 폐인>, 문학동네 1998)를 잠깐 살펴보자.



  최보가 보기에, 그는 사실은 봄이어서 앉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느라 앉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선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는 영원히 앉지 못할지도 모른다.......모두가 어제의 친구들이지만, 모두가 어제만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들이었다.......그 역시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을 믿었으니까.(140―142면)



  그의 믿음대로 그 언젠가라도 신선의 봄은, 그리고 내일은 오고야 말 것인가?



4. 유토피아―아무데에도 없지만, 그려야하는 나라



  이제 그가 환상을 통해서까지 그려내고자 한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아보자. 소설가 최보는 "세상과 사람이 끝내 이 지경으로 살다 사라지고 말리라고 믿기에는 사람에 대해 너무 큰 신뢰를 품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소설가 최보(崔甫)의 어제, 또 어제>)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그의 작품에서 제2의 유토피아는 우선 존재들간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노래에 관하여>(<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창작과비평사 1997.)를 보자. 이 작품은 5공 정권하의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심성의 폭력성과 야만적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염무웅<부정의 치열성과 예술적 형상화>,<혼돈을 향하여 한걸음>1997.)


  김중연 중사로 대변되는 인간심성의 폭력성은 그의 수하 수용자들이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광기에 젖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김중사가 수용자들에게 강요하는 노래란 울며 먹는 겨자처럼 무서우리 만치 매운 것이다. 억압된 공간에서 순번을 매기며 강요로 부르는 노래란 이미 '노래'가 아닌 것이다. 마치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의 재주 부림이 헛웃음과 함께 슬픔을 동반하듯.

  그런데 수용자들 사이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군종 하사 권성진의 집례로 수용자들 사이에서 예배가 이루어진다. 수용자들은 모두 한 형제요, 한 아버지의 아들이요, 쉼을 얻어 마땅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똑같은 죄인들이었다. 그들은 노래(찬송)한다.

  바늘 사건으로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그들이 이제는 한 형제, 동일한 죄인이 되었다. 예배 후 순식에게 돌려지는 바늘은 서로간의 화해와 신뢰를 상징한다. 그리고 작업장에서의 노래도 이제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들은 정겹고 따뜻한 노래에 서로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으며, 발장단을 맞춘다. 그들은 이제야 한 울타리 안에서 '너와 나'라는 구분을 넘어 진정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순식의 노래에 취하여, 김중사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자신들의 온몸을 결박하고 있던, 저 철조망이나 김중사의 폭행 따위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잔인하게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이미 해방되어 있으면서도,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체 취한 듯 홀린 듯 순식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151면)



  수용소라는 억압된 공간 속에서 참다운 노래가 불러지고 있다. 이것이 최인석이 바라는 유토피아의 일면(一面)일 것이다. 이 곳엔 우렁이와 장꾼의 대립 같은 것은 없다. 그 곳에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별이 되고 달이 되'며(<내 사랑 나의 귀신>) '한 사람의 기쁨이 다른 이에게 슬픔이 되는 일이나 열 사람의 행복이 천 사람에게 불행이 되는 일 같은 것은 절대 없'을(<나를 사랑한 폐인>) 것이다.

  다음으로 제2의 유토피아에선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최인석은 '환난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을 심판의 순간을 꿈꾸는 의식, 근본적으로 종말론에 가까운 역사 초월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방민호<"시장과 구정물의 늪"의 딜레마를 넘어><나를 사랑한 폐인>, 문학동네 1998.)


  종말론이란 유대교,기독교에서 세상의 종말이 왔을 때 최후의 심판이 있음을 말하는 설이다. 성경의 비유대로 '도적 같이' 찾아드는 것이 바로 종말이다. 물론 최인석이 기독교적 종말관을 지니고 있다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는 청년 시절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두어 번 읽어나갔지만,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신의 존재부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 신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악을 택하는 인간을 내버려두었다는 것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임을 들고 있다.(홍기돈<영혼의 깊은 우물로 남는 두 개의 상처>, <작가세계>2000년 봄호.) 
 그가 '기독교적' 의미의 종말론에 공감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혁명이라는 인위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부터 도적 같이 찾아드는 종말에 의한 것으로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종말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이 절대 바뀔 수 없다는 슬픈 인식에 의한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더욱 지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종말에 다다라 있는 사형수 한주선은 말한다
.




  "왜냐하면 이놈의 세상이 이 지경인 한 아무리 많은 속죄양을 희생시켜가며 제사를 지내봤자 실패하는 게 당연하니까. 전쟁이나 혁명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을거야."(<봉천동, 그 찬란하던 날>,<구렁이들의 집>272면)



  그리고 그는 '푸른 송아지라는 건 없'는데도 푸른 송아지를 생각하며 기다린다. 종말 이후의 세계는 유토피아이다. 이 세계는 만물이 홀연히 변화된다. 그 곳은 '사람 같은 것들은 못 살고 용(龍)이 살'며(<지리산에 저 바다>) '양 같은 범이 놀고 범 같은 양이 노는 곳'(<염소 할매>)이다. 그 세계는 온갖 부정과 거짓 투성의 인간인 채로는 들어갈 수 없다. 지금의 세상이 홀연히 변화되어야 하고 그 안에 속한 각 존재들도 홀연히 변화되어야 한다. 결국 유토피아의 두 번째 모습은 첫 번째 모습을 내포할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존재들간의 깊은 신뢰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5.'서커스 서커스'를 넘어



 <서커스 서커스>속의 유토피아는 우렁이와 장꾼의 대립이 사라지고, 더 나아가 우렁이와 장꾼이라는 존재 구분마저도 사라진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두 우렁이는 죽고 만다. 그리고 나머지 우렁이들은 기이하게 생긴 껍데기 속에서 좀처럼 나오려 들지 않는다. 뭔가를 어렴풋이 깨달았던 승호와 상준 우렁이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세상은 그들의 깨달음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제 우렁이들의 목은 더욱 움츠려만 갈 것이다.

  이제 유토피아란 꿈꿀 수조차 없단 말인가? 필자는 <우렁 각시 서커스>의 우렁 각시에게 귀 기울인다. 우렁 각시는 "사랑이 장꾼을 만들고 나를 만들었으며, 우렁이들의 사랑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162, 163면)

 <서커스 서커스>를 통해 바라 본 최인석의 유토피아가 이제 보인다. 사랑이 우렁이 각시를 사람으로 만들 듯이, 사랑만이 존재의 근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존재들간의 사랑만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 글 중에 최인석의 기독교 이해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당시 최인석은 중요한 신의 속성 한 가지를 빠뜨린 것 같다. 인간이 악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인간을 창조한 것은 전지(全知)와 전능(全能)을 넘어선 '사랑'때문이 아닐까 한다. 굳이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제 최인석은 어찌하든지 사랑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자고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대학원생과의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이성만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이성 더하기 알파, 알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야말로 막연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모성적 이성, 관대한 이성, 이런 생각을 해보는 적도 있습니다......나는 모성적 이성이라고 할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해나 지식, 이런 것의 가장 작은 씨앗이 되는 것은 관심이나 사랑이 아닐까......그러니까 사랑이나 관심이 없는 이성, 남성적이고 지배적이고 재판관 같은 이성이라기 보다 모성적이고 따뜻하고 관대한 이성, 이런 것을 상상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수용소 없는 혁명, 이런 것을 생각해보는 겁니다.(최인석,정여울 대담<세상의 모든 우렁이들에게><서커스 서커스>, 책세상 2002.)


  살펴본 것과 같이 최인석이 유토피아에 다다르기 위한 도정(道程)은 사뭇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유토피아를 열망함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다. 결코 희망도, 내일도 없으며 고통만이 확실한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영원'을 발견한 랭보처럼 최인석도 힘겹게 발견한 유토피아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다.

  서커스보다, 무거운 등껍데기 보다 우렁이를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눈을 빼꼼이라도 들어 쳐다볼 수 있는 하늘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인석이란 우렁이가 바라 본 하늘은 오늘 맑게 개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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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인> / 최인훈 / 문학과지성사 / 2008

 

회색의 영혼, 사랑과 시간의 이중주

 

나의 싸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신현림의 이 시가 떠올랐다. 관념적인 것도 그렇고 또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라는 화자의 토로가 독고준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독고준은 말한다. “젊은 사람이 할 만한 일이라면 사랑과 혁명일 것이다.” 하지만 혁명을 하기에는 마음은 높고 현실은 낮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랑과 시간’이다. 역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시간이다. 시간은 역사의 한 요소이자 지배자이기도 하다. 이 시간 앞에 역사는 언젠가 무릎 꿇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지배하고 이루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신현림의 시에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과 싸워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듯이 독고준도 사랑으로 채워진 시간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려 한다. 이제 독고준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이 소설은 최인훈의 여타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소설 속에 별다른 사건을 갖지 못하고 있다. 소설의 처음과 끝이 김학이 독고준의 하숙방을 찾는 것을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인물들의 외적 변동이 거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회색인>의 연작소설이라 할 수 있는 <서유기>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의 서두는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되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 자신의 뇌리를 스쳐갔던 단상들로 한 권의 소설을 끝마치고 있다.  

  독고준은 이북이 고향인 평범한 문학도이다. 그에게는 김학이라는 정치학도 친구가 있는데 김학의 권유로 정치학과 학술 동아리인 ‘갇힌 세대’에 들게 된다. 무엇이 이들 자신을 ‘갇힌 세대’로 생각하게끔 했을까? 이들의 불만은 정치학도들답게 정치적이다. “자유의 역사에는 끈적끈적한 피가 엉겨붙어 있어. 우리들의 경우는 피 대신에 막걸 리가 흐르고 인간의 모가지 대신에 고무신이 굴러가고 있어” ‘갇힌 세대’의 일원인 김정도의 말이다. 서양의 역사와 비교하여 우리의 정치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특권을 유지하려는 계급과 그것을 거부하는 계급 사이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왜냐하면 다름아닌 그들의 피를 주고 샀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서구로부터 민주주의를 이식받았다. 때문에 막걸리 한 잔과 고무신 한 짝에 표를 파는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있어 피, 그리고 자신의 모가지와 같은 표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막걸린 한 잔과 고무신 한 짝보다 못한 것이다. 결국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힘이 아닌 남의 힘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갇힌 세대’의 동인들은 각각 처방안을 내놓는다. 그 중 김학의 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학은 젊은이답게 혁명만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급진적인 학의 의견에 준은 다소 끌리기도 하지만 그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과 시간’이다. “애써도 추켜세울 수 없는 이 허물어진 마음. 회색의 의자에 깊숙이 파 묻혀서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자는 이 몸가짐.” 준은 이렇게 회색의 의자에 앉아 사랑을 하고자 하고 또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관조라는 말이 여기에 꼭 어울릴 것 같다. 

  최인훈이 만들어 낸 인물들의 관조적 태도는 다른 소설들에서도 자주 보인다. <GREY 구락부 전말기>에서 M이라 불리는 창백한 청년은 “우리는 잿빛을 사랑하는 자로 나섭니다. 어찌하여 속물들은 ‘치기’를 그리도 두려워 합니까? 우리는 분명한 마음으로 외칩니다. 우리는 움직임을 마다한다고. 잿빛의 저녁놀 속에서만 슬기의 새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눈을 뜹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의 중세에 있어서 회색은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회색의 회한의 잿빛이요 고뇌의 조짐, 미덕과 악덕, 환희와 고통의 혼인으로 신이 타기하는 어중간한 위인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전에 신이 타기하던 이들을 지금에서도 우리는 몰아내야 하는 것일까? 독고준의 태도는 허무주의 혹은 순응주의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독고준의 깊은 곳을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독고주의 시간들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준은 작품 속에서 자주 자신의 고향인 W시를 떠올린다. 그 곳에는 가족, 오월의 사과꽃 그리고 가을의 코스모스 등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서 느꼈던 소년 독고준의 행복도 깨지고 만다. 그것은 존재의 자각 때문이었다. 자신은 분명 그대로인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예전과는 달리 대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더 이상 그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는다. 준은 변해가는 주위의 시선(사회)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일탈의 두려움에 다시 그곳에 속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준은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귀를 찢는 듯한 제트기의 공습을 피하려 들어간 방공호 속에서 한 여인이 그를 뜨겁게 포옹한다. 소년 독고준은 놀라 숨을 헐떡이지만 이후 그에게 있어 그녀는 커다란 의미가 되어버린다. 준에게 있어 이 경험은 사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시린 아픔 중에서 이 여인을 만나고 뭔가 알지 못한 따뜻한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훗날 그가 청년 시절 여성들로부터 그토록 얻기를 원했던 바로 그 ‘사랑’이다. C.G.융이 말하는 ‘아니마’가 독고준의 경험 속에서 엿보인다. 독고준은 아니마를 찾기 위해 방황한다. “그녀의 얼굴이 겹쳤던 방공호 속의 여자의 얼굴. 폭음. 살 냄새. 여름날의 햇빛. 밤나무숲에서 멀리 도시를 바라보던 소년의 설렘.” 준은 김순임으로부터 방공호 속 여자의 환영을 발견한다. 하지만 김순임도 어디까지나 방공호 속 여자의 환영일 뿐이다. 이후 그는 사랑의 원형을 찾기 위해 이유정에게 구애하기도 하고, 자신의 시간의 원형이기조차 한 부친의 고향에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김순임에게서도 그랬듯이 그들은 어디까지나 환영이고 흔적일 뿐이다. 독고준은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경주, 또 경주하지만 그것은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독고준의 사랑을 얻기 위한 시간들은 이미 그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황선생이 말하는 불교의 실천적이고도 구체적인 사랑이 독고준의 시간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랴?” 이 독고준의 아포리즘에서 나는 그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확인하고, 또 기대한다.

  최인훈은 얼마 전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고별 강연회에서 독특한 예술론을 펼쳤다. “예술은 때로는 엄숙하게 폼 재고 종교의 모자를 엉터리로 갖다 쓰기도 하지만, 예술은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돌격 5분 전에 휴식을 취하면서 부르는 노래, 그 때 피우는 담배 한 개비 같은 것이다.” 생의 한 순간까지도 치열하게 사랑하는 것은 이 때의 노래의 재미, 그리고 담배의 맛과 같은 것이 아닐까? 독고준의 치열함을 더욱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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