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소위 '인류를 대표한다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내리 세 판을 불계패로 당하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 앞에서 우리가 옴짝달싹 못하고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당장 '북한 핵' 문제만 하더라도 어느 영특한 천재가 이미 오래 전에 찾아낸 '새로운 기술'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엄청난 계산능력'을 자랑하는 수퍼컴퓨터가 바둑의 최고수 한 명을 단지 내리 세 번 꺾었다고 해서 너무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지 않을까? 그렇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제 꾀에 스스로 속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번 충격은 좀 쎄다. 백여 년 전에 니체가 '인류의 도덕'에 대해 거창하게 주장했던 말들도 오늘은 죄다 '알파고'에 대해 늘어놓은 말처럼 들린다...

 

 * * *

 

훨씬 후에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여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본 적이 없다. ㅡ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찾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 너희의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우리의 보물은 우리 인식의 벌통이 있는 곳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날개 달린 동물이자 정신의 벌꿀을 모으는 자로 항상 그 벌통을 찾아가는 중에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쓰는 것은 본래 한 가지 ㅡ 즉 무엇인가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 외의 생활, 이른바 '체험'에 관해서라면, ㅡ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그런 것을 살필 만큼 충분히 진지하겠는가? 아니면 그럴 시간이 충분한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일에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몰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 우리의 마음은 거기에 없었다 ㅡ 거기에는 우리의 귀마저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신적인 경지로 마음을 풀어놓고 자기 자신에 깊이 몰두해 있는 사람의 귀에 마침 온 힘을 다해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그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 "지금 친 것이 도대체 몇 시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훨씬 후에야 귀를 비비면서 아주 놀라고 당황해서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체험한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더 나아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물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중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생활, 우리 존재의 열두 번의 종소리의 진동을 모두 세어보게 된다 ㅡ 아! 우리는 그것을 잘못 세는 것이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의미를 지닌다. ㅡ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제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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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담하고도 냉철한 사유가 중의 한 명인 《도덕감의 기원에 관하여》의 저자가(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인 니체라고 읽을 것) 인간 행동에 대해 자기의 결정적이고도 통렬한 분석에 의해 이른 자기의 핵심 명제는 무엇인가? ······· 이 명제가 역사적인 인식의 망치질에 의해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면 언젠가는, 아마도 미래의 언젠가는 인류의 '형이상학적 욕구'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도끼가 될 것이다. ㅡ 이것이 인류에게 더 많은 축복일지 더 많은 저주일지,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어쨌든 가장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명제로서, 많은 결실을 맺으면서도 동시에 공포스러운 명제이자, 모든 위대한 인식이 갖고 있는 이중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명제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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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대성'에 관해서라면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의 노래도 결코 빼놓을 수 없겠다 싶다.)

        코로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

사람은 사나운 겨울 남풍 속에서도
잿빛 바다를 건너며 내리 덮치는
파도 아래로 길을 연다네.
그리고 신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무진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대지를
사람은 말馬의 후손으로
갈아엎으며 해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서는 쟁기로 못살게 군다네.

그리고 마음이 가벼운 새의
부족들과 야수의 종족들과
심해 속의 바다 족속들을
촘촘한 그물코 안으로 유인하여
잡아간다네. 총명한 사람은.
사람은 또 산속을 헤매는 들짐승들을
책략으로 제압하고,
갈기가 텁수룩한 말을 길들여
그 목에 멍에를 얹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산山소를 길들인다네.

또한 언어와 바람처럼 날랜 생각과,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심성을 사람은 독학으로
배웠다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노숙하기가
싫어지자 서리와 폭우의 화살을 피하는 법도.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 대비 없이 사람이 미래사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다만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수단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라네.

하지만 사람은 고통스런 질병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이미 궁리해냈다네.

발명의 재능에서
기대 이상으로 영리한 사람은
때로는 악의 길을 가고,
때로는 선의 길을 간다네.
그가 국법과,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존중한다면 그의 도시는 융성할 것이나,
무모하게도 불미스런 것과 함께하는 자는
도시를 갖지 못하는 법이라네.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332∼372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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