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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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는 자신의 경험에 영원성의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정도에 달려있다

 

나는 이제 흥미를 느끼고 따라오는 친구를 고독한 관찰의 높은 고지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는 단지 몇 안 되는 동반자들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격려하면서 우리의 빛나는 지도자, 그리스인을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스인들로부터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미적 인식을 순화하기 위해 저 두 신의 형상을 빌려왔다. 이 신들은 각각 독립된 예술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두 신이 서로 접촉하고 서로 고양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원초적인 두 예술 충동의 기이한 분열로 인해 그리스 비극이 멸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과 그리스의 민족성의 타락 및 변화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예술과 민족, 신화와 윤리, 비극과 국가가 얼마나 필연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 진지하게 숙고할 것을 요구한다. 비극의 몰락은 동시에 신화의 몰락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스인은 경험한 모든 것을 무의식적으로 곧 신화와 연결시켰다. 아니 이렇게 연관지어야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가까운 현재도 "영원한 모습 아래의 것", 어느 정도 시간을 초월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가나 예술은 순간의 부담과 탐욕에서 쉬기 위해 시간을 초월한 것의 흐름 속에 몸을 담근다. 한 민족의 가치는 - 인간의 가치도 마찬가지로 - 자신의 경험에 영원성의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이나 인간은 세속에서 벗어나고,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삶의 진정한, 즉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한 자신의 무의식적인 확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민족이 자신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하고 주변의 신화적 방파제를 파괴하기 시작하면 그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보통 이와 연관하여 결정적인 세속화, 자신의 과거 실존에 대한 무의식적인 형이상학과의 단절, 그리고 모든 윤리적 결과 등이 나타난다. 그리스 예술, 특히 그리스 비극은 무엇보다 신화의 파괴를 저지한다. 고향땅을 떠나 사상, 윤리와 행동의 거친 황야에서 아무 제약도 없이 살려면 신화도 함께 파괴해야 한다. 지금도 저 형이상학적 충동은 삶을 얻으려고 재촉하는 학문의 소크라테스주의 속에, 약화되긴 했지만 하나의 미화 형식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똑같은 충동이어도 낮은 수준에서는 단지 성급한 탐색으로 나아간다. 성급한 탐색은 온갖 곳에 출처를 둔 수북이 쌓인 신화와 미신의 복마전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 한가운데 그리스인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앉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리스적 명랑성과 그리스적 경박성을 가지고 그레쿨루스Graeculus로서 저 탐구열을 위장하거나 동양적으로 우울한 미신 속에 완전히 마취되는 법을 알게 된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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