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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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파괴

 

비극 속으로 한번 침투한 낙천주의적 요소는 비극의 디오니소스 영토를 서서히 잠식하고 결국 그것을 자기 파멸로, 즉 시민극으로의 투신 자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미덕은 지식이다. 죄는 무지에서 저질러진다. 미덕을 갖춘 자는 행복한 자다"라는 소크라테스 명제의 논리적 결론만 상기하면 된다. 낙천주의의 이 세 근본 형식 속에 비극의 죽음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이제 덕 있는 주인공은 변증론자여야 하고, 미덕과 지식, 신앙과 도덕은 필연적이고 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초월적 정의라는 아이스킬로스의 해결책은 상투적인 자동 해결사인 신을 사용하는 "시적(詩的) 정의"라는 평면적이고 파렴치한 원칙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소크라테스적-낙천주의적 무대 세계에 비해 이제 합창단과 비극의 음악적, 디오니소스적 토대 전체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그것은 우연적인 것으로, 비극의 기원에 대한 없어도 좋을 추억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합창단을 비극과 비극적인 것 자체의 원인으로 생각할 때에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소포클레스에게서 합창단을 둘러싼 당혹감이 역력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는 이미 그에게서 비극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징표다. 그는 과감하게도 합창단을 등장 인물로, 배우로 새롭게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합창단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나와 무대 위로 올라간 듯이 보였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합창단에 대한 이런 견해에 찬성했을지라도, 이로써 합창단의 본질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소포클레스는 매번 자신의 연극을 상연하면서, 또 전승에 따르면 어떤 책에서도 합창단의 위치를 이와 같이 변화시킬 것을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는 합창단의 절멸에 이르는 첫걸음을 뗀 셈이 된다. 그 뒤를 이어 에우리피데스, 아가톤과 새로운 희극에서 합창단의 파멸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낙천주의적 변증론은 삼단논법의 채찍을 휘둘러 음악을 비극에서 추방한다. 즉 그것은 비극의 본질, 즉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유일한 표현이며 형상화요, 음악의 가시적 상징화이며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꿈같은 세계로 해석될 수 있는 비극의 본질을 파괴한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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