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송곳 같은 부리, 칼날 같은 이빨, 까마득한 절벽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는 담력 ······. 정약전은 가무우지를 '물고기의 매'라고 표현했다. 매처럼 가마우지는 실제로 한번 노린 먹잇감을 웬만해선 잘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감탄스런 낚시 솜씨가 자신에게 노예의 올가미를 씌우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메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순간 깜박 잊어버리고

다만 물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 이동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가마우지의 뺴어난 물고기잡이 광경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가마우지 낚시'를 고안해 냈다.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는 이 낚시 법을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중국의 구이린(桂林)과 일본의 이누야마(犬山) 지방의 낚시 장면을 보고 쓴 시이다.

 

(······)

 

가마우지 똥이라니 좀 머쓱했지만, 가마우지 똥은 한약재로도 쓰고 외국에선 양질의 질소 비료로도 쓴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가마우지 똥이 나온다.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 어떤 새들은 아직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새들이었다. 그들은 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바다의 섬들은 새똥으로 덮여 있었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평생 만들어 내는 새똥으로 같은 기간 동안 사람의 일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수지 맞는 사업이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

 

 

가마우지는 죽음조차 남다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똥까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한 뒤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가마우지들이 죽음을 맞는 해변을 그리고 있다. 이 해변이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는 지상의 가난한 영혼들이 쉴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을 창조한다. 이 해변은 그런 점에서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을 위해 평생 낚시를 하고, 자신의 분뇨마저 질소 비료로 쓸 수 있게 만든 다음 외롭게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바닷가 묘지가 우리들 마음 어닌가에도 있을지 모르곘다. 조용히 죽어 가는 가마우지를 가슴에 안고, 내 심장 박동 소리로나마 그를 위로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중국 구이린 지방에서는 가마우지들이 숨을 거둘 시간이 오면 어부들이 술잔을 들고 가마우지들의 마지막을 지킨다고 한다. 가마우지와 어부는 그들이 함께 한 강물을 내려다보며 함께 술을 마신다. 가마우지가 없었다면 어부의 삶은 곤궁을 면치 못했으리라. 이 가난한 어부를 위해 가마우지는 고통스러운 노예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노역을 통해 어부의 집안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부가 부어 준 마지막 술을 마시며 가마우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어부의 눈에선 비로소 눈물이 떨어진다.(185∼190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가마우지, 페루에 가서 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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