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엽궐련 제품에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

 

이런 책 읽기에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는 (엘 피가로 시절에서 보듯 자신이 번 돈으로 독사에게 수고비를 지불했던) 근로자들에 의해 미리 결정되었으며, 그 장르도 정치 논문과 역사물에서 현대 및 고전 소설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예컨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한 무리의 근로자들이 뒤마에게 자기들 엽궐련 제품에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뒤마도 이 요청을 기꺼이 승락했다.(169∼170쪽)

 

 

그 즐거움은 흰 머리가 다시 검어질 만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즉흥적인 모임에서 비공개적으로 실시되는 공동 책 읽기는 17세기에도 꽤 빈번했다. 모험을 좇아 여행하는 돈키호테를 찾다가 어느 여관에 닿으면서, 돈키호테의 집 서재에 꽂혀 있던 책들을 그리도 열렬히 불태웠던 성직자는 사람들을 향해 기사도 소설이 돈키호테의 정신을 어떤 식으로 혼란에 빠뜨렸는지를 설명한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나서서 자신은 주인공이 거인들과 맞서서 씩씩하게 전투를 벌이고 괴물 같은 뱀들의 목을 비틀고 혼자 힘으로 막강한 군사들을 격퇴시키는 그런 이야기를 듣길 즐긴다고 고백하면서 성직자의 말에 반대한다. 여관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추수기의 축제 동안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요. 그러면 그 중에는 틀림없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몇 명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이 책들 가운데서 한 권을 손에 뽑아들면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그의 책 읽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 즐거움은 흰 머리가 다시 검어질 만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죠."(177∼178쪽)

 

 

혼자 소리 없이 읽을 때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통일성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든 아니면 중세 말기의 겨울 방안에서든, 또 르네상스 시대의 여관이나 부엌이든 혹은 19세기 응접실이나 엽궐련 공장에서든-심지어 오늘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배우가 책을 읽는 테이프를 들을 때든-남에게 책을 대신 읽도록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책 읽기에서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자유들을-목소리의 음색을 선택하고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가슴에 절실히 와닿는 문장은 다시 돌아가 읽는 따위의 자유를-박탈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책 읽기는 또한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텍스트에, 그렇지 않고 혼자 소리 없이 읽을 때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통일성을, 즉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유대감을, 그리고 공간적인 면에서는 존재감을 불어넣기도 한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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